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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다섯 빛깔 여덟겹 그리움

창작동화 김향이............... 조회 수 2208 추천 수 0 2001.12.29 17: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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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오색팔겹동백꽃이란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요?
한 나무에 다섯 빛깔, 여덟 겹 꽃이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에요. 세상에서도 단 하나뿐인 오색팔겹동백꽃. 그게 바로 나랍니다. 나는 일본 교토 시의 지장원이라는 절 마당에 살고 있답니다. 원래의 절 이름보다는 동백나무 절로 더 알려진 곳이지요. 어머니나무가 고향을 떠나 이 곳에 뿌리내린 뒤로 2세, 3세 자손들이 열 그루로 불어났습니다. 제 나이도 백 살이 되었고요.
"어미는 조선땅에서 태어났다. 울산 학성이 고향이란다. 어미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다마는 너희는 꼭 돌아가야 해...."
십 년 전, 사백 살의 나이로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어머니의 말씀은 제 가슴에 살아 남아 있습니다.
"내 고향 학성엔 말이다......"
여느 날처럼 어머니는 말문을 여셨습니다. 그러고는 잠시 푸르스름한 하늘로 눈길을 주었습니다. 초저녁 달이 파리한 얼굴을 내밀 때였지요.
"학성 달은 참 밝단다. 그 중 팔월 보름달이 제일이지. 이지러지지도 모나지도 않은 달이 둥실 떠오르면, 마을 아낙들이 달마중을 나왔느니라.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소원을 빌었지."
어머니는 벌써부터 목이 잠겼습니다. 수도 없이 되풀이한 이야기지만 늘 새삼스러운 모양이었습니다.
"아랫재 분이 아가씨의 소원은 나도 훤히 알고 있었다. 내 열매를 주우러 올 적마다 속마음을 털어놓았거든. 새가 엿들을까, 바람이 시샘할까 맘 졸이며 속삭이곤 했다. 분이 아가씨는 샘골 도령을 사랑하고 있었단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밤이 이슥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밤 하늘에 피어나는 별꽃들을 헤아렸지요.
분이 아가씨가 샘골 도령과 혼례를 치르던 날, 왜놈들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일, 왜놈들에게 대항하다 무참하게 죽은 마을 사람들, 샘골 도령의 주검을 붙안고 울부짖던 분이 아가씨. 짐승 같은 왜놈에게 끌려가던 분이 아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대목에서 이야기는 끊겼습니다. 어머니가 눈물을 참지 못한 까닭입니다.
나는 어머니의 고향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에게서 고향의 기억을 빼앗고 싶었습니다.
우리 나무에게 고향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물이나 햇볕처럼 우리를 키우는 것도 아닌데......
나는 고향을 못 잊는 어머니가 참 딱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머니의 기운이 쇠잔해지면 쇠잔해질수록 고향은 끈질기게 어머니의 눈물을 짜냈습니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 고향 타령이 지겨운 나머지 짜증스럽게 내가 말하였지요.
"수백 년 뿌리내리고 산 곳보다 겨우 십 년 남짓 살다 온 땅이 더 소중하다는 거예요? 아무 곳이나 정들이면 고향이지."
"무어! 왜놈의 땅을 고향삼으라고."
어머니는 나를 쏘아보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함부로 입에 담느냐는 눈빛이었습니다. 나는 서슬 푸른 어머니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왜놈들은 우리 조선 땅을 침략했느니라. 그 흉측한 놈들의 총칼에 죄없는 백성들이 수도 없이 쓰러졌단 말이다. 놈들의 어리석은 욕심 때문에 치른 끔찍한 전쟁이었다. 그 날 미친 듯이 산등성이를 누비던 왜놈 장수의 눈에 띈 것이 탈이었다. 왜놈의 땅으로 끌려올 줄 꿈엔들 알았겠니...... 나뿐이더냐 조선의 도공들까지도 무자비하게 끌려온 것을......."
왜놈 땅으로 끌려온 어머니는 왜장의 군주에게 바쳐졌다 합니다. 그리고 군주가 자주 다도회를 열던 절에 뿌리내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사백 년 가까운 세월을 어머니는 가슴앓이를 앓았습니다. 그리곤 끝내 응어리진 슬픔을 삭이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어머니를 여읜 슬픔은 아랑곳없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 버렸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하늘이 무너진 것 같던 슬픔도 조금씩 차차 사그라들었으니까요. 그 대신 가슴 한 켠에 옹이 같은 그리움이 자리잡았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뭉클뭉클 솟아날 때면 가슴 한 켠이 미어지게 아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조선 땅에 대한 호기심이 슬몃 고개를 들곤 하였습니다.
'정말 조선 땅이 그토록 아름다운 걸까?'
한 번쯤 고향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다섯 빛깔 꽃잎으로 겹겹이 그리움을 피워 내던 봄날이었어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절 마당은 관광객들로 붐비었습니다.
"이럴 수가...."
내 앞에 세워진 안내문을 읽던 노인이 내지른 소리였어요.
"이 동백은 우리 나라 동백이오! 내 고향 학성의 동백이란 말이오!"
노인의 목소리는 떨렸습니다. 주먹을 부르 쥐며 말을 잇지 못하였습니다.
"꽃나무까지도 약탈을 해 가다니. 도둑놈들!"
"우리 나라로 가져가야 해요. 당연히 되돌려 받아야지요."
모여 섰던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하였습니다.
노인은 내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노인의 눈길이 거북하였습니다. 제발 내게 관심을 갖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거든요.
"너는 쓰라린 우리 역사의 증인이다. 다시는 나라가 짓밟히는 일이 없도록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해. 그 동안 조선은 대한 민국으로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무엇보다 고향 울산의 놀라운 변화를 네게 보여 주고 싶구나."
노인이 내게 말하였습니다. 노인의 목소리라곤 믿기지 않는 힘찬 목소리였습니다. 꼭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조선은 어머니의 고향일 뿐이예요. 내 고향은 여기라구요. 제발 내버려두세요.'
나는 세차게 도리질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고향은 눈물이었습니다. 서러움이었습니다 넋두리였고 한숨이었습니다.
다시금 내가 어머니의 고향을 떠맡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낯선 곳에 가서 지낼 일이 두려워졌습니다.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 날 이후로 동백나무 절을 찾는 노인의 발길이 잦아졌습니다. 주지 스님의 허락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은 듯했습니다.
노인은 내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절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 모양이었습니다.
노인이 다녀간 다음이면 나는 뒤엉킨 생각들을 풀어내느라고 애를 썼습니다.
'옴팡샘 물맛이 차고 달다셨지.......'
어느덧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기억해내곤 하였지요. 밤이건 낮이건 고향 생각에 잠겨 있는 때가 많았습니다.
어젯밤 주지 스님이 내게로 와서 서성거렸습니다. 그리고 말하였지요.
"가거라, 네 고향으로. 너는 우리의 부끄러움이다. 욕심을 버리기가 이렇듯 힘이 들었구나."
'아아! 어머니.'
왈칵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나도 모르게 엉엉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어머니가 평생을 두고 듣고 싶어한 말이었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원하던 말을 어머니 대신 내가 들은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희망이라는 버거운 짐을 진 어머니는 밤마다 꿈길을 헤매고 다닌 셈이었습니다. 깨고 난 꿈이 안타깝고 허퉁스러워서 눈시울을 적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고향을 그리워할 용기조차 없었습니다. 겁쟁이인 나는 스스로 고향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 겁쟁이가 어머니 대신 고향 땅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꿈조차 푸기한 내게 꿈 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가슴이 뛰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고향이 눈에 삼삼하였습니다.
이맘때쯤 명지바람이 불어 오면 들녘의 보리가 익는다지요. 누런 보리밭 이랑에서 종다리가 우지진다지요. 염소가 해종일 노닐다가 벌거숭이 아이의 풀피리 소리 따라 산모롱이 돌아간다 하였지요.
고향은 이제 눈물이 아닙니다. 웃음입니다. 설레임입니다. 희망입니다. 또한 사랑입니다.
나는 알았습니다.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것은, 그 것을 이루기 위해 들인 노력만큼의 대가를 되돌려 준다는 것을.
고향은 어머니이지요. 이제 나는 어머니 품으로 돌아갑니다.
                                        
-보이니? / 계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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