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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국제신문] 바람이 된 햇살 -석영희

신춘문예 석영희............... 조회 수 2703 추천 수 0 2002.01.21 21: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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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국제신문]  바람이 된 햇살 -석영희



애앵….
비행기가 하얗게 하늘에다 금을 그었습니다.
“얘들아! 어서 이리 와!”
높은 산꼭대기에 걸터앉아 쉬고 있던 해님이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하늘 한쪽 끝에서 장난을 치며 놀던 햇살줄기들이 놀라 해님의 품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챙그랑!”
마악 해님의 품속으로 안기려던 햇살줄기 하나가 그만 비행기 날개 끝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빛남이였습니다.
긴 포물선을 그리며 빛남이는 깊고 깊은 골짜기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둠에 잠긴 산 뒤에서 동그란 얼굴이 일렁거립니다. 해님이었습니다.
해님은 마음을 졸이며 반달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노란 강물에 목욕을 끝낸 반달이가 마침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반달아-”
해님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반달이를 불렀습니다.
“아니? 해님!”
해님의 목소리를 들은 반달이의 얼굴이 더욱 샛노래졌습니다.
“해님께서 이 시간에 어떻게?”
반달이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다가갔습니다.
“너에게 부탁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어.”
빛남이가 빠져나간 자리, 콩알만한 구멍이 뚫려버린 가슴을 애써 누르며 해님이 말했습니다.
“반달아, 우리 빛남이를 좀 찾아 줄 수 있겠니? 오늘 그 아이를 잃어버리고 말았단다.”
“어쩌시다가? 그 귀여운 아이를….”
구름에 살짝 가린 반달이의 얼굴이 가볍게 일렁거렸습니다.
“빛남이가 빛을 잃어버리기 전에 꼭 찾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 아이는 다시는 내 품에 안길 수가 없단다. 반달아, 꼭, 꼭, 부탁이야.”
목이 메인 해님은 몇 번이나 말을 끊곤 했습니다.
“해님, 너무 걱정 마세요. 빛남이는 해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 올 수 있을 거예요.”
반달이는, 가만가만 해님을 위로해주었습니다.

빛남이는 한참 만에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응? 여기가 어디야?’
빛남이는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커다란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틈새였습니다.
차가운 밤바람이 바위틈을 비집고 들어와, 빛남이의 작은 몸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빛남이는 실낱같은 팔을 짚고 몸을 일으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콕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골짜기를 굴러 내리며 다리가 부러진 모양이었습니다.
‘아, 이제 난 어떡해요. 엄마.’
빛남이는 콩알만한 몸을 바들바들 떨었습니다. 흙 위로 드러난 나무 뿌리를 꼭 움켜쥐었습니다. 그리고 몸을 한껏 움츠렸습니다.
‘지금쯤 엄마의 품속에서 곤히 잠들었을 시간인데.’
빛남이는 해님의 얼굴을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밤하늘엔 별이 총총 떠있었습니다. 빛남이의 눈에서 좁쌀보다 더 작은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빛남이는 옆에 있는 작은 바위에 가만히 몸을 기대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나직나직 귀에 익은 목소리가 빛남이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아! 달님이야.’
빛남이는 얼른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반달이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달님! 달님! 여기예요. 제가 빛남이예요.”
바위 틈새를 기웃대던 반달이의 얼굴이 순간 환해졌습니다.
“아! 네가 빛남이로구나!”
“네, 달님.”
“자, 엄마에게로 돌아가야지. 널 애타게 찾고 계신단다.”
반달이는 긴 팔을 아래로 뻗었습니다. 노랗고 가느다란 팔입니다. 빛남이도 실낱같은 팔을 뻗었습니다. 빛남이의 손이 반달이의 손끝에 닿았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후우….”
바로 옆에서 가느다란 한숨 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란 빛남이는 그만 반달이의 손을 놓아 버렸습니다.
‘응?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빛남이는 두리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빛남이가 반달이를 향해 다시 팔을 뻗으려고 할 때였습니다. 가느다란 목소리가 다시 들려 왔습니다.
“후우…, 바람일 거야.”
빛남이는 손을 얼른 귓가로 갖다대었습니다. 그리고 숨을 죽였습니다.
“바람이니?”
다시 물어오는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커져 있었습니다.
“그…그래.”
빛남이는 얼른 그렇다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가슴이 콩콩 뛰기 시작했습니다. 정말이지 가슴 속으로 싸아-,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빛남아! 난, 오래 머물 수가 없단다. 이제 곧 하늘을 비워주어야 할 시간이야. 어서 내 손을 잡아!”
머리 위에서는 반달이가 재촉을 했습니다. 반달이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변해갔습니다. 그러나 빛남이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빛남이는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주위를 살폈습니다.
‘여기인가?’
작은 바위인줄 알고 기대었던 것은 바위가 아니라 녹슨 철모였습니다. 빛남이는 철모를 살짝 건드려 보았습니다. 철모에서 사르륵, 하고 녹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렸습니다.
철모의 아래쪽엔 아기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구멍도 하나 뚫려 있었습니다.
“어서 나와.”
빛남이가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철모의 작은 구멍에서 조금 전 그 목소리가 다시 새어 나왔습니다.
“난, 나갈 수가 없어. 이 안에 갇혀 버린 걸.”
빛남이는 가슴이 팔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희붐한 새벽이 다가오자 온 몸이 하얗게 되어버린 반달이는, 빛남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만 있었습니다.
“넌, 바람이랬지? 참 좋겠구나. 어디든지 갈 수 있으니까.”
철모 안의 목소리는 물기가 배여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는 파란 하늘을 볼 수 없을 거야. 해님의 환한 얼굴도. 달님의 따스한 미소도, 그리고….”
빛남이는 실낱같은 팔로 팔딱거리는 가슴을 꼭 눌렀습니다.
“어쩜 좋아. 어떡하면 널 도울 수 있지?”
빛남이는 철모에 더욱 바싹 다가가며 물었습니다.
“후후, 고마운 바람이구나. …, 잘 가.”
철모 안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빛남이는 철모에 살며시 몸을 기대었습니다. 밤이슬에 젖은 철모는 얼음처럼 차가웠습니다. 철모를 힘껏 떠밀어보았습니다. 끄덕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르륵 하고 녹 부스러기만 또 떨어져 내렸습니다.
“빛남아, 이제 그만 가자.”
말없이 한참을 기다리던 반달이가 하얗게 변해버린 긴 팔을 다시 내밀었습니다.
빛남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반달이는 해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포옥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반달이는 서둘러 산을 넘기 시작했습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반달이의 등뒤로 아침 노을이 펼쳐졌습니다.

동그란 해님이 떠올랐습니다.
수많은 햇살줄기들이 해님을 따라다니며 햇살을 쏘아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빛남이가 있는 깊은 골짜기 바위틈엔 짙은 그늘만 가득했습니다. 그 바위틈으로 메마른 바람이 바싹한 나뭇잎을 흘리고 갔습니다. 나뭇잎이 빛남이의 몸 위로 떨어졌습니다.
빛남이가 놀라 눈을 떴습니다.
빛남이는 커다란 바위와 붙은 듯이 마주하고 있는 철모를 향해 몸을 움직였습니다. 빛남이의 발에서 가는 먼지가 일었습니다.
“누구니? 혹시? 어제 그 바람?”
“응.”
“아직, 아직 안 간 거야?”
철모 안의 목소리가 몹시 떨렸습니다.
“또, 너 혼자 남을텐데?”
빛남이는 철모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어둠 속에 혼자 있는 것도 이젠 견딜만한걸. 하지만, 너처럼 따뜻한 바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참 좋을 거야.”
철모 안의 목소리는 금방 새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
“바람아, 오늘은 어떤 하늘빛이니? 호수처럼 파란 하늘이니? 아니면 동동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
빛남이는 하늘을 보았습니다. 해님의 품에 안겨 맘껏 뒹굴었던 하늘, 그 하늘빛이 저렇게 파란 줄은 몰랐습니다. 돌을 던지면 정말 호수처럼 퐁퐁 소리가 날것만 같습니다.
“난, 아주 작은 풀씨란다. 예쁜 꽃을 피우는 꿈을 가졌었어. 그런데 지난 가을쯤이었을 거야. 바람이 세찬 날이었지. 난, 내가 몸을 묻고 겨울을 지낼만한 곳을 찾고 있던 중이었어.”
철모 안의 풀씨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 밤이었어. 바람은 더욱 세어지고 세찬 바람에 내 가벼운 몸이 이리 저리 날리기 시작했어. 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한참만에 정신을 차려보니 이 안이더라구.”
풀씨의 이야기는 자꾸자꾸 이어져 갔습니다.
수줍음 잘 타는 제비꽃 이야기, 별이 되고 싶다던 작고 노란 별꽃 이야기, 가끔은 누가누가 더 예쁜지 내기를 하며 다툰다는 풀꽃들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하며 풀씨는 소리내어 웃기도 했습니다.
“참. 그래, 너와 같은 바람이 되고 싶어하던 바람꽃도 있었지. 어디든 홀홀 날아다니고 싶다면서. 마음이 참 따뜻한 꽃이었는데. 그 애의 소원처럼 바람이 되었다면 아마 너처럼 따스한 바람이 되었을 거야.”
빛남이는 철모를 살며시 쓰다듬었습니다. 투명한 햇살이 철모 안으로 환하게 비쳐 들었습니다.
그렇게 풀씨와 빛남이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봄빛은 한껏 익어갔습니다. 철모 안 풀씨의 목소리도 온통 연두빛 물이 들었습니다.
골짜기 맞은 편 언덕에는 노란 양지꽃이 피어나고, 보랏빛 제비꽃도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꽃향기가 풀풀 날렸습니다. 꽃멀미가 날것 같습니다.
빛남이는 하늘을 올려 다 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철모 안 작은 풀씨를 위해 빛을 모두 써버린 몸은 실바람이 불어도 날아갈 듯 가벼워져 버렸습니다.
파란 하늘빛도 점점 흐리게만 보였습니다.
오늘은 철모 안 풀씨와 아침 인사도 나누지 못했습니다.
“바람아?”
빛남이를 부르는 풀씨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왔습니다.
“으…응?”
빛남이는 실낱같은 팔을 더듬으며 철모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자 빛남이의 몸에 남은 마지막 한줄기 햇살마저 철모 안으로 빨려 들었습니다.
또 한 대의 비행기가 지나갔습니다.
하늘이 하얗게 잔물결을 일으켰습니다.
가느다란 바람이 일었습니다. 빛남이의 가벼워진 몸이 그 바람을 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였습니다.
“어딨니? 어디 있는 거야?”
철모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고개를 쏘옥 내민 풀꽃이 빛남이를 애타게 불렀습니다.
그러나 빛남이의 따스한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또 한줄기 바람만이 풀꽃의 머리 위에서 자꾸만 맴을 돌았습니다.
풀꽃은 그 바람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햇살 같이 따스한 바람을 못 보셨나요?”  *

[부산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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