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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아파트 가동 1501호에 사는 할아버지에게는 손자가 둘 있어요. 큰손자는 국민학교 5학년이며 우등생인 효철이고, 작은손자는 국민학교 2학년인 장난꾸러기 효돌이예요.
그런데 오늘 효철이가 학교에 갔다 오니 할아버지가 효철이 방에서 담배를 피우고 예셨어요. 효철이는 깜짝 놀라며 방문, 창문, 현관문까지 다 열고는 할아버지한테 마구 큰소리를 질렀어요.
"할아버지! 컴퓨터 앞에서 담배 피우면 어떡해요? 컴퓨터가 망가진다고요. 이 컴퓨터가 얼마나 비싼 건 줄 아세요? 할아버지가 이 컴퓨터 사는 데 십 원이라도 보태 주셨어요?"
할아버지는 효철이를 야단치려 했으나 아무 말도 못했어요. 효철이가 한 말 중 이 말이 자꾸 할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가 이 컴퓨터 사는 데 십 원이라도 보태 주셨어요?'
할아버지는 효철이의 방에서 나와 이 집에서 제일 작은 방으로 갔어요. 그 곳이 할아버지방이예요. 그 방에는 할머니의 사진이 유리 액자에 담겨 벽에 걸려 있어요. 할머니는 일년 전에 돌아가셨거든요.
할아버지는 할머니 사진을 올려다보며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어요. 그러다가 얼른 담배를 입에서 떼었습니다. 효철이가 또 뭐라 화를 낼까봐서죠. 그때 장난꾸러기 효돌이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어요. 할아버지는 방문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요.
"형! 할아버지 어디 계셔?"
"몰라! 난 늙은 사람에게는 관심 없어! 그런데 할아버지는 뭘 하러 찾아? 할아버지한테 돈 달라고 그럴거지? 흥! 할아버지는 알거지야. 엄마랑 아빠한테 돈을 타 쓰는 거지라구."
할아버지는 가슴이 철렁했어요.
'손자들이 나를 거지로 생각하는구나. 얘들아, 난 거지가 아니야. 너희들이 사는 이 아파트는 이 할아버지가 시골에서 농사를 열심히 지어서 모은 돈도 보탰단다. 그리고 너희 아빠도 나랑 할머니가 대학까지 공부를 시켰어. 또 너의 엄마랑 아빠가 결혼할 때도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많은 애를 썼단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두 손자에게 아무 말하지 못했어요.
할아버지는 직장에 다니는 엄마 아빠에게 용돈을 타 쓰시기 때문이죠.
할아버지는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고 거실로 나갔어요.
"효돌아. 이 할아버지를 찾았니?"
"됐어요. 이젠 할아버지한테 돈 달라는 소리하지 않을 거예요."
효돌이의 말을 듣는 순간 할아버지는 그만 눈물을 흘렸어요. 그리고는 얼른 방으로 들어갔어요. 그러나 두 손자는 히히대며 비디오에 푹 빠졌어요.
이날 저녁 내내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직장에서 돌아오실 때까지 할아버지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좋아하는 담배도 필 수 없었어요.
혹시나 효철이가 화를 낼까 봐서죠.
"엄마,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두 아이는 엄마, 아빠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어요.
엄마는 옷을 갈아입자마자 부엌으로 갔어요. 빨리 저녁밥을 차려야 하거든요.
"얘들아, 할아버지는 어디 나가셨니? 할아버지한테 부탁 드릴 일이 있는데…."
아빠가 묻자 그제서야 아이들은 할아버지 생각을 했어요.
"글쎄요. 아까부터 안 보이셨어요. 그런데 왜 할아버지를 찾으세요? 할아버지한테 용돈 드리려고 그러세요?"
효철이가 비꼬는 말투로 물었어요.
"그게 아니란다. 우리 회사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서예 교실을 하기로 했는데 할아버지를 선생님으로 모시기로 했단다. 정식으로 강사료도 드리고 말이야. 할아버지는 고향에서도 돈 받지 않고 아이들에게 서예를 가르치셨어."
아빠의 말을 듣고 놀란 사람은 두 아이뿐만은 아니었어요. 어두운 방에서 눈물을 흘렸던 할아버지도 놀랐어요.
'아…, 나도 이제는 할 일이 있구나. 내 손자들도 나를 바보나 거지라고는 하지 않겠지. 아범아, 고맙다.'
할아버지는 불도 켜지 않은 컴컴한 방에서 이번에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어요.
제일제당 사외보 [작은이야기] 1991년 9월호에서
http://www.cjlife.co.kr/lifestory/search/1991_09/42_child.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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