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글/신경아 그림/강낙규 |
어린이 여러분 안녕! 내가 살던 고향은 푸른 하늘 아래 넓은 들, 초록빛 배추밭이야. 들
옆으로는 시내가 흐르고, 해들의 노래를 언제나 들을 수 있는 공기 좋은
곳이지. 그러던 어느 날 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어. "야! 속이 꽉 찼는데." 컬컬한 목소리의 아저씨가 말했어. 난 얼마 전 떠나간 친구들을 생각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거기서 살리라 다짐했는데, 그 소리를 들으니 불안해지기
시작했어. "웬 차가 이렇게 많을까. 빌딩도 높기도 하지." 트럭이 닿은 곳은 농수산물 시장이었어. 거기에는 무, 배추, 파, 마늘 같은 내 친구들이 산더미 같이 모여 있더군. 손에서 손으로 던져진 나는 몸에 멍이 들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아픔을 느꼈어. 몇 시간 시장에 누워 쉬고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내 몸을 이모저모 살폈어. 그러더니 돈을 내고는 나를 장바구니에 담아 이곳 현정이네 집으로 데리고 왔지. |
현정이네 집은
작은 아파트이지만 무척 깨끗했어. 현정이 장난감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생전 처음 보는 텔레비전, 오디오, 비디오는 참 신기했어. "배추, 배추. 김치하지?" 그 말하는 모습이 하도 귀여워 자세히 봤지. 곱고 뽀얀 피부에 머리를 두 갈래로 묶은 예쁜 아이었어. 조금 있더니 우박이 막 쏟아지더군. 그런데 그건우박이 아니라 소금이었어.
소금의 짠 기운이 내몸 속으로 들어오자 상처 난 곳이 쓰리고 아팠어.
서서히 온몸에 힘이 빠지더니 일어설 힘도 없게 되었단다. |
그리고 나서 화장을 시작했어. 현정이 엄마는 내게 고춧가루, 젓갈, 마늘, 생강, 양파즙, 찹쌀풀 등 여러 가지 천연 화장품을 골고루 발라 예쁘게 만들어 주었어, 현정이 엄마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 "여보, 김치 맛 좀 보세요." 현정이 엄마가 현정이 아빠에게 한 잎 떼어 주며 말했어. "역시 당신 김치 솜씨는 일품이야." 아저씨의 칭찬에 현정이 엄마는 콧노래가 절로 나오더군. 그리고는 내게 '김치'라는 새 이름을 지어 하얀 접시에 예쁘게 담아 식탁에 올려놓았어. "오늘의 영광은 지난날의 고통이 있었기 때문이야." 나는 무대에 선 듯한 기분으로 힘껏 외쳤어. 난 김치가 되었다는 게 너무나 자랑스러워. 세계 어느 나라에 내 놓아도 빠지지 않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음식이잖니. 외국에서 들어온 햄버거나 피자 같은 것만 찾는 어린이 여러분, 오늘 저녁엔 꼭 나를 만나자구. 김치를 사랑하는 게 바로 우리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기도 하니까. 오늘 저녁 꼭 만나. 안녕. 글쓴이 :1964년 태어났다. `89년 결혼해 21개월 된 딸 하나. 배추 절이는 것을 보고 딸아이가 "배추 목욕시킨다"고 하는 말에 착상해 이 글을 썼다고. |
|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