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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조선일보] 준이의 신호등 -윤경자

신춘문예 윤경자............... 조회 수 1416 추천 수 0 2004.05.12 15:39:58
.........
준이의 신호등

윤 경 자

어두움이 다 사라지지 않은 새벽 아침입니다. 하늘에는 마지막 하나 남은 별이 점점 희미한 빛으로 변해가며 깜박이고 있었습니다.
준이가 일어나려면 아직은 이른 시간입니다. 준이는 매일 아침 뒷동산 위로 해가 머리를 살며시 내밀고 참새들이 앞 마당에 날아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릴 때면 잠에서 깨곤 하니까요. 지금쯤이면 준이는 꿈 나라에서 친구들과 병원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준이는 의사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어쩌면 오늘도 꿈을 꾸느라 늦잠을 잘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웬일인지 오늘은 일찍부터 참새들이 준이네 앞마당에 날아와 요란스럽게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짹 짹 준아! 일어나, 어서.˝
준이는 참새들이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어! 아직 햇님도 안 일어났는데 참새들이 웬일일까?˝
준이는 기지개를 크게 켠후에,
˝참새들아! 안녕?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왔니?˝
하고 참새들에게 얘기 했습니다.
˝준이 네게 오늘 기쁜 일이 있을 거라는걸 빨리 알려주고 싶어서 일찍 일어 나서 왔어.˝
참새들이 짹짹거리며 말했습니다.
기쁜 일이 뭔지 준이가 물었지만 참새들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학교가는 길에 알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이제 밥 먹으러 가야겠어.˝
하고 참새들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준이는 다른 날보다 빨리 학교에 갔습니다. 기쁜 일이 어떤 것인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기쁜 일이 뭔지는 모르지만 보지 않아도 괜히 기분이 좋은 걸.˝
준이는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걸었습니다.
그러나 횡단보도가 보이자 준이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학교앞 횡단보도엔 신호등이 없었기 때문에 준이네 학교 어린이들은 무척 불편했습니다. 차들은 서로 자기들이 바쁘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처럼 횡단보도가 있는데도 멈추지 않고 달려가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차길을 건너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왜 저 곳에는 신호등이 없을까? 신호등만 있으면 우리들이 저 곳에서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고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텐데.´
준이가 이런 생각을 하며 횡단보도에 거의 가까이 왔을 때입니다. 준이는 참새들이 말한 기쁜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와, 신호등이다. 신호등.˝
준이의 눈에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신호등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준이는 신호등 때문에 이제부터 마음놓고 길을 건너갈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너무나 좋아서 파란불이 켜질 때마다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보았습니다. 파란불이 켜질 때마다 쌩쌩 달리던 자동차들도 야단맞은 강아지처럼 얌전히 서 있었습니다.
준이는 신호등에게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호등아! 안녕. 난 이 학교 1학년 준이야.˝
하고 준이가 큰 소리로 말하자,
˝그래. 우리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구나. 넌 참 착한 어린이 같거든.˝
하며 신호등도 준이에게 인사했습니다. 준이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도 즐겁기만 했습니다. 다른 때에는 닭 벼슬처럼 보이던 길가 화단의 맨드라미꽃도 오늘은 공작 부채를 접어놓은 것처럼 예쁘게 보였습니다. 발걸음도 하늘 위의 하얀 솜구름같이 가버렸습니다. 신호등 친구가 생겨서 이제는 차들이 무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준이는 빨간 신호등에게 생긋 웃어주며 파란불이 켜지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습니다. 조금 뒤 파란불이 켜졌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건너갔지만 준이는 그대로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파란 신호등이 걱정이 되어서 준이에게 말했습니다.
˝준아! 왜 건너지 않니? 내가 켜져 있을 때 빨리 건너가야지.˝
하지만 준이는 파란 신호등의 말대로 건너기는커녕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너는 분명히 초록색인데 왜 사람들은 네게 파란색이라고 하지? 너는 알 수 있겠니?˝
어느새 파란 신호등은 꺼지고 빨간 신호등이 대답했습니다.
˝그건 우리도 잘 모르겠어. 다음에 선생님께 여쭤보지 그러니?˝
준이는 무척 궁금했지만 신호등 말대로 다음날 미술 시간에 선생님께 여쭤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신호등아! 너희들은 참 좋겠어. 차들도 사람들도 너희들 말을 잘 들으니까 말야.˝
부러운 듯한 준이의 말에 다시 파란 신호등이 켜지며 대답했습니다.
˝그런 것도 아니야. 사람들이 별로 없을 땐 내가 켜져 있는데도 차들이 그냥 달려가 버릴 때가 많아. 그리고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어도 차가 가까이 오지 않으면 사람들도 그냥 건너가는 경우가 많아.˝
˝차들도 사람들도 그렇게 우리 말을 듣지 않을 때 위험한 사고가 많이 난단다. 특히 너처럼 어린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이 그래.˝
파란 신호등의 말을 빨간 신호등이 받아서 했습니다.
빨간 신호등의 말을 듣자 준이는 갑자기 시무룩해졌습니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친구 해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해지는 이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차에 치어 머리를 많이 다쳤던 것입니다. 두 번이나 머리를 수술했지만 아직도 해지는 엄마, 아빠도 그리고 단짝이던 준이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쁘게 땋아 올릴 수 있었던 해지의 긴머리는 모두 다 없어져 버리고 하얀 붕대만 감겨져 있었습니다.
잘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준이는 해지가 너무 아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좋은 의사가 되어서 해지처럼 많이 아파하는 사람들을 아프지 않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해지 생각 때문에 준이는 눈물이 글썽해졌습니다.
˝너희들이 조금만 빨리 생겼어도 해지는 그렇게 다치지 않았을 텐데.˝
신호등은 준이의 슬픈 얼굴을 보자 마음이 아팠습니다.
˝준아, 해지는 곧 나을 거야. 너무 걱정마.˝
˝말은 할 수 있고 생각도 할 수 있지만 몸은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사람도 있어 생각하는 데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 거야.˝
˝그래, 평생 동안 걸어 다닐 수 없게 된 사람도 많아,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겠니?˝
˝교통사고가 얼마나 무서운건지 잘 알겠지? 준이도 이제 신호등 잘 보고 조심해서 다녀야 해. 자기 몸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거니까 자기 스스로 건강하게 잘 지켜야 하는 거야.˝
빨간 신호등도 파란 신호등도 준이를 위로해 주고 싶어서 번갈아가며 서로 얘기했습니다.
신호등의 말에 준이는 이제부터 열심히 운동하고 밥도 잘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조심스럽게 걸어다녀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준이와 신호등은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다음날 아침 준이는 미술 시간에 쓸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준비했습니다. 지난 번 준이 생일때 고모가 선물로 사주신 48색 크레파스를 오늘부터 쓸 것입니다.
지난 번에 쓰던 24색 크레파스엔 준이가 쓰고 싶은 색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새 크레파스엔 금색 은색까지 들어있습니다. 준이는 색깔이 많은 새 크레파스를 쓰고 싶어서 헌 크레파스를 빨리 다 써버리려고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많이 그렸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부터 새 크레파스를 쓰게 된 것입니다.
새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면 준이는 그리고 싶은 것들을 마음대로 그릴 수 있을 것만 같아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다시 신호등 친구를 만날 것을 생각하니 학교가는 길이 즐겁기만 했습니다.
학교앞 횡단보도에서는 파란 신호등도 빨간 신호등도 밝은 얼굴로 열심히 자기 할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안녕, 준이 빨리 오는구나.˝
하고 신호등이 먼저 인사했습니다.
˝그래, 너희들도 안녕. 그런데 너희들 졸립지 않니? 어제 저녘에 한숨도 자지 않았을 텐데.˝
준이는 신호등이 밤새 일하느라 피곤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렇게 물었습니다.
˝우린 피곤하지 않아. 우리는 자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졌거든. 새로 만들어진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힘이 아주 많아.˝
하고 빨간 신호등이 얘기했습니다.
˝준아! 학교 늦겠다. 빨리 가 봐.˝
파란 신호등이 일러주는 말에 준이는 뛰어서 학교로 들어갔습니다.
준이는 미술 시간에 사람들은 왜 신호등의 초록색을 파란색이라 하는지 선생님께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세상에는 우리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색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 모든 색에 이름을 붙이기에는 어려웠고 불편했으므로 사람들이 사용하는데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많은 색들 중 대표가 되는 세 가지 색을 만들어 놓았어요. 사람들은 그것을 색의 기본이 되는 세 가지 색이라고 해서 삼원색이라고 한답니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이 세 가지 색이 삼원색에 속해요. 초록색은 파란색 속에 포함되기 때문에 우리가 신호등의 초록색을 파란색이라고 한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준이는 집에 오는 길에 삼원색에 대해서 신호등에게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렇게 준이와 신호등은 날이 갈수록 다정해졌습니다. 오늘도 다른날과 마찬가지로 신호등과 준이가 만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신호등에 불이 켜지질 않았습니다. 준이는 신호등을 불러보았습니다. 그러자 잠시후 파란불이 켜졌습니다. 하지만 파란불이 꺼지면 빨간불이 켜져야 하는데 빨간불은 켜지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파란 신호등이 켜지자 준이가 물었습니다.
˝파란 신호등아! 빨간 신호등에게 무슨 일이 있는거니?˝
˝응. 빨간 신호등이 너무 열심히 일하다보니까 지쳤나봐. 피곤해서 잠들어 버렸어. 다행히 나는 아직 견딜만 해. 우리 둘다 잠들어 버리면 너희들이 또 불편해질 텐데.˝
파란 신호등이 힘없이 그리고 걱정스럽게 얘기했습니다. 준이는 빨간 신호등이 걱정이 되어 다시 물었습니다.
˝이제 빨간 신호등은 켜지지 않니?˝
˝아니, 내일이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야. 곧 아저씨들이 오셔서 깨워 줄 테니까.˝
˝파란 신호등아! 너는 깨울 수 없는 거야.˝
˝응. 아저씨들이 오셔서 그 동안 너무 일만 하느라 약해진 빨간 신호등의 전기선을 새로 갈아주시기만 하면 다시 전처럼 생생하게 깨어날꺼야. 준이 네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준이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다시는 빨간 신호등을 볼 수 없게 되는 줄 알고 마음이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릅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준이는 아주 좋은 생각을 했습니다. 빨간 신호등이 없는 동안 자기가 대신해서 빨간 신호등이 하는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준이는 오후 내내 신호등 옆에 서서 파란불이 꺼질 때마다 이렇게 외쳤습니다.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사람들은 건너지 마세요.˝
아이들이 지나면서 준이를 놀리기도 했지만 준이는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하던 좋은 일을 자기가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끔 어른들이 준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준이는 빨간 신호등을 만나기 위해 빨리 학교에 갔습니다. 그러나 빨간 신호등은 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며칠이 지나도록 빨간 신호등은 켜지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준이는 날마다 학교가 끝나면 빨간 신호등이 하던 일을 대신 했습니다.
˝파란 신호등아! 빨간 신호등이 왜 아직도 켜지질 않을까? 너도 빨간 신호등이 없으니까 심심하지?˝
˝응, 준이 네가 가버리고 나면 더욱 더 심심해. 아마 아저씨들이 너무 바빠서 여기는 와보시지 못하나 봐.˝
이런 얘기를 나누며 파란 신호등과 준이는 자기들이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파란 신호등아! 이제 가봐야 되겠어. 엄마가 많이 기다리고 계실 거야.˝
˝그래, 준아. 우리 내일 또 보자.˝
이렇게 준이와 신호등이 아쉽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빨간 신호등을 고쳐줄 아저씨들이 오신 것입니다. 아저씨들이 빨간 신호등을 고치는 시간은 조금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 잘 잤다.˝
하는 빨간 신호등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빨간 신호등이 다시 켜진 것입니다.
˝준이, 아직 집에 가지 않았구나.˝
˝응, 너보고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다시 너를 보게 돼서 정말 기뻐.˝
하며 빨간 신호등과 준이는 환한 웃음으로 서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파란 신호등이 그동안 준이가 빨간 신호등 대신 일했다는 것도 얘기해 주었습니다.
˝준이, 너 나때문에 고생이 많았겠구나. 정말 고마워.˝
˝아니야, 사람들이 네가 있을 때처럼 질서를 잘 지켜줘서 기분이 좋았어. 그래서인지 힘들지도 않았어.˝
˝준이는 정말 멋진 아이야.˝
하고 파란 신호등이 준이가 자랑스러운듯 말했습니다. 빨간 신호등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준이와 파란 신호등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그건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난 동물을 아끼고 잘 보호해 주는 것이라 생각해.˝
하며 준이에 이어 파란 신호등도 대답했습니다.
˝참, 어른들은 아이들을 사랑해 주고 아이들은 어른을 존경하는 일도 아름다운 일일것 같애.˝
준이가 덧붙여 말하자 빨간 신호등이 말을 꺼냈습니다.
˝그래, 그런 모든 것들이 다 아름다운 것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아름다움은 질서를 잘 지키는 모습인 것 같아. 남이 보는 곳에서나 보지 않는 곳에서나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은 틀림없이 모든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
준이는 빨간 신호등의 말이 정말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매우 흐뭇했습니다.
준이와 신호등이 친구가 된지도 꽤 많은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신호등도 준이도 너무나 소중한 사이가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서로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에도 가끔 준이는 신호등에게 놀러 가곤 했습니다.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날씨도 점점 더 추워졌습니다. 날씨가 추우면 사람들도 차들도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래서 질서를 잘 지키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준이와 신호등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가고 있었으니까요.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아침이었습니다. 모든 나쁜 것들은 눈이 다 먹어 버린 것처럼 깨끗했습니다. 준이는 며칠이 지나면 방학이라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신호등을 오래동안 보지 못할 것 같아 섭섭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신호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학교앞 횡단보도엔 다른 날처럼 모두가 질서를 지켜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준이가 신호등을 바라보았지만 파란불은 켜져있지 않았습니다. 빨간불도 켜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엔 파란 신호등도 빨간 신호등도 모두 고장이 나버린 것입니다.
˝너무 추워서 그랬을까?˝
준이는 신호등을 볼 수 없어서 서운해 하여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신호등이 없어도 예전처럼 무섭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차들이 지나가도록 차분히 기다릴 줄 알게 됐어. 차들도 이제는 어린 아이들이 오른손을 높이 들고 다 지나갈 때까지 멈춰서 기다릴 줄 알게 됐어. 빨간 신호등이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게 된 거야.˝
준이는 웃음띤 얼굴로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 빨리 준이의 신호등이 일을 다시 시작하기를 바라며 오른손을 높이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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