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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푸른 비단옷

창작동화 김지은............... 조회 수 1301 추천 수 0 2004.09.25 09:03:35
.........
푸른 비단옷

김지은
      
  한님이 어머님이시라구요? 한님이가 어머님을 쏙 빼어 닮았군요. 어서 오세요.˝
등 뒤에서 담임 선생님의 환한 인사말이 들려 왔습니다. 깊숙한 무대 귀퉁이에서 연극에 쓰일 탁자보의 주름을 펴느라 바지런 떨던 한님이는 잠시 귀를 미심쩍게 여겼습니다. 엄마가 이곳 한님이네반 학습 발표회에 오실 리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엄마는 할머님을 모시고 한약 장에 가셨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한님이는 아침에도 한바탕 엄마 가슴에 아픈 말을 내던지고 온 참이었습니다.
˝유리네는 아빠까지 같이 오신다는데, 엄마는 할머니 일이 한님이 보다도 그렇게 소중해? 날 보러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발표는 왜 해? 난 안 해.˝
편찮으신 몸으로 모처럼 시골에서 올라오신 할머님 마음을 좀 헤아려보라는 엄마의 찬찬한 나무람도 아예 귓등에서 밀어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오셨다니, 한님이의 얼굴은 어느새 유채꽃밭처럼 밝아졌습니다. 서둘러 고개를 돌려 객석에 있을 엄마의 눈빛을 찾았습니다. 아직 학부모님들이 자리를 잡지 않은 채 무대 둘레를 서성거리고 있어서 한님이 엄마는 얼른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이 때 무대로 올라오던 동섭이가 어깨로 툭 치며 말을 붙입니다.
˝장한님, 엄마 오셨더라. 얘들아, 너희들 한님이 엄마 봤니?˝
함께 무대를 꾸미던 친구들은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동섭이는 짓궂게 목소리를 꼬아 대며 말을 이었습니다.
˝꼭 우리 집에 일하러 오는 뚱짜 아줌마 같더라. 둥실둥실 두둥실!˝
˝정말? 어디, 어디? 누구?˝
아이들은 왁자지껄 웃음을 터뜨리며 저마다 무대 아래를 기웃거렸습니다. 이마 끝부터 발끝까지 빨개진 한님이는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아까는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엄마의 얼굴이 어쩌면 이리도 커다랗게 한눈에 들어오는지요. 한님이 엄마는 한약 보따리며 무슨 꾸러미를 무릎 곁에 잔뜩 늘어놓고 꼭 집에서 빨래할 때 같은 평퍼짐한 매무새 그대로 털퍼덕 앉아 있었습니다. 그것도 객석 가장 앞줄 한가운데에 말입니다. 마치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주부 모델처럼 맵시 있게 차려입은 다른 엄마들 틈에서 한님이 엄마는 단연 눈에 띄게 마련이었습니다.
˝´TV 만세만세´ 에 나오는 방달자 같은데?˝
˝아냐, 그보다 훨씬 더 뚱뚱하시다!`˝
아이들이 앞다투어 누구랑 닮아서 밉상이니, 누구보다 더 뚱뚱하다느니 하며 떠들어댔습니다.
˝그래, 너희들 엄마 날씬하고 멋지다. 우리 엄마 뚱뚱하다, 어쩔래?˝
한님이는 다짜고짜 맞서서 한마디 쏘아붙이고 무대를 뛰어내려 왔습니다. 순식간에 가득 고여 내린 눈물 너머로 엄마의 허리가 더욱 굵고 뚱뚱하게 보였습니다.

˝어디 갔다가 이제 오니? 엄마 걱정하는 건 생각지도 않고...˝
한님이가 어두컴컴한 골목 끄트머리에 나타나자 문 앞에서 기다리던 엄마가 달려나오며 다그쳤습니다. 한님이는 지난 발표회 내내 엄마의 얼굴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발표가 끝나자마자 앞질러 빠져 나와 지금껏 동네 바깥을 쏘다니다 돌아온 것입니다.
정말이지 한님이는 엄마의 걱정을 사보려고 단단히 마음먹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 정거장이나 떨어진 곳까지 혼자서 걸어갔습니다. 긴 다리 하나 짧은 다리 두 개를 건넜습니다. 낯선 골목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한님이를 끼고 빙빙 돌았습니다. 생크림 빵집 앞에서는 입을 꾹 다물고 멈춰 서서 알록달록한 케이크를 들여다보았습니다. 한 글자도 못 읽는 영어가 어지럽게 박힌 영화 포스터도 오래오래 쳐다보았습니다. 꽃집에 들어가 이름도 모르는 꽃망울을 한 송이 두 송이 헤아리다 말없이 빠져 나온 것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해야, 떨어져라. 얼른 깜깜해져라!´
그런데 참말로 서녁 하늘에 어둑어둑한 그림자가 내리자 덜컥 겁이 났습니다. 요란한 간판들이 눈에 번뜩이는 불을 켜고 한님이를 뚫어지게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거리에는 온통 한님이보다 키 큰 어른들뿐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버스 번호들만 줄지어 달려왔습니다. 딱 한 대, 아는 번호가 옵니다. 부랴부랴 버스에 올랐습니다.
어떻게 내렸는지도 모릅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되짚어 종종 달렸습니다.
´엄마아!´
하지만 엄마를 보자 도로 입술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코끝까지 다가온 엄마 가슴팍에서는 언제나처럼 들큰한 양파 냄새가 났습니다.
˝엄마는 왜 그렇게 뚱뚱해? 왜 엄만 밥집 아줌마 같아?˝
엄마는 한님이를 감싸안다 말고 푸짐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니, 그럼 아줌마가 아줌마 같은 게 나빠? 우리 한님이 낳고 키우면서 배도 뚱뚱해지고 그런거지, 그래서 한님이는 엄마가 미워?˝
˝미워, 싫어. 창피해서 혼났어. 저리 가.˝
한님이는 엄마를 밀치곤 방으로 뛰어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녁밥은 한 숟갈도 먹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몇 번이나 한님이의 방문을 열었다가 소리없이 닫고 나갔습니다. 상 거두는 소리가 들립니다. 엄마도 밥을 드시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제는 눈물이 눈물을 불러서 멎을 줄 모릅니다. 한참을 울다 보니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와지끈, 툭, 투툭´
얼마나 지났을까. 난데없이 방바닥이 온통 흔들거리는 통에 한님이는 이불을 걷고 웅크린 몸을 일으켰습니다. 흔들리는 것은 방바닥만이 아니었습니다. 창가에 상추 화분도 벽에 걸린 고양이 그림 시계도 덜컹거리며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양철 필통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흩어진 몽당 연필들이 기울어진 방바닥을 가로지르며 또르르르 굴러다닙니다. 갑자기 전봇대만한 연필이, 아니 연필 같은 전봇대가 한님이를 향해 굴러옵니다. 크게 한 번 기우뚱하더니 형광등도 부르르 떨다 꺼지고 말았습니다.
˝엄마야!˝
겁에 질린 한님이의 입에서는 ´엄마´ 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방문이 열리고 엄마가 뛰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한님이는 또 한 번´ 엄마야´를 외쳐야 했습니다. 뚱뚱한 엄마가 전보다 두 배는 더 뚱뚱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둔한 허리에 걸친 촌스런 빨간 고무줄 치마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바닥이 부르튼 두껍고 투박한 손을 내밀며 한님이를 끌어안으려 했습니다. 한님이는 눈을 비비며 움찔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입니까? 한님이가 눈을 비비고 한뼘씩 물러설 적마다 엄마는 부쩍부쩍 더 커다래지는 것이었습니다. 방안은 걷잡을 수 없이 뚱뚱해진 엄마로 꽉 찼습니다. 갈수록 더 무시무시하게 흔들렸습니다. 벽도 천장도 잠깐을 못 견디고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았습니다. 창틀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두 번, 창틀이 움찔거리더니 와락 무너져 한님이를 덮쳤습니다. 한님이는 세 번째로 ´엄마야´를 외치며 고무풍선처럼 잔뜩 부풀어 있는 엄마의 품으로 바싹 안겨 들었습니다. 생채기 하나라도 생길세라 꼭 안아 주는 엄마의 품은 맞춤처럼 푹신했습니다. 곧이어 조금도 짬을 두지 않고 남은 벽마저
허물어졌습니다.
´와지끈 투당탕탕 탕´
´엄마야!´
˝엄마 여기 있어. 그래, 그래. 자, 여기.˝
한님이는 눈을 번쩍 떴습니다. 엄마가 한님이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식은땀을 닦아주고 있었습니다.
˝무서운 꿈을 꾼 게로구나 무슨 꿈이길래 머리카락까지 흠뻑 젖었니?˝

이튿날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내일의 준비물을 일러주던 선생님은 바느질 실습이 있으니 못쓰는 헌 옷가지를 가져오라고 당부하였습니다. 한님이는 할머니에게 챙겨 달라고 할 양으로 부지런히 집에 돌아왔습니다. 할머니는 못쓰는 것 모으기 대장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 집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엄마가 할머니를 모시고 어디 나가신 모양입니다. 문득 한님이는 지금껏 한 번도 엄마의 옷장을 열어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한님이 방에 있는 너구리 옷장은 아침 저녁으로 서너 번 씩 여닫지만 안방의 고동빛 옷장은 엄마나 아빠만 열어 봅니다.
´어쩌면 그 안에 헌 옷가지가 한두 벌쯤 있을지도 몰라. 내가 찾아보지 뭐.´
한님이는 매듭 노리개 열쇠가 달랑거리는 엄마의 옷장을 열었습니다. 한켠에 가지런히 걸린 아빠의 양복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켠에는 한님이도 열댓 번은 봐서 빤히 알고 있는 엄마의 낡은 나들이 옷 몇 벌이 걸려 있었습니다.
´저 옷들도 몽땅 헌 옷인데. 엄마 옷은 헌 옷밖에 없네.´
아무리 낡았더라도 엄마가 아끼는 나들이옷을 바느질 실습에 쓸 수는 없습니다. 더 깊숙한 곳을 찾아보려고 옷장 안쪽을 뒤적였습니다. 반질반질하고 딱딱한 상자 하나가 손 끝에 미끄러져 닿았습니다. 얼른 끄집어내어 뚜껑을 젖혀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상자 안에는 한지에 곱게 싸인 푸른 비단 원피스가 가지런히 개켜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곁에는 날씬한 맵시의 어떤 언니가 가녀린 허리에 오른손을 얹은 채 바로 그 비단 원피스를 차려 입고 해맑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 나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이미 누렇게 바래 버린 사진 뒷면에는 단정한 글씨로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딸 한님이가 태어났다. 나도 이제 엄마가 되었다. 한님이의 조그만 심장이 나와 함께 뛰던 지난 아홉 달 남짓동안 뚱뚱해진 내 배는 아직도 남산같다. 우리 한님이도 자라서 언젠가는 이 푸른 비단옷이 어울릴 어여쁜 나이가 되겠지. 곱게 두었다가 그 날이 오면 입혀 주어야겠다.´
사진 속의 엄마는 비단보다도 더 고왔습니다. 엄마의 눈부신 미소 위에 번진 한님이의 눈물 한 방울이 상자 속에서 반짝였습니다.

´딩동 딩동동, 딩동동.´
종을 울려도 기척이 없자 한님이 엄마는 열쇠로 문을 열었습니다. 마루에 시장 바구니를 털썩 내려놓고 힘겹게 뻐근한 허리를 들어올렸을 때였습니다. 깜짝 놀란 한님이 엄마는 굳은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노란 벽시계가 걸려 있던 그 자리에 낯익은 푸른 비단옷이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방학 때 한님이가 만든 색종이 액자 안
에서는 한님이 엄마의 젊은 날 사진이 웃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 우리 엄마´
사진 아래 쓰인 말입니다. 눈에 익은 통통한 글씨, 한님이 글씨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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