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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혜수와 당나귀 열차

창작동화 심강우............... 조회 수 1617 추천 수 0 2004.10.21 10:44:32
.........
혜수와 당나귀 열차
심강우

갈색 바닥이 드러난 염전이 보입니다. 수차로 퍼올린 바닷물이 여름 뙤약볕에 서서히 소금더미로 변하던 곳입니다. 혜수는 언덕에 올라 휑하니 빈 염전을 내려다봅니다. 마음처럼 쓸쓸한 풍경입니다. 혜수는 이제나저제나 당나귀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난감처럼 조그마한 덩치에 달가당 달가당 달려가는 모습이 마치 당나귀같다는 생각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열차가 늦습니다. 설마 그새 열차가 없어지진 않았겠지, 더럭 조바심이 일어납니다. 알몸으로 서 있는 미루나무들이며 앙상한 갈대밭이며 그 모두가 혜수의 조바심에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혜수야, 이제 며칠 후면 열차를 볼 수 없단다.˝
˝...열차가 고장났나요?˝
˝......˝
˝아이, 대답해 주세요.˝
˝나라에서...열차를 없애기로 했단다.˝
˝왜, 무슨 말이에요?˝
˝그건 말이다...엄마가 하는 장사와 같아서...그래, 손님이 없으면 이문이 없잖니, 그래서 이젠 승객을 받지 않기로 했다는구나.˝
˝피, 나라도 돈만 아는구나.˝
˝......˝
며칠 전 엄마와 나눈 얘기를 새삼 떠올립니다. 엄마 말대로라면 열차를 볼 수 있는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그런 말끝에 소래포구까지 갈 교통이 없으니 이제 그만 이곳을 떠나야... 라며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아빠는요. 혜수는 그 말이 목구멍에서 넘어오는 걸 간신히 참았습니다.
삐익...달강달강...
그때였습니다. 열차가 저쪽 산아래 외따로 서 있는 소금창고 옆을 막 돌아나오고 있었습니다. 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객차가 두 개뿐인 당나귀 열차가 언제나처럼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아빠도 저 열차를 타고 오신댔는데...
집으로 돌아온 혜수는 그리다 만 그림을 다시 손질합니다. 혜수가 그리는 그림은 언제나 당나귀 열차입니다. 열차를 가운데에 두고 하얀 소금이 쌓인 염전이나 갈대밭, 그리고 시커먼 개펄 따위를 차례차례 그려갑니다.
그림을 그리다 말고 혜수는 들창을 열고 바다를 봅니다. 하지만 바다는 보이지 않습니다. 높은 제방이 가로막은 때문입니다. 전에는 그곳에 군인 아저씨들이 쳐놓은 철조망이 있었습니다. 철조망이 죄다 걷힌 지금도 바다가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로 지은 집이라 바람이 불 때마다 덜컹거립니다. 혜수는 다시 방바닥에 엎드립니다.
엄마가 얼른 돌아왔으면 싶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열차가 한 번 더 지나가고, 그러고 나서도 한참 더 있어야 올 테지요. 혜수는 라면상자를 뒤져 지금까지 그렸던 그림들을 꺼내어 봅니다.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혜수의 볼엔 살짝 보조개가 파입니다. 그러다 혜수의 얼굴이 갑자기 발그레 물듭니다. 빛이 바랜 그림 하나가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아빠 얼굴을 그린 그림입니다.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이지만 참 잘 그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빠. 그림을 보던 혜수가 입술을 달싹입니다.
어느덧 방이 어두워졌습니다. 혜수는 일어나 전등을 켰습니다. 흐릿한 백열등 불빛이나마 한결 따스한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혜수는 다시 크레파스를 쥐고 열차를 색칠합니다.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놓칠세라 쫑긋, 귀를 세운 채.
문풍지가 파르르 떠는 밤늦은 시간에 엄마는 돌아왔습니다. 그림을 그리다 그대로 잠이 든 혜수를 엄마는 살포시 안아 요 위에 눕힙니다. 그때 으응 하며 혜수가 눈을 떴습니다. 엄마! 엄마의 모습을 본 혜수가 눈을 비비며 일어납니다.
˝그냥 자지 그러니.˝
엄마는 밤늦도록 기다리다 잠들었을 혜수가 안쓰러워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언제 오셨어요?˝
잠긴 목소리로 혜수가 묻습니다. 엄마 몸에서 나는 갯비린내가 싫지 않습니다.
˝방금 왔단다. 그래, 저녁은 먹었구?˝
˝네.˝
엄마는 생선을 담았던 함지박에서 뭔가를 꺼내어 혜수에게 건넵니다.
˝이게 뭐예요?˝
까만 비닐봉지를 풀며 혜수가 묻습니다.
대답없이 엄마는 빙그레 웃기만 합니다.
혜수의 두 눈이 반짝 빛납니다. 비닐봉지 속에서 크레파스가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크레파스가 다 되어 엄마에게 말하려던 참이었습니다. 크레파스통을 열어보던 혜수의 눈이 토끼눈처럼 동그래졌습니다. 색이 24가지나 되는 크레파스였기 때문입니다. 혜수는 너무 기뻐 엄마의 품에 뛰어들었습니다. 엄마도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며 혜수를 끌어안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새근새근 세상 모르고 잠든 혜수를 들여다보던 엄마의 눈에 물기가 어립니다. 혜수가 좀 더 크면 들려 주려던 그 얘기를 아무래도 앞당겨 들려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혜수 엄마는 가만히 일어나 마루로 나갔습니다. 마루끝에 서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시린 별빛이 눈을 찌릅니다. 이따금씩 파도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옵니다.
숨을 들이키자 소금 내음이 맡아집니다. 문득 혜수 아빠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러자 언제나 그랬듯이 가슴 깊은 곳에서 물보라가 일어납니다. 아픔으로 부서지는...
염전 일을 쉬는 겨울이면 늘 그랬던 것처럼 그 해 겨울에도 혜수 아빠는 고깃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바람이 너무 세차다며 걱정을 하는 혜수 엄마에게 혜수 아빠는 싱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부지런히 일을 해야 당신 고생 안 시키고 우리 혜수에게도 좋은 옷, 좋은 책을 사 줄 게 아니오.˝
그 말은 혜수 아빠가 남긴 마지막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새벽부터 거친 물결이 일기 시작하더니 날이 밝을 무렵엔 산더미같은 파도가 제방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라디오를 틀자 폭풍이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밤새도록 기다렸지만 혜수 아빠가 탄 고깃배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혜수 엄마가 말한 며칠 후입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조그만 간이역 승강장에 혜수 엄마와 혜수가 서 있습니다. 승강장 뒤편으로 ´수인선 협궤열차 마지막 운행´이라고 씌어진 천조각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까부터 혜수는 입을 꼭 다문채 말이 없습니다. 혜수 엄마 역시 말이 없습니다. 이윽고 열차가 수증기를 내뿜으며 멈춰 섰습니다. 인천이라고 씌어진 차표를 혜수 엄마는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 글자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막 열차에 오르던 혜수 엄마가 깜짝 놀랍니다. 혜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얘가... 휘둥그래진 눈으로 주위를 둘러봅니다.
그때, 청색 제복을 입은 역원 아저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혜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혜수 엄마는 부리나케 그 쪽으로 달려갑니다. 혜수 엄마를 본 역원 아저씨가 말없이 웃으며 도화지를 내밉니다.
˝따님인 모양이죠? ...아빠가 언제 돌아오실지 모른다며 글쎄, 이 그림을 갖고 있다가 아빠가 오면 꼭 전해 주라는 거예요.˝
역원 아저씨가 내민 도화지엔 혜수 아빠 얼굴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해님처럼 둥글게 그린 아빠의 얼굴 뒤로 당나귀 열차가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염전 사이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열차 밑엔 이사갈 집 주소를 연필로 또박또박 적어놓았습니다.
문득, 혜수가 이사갈 집 주소를 물어오던 어젯밤이 생각났습니다. 혜수 엄마의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때, 열차가 삐-익하고 길게 기적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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