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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다 가질 수는 없나요?

창작동화 길지연............... 조회 수 1782 추천 수 0 2004.10.24 14:40:52
.........
봄처녀, 봄 노래, 봄 잔치, 봄비, 봄 아지랑이, 봄나물, 봄 하늘, 봄나들이 음... 봄 엄마. 아이 신경질 나.˝
벌써 한 시간을 넘게 봄 낱말을 찾던 나는 이 놀이도 심심해져 크게 기지개를 켰어요. 담장 밑에 웅크리고 있던 민들레 새순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고 뜰 안에 있는 개나리 나뭇가지에 하얀 솜털 꽃이 쏘옥쏘옥 얼굴을 드러냈지만 내 마음 한 켠은 먹장 구름이 끼어 있었어요.
봄이 오면 상추씨며 고추씨를 심어 여름 반찬을 만들자던 엄마였어요. 새끼손가락 걸고 엄지 손도장까지 꼭꼭 찍은 엄마였어요. 그런 엄마가 글쎄 봄이 오기도 전에 글짓기 선생님으로 취직이 되어 직장엘 다니시는 것이에요. 사학년이 되면 맛있는 간식을 더 많이 만들어 준다고 약속한 엄마였는데.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와도 문을 따주는 사람도 책가방을 받아 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텅 빈 집안을 들여다보며 한숨만 폭폭 쉴 수밖에요. 오늘도 나는 책가방을 어깨에 둘러멘 채 툇마루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 엄마가 함께 가꾸자던 꽃밭만 쳐다보았어요. 하지만 이젠 새순 찾는 일도 봄 낱말 외우는 일도 싫증이 났어요. 나는 두 팔을 번쩍 쳐들어 보았어요. 그러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다리 사이로 얼굴을 묻었어요. 이제부터는 거꾸로 보기예요. 하늘은 파란 돗자리, 장독 뚜껑들은 공중으로 붕붕붕 떠올랐죠.
그러다가 마루 밑도 힐끔, 순간 마루 밑에서 무엇인가 아주 작은 물체가 움직이는 듯했어요. 깜짝 놀란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다시 한 번 마루 밑을 보았어요. 콩닥콩닥 뛰는 가슴으로요. 세상에, 바로 내 눈앞에는 막 태어난 듯한 아기쥐 한 마리가 꼼틀꼼틀대고 있었어요. 털이 나지 않은 발그스레하고 몸의 크기는 요구르트 병의 꼭 반 정도만했어요. 문득 얼마 전 살이 통통 찐 큰 쥐 한 마리가 뜰 앞으로 지나가는데 돌멩이를 던진 생각이 났어요. 또 담장 너머로 들려오던 준호 할머니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는 것 같았어요.
˝아이구, 징그러워라. 새끼 밴 쥐 같은데 빨리 쥐덫을 놓든지 해야지.˝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유치원 다니는 준호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할머니 할머니, 쥐가 덫에 걸렸어요. 내 팔뚝만해요.˝
˝그래, 그런데 어디다 새끼를 깐 모양이네.˝
아, 그렇다면 이 아기쥐는 어미를 잃은 게 틀림없어요. 또 다른 아기쥐가 있을 것 같아 마루 밑 깊은 곳까지 들여다봤지만 다른 쥐들은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마루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아주 오랫동안 아기쥐를 들여다보았어요. 아기쥐는 아직 털이 안 난 몸이 추운지 작은 몸을 파르르 떨었어요. 나는 며칠만이라도 아기쥐를 돌봐주기로 마음을 굳혔어요. 저렇게 어린 쥐를 고양이에게 줄 수는 없잖아요. 나는 책가방 속에서 엄마가 곱게 접어 넣어 준 손수건을 꺼냈어요.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조심 아기쥐를 손수건에 쌌어요. 의외로 아기 쥐의 몸은 방금 삶은 달걀을 까 놓은 듯 말랑말랑하고 따뜻했어요. 나는 혹시라도 준호 할머니에게 들킬세라 부리나케 방으로 뛰어들어 갔어요.
서쪽 하늘에 이내가 사라질 무렵에야 아빠, 엄마는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들어오셨어요. 엄마는 여느때와 같이 부엌으로 달려가 저녁 준비에 바빴어요.
나는 손수건에 싸인 아기쥐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는 용기를 내어 엄마를 불렀어요.
˝엄마 엄마, 이것 좀 봐요.˝
손수건에 싸인 아기쥐를 엄마 앞으로 내밀자 금세 엄마의 얼굴이 하얘졌어요.
˝어머나, 여보 여보. 큰일 났어요.˝
엄마는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안방으로 달려갔어요. 엄마의 외마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잠옷 바지를 한쪽 다리에만 걸친 모습으로 아빠가 달려 나왔지요.
˝어디야? 쥐가 어딨어?˝
엄마는 아빠의 허리춤을 꼭 잡은 채 나를 가리켰어요.
˝저어기, 영미 손에 있잖아요.˝
내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아빠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듯했어요.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자 킥킥 웃음이 났어요. 산수 시험지를 앞에 놓고 야단 치던 또 다른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거든요. 아빠가 요렇게 작은 쥐를 무서워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맙소사, 옆집에서 건너온 모양이구나. 영미야, 어서 내다 버리고 손 씻어라.˝
˝아빠, 뭐가 어때서 그래요.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외국 가수도 쥐를 키우던데.˝
˝그건 이런 시궁 쥐가 아니야. 모로..., 그 뭐라는 애완용 쥐지.˝
˝치이, 쥐면 다 똑같지 쥐도 족보가 있나, 뭐.˝
아빠는 검은 테 안경을 만지작거리다가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영미야, 얼마 전에 너도 뉴스에서 들었지? 인도라는 나라에서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
아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 페스트란 병이 바로 이 쥐에서 옮는거야. 영미야, 제발 갔다 버려.˝
엄마가 마루 문을 드르륵 열자 아빠가 손짓을 했어요.
˝얼른.˝
˝아빠 이삼일 만이라도 안되요? 아직 송곳니도 털도 안 난 아기쥐예요. 이대로 버리면 고양이 밥이 될거예요.˝
˝안 돼, 너 교과서에서 먹이 사슬도 안 배웠니? 생물이든 동물이든 자연의 섭리에 따르며 사는게야.˝
˝아빠, 너무해요. 이 쥐를 키우자는 게 아니잖아요. 어미 잃은 쥐를 보니까 텅 빈 집에서 아빠, 엄마를 기다리는... 나 같았다구요.˝
나는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어요. 그런 내 모습에 아빠, 엄마가 안절부절하며 내 눈치를 보았어요. 아빠는 가만히 서 계시다가 말했어요.
˝저기 신발장 위에 빈 꽃바구니 있지? 그 곳에 놔라. 단 이틀뿐이다.˝
그 말을 남긴 아빠는 두 번 다시 아기쥐가 보기 싫은 듯 휭하니 방으로 들어갔어요. 난 겨우 아기쥐를 신발장 위에 놔둘 수 있었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다음날 아침엔 늦잠을 자고 말았어요. 허겁지겁 책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내달리던 나는 신발장 위에 놓인 꽃바구니가 없어진 것을 알았어요.
˝엄마 엄마, 새끼쥐 담긴 바구니 어딨어요?˝
더듬거리는 엄마의 뒤꼭지에서 아빠의 말소리가 들렸어요.
˝아빠가 치웠다. 며칠씩 집안에 둘 순 없잖아. 자, 어서 학교나 가거라.˝
˝아빠, 그런 법이 어딨어요. 나한테는 말 한 마디 없이.˝
나는 너무나 속이 상해 현관 앞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엉엉 울었어요.
˝그만두지 못하겠니? 이게 무슨 버릇 없는 짓이야.˝
아빠도 화를 버럭 내고 대문을 나섰어요. 눈물을 닦아 주려는 엄마를 뿌리친채 나도 대문을 나섰구요. 학교 수업이 다 끝날 때까지도 나는 화가 풀리지 않아 씩씩대기만 했어요. 그러다 문득, 마루 밑에 어쩌면 아기쥐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한 걸음에 집앞까지 달려왔어요. 가방에서 대문 열쇠를 막 꺼내려는데 엄마가 문을 열어 주시는 것이에요.
˝우리 공주님 오셨네. 어서 들어가자. 너 좋아하는 새우 튀김 해놨어.˝
정말 오랜만에 책가방을 받아 주는 엄마의 모습이었지만, 난 엄마의 얼굴을 외면한 채 툇마루로 달려갔어요. 그러나 마루 밑에도 꽃밭 근처에도 아기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엄마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요.
˝내 아기쥐는 어딨어. 빨리 찾아내요.˝
엄마가 조심조심 다가와 내 옆에 앉았어요.
˝영미가 아기쥐를 보살펴 주고 싶은 마음은 아주 좋아. 근데 영미야, 그 쥐로 인해 다른 사람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잖아.˝
˝엄마, 난 아무 말도 듣기 싫어.˝
엄마는 뿌리치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다시 말을 이었어요.
˝영미야, 생쥐 나라라는 책이 있어. 그런데 그 책을 지은 작가도 어릴 때 생쥐를 키우다 부모님께 혼이 났대. 어른이 되어서야 부모님이 이해가 가더래. 그렇지만 어릴 때 봤던 생쥐 생각이 끊이질 않아서 생쥐에 대한 많은 이야길 썼다는구나.˝
퉁퉁 부어 오른 내 얼굴을 보며 엄마는 앞뜰을 가리켰어요.
˝매일 나가던 글짓기 교실을 일주일에 세 번만 나가기로 했어. 영미랑 약속했지? 고추씨, 상추씨 심자고. 영미야, 우리 반반씩만 양보하자. 다 가질 수는 없지 않니?˝
그때였어요. 다른 날보다 일찍 퇴근한 아빠가 뜰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오셨어요.
˝우리 아가씨,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요?˝
내가 대답할 겨를도 없이 아빠가 다가와 내 볼에 입을 맞췄어요.
˝자, 아빠가 사과하는 뜻으로 선물을 사왔어.˝
나는 아빠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얼핏 스치는 생쥐 그림에 슬쩍 고개를 돌려 보았어요. ´생쥐 나라´라고 써진 책의 겉 표지에는 나뭇잎 배를 탄 아기쥐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어요. 아빠를 용서해 주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책이 보고 싶어졌어요. 나는 아빠 손에서 나꿔채듯 책을 받아 들고 방으로 후다다닥 뛰어들어 갔어요. 생쥐를 키우다 혼이 났다는 작가의 글이 보고 싶었거든요. 첫 장을 넘기자 이런 글이 쓰여 있었어요.
´우리는 때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다. 다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한 가지 가슴속에 오래 남아 있는 것들과 만날 수 있다.´
-나의 사랑하는 생쥐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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