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동심의 세계는 모든 어른들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동화읽는 어른은 순수합니다

동화읽는어른

[창작동화] 나무야 3일만 기다려다오

창작동화 김춘옥............... 조회 수 1294 추천 수 0 2004.11.12 13:35:17
.........
나무야 3일만 기다려다오

김춘옥

나는 좌경입니다. 모서리에는 반쪽 날개를 가진 나비 문양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오늘도 내 뚜껑을 열고 안에 달려 있는 거울을 비스듬히 세웠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할머니의 자글자글한 눈매에 이내 물기가 고였습니다.
“나무야, 이제 3일만 기다리면….”
할머니는 나비 문양을 쓰다듬으며 나에게 말했습니다.
좌경인 나를 ‘나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오래 전에 오동나무였습니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태어나던 해에 나도 땅에서 싹을 틔웠습니다. 할머니의 아버지가 시집 갈 때 가구를 만들어 준다고 나를 땅에 심었던 것입니다.
오동나무는 나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또 한 그루가 나란히 심어졌습니다.
“사이 좋게 자라야 해.”
할머니의 아버지는 흙을 다지며 다정스럽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나무들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와 할머니의 동생을 두고 하는 다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쌍둥이 언니였습니다. 할머니의 이름은 금실, 동생은 은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와 나란히 심어진 나무는 은실이의 오동나무였습니다.
“나무가 자라는 걸 생각지 못하다니. 좀 떨어지게 심는 건데….”

몇 해가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우리를 보며 혀를 끌끌 찼습니다. 나와 은실이 나무가 빨리 자라 가지가 서로 맞부딪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똑같이 자랐습니다.
“참 희한하기도 하지. 저 나무들 좀 봐.”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신기해 했습니다. 나와 은실이 나무는 서로 가지를 부딪치지 않게 비껴 가며 자랐습니다. 은실이 나무 가지가 뻗어 나오면 내가 비켜 주고, 내가 가지를 뻗으면 은실이 나무가 비켜 주었습니다.
“두 나무가 한 그루 같네.”
누군가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무 기둥을 보지 않고 위만 보면 분명 한 그루의 나무였습니다.
금실이와 은실이는 사이 좋게 잘 자랐습니다. 어느새 우리들도 튼실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이제 나무를 베어야겠어.”

어느 날, 아버지는 톱을 가지고 우리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금실이는 이웃 마을에 사는 사람과 은실이는 강 건너 북쪽 마을에 사는 총각과 혼담이 오갔습니다.
은실이 나무는 가지를 파르르 떨었습니다.
“은실이 나무야, 무서워하지 마. 우린 처음부터 가구가 되기 위해 태어난 거야. 이제 그 때가 된 것뿐이야.”
“베어지는 게 두려워서가 아냐. 우린 이제 헤어질 거잖아.”
나는 그 때야 알았습니다. 가구가 되면 우린 서로 다른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밑동이 잘려 마당에 뉘어졌습니다. 가지에 핀 꽃들도 생기를 잃고 늘어졌습니다.
“은실아, 아버지께 좌경을 만들어 달라고 하자. 거울을 보며 서로를 잊지 않는 거야.”
“그래, 언니. 우린 꼭 닮았으니까 거울을 보면 될 거야.”
“매년 아버지 생신 때, 좌경을 가져와서 만나게 해 주자.”
“맞아, 우리처럼 나무들도 만나고 싶을 거야.”
금실이와 은실이가 다가와 우리를 쓰다듬으며 자근자근 속삭였습니다. 우리는 두 자매 이야기를 들으며 새벽이 훤하게 밝아올 때까지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은실이가 강 건너 북쪽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나도 금실이를 따라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금실이는 저녁이면 내 뚜껑을 열고 거울을 세웠습니다. 새색시의 얼굴에는 은실이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습니다. 나도 은실이 나무가 생각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만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습니다. 강을 사이에 두고 강 건너 북쪽 마을에는 인민군이 이쪽에는 국군이 진을 쳤습니다. 양쪽 군인들은 사람들이 강을 건너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모레가 아버지 생신인데….”
금실이는 나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버지 생신 날이 지나갔습니다. 급기야 전쟁이 터지고 휴전이 되었지만 영영 은실이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 또한 은실이 나무를 볼 수 있는 희망은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나무야, 미안하구나. 반쪽 나무로 만든 건 모두 우리 사람들 탓이야.”
어느새 금실이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하나둘 늘어 갔습니다.
할머니는 오늘따라 나를 정성스럽게 닦아 줍니다.
“분명 이 얼굴일 게야.”
할머니는 여느 때와는 달리 오래도록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나는 갑작스레 가슴이 달아오릅니다. 며칠 전에 할머니가 한 말을 다시 곱씹어 보았습니다.
‘나무야, 이제 3일만 기다리면….’
그 3일 후가 바로 오늘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기에 쌌습니다. 나는 보자기 속에서도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참을 흔들거리다가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시 후, 나는 보자기에서 풀려 났습니다.
실내는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고 현수막에는 ‘남북 이산 가족 찾기’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습니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사람들에게 이끌려 갔습니다. 은실이와 마주쳤다 싶었는데 은실이 나무와 나란히 서게 되었습니다.
“쌍좌경입니다. 이 좌경들의 모서리에 있는 금속 장식을 보십시오. 반으로 나뉘었던 나비 문양이 하나의 나비가 되었습니다….”
기자가 큰 소리로 외치자, 카메라 셔터가 우리를 향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와 은실이도 우리를 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8 창작동화 [창작동화] 우리의 보물 김영순 2005-02-11 1165
197 창작동화 [창작동화] 송이 캐는 노인 김영순 2005-02-11 1249
196 창작동화 [창작동화]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송재찬 2005-02-11 1094
195 창작동화 [창작동화] 날개를 단 돼지 김경옥 2005-01-31 1786
194 창작동화 [창작동화] 솔이의 봉숭아 꽃 김경옥 2005-01-31 2234
193 창작동화 [창작동화] 여든 살 아기 김경옥 2005-01-27 1282
192 창작동화 [창작동화] 미르와 미리내 김자환 2005-01-27 1208
191 창작동화 [창작동화] 수남이 김자환 2005-01-20 1072
190 창작동화 [창작동화] 우렁이의 선물 김자환 2005-01-20 1214
189 창작동화 [창작동화] 나, 봄비 김영미 2005-01-20 1829
188 창작동화 [창작동화] 감기에 걸린 발 김영미 2005-01-06 1871
187 창작동화 [창작동화] 아기 바람의 힘 소중애 2005-01-06 1522
186 창작동화 [창작동화] 휘파람부는 허수아비 강원희 2005-01-06 1993
185 창작동화 [창작동화] 누굴 닮았나 김상삼 2005-01-06 1416
184 창작동화 [창작동화] 어머니의 기도 김충도 2005-01-02 1251
183 에니메이션 [에니동화] 양치기 소년과 늑대 이동화 2004-12-11 2161
182 창작동화 [창작동화] 빨간 벼슬꽃 김양수 2004-12-05 1250
181 창작동화 [창작동화] 구두쇠와 쇠똥 김여울 2004-12-05 1073
180 창작동화 [창작동화] 은고양이 권영상 2004-12-05 1471
179 창작동화 [창작동화] 느티나무와 파랑새 김여울 2004-12-05 1189
178 창작동화 [창작동화] 도시로 가는 얼룩소 김여울 2004-12-05 1276
177 창작동화 [창작동화] 땅속엔 누가 있나봐 김여울 2004-12-05 1475
176 창작동화 [창작동화] 거인과 난쟁이 김여울 2004-12-05 1736
175 신춘문예 [2004부산일보] 기와 속에 숨어사는 도깨비 -임현주 임현주 2004-12-05 1537
174 창작동화 [창작동화] 기차역 긴의자 이야기 김해원 2004-12-05 2046
173 에니메이션 [에니동화] 돼지가 꿀꿀꿀 하는 이유는 이동화 2004-11-28 1761
172 창작동화 [창작동화] 붕어빵 한 개 [2] 김향이 2004-11-23 1802
171 창작동화 [창작동화] 내가 지켜줄게 구민애 2004-11-23 1304
170 창작동화 [창작동화] 오세암 정채봉 2004-11-23 1228
169 창작동화 [창작동화] 도깨비 바늘의 소원 김향이 2004-11-12 1453
168 창작동화 [창작동화] 철수는 철수다 노경실 2004-11-12 1758
» 창작동화 [창작동화] 나무야 3일만 기다려다오 김춘옥 2004-11-12 1294
166 창작동화 [창작동화] 다 가질 수는 없나요? [1] 길지연 2004-10-24 1782
165 창작동화 [창작동화] 바람이 들려준 동화 이경 2004-10-24 1606
164 기타 [우화동화] 여치와 개미 손춘익 2004-10-24 1473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