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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3일만 기다려다오
김춘옥
나는 좌경입니다. 모서리에는 반쪽 날개를 가진 나비 문양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오늘도 내 뚜껑을 열고 안에 달려 있는 거울을 비스듬히 세웠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할머니의 자글자글한 눈매에 이내 물기가 고였습니다.
“나무야, 이제 3일만 기다리면….”
할머니는 나비 문양을 쓰다듬으며 나에게 말했습니다.
좌경인 나를 ‘나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오래 전에 오동나무였습니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태어나던 해에 나도 땅에서 싹을 틔웠습니다. 할머니의 아버지가 시집 갈 때 가구를 만들어 준다고 나를 땅에 심었던 것입니다.
오동나무는 나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또 한 그루가 나란히 심어졌습니다.
“사이 좋게 자라야 해.”
할머니의 아버지는 흙을 다지며 다정스럽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나무들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와 할머니의 동생을 두고 하는 다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쌍둥이 언니였습니다. 할머니의 이름은 금실, 동생은 은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와 나란히 심어진 나무는 은실이의 오동나무였습니다.
“나무가 자라는 걸 생각지 못하다니. 좀 떨어지게 심는 건데….”
몇 해가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우리를 보며 혀를 끌끌 찼습니다. 나와 은실이 나무가 빨리 자라 가지가 서로 맞부딪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똑같이 자랐습니다.
“참 희한하기도 하지. 저 나무들 좀 봐.”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신기해 했습니다. 나와 은실이 나무는 서로 가지를 부딪치지 않게 비껴 가며 자랐습니다. 은실이 나무 가지가 뻗어 나오면 내가 비켜 주고, 내가 가지를 뻗으면 은실이 나무가 비켜 주었습니다.
“두 나무가 한 그루 같네.”
누군가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무 기둥을 보지 않고 위만 보면 분명 한 그루의 나무였습니다.
금실이와 은실이는 사이 좋게 잘 자랐습니다. 어느새 우리들도 튼실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이제 나무를 베어야겠어.”
어느 날, 아버지는 톱을 가지고 우리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금실이는 이웃 마을에 사는 사람과 은실이는 강 건너 북쪽 마을에 사는 총각과 혼담이 오갔습니다.
은실이 나무는 가지를 파르르 떨었습니다.
“은실이 나무야, 무서워하지 마. 우린 처음부터 가구가 되기 위해 태어난 거야. 이제 그 때가 된 것뿐이야.”
“베어지는 게 두려워서가 아냐. 우린 이제 헤어질 거잖아.”
나는 그 때야 알았습니다. 가구가 되면 우린 서로 다른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밑동이 잘려 마당에 뉘어졌습니다. 가지에 핀 꽃들도 생기를 잃고 늘어졌습니다.
“은실아, 아버지께 좌경을 만들어 달라고 하자. 거울을 보며 서로를 잊지 않는 거야.”
“그래, 언니. 우린 꼭 닮았으니까 거울을 보면 될 거야.”
“매년 아버지 생신 때, 좌경을 가져와서 만나게 해 주자.”
“맞아, 우리처럼 나무들도 만나고 싶을 거야.”
금실이와 은실이가 다가와 우리를 쓰다듬으며 자근자근 속삭였습니다. 우리는 두 자매 이야기를 들으며 새벽이 훤하게 밝아올 때까지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은실이가 강 건너 북쪽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나도 금실이를 따라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금실이는 저녁이면 내 뚜껑을 열고 거울을 세웠습니다. 새색시의 얼굴에는 은실이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습니다. 나도 은실이 나무가 생각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만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습니다. 강을 사이에 두고 강 건너 북쪽 마을에는 인민군이 이쪽에는 국군이 진을 쳤습니다. 양쪽 군인들은 사람들이 강을 건너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모레가 아버지 생신인데….”
금실이는 나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버지 생신 날이 지나갔습니다. 급기야 전쟁이 터지고 휴전이 되었지만 영영 은실이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 또한 은실이 나무를 볼 수 있는 희망은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나무야, 미안하구나. 반쪽 나무로 만든 건 모두 우리 사람들 탓이야.”
어느새 금실이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하나둘 늘어 갔습니다.
할머니는 오늘따라 나를 정성스럽게 닦아 줍니다.
“분명 이 얼굴일 게야.”
할머니는 여느 때와는 달리 오래도록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나는 갑작스레 가슴이 달아오릅니다. 며칠 전에 할머니가 한 말을 다시 곱씹어 보았습니다.
‘나무야, 이제 3일만 기다리면….’
그 3일 후가 바로 오늘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기에 쌌습니다. 나는 보자기 속에서도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참을 흔들거리다가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시 후, 나는 보자기에서 풀려 났습니다.
실내는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고 현수막에는 ‘남북 이산 가족 찾기’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습니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사람들에게 이끌려 갔습니다. 은실이와 마주쳤다 싶었는데 은실이 나무와 나란히 서게 되었습니다.
“쌍좌경입니다. 이 좌경들의 모서리에 있는 금속 장식을 보십시오. 반으로 나뉘었던 나비 문양이 하나의 나비가 되었습니다….”
기자가 큰 소리로 외치자, 카메라 셔터가 우리를 향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와 은실이도 우리를 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
김춘옥
나는 좌경입니다. 모서리에는 반쪽 날개를 가진 나비 문양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오늘도 내 뚜껑을 열고 안에 달려 있는 거울을 비스듬히 세웠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할머니의 자글자글한 눈매에 이내 물기가 고였습니다.
“나무야, 이제 3일만 기다리면….”
할머니는 나비 문양을 쓰다듬으며 나에게 말했습니다.
좌경인 나를 ‘나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오래 전에 오동나무였습니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태어나던 해에 나도 땅에서 싹을 틔웠습니다. 할머니의 아버지가 시집 갈 때 가구를 만들어 준다고 나를 땅에 심었던 것입니다.
오동나무는 나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또 한 그루가 나란히 심어졌습니다.
“사이 좋게 자라야 해.”
할머니의 아버지는 흙을 다지며 다정스럽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나무들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와 할머니의 동생을 두고 하는 다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쌍둥이 언니였습니다. 할머니의 이름은 금실, 동생은 은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와 나란히 심어진 나무는 은실이의 오동나무였습니다.
“나무가 자라는 걸 생각지 못하다니. 좀 떨어지게 심는 건데….”
몇 해가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우리를 보며 혀를 끌끌 찼습니다. 나와 은실이 나무가 빨리 자라 가지가 서로 맞부딪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똑같이 자랐습니다.
“참 희한하기도 하지. 저 나무들 좀 봐.”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신기해 했습니다. 나와 은실이 나무는 서로 가지를 부딪치지 않게 비껴 가며 자랐습니다. 은실이 나무 가지가 뻗어 나오면 내가 비켜 주고, 내가 가지를 뻗으면 은실이 나무가 비켜 주었습니다.
“두 나무가 한 그루 같네.”
누군가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무 기둥을 보지 않고 위만 보면 분명 한 그루의 나무였습니다.
금실이와 은실이는 사이 좋게 잘 자랐습니다. 어느새 우리들도 튼실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이제 나무를 베어야겠어.”
어느 날, 아버지는 톱을 가지고 우리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금실이는 이웃 마을에 사는 사람과 은실이는 강 건너 북쪽 마을에 사는 총각과 혼담이 오갔습니다.
은실이 나무는 가지를 파르르 떨었습니다.
“은실이 나무야, 무서워하지 마. 우린 처음부터 가구가 되기 위해 태어난 거야. 이제 그 때가 된 것뿐이야.”
“베어지는 게 두려워서가 아냐. 우린 이제 헤어질 거잖아.”
나는 그 때야 알았습니다. 가구가 되면 우린 서로 다른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밑동이 잘려 마당에 뉘어졌습니다. 가지에 핀 꽃들도 생기를 잃고 늘어졌습니다.
“은실아, 아버지께 좌경을 만들어 달라고 하자. 거울을 보며 서로를 잊지 않는 거야.”
“그래, 언니. 우린 꼭 닮았으니까 거울을 보면 될 거야.”
“매년 아버지 생신 때, 좌경을 가져와서 만나게 해 주자.”
“맞아, 우리처럼 나무들도 만나고 싶을 거야.”
금실이와 은실이가 다가와 우리를 쓰다듬으며 자근자근 속삭였습니다. 우리는 두 자매 이야기를 들으며 새벽이 훤하게 밝아올 때까지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은실이가 강 건너 북쪽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나도 금실이를 따라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금실이는 저녁이면 내 뚜껑을 열고 거울을 세웠습니다. 새색시의 얼굴에는 은실이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습니다. 나도 은실이 나무가 생각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만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습니다. 강을 사이에 두고 강 건너 북쪽 마을에는 인민군이 이쪽에는 국군이 진을 쳤습니다. 양쪽 군인들은 사람들이 강을 건너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모레가 아버지 생신인데….”
금실이는 나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버지 생신 날이 지나갔습니다. 급기야 전쟁이 터지고 휴전이 되었지만 영영 은실이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 또한 은실이 나무를 볼 수 있는 희망은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나무야, 미안하구나. 반쪽 나무로 만든 건 모두 우리 사람들 탓이야.”
어느새 금실이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하나둘 늘어 갔습니다.
할머니는 오늘따라 나를 정성스럽게 닦아 줍니다.
“분명 이 얼굴일 게야.”
할머니는 여느 때와는 달리 오래도록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나는 갑작스레 가슴이 달아오릅니다. 며칠 전에 할머니가 한 말을 다시 곱씹어 보았습니다.
‘나무야, 이제 3일만 기다리면….’
그 3일 후가 바로 오늘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기에 쌌습니다. 나는 보자기 속에서도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참을 흔들거리다가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시 후, 나는 보자기에서 풀려 났습니다.
실내는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고 현수막에는 ‘남북 이산 가족 찾기’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습니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사람들에게 이끌려 갔습니다. 은실이와 마주쳤다 싶었는데 은실이 나무와 나란히 서게 되었습니다.
“쌍좌경입니다. 이 좌경들의 모서리에 있는 금속 장식을 보십시오. 반으로 나뉘었던 나비 문양이 하나의 나비가 되었습니다….”
기자가 큰 소리로 외치자, 카메라 셔터가 우리를 향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와 은실이도 우리를 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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