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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타너스, 우리 식구가 된 걸 환영해.
-이젠 여기가 네 집이야. 햇빛 먹고, 바람 먹고 자유롭게, 씩씩하게 자라렴.
주위의 은행나무들이 따뜻하게 나이 어린 플라타너스를 맞이했다.
여기는 서울의 세종로, 미국 대사관 앞이다.
며칠 전 벼락을 맞아 죽은 나무 자리에 플라타너스가 이사를 왔다. 플라타너스는 여러 은행나무들처럼 멋지고 당당하게 오래도록 세종로에 서 있고 싶었다.
그날 오후, 꼬마 박새가 날아왔다. 박새는 두 눈을 깜박이며 깍쟁이처럼 말했다.
-처음 보는 애구나. 어디서 왔니? 왜 나한테 인사를 안 하는 거지? 건방지군.
모두 자기를 좋아할 줄 알았던 플라타너스는 꼬마 박새의 구박에 그만 풀이 죽었다.
´무슨 말을 하든지 참아야지. 아무런 대꾸도 말아야지.´
플라타너스는 마음을 다잡고는 눈길을 돌렸다.
-어쭈, 이젠 날 무시하기까지 해. 이거, 이것 봐라.
꼬마 박새는 엄청난 일이라도 터진 듯 날개를 파닥이며 호들갑이었다. 그러더니 씨익 웃으면서 휑하니 가버렸다. ´에이, 요거나 먹어라´ 하며 플라타너스 얼굴 한가운데 똥을 뽕 누고서 말이다. 그걸 지켜보던 은행나무가 플라타너스를 위로했다.
-괜찮아, 꼬마 새들은 친구하고 싶은 나무에겐 꼭 그런 짓을 한단다. 내일 박새가 또 올 거야. 그 땐 네가 먼저 반갑다고 하렴. 둘이 좋은 친구가 될 테니.
은행나무 말대로였다. 이튿날 아침이 밝자 꼬마 박새가 팔랑팔랑 가까이 왔다.
플라타너스는 박새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친구가 되었다.
-얘얘, 너 저기 경복궁에 가 봤니? 물론, 못 가봤겠지. 자자, 내 얘기 잘 들어보라고.
꼬마 박새는 저녁마다 플라타너스 가지에 앉아 소곤거렸다.
-거긴 으리으리한 기와집이 엄청 많아. 모두 임금님꺼였대. 그 한 귀퉁이에는......
꼬마 박새가 입을 열면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들은 한껏 귀를 기울였다. 이러쿵저러쿵!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꼬마 박새는 그 끝을 꼭 이렇게 맺었다.
-그런 훌륭한 곳에 바로 우리 집이 있다는 거 아니겠어.
새로 알게 된 친구들 속에서 플라타너스는 행복을 느꼈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을 두 팔 벌려 받아들이면 가슴이 넓어지는 듯했다.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짓는 햇살이 플라타너스는 정겨웠다.
휘이이잉! 언제나 휘파람을 불며 다가오는 오천년 바람은 오랜 옛날부터 이 땅에 살던 조상들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었다.
-내 휘파람을 마시렴. 머언 먼 조상들이 물려준 신성한 기운이란다.
플라타너스는 오천 년 바람의 기운을 한껏 들이켰다. 그러고 나면 몸이 둥둥 하늘로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어디 햇살과 바람뿐인가. 플라타너스는 땅속 깊이 뿌리를 뻗으며 맑은 물방울과도 만났다.
쪼르르 쫄쫄. 넓고 넓은 세상을 돌고 돌아 마침내는 플라타너스를 찾아온 물방울. 플라타너스는 몸을 떨 만큼 기뻤다.
햇살과 바람과 물방울들. 살아 숨쉬는 우주가 자기 몸 속에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한 달 두 달, 세월이 흘러갔다. 그 사이 플라타너스는 튼튼한 어른 나무로, 꼬마 박새는 어미 박새로 변해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박새가 이마에 피를 흘리며 플라타너스를 만나러 왔다.
-어, 무슨 일이야? 피가 나잖아.
-우리 집을 어떤 놈이 뺏으려 하지 뭐야. 그래서 한 판 붙었지. 힘이 아주 세던걸.
그러자 플라타너스가 서슴없이 말했다.
-이리 와서 나랑 살자. 내 몸에 새 집을 짓고 말이야. 어때?
-아니, 우리의 집을 지킬 테야. 우리 아기들을 위해서라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어. 그 놈이 물러설 때까지 난 싸울 거야.
박새는 얼마 동안 못 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남기고 힘찬 날갯짓으로 떠나갔다.
며칠이 지났다. 아침부터 미국 대사관 앞이 시끄러웠다. 시위대가 몰려와 있었다.
˝미국은 우리 대한민국의 주권을 인정하라! 미군이 저지른 죄를......˝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이 갑자기 몇몇씩 무리를 지었다. 그 한 무리는 대사관 정문을 흔들었고, 또 한 무리는 담 앞의 나무들 위로 기어올랐다. 나무를 이용해 대사관 담을 뛰어넘으려는 모양이었다. 플라타너스는 순간 몸을 움츠렸다.
´박새에게 좋은 집이 되려면 다쳐서는 안돼.´
그러나 플라타너스는 곧 웅크렸던 몸을 쫙 폈다. 자기를 껴안고 위로 올라가는 젊은이의 온기가 무척 따스했기 때문이었다. 플라타너스는 알았다.
´이 젊은이는 나를 상하게 할 마음이 없는 거야.´
하지만 시위대는 금세 대한민국 전투경찰들에 쫓겨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텅 ! 텅 ! 아 ! 아 !
그날 밤이었다. 어둠을 가르는 쇠망치 소리를 따라 플라타너스는 커다란 울음을 내뱉었다.
단단한 철판 두 개가 가슴과 목을 조여왔다. 잠시 뒤에는 뾰족한 쇠꼬챙이가 플라타너스의 살을 뚫고 들어왔다.
텅 ! 텅 ! 텅 ! 쇠망치 소리는 긴 시간 밤하늘을 흔들었고, 나무들은 아픔에 울어댔다.
-어머, 이게 요즘 유행하는 패션인가? 오, 그럴 듯한데 !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대사관 지붕에서 내려온 비둘기 몇이 수선을 피웠다.
-그렇게 쇠꼬챙이가 잔뜩 박힌 철판을 몸에 두르고 있으면 예뻐진단 말이죠?
뚱뚱한 회색 비둘기가 담 앞의 열두 나무를 차례차례 쳐다보았다. 플라타너스는 목이 메었다. 젊은 자신은 그깟 고통쯤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데 주위의 늙은 은행나무들은......불쑥 어젯밤 망치질을 하던 한 인부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나무들이 무슨 죄가 있어. 나무를 타고 울타리를 넘으려는 사람들이 문제지. 아니, 아니지. 시위대가 그런다고 나무에 쇠꼬챙이 족쇄를 채울 궁리를 한 쪽이 나쁘지. 정말 미안하다 나무야.´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아!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싶은데, 그런데 목소리가 터지지 않아. 박새야, 날 좀!´
플라타너스는 몸부림을 쳤다. 문득문득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적이면 부드러운 햇살이, 오천 년 바람이 말없이 플라타너스를 어루만져 주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갔다.
-너, 너 이게 뭐야. 누가, 누가 이랬어. 응?
박새였다. 아기 박새들을 데리고 오랜만에 플라타너스를 찾아온 친구 박새.
-미안해. 네게 괜찮은 집이 되려고 했는데 그만.
플라타너스는 아픔을 견디며 박새를 보았다. 너무 반가웠다.
-오히려 내가 미안해. 너는 큰 고통으로 아파하는데, 난 내 집안 일에만 신경 쓰고.
박새는 예전처럼 나뭇가지에 앉지 못했다. 잠시 날개만 파닥이다가 눈물을 톡 떨구더니 플라타너스를 짓누르는 족쇄에 내려앉았다. 아기 박새들도 똑같이 했다.
콕 ! 콕 ! 콕 ! 박새네 식구는 약한 부리로 단단한 철판을 쪼기 시작했다. 햇살과 바람이 한참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는 초여름날이었다. *
-이젠 여기가 네 집이야. 햇빛 먹고, 바람 먹고 자유롭게, 씩씩하게 자라렴.
주위의 은행나무들이 따뜻하게 나이 어린 플라타너스를 맞이했다.
여기는 서울의 세종로, 미국 대사관 앞이다.
며칠 전 벼락을 맞아 죽은 나무 자리에 플라타너스가 이사를 왔다. 플라타너스는 여러 은행나무들처럼 멋지고 당당하게 오래도록 세종로에 서 있고 싶었다.
그날 오후, 꼬마 박새가 날아왔다. 박새는 두 눈을 깜박이며 깍쟁이처럼 말했다.
-처음 보는 애구나. 어디서 왔니? 왜 나한테 인사를 안 하는 거지? 건방지군.
모두 자기를 좋아할 줄 알았던 플라타너스는 꼬마 박새의 구박에 그만 풀이 죽었다.
´무슨 말을 하든지 참아야지. 아무런 대꾸도 말아야지.´
플라타너스는 마음을 다잡고는 눈길을 돌렸다.
-어쭈, 이젠 날 무시하기까지 해. 이거, 이것 봐라.
꼬마 박새는 엄청난 일이라도 터진 듯 날개를 파닥이며 호들갑이었다. 그러더니 씨익 웃으면서 휑하니 가버렸다. ´에이, 요거나 먹어라´ 하며 플라타너스 얼굴 한가운데 똥을 뽕 누고서 말이다. 그걸 지켜보던 은행나무가 플라타너스를 위로했다.
-괜찮아, 꼬마 새들은 친구하고 싶은 나무에겐 꼭 그런 짓을 한단다. 내일 박새가 또 올 거야. 그 땐 네가 먼저 반갑다고 하렴. 둘이 좋은 친구가 될 테니.
은행나무 말대로였다. 이튿날 아침이 밝자 꼬마 박새가 팔랑팔랑 가까이 왔다.
플라타너스는 박새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친구가 되었다.
-얘얘, 너 저기 경복궁에 가 봤니? 물론, 못 가봤겠지. 자자, 내 얘기 잘 들어보라고.
꼬마 박새는 저녁마다 플라타너스 가지에 앉아 소곤거렸다.
-거긴 으리으리한 기와집이 엄청 많아. 모두 임금님꺼였대. 그 한 귀퉁이에는......
꼬마 박새가 입을 열면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들은 한껏 귀를 기울였다. 이러쿵저러쿵!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꼬마 박새는 그 끝을 꼭 이렇게 맺었다.
-그런 훌륭한 곳에 바로 우리 집이 있다는 거 아니겠어.
새로 알게 된 친구들 속에서 플라타너스는 행복을 느꼈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을 두 팔 벌려 받아들이면 가슴이 넓어지는 듯했다.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짓는 햇살이 플라타너스는 정겨웠다.
휘이이잉! 언제나 휘파람을 불며 다가오는 오천년 바람은 오랜 옛날부터 이 땅에 살던 조상들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었다.
-내 휘파람을 마시렴. 머언 먼 조상들이 물려준 신성한 기운이란다.
플라타너스는 오천 년 바람의 기운을 한껏 들이켰다. 그러고 나면 몸이 둥둥 하늘로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어디 햇살과 바람뿐인가. 플라타너스는 땅속 깊이 뿌리를 뻗으며 맑은 물방울과도 만났다.
쪼르르 쫄쫄. 넓고 넓은 세상을 돌고 돌아 마침내는 플라타너스를 찾아온 물방울. 플라타너스는 몸을 떨 만큼 기뻤다.
햇살과 바람과 물방울들. 살아 숨쉬는 우주가 자기 몸 속에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한 달 두 달, 세월이 흘러갔다. 그 사이 플라타너스는 튼튼한 어른 나무로, 꼬마 박새는 어미 박새로 변해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박새가 이마에 피를 흘리며 플라타너스를 만나러 왔다.
-어, 무슨 일이야? 피가 나잖아.
-우리 집을 어떤 놈이 뺏으려 하지 뭐야. 그래서 한 판 붙었지. 힘이 아주 세던걸.
그러자 플라타너스가 서슴없이 말했다.
-이리 와서 나랑 살자. 내 몸에 새 집을 짓고 말이야. 어때?
-아니, 우리의 집을 지킬 테야. 우리 아기들을 위해서라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어. 그 놈이 물러설 때까지 난 싸울 거야.
박새는 얼마 동안 못 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남기고 힘찬 날갯짓으로 떠나갔다.
며칠이 지났다. 아침부터 미국 대사관 앞이 시끄러웠다. 시위대가 몰려와 있었다.
˝미국은 우리 대한민국의 주권을 인정하라! 미군이 저지른 죄를......˝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이 갑자기 몇몇씩 무리를 지었다. 그 한 무리는 대사관 정문을 흔들었고, 또 한 무리는 담 앞의 나무들 위로 기어올랐다. 나무를 이용해 대사관 담을 뛰어넘으려는 모양이었다. 플라타너스는 순간 몸을 움츠렸다.
´박새에게 좋은 집이 되려면 다쳐서는 안돼.´
그러나 플라타너스는 곧 웅크렸던 몸을 쫙 폈다. 자기를 껴안고 위로 올라가는 젊은이의 온기가 무척 따스했기 때문이었다. 플라타너스는 알았다.
´이 젊은이는 나를 상하게 할 마음이 없는 거야.´
하지만 시위대는 금세 대한민국 전투경찰들에 쫓겨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텅 ! 텅 ! 아 ! 아 !
그날 밤이었다. 어둠을 가르는 쇠망치 소리를 따라 플라타너스는 커다란 울음을 내뱉었다.
단단한 철판 두 개가 가슴과 목을 조여왔다. 잠시 뒤에는 뾰족한 쇠꼬챙이가 플라타너스의 살을 뚫고 들어왔다.
텅 ! 텅 ! 텅 ! 쇠망치 소리는 긴 시간 밤하늘을 흔들었고, 나무들은 아픔에 울어댔다.
-어머, 이게 요즘 유행하는 패션인가? 오, 그럴 듯한데 !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대사관 지붕에서 내려온 비둘기 몇이 수선을 피웠다.
-그렇게 쇠꼬챙이가 잔뜩 박힌 철판을 몸에 두르고 있으면 예뻐진단 말이죠?
뚱뚱한 회색 비둘기가 담 앞의 열두 나무를 차례차례 쳐다보았다. 플라타너스는 목이 메었다. 젊은 자신은 그깟 고통쯤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데 주위의 늙은 은행나무들은......불쑥 어젯밤 망치질을 하던 한 인부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나무들이 무슨 죄가 있어. 나무를 타고 울타리를 넘으려는 사람들이 문제지. 아니, 아니지. 시위대가 그런다고 나무에 쇠꼬챙이 족쇄를 채울 궁리를 한 쪽이 나쁘지. 정말 미안하다 나무야.´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아!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싶은데, 그런데 목소리가 터지지 않아. 박새야, 날 좀!´
플라타너스는 몸부림을 쳤다. 문득문득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적이면 부드러운 햇살이, 오천 년 바람이 말없이 플라타너스를 어루만져 주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갔다.
-너, 너 이게 뭐야. 누가, 누가 이랬어. 응?
박새였다. 아기 박새들을 데리고 오랜만에 플라타너스를 찾아온 친구 박새.
-미안해. 네게 괜찮은 집이 되려고 했는데 그만.
플라타너스는 아픔을 견디며 박새를 보았다. 너무 반가웠다.
-오히려 내가 미안해. 너는 큰 고통으로 아파하는데, 난 내 집안 일에만 신경 쓰고.
박새는 예전처럼 나뭇가지에 앉지 못했다. 잠시 날개만 파닥이다가 눈물을 톡 떨구더니 플라타너스를 짓누르는 족쇄에 내려앉았다. 아기 박새들도 똑같이 했다.
콕 ! 콕 ! 콕 ! 박새네 식구는 약한 부리로 단단한 철판을 쪼기 시작했다. 햇살과 바람이 한참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는 초여름날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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