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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후는 집앞 담장 곁에 멈추어 섰다.
어제까지 말짱하던 담장이었다. 그 담장에 고양이 그림을 그려져 있다. 하늘을 향해 날고 있는 듯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란 건 고양이의 빛깔이 은빛이라는 거다.
그 그림을 보자, 아직도 풀리지 않고 기억 밖으로 사라지고만 일 하나가 떠올랐다.
작년 가을 이후로 나타나지 않는 고양이다. 은고양이. 종후는 그렇게 큰 고양이를 여태껏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종후가 여태까지 본 고양이들과는 전혀 다른 전설 속에나 나올 은빛 여우같았다. 아니다. 어쩌면 그놈은 은빛 박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놈은 분명히 고양이었다.
종후가 맨 처음 그놈을 본 게 작년 이른 여름이었다.
줄장미 꽃이 피기 시작하던 그 쯤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노랑머리 아저씨네 집을 막 돌아서면 아저씨네 화장실이 있다. 아저씨네 화장실은 보통집 높이만큼 높았다. 길쭉하니. 그리고 그 위는 지붕이 없이 펀펀했다. 그러니까 지붕이 없는 화장실이었다. 그 화장실 위는 작은 줄장미가 벝어 올라와 있었다. 화장실과 줄장미. 만약 줄장미잎이 다 떨어진 겨울이면 중후는 코를 막고 그곳을 지났다.
바로 거기에서였다. 그놈을 본 것은.
길을 걷는데 화장실 줄장미 푸른 그늘에서 뭔가 야릇한 힘이 뻗쳐 왔다. 알 수 없는 힘이 중후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중후는 오싹하는 힘에 눌려 멈추어 섰다. 은빛 광채가 줄장미 그늘에서 휙 날아왔다. 처음엔 흰털개거니 했다. 그러나 그럴리 없다. 흰털개가 어른 키의 두 배가 되는 화장실 꼭대기에 올라갈 리가 없다. 다시 꼬나봤다. 줄장미 그늘에서 뿜어나오는 빛은 그냥 흰빛이 아니었다. 싸늘한 서리빛 같기도 하고, 거울 속에서 반사되는 강렬한 햇빛 같기도 했다. 그 빛은 꼼짝도 않은 채로 뭔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길은 화장실 뒤쪽, 그러니까 한 10미터 쯤 거리에 있는 측백나무 아래에 가 있었다. 풀은 없고 마른 흙 위였다. 자세히 봤다. 거기 예닐곱 마리의 참새가 모이를 줍고 있다. 그들은 지금 누군가가 자기들을 꼬누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네들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재재재 그런 울음을 울며 그들 나름대로 흙 속의 또 무언가를 쪼으고 있었다.
은고양이는 가엾게도 그 참새들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느라 은고양이는 중후가 자기 곁으로 오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중후와 은고양이와 참새는 서로 그만한 거리를 두고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후는 은고양이를, 은고양이는 참새를 참새는 모이들을. 중후는 은고양이가 그러
듯 숨을 멈추었다. 은고양도 숨을 멈추고 있었다. 중후는 발 앞으로 돌멩이를 집기 위해 은고양이를 노려보며 가만히 앉았다.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휙-˝
은고양이가 날았다. 그놈은 줄장미 잎 하나 건들지 않고 그 높은 화장실 꼭대기 줄장미 숲에서 10여미터를 날았다. 그러더니 참새를 앞발로 낚아채고는 방앗간 뒤로 달아났다. 순식간이었다. 중후는 머리칼이 서는 걸 느꼈다.
´저건 고양이가 아니야.´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른 키보다 더 높은 화장실 꼭대기에서 뛰어내린 10미터. 직선으로 날아내린 것이 아니라 약간의 포물선을 그리며 쏟아지는 빛 속을 뚫고 나는 화살 같았다. 튕겨져 오르는가 하는 순간 그놈은 벌써 10미터를 날아 측백나무 밑에 가 떨어졌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그 날렵한 몸. 온 몸을 최대한 길게 늘이면서도 유연하게 날아가던 모습. 그건 화장실 위에 앉아 있던 모습과는 달랐다. 그건 중후가 생각하던 고양이가 아니라 박쥐에 가까웠다. 그러나 박쥐라고 하기엔 분명 그놈에겐 날개가 없었다.
그놈의 몸엔 줄무늬가 있었다. 갈색의. 그 줄무늬는 흰빛에 감추어져 언뜻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흰바탕에 연한 갈색 줄무늬는 요란한 햇빛을 받아 오히려 은빛에 가까웠다. 온몸을 길게 늘인 그놈의 크기는 물개만 했다. 그리고 햇빛보다 더 빛나는 흰털빛은 그림자도 만들지 않고 날
았다. 마치 눈부신 유령처럼.
한참이나 서 있던 중후는 살금살금 은고양이가 날아내린 측백나무 밑으로 갔다. 고양이의 발자국이 얼핏 보이고는 더 이상의 흔적도 없다.
다시 고양이가 사라진 방앗간 뒤로 뛰어갔다. 없다. 저쪽으로 난 골목길이 펀히 보일 뿐.
˝아빠!˝
집에 돌아온 중후는 마루에 앉아 있는 아빠를 불렀다.
˝왜? 왜 놀란 얼굴이니?˝
˝저 말이예요. 굉장한 놈을 봤어요.˝
중후는 책가방을 내렸다.
˝괴장한 놈이라니?˝
˝고양이요.˝
˝고양이가 뭐 대단한 거라구.˝
˝그럼, 아빠도 그 고양이 봤어요. 은빛나는.˝
˝은빛나는 고양이도 있냐?˝
˝못 봤군요. 물개만 해요. 물속에서 막 물밖으로 올라오는 물개의 은빛나는 모습 같았어요. 근데 그놈이 10미터를 날아가 참새를 잡아채는 걸 봤어요.˝
중후는 그 일을 떠올렸다.
˝과장도 심하시지. 제아무리 날렵하대도 고양이가 10미터씩이나.˝
아빠는 장갑을 끼고는 자전거에 올랐다.
˝허튼 생각 말고 숙제나 하렴. 아빤 오이밭에 갈란다.˝
아빠는 그러고는 자전거를 타고는 훌쩍 떠났다. 가방을 벗어놓은 중후는 견딜 수 없었다. 다시 방앗간을 돌아 은고양이가 앉아 있던 노랑머리 아저씨네 화장실 곁으로 갔다.
˝고양이는 앉았던 자리에 또 온다더라.˝
언젠가 엄마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이쯤에서 멈칫 섰다. 줄장미 덤불 속을 봤다. 은고양이가 앉았던 자리에 푸른 그림자가 흐적하니 고여있다. 가까이 다가갔다. 갑자기 줄장이 덩쿨 안에서 은고양이가 날아나올 것 같다. 그러나 없다. 발돋움을 하였다. 보이지 않는다. 노랑머리 아저씨네를 돌아나오는데 아저씨네 꽁달이가 불렀다.
˝그, 그 꼬옷.˝
나이가 6살인데도 걸음이 서툴은 꽁달이가 내 손에 쥐여진 장미꽃을 가리켰다.
˝그래. 가지렴. 느네꽃이니까.˝
중후는 몽오리 맻힌 장미를 꽁달이 손에 쥐어주고 돌아섰다.
˝잘......가.˝
말더듬이 꽁달이의 목소리를 남겨 두고.
그날은 책상 맡에 앉아 보지 못했다. 오후내내 마을을 돌았다. 방앗간 벽돌 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멀찍이 서서 지붕위를 바라보기도 했다. 감나무 가지며 전신주, 텔레비전 안테나와 붉은 벽돌집 이층 옥상 위에 세워놓은 빨래대도 올려다 봤다.
˝야오옹, 야오옹.˝
중후는 은고양이를 불렀다. 그러나 그 소리 뒤엔 나타나기만 하면 냅다 뛰리라는 생각이 숨어있었다. 그때였다.
˝야우웅 야우우우!˝
늙은 고양이 목소리다. 돌아다 봤다. 대장장이 할아버지다. 앞뜰 도랑가 밤나무에 늙은 멧돼지 염소를 묶어 놓고 오는 걸 거다. 이맘 때면 늘 그러시니까.
˝할아버지!˝
중후는 할아버지, 하고 불러놓고 보았다.
˝왜 그런? 고양이가 되고 싶냐? 염소가 되고 싶냐?˝
˝그것 말고 말이에요. 우리 마을에 사는 은고양이 보신 적 있지요?˝
다짜고짜 그렇게 물었다.
˝검정 고양이는 봐도 그딴 고양인 본 적 없구나. 이거 어쩌누. 할애비한테 힘들게 묻는데 대답도 못해주고. 그런 고양인 거 뭐냐 서울에 있다더라. 무슨 대공원? 아. 아이들 대공원에.˝
˝어린이 대공원요.˝
˝그래 맞다. 거기나 가봐라. 여기서 애쓰지 말고.˝
˝할아버지. 살아오시면서 그런 고양이 혹 보시지는 못했나요?˝
˝아, 봤지. 내가 옛날, 그러니까 육이오 전쟁이 나기 전서부터 대장간을 했으니까.˝
˝그럼, 그 때에 보셨나요?˝
˝아니지. 그 무렵에 대장간을 할 때, 우리 할아버니도 대장간 일을 하셨는데, 우리 할아버니 말씀에 의하면.......˝
˝직접 보시지는 못하셨군요?˝
˝예끼 인석아. 아 다들어 보고 물어.˝
할아버지는 숨을 몰아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예.˝
˝으음. 예, 그래야지. 그때 말이다. 우리 할아버니께서 말씀하셨는데, 그 분의 2대조 할아버니. 그러니까 이 할애비의 4대조 할아버니 되시는 분이 말이다.˝
˝그 할아버지께서 보셨대요? 은고양이를?˝
˝하, 그녀석 참. 기다릴 줄 모르는 구만.˝
˝예, 알았어요.˝
˝그렇지. 예, 해야지. 그 분이 아니고, 그 분이 말씀하시길 그분의 할아버니, 그러니까 이 할애비의 6대조 되시는 할아버니.˝
중후는 다시 묻지 않았다. 그분이 보셨다구요. 그렇게.
˝에, 그 할아버니가 말이다. 보셨다는데. 송아지만한 고양이를 봤다지 아마.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놈은 고양이가 아니고 호랑이였다더라. 그래서 밤이면 그 놈이 무서워 불을 켜들고 몽둥이를 들고, 총을 들고 다녔다더라.˝
˝총이 그때 있었어요? 거짓말 마세요.˝
돌아서는 중후를 대장장이 할아버지가 후닥 잡았다.
˝말은 끝까지 다 듣는 법이야. 근데 그놈의 조상이 나이가 얼마나 된다는지 아누?˝
중후는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 대해 실은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고양이라는 것만 알았지. 알지 못했다.
˝이 할애비가 듣기로는 백만 년, 그래, 백만년은 됐다 하더라.˝
˝에잇, 거짓말!˝
그러고는 대장장이 할아버지 손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양이의 조상이 백만 년이나 됐다는 말도 그렇지만 어떻든 은고양이란 놈이 자꾸 신비하게 느껴졌다. 백과사전을 뒤져 봤다. 거기엔 고양이의 조상이 백만 년 이상이나 된 아프리카 산 야생 얼룩 고양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러고 보면 할아버지의 말이 순 거짓말을 아니었다. 더구나 놀란
것은 고양이는 호랑이와 사자의 친천뻘 된다고도 나와 있다. 검은고양이는 마술과 마력의 힘도 가지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은고양이에 대한 글을 없다.
그런 후에도 그 은고양이를 보기 위해 나는 거의 매일 담장 위와 헛간, 그리고 나무 뒤 그늘을 살폈다. 물론 노랑머리 아저씨의 화장실 위도. 그러나 그런 은고양이에 대한 호기심도 시간이 흐를수록 시들해져 버리고 말았다. 지친 중후가 거의 그 은고양이에 대한 관심을 포기해 가고 있을 때였다.
방앗간을 지나면 대숲집이 있다. 대숲집은 아주 오래된 기와집이다. 지금부터 약 300년 전에 지어진 중부지방의 대표적인 지주의 집이라고들 했다. 그 집엔 전봇대보다 더 높은 굴뚝이 있다. 흙으로 지은 굴뚝인데 사이사이로 깨어진 기왓장을 나란히 끼어넣고 만든 것인데 그 키가 어른들은 20자 높이라고들 했다. 20자라면 1자가 33센티미터니까 거의 7미터나 되는 높이다.
근데 그 굴뚝은 그 대숲집 뒤란에 있어 그 집을 들어가야 밑둥부터 볼 수 있다. 근데 그날은 아주 우연이었다.
그 굴뚝 곁에 있는 흙담장이 벌써 며칠째 내린 장미비로 1미터쯤 푹 주저앉아 있었다. 근데 거기에다 대숲집 아저씨가 철조망을 구불구불 구부려서 틀어막아 놓았다. 중후는 그 대숲집 뒤란을 들여다 보았다. 그 집 뒤란엔 신살구가 익고 있다는 게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철조망을 비집고 그 안 살구나무에서 눈을 돌리다가 중후는 그 자리에 딱 멈추었다. 뒤란 장독 뒤에 선 굴뚝 허리에 그 은고양이가 붙어 있었다. 그 놈은 그 빛나는 은빛 몸으로 굴뚝을 타고 있었다. 수직으로 서 있는 굴뚝의 흙과 꼭꼭 박은 기왓장을 네 발로 잡고 오르고 있었다. 처음 그 놈은 대숲집 아기의 흰 겨울 외투를 널어놓은 줄로 착각했었다. 그러나 그건 정말이지 착각이었다. 그놈은 살금살금 네 다리를 적당한 거리로 벌리고 숨긴 발톱으로 살금살금 기어오르고 있었다. 위로 오를수록 은고양이는 마치 국기가 게양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중후는 고개를 갸웃했
다. 그놈이 왜 굴뚝을 타는 걸까. 이상했다. 하늘을 날아오르려는 게 아닐까. 그건 전혀 엉뚱한 생각이지만 그걸 어떻게 아나. 고양이는 굴뚝의 위쪽까지 올라갔다. 굴뚝의 꼭대기에는 기왓장을 덮여 있다. 그 기왓장을 부여잡던 고양이가 떨어졌다.
´어이쿠!´
중후는 뒤로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은고양이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면서 몸의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는 마치 깃털이 날아내리듯 사뿐히 뒤란에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다시 굴뚝 위를 쳐다 봤다.
중후도 굴뚝 위를 봤다. 아. 거기에 뭔가가 앉아 있었다. 엉덩이만 이쪽으로 보였다. 그러나 다시 보고는 중후는 그게 솔개라는 걸 알았다. 종지네 암탉을 채어가던 솔개.
중후는 고개를 다시 갸웃했다.
´설마.´
그러나 은고양이는 다시 굴뚝을 탔다. 이번은 아까보다 더 잽싸게 탔다. 나무타는 원숭이처럼 굴뚝을 타오르던 은고양이가 맨 위에 덮은 기왓장을 소리없이 잡았다. 중후는 침을 꼴깍 삼켰다. 굴뚝 위에 앉은 솔개는 아직 자신의 발밑에 위험한 적이 올라오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듯 했다.
기왓장을 잡은 그 놈이 살그머니 고개를 치켜 올렸다. 솔개의 뒷꽁무니를 꼬나보는 사이로 그놈은 뒷발을 당겨 흙담장에 콱 박았다. 그러더니 와락 날아올랐다. 그건 정말이었다. 날아올랐다. 날아올라선 솔개의 등으로 날아내리며 솔개의 목덜미를 물었다. 솔개가 휘청하며 날개를 저었다. 솔개가 굴뚝 위로 날았다. 목덜미를 문 고양이를 등에 엎은 채로.
´와아아아...´
놀라운 일이었다.
은고양이 그놈은 솔개의 등 위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은 채 솔개의 등을 타고 있었다. 솔개가 날아올라 비틀거리더니 이내 대숲집 지붕 기왓골로 툭 떨어졌다. 그리고는 버르적거렸다. 그 사이 모든 동작은 바뀌고 말았다. 이번에는 은고양이가 버르적거리는 솔개를 물고는 날았다. 뒤란으로.
뒤란에 가볍게 날아내린 그 놈은 서너 걸음 달려서는 솔개를 문 채 대숲 뒤에 있는 담장을 타 넘었다.
중후는 대숲 뒤에 있는 담장 쪽으로 뛰었다. 대숲이 수르르 흔들리는 소리만 났지 그 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정말 놀랄 일이 한 순간에 벌어졌다. 그리고는 모든 일은 끝이 났다. 사방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다. 사람도, 강아지도 없다. 새소리도 없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다시 돌아왔다.
방앗간을 돌아나오는데 이번에도 그 대장장이 할아버지를 만났다. 또 멧돼지 염소를 매어 놓고 오시는 모양이었다.
˝할아버지!˝
˝뭐냐? 이번엔 솔개 배꼽이라도 봤냐!˝
그러셨다.
˝맞아요.˝
˝인석이 요새 장마비에 정신이 얼떨떨해진 모양이구나! 느네 아범을 보면 보약 좀 먹이라고 해야겠구나. 파란 나이에 벌써 그 모양이면 창창한 세월을 어떡게 보내려구, 쯧쯧쯧......˝
할아버지는 혀를 찼다.
˝보약은 나중에 먹을 거예요, 정 그러시다면. 근데 말이예요. 진짜, 진짜로 그 놈이 대숲집 굴뚝을 타고 올라 그 꼭대기에 앉은 솔개를 채어갔어요.˝
˝그 놈이라니!˝
˝그 놈 말이에요. 그 놈!˝
˝할애비 앞에서 말버릇이 고약하구만.˝
˝아니.할아버지. 저번에 말씀드렸던 은고양이 말이예요.˝
˝너 심해도 아주 많이 심하구나! 정말 그때 그일을 여태 믿고 있는 거누?˝
˝정말이예요. 그 증거가 있어요. 증거가. 솔개 깃털이.˝
중후는 솔개의 깃털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어디에 있단 말이냐? 네 깜깜한 꿈속에?˝
˝아니라구요.˝
중후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는 당당하게 대숲집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다. 하지만 부엌으로 해서 뒤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아까 솔개의 목덜미를 물고 날아내린 그 자리로 갔다.
˝아, 뭘 보자는 거냐. 이 할애비 머리도 너처럼 어떻게 할 작정이냐?˝
할아버지는 계속 엉두덜 거렸다.
˝이것 보세요. 이 깃털.˝
거기엔 두 개의 갈색 깃털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뒷담장 아래에도 작은 희고 갈색빛 나는 털이 떨어져 있었다.
˝이거예요. 이게 은고양이가 잡은 솔개의 깃털이란 말이예요.˝
할아버지는 중후가 내민 깃털을 손바닥에 얹었다.
˝틀림없는 솔개 깃털이다.˝
˝그것 보세요. 맞다니까요. 은고양이가 저 굴뚝 기왓장을 타고 날아서 솔개를 잡았다니까요. 정말이예요. 이젠 증거도 있으니 꼼짝 못하시지요?˝
할아버지는 손 안에 든 솔개의 깃털을 후우 불어 날리고는 다시 혀를 찼다.
˝네가 은고양인가 금고양인가 그 헛된 것에 단단히 홀렸구나. 내 6.25 때뿌터 대장간을 하며 괭이나 삽, 곡괭이나 칼을 만들어 팔아 왔지만 너처럼 얼토당토 않는 사람은 구경 못했다. 가거라.
내가 네 아범한테 보약 지어먹이라고 단단히 이를테니까.˝
그러고는 돌아섰다.
˝정말이라니까요. 할아버지.˝
중후가 애걸하듯 말했다. 그 말에 돌아선 할아버지가 혼잣소리를 했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내가 믿겠냐? 네 말을.˝
˝그건 왜지요? 왜 제 말을 안 믿지요?˝
중후는 큰소리로 물었다.
˝야. 인석아. 고양이가 네 말대로 솔개를 잡았다고 하자. 그러나 네 말을 더욱 믿지 못하는 건 이것 때문이다. 고양이란 눔은 말이다. 호랑이와 같아 대낮에는 사냥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건 아주 오래전부터.˝
˝6,25때부터요?˝
˝아, 그 이전부터지.˝
˝그렇지만 할아버지, 내 눈으로 똑똑히 본 걸요. 대낮에 솔개를 잡는 걸.˝
˝아, 너 좋을 대로 떠들어 보렴. 이 할애비가 믿을까.˝
할아버지와의 말다툼은 그걸로 끝났다. 끝날 수밖에. 더 어찌할 건가. 할아버지와 말다툼을 하는 것보다 학교에서 은고양이에 대한 글을 찾는 수 밖에 없었다. 도서실을 뒤지고, 생물도감을 뒤졌지만 은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하긴 은고양이가 진짜 고양이 이름인지 중후는 몰랐다.
그래서 흰고양이에 대해서도 찾았지만 중후가 본 그런 크기와 연한갈색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는 없었다. 겓다가 벽을 기어오른다거나 솔개를 잡는다거나 그런 어마어마한 이야기도 물론 없었다.
읍내에 있다는 도서관도 마찬가지였다.
중후는 급기야 밤마다 길거리로 나갔다. 그리고는 노랑머리 아저씨네 화장실 쪽으로 가끔 갔다.
그 사이 줄장미는 피었다가 다 졌다. 늦은 꽃이 쬐그맣게 한 두 송이 피었을 뿐이다. 은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근데 가끔씩은 길가의 보드라운 흙 위에 고양이의 발자국이 찍혀 있는 걸 보았다. 그게 은고양이의 발자국이라면, 아니 은고양이가 아니라하더라도 적어도 고양이 울음을 들었
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여태껏 중후는 물론 엄마에게 물었지만 아직 이 마을에서 고양이 울음을 들었다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에게 물었지만 그들도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대체 중후가 은고양이를 본 건 모두 꿈이었을까. 아니면 대장장이 할아버지 말처럼 중후의 머리가 어떻게 된 걸까. 답답한 건 누구도 그 놈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 놈의 그 놀라운 무용담조차
믿지 않는다는 거다.
중후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놈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밝혀주고 싶었다.
˝사람들이란 이상해. 왜 내 말을 믿지 않을까.˝
중후는 엄마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리고 대장장이 할아버지도 또 아이들도 믿어주지 않는 게 답답했다. 그리고 밉살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꼭 그들이 미운 것만은 아니다.
마을에서 다른 고양이를 본 적이 없다. 은고양이가 정말 있다면 그놈의 울음소리라도 한번은 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고양이 울음을 중후 자신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러고 보면 은고양이는 울지 않았다. 그놈은 자신을 감추며 다니는 게 틀림없다. 그 놈은 바람처럼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지나다닌다. 그것만으로도 쥐들에게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한 놈이었다.
그 놈은 울음으로가 아니라 그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떤 힘으로 자신의 영토를 지배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은고양이를 본 적이 없다는 것처럼 쥐를 본 사람도 이 마을엔 없었다.
˝대장장이 할아버지가 그러던데 말야.˝
아빠는 오이밭의 오이를 거두고는 그 자리에 배추 모종을 내기 시작했다. 배추밭으로 나가시던 아빠가 나를 보고 멈추어 섰다.
˝그 할아버지. 웃기는 분이예요.˝
˝웃기시다니. 그분이 그러는데 너 보약 좀먹이라고 하시더라. 어디 네 몸이 좀 안 좋니?˝
중후는 그간의 이야기를 아빠에게 해 드렸다. 중후의 이야기를 다 들은 아빠가 커커커 웃더니 수레 채를 잡았다.
˝그런 황당한 일에 신경쓰지 말아라.˝
아빠도 그러고는 나가셨다.
중후는 더 안달이 났다.
´누구에겐가 이 일을 보여 드리고 말테야.´
중후는 아빠가 쓰시던 낡은 사진기를 몰래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은고양이가 나타나면 멋지게 찍어 줄 작정이었다. 그 사진을 본다면 아빠도, 대장장이 할아버지도 놀라 자빠지실 거다. 뿐아니라 중후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던 말도 머쓱해질 것이다.
중후는 마음 먹은 대로 사진기를 들고 마을을 쏘다녔다. 하지만 모든 게 그렇듯 또 한 20일쯤 지나면 생각이란게 시들해지기 마련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버지 배추밭 일을 돕든가 아니면 방구석에 틀어박혀 잡지를 들추었다.
하지만 가끔은 은고양이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 놈은 언제나 중후가 잊을 때쯤 되면 다시 나타났다. 노랑머리 아저씨네 화장실 위의 줄장미가 화장실 위로 뻗쳐 올라가고, 방앗간 일이 바빠질 때였다. 그날은 정말 예기치 않았다.
아무 예고도 없이 은고양이가 나타난 거다.
대문을 빠져나가 막 노랑머리 아저씨네 쪽으로 돌 때였다.
뭔가 다급한 일이 등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걸 느꼈다. 돌아다 봤다.
˝저 놈이!˝
중후는 선 채로 외쳤다.
대장장이 할아버지네 멧돼지 염소가 노랑머리네 말더듬이 꽁달이를 꽉 막아섰다. 고삐가 풀린 모양이었다. 그 놈은 그 굵도 험한 뿔로 꽁달이의 뱃구레를 들이받고 있었다. 걸음도 겨우 걷는 꽁달이가 울지도 못하고 넘어질 듯 비틀거렸다.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멧돼지 염소는 어른들도 무서워하는 염소다. 뭔가 다가오기만 하면 수레든 자동차든 어른이든 닥치는 대로 뿔로 들이받는 놈이다. 그 놈을 갑자기 만나면 우리들은 가까운 나무에 뛰어올라 위기를 모면했다.
˝비키지 않을래!˝
중후는 돌멩이를 찾아 들었다. 그러나 꽁달이 때문에 던질 수가 없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 꽁달이가 뒤로 넘어지며 멧돼지 염소가 꽁달이를 타고넘을 때였다. 그 때 어디선가 후닥 나타난 놈이 있었다. 은고양이었다. 은고양이는 잽싸게 멧돼지 염소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그 바람에 멧돼지 염소가 홱 은고양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시 은고양이가 반대쪽 옆구리로 덤벼들었다.
뒤로 넘어진 꽁달이를 두고 은고양이와 멧돼지 염소가 마주 섰다. 은고양이의 눈에서 뜨거운 불빛 한자락이 염소쪽으로 날아갔다. 멧돼지 염소가 끄덕도 않았다. 은고양이가 갑자기 비실거렸다.
˝저걸 어쩌나.˝
그러는 사이로 멧돼지 염소가 은고양이에게 화닥 덤벼들었다. 은고양이가 가볍게 비켰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다리를 절름거리며 바보처럼 느럭느럭 옆으로 비칠비칠 돌았다. 멧돼지 염소의 뿔에 안 보이는 틈에 받혔는가 했다. 그런 고양이를 본 염소가 이상하다는 듯 두 뿔을 앞세우고는 마치 너는 이제 내 밥이야 그러듯이 서너 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다가갔다. 그럴수록 더 심한 모습으로 은고양이는 도랑 쪽으로 쫓기듯 뒷걸음질을 쳤다.
이제 멧돼지 염소는 긴장을 늦추고 마치 재미있다는 듯 한발 한발 허공에 뿔질만 해대며 다가갔다. 그러나 그건 은고양이의 속임수였다.
도랑가 밤나무쯤 밀리던 은고양이가 경계없이 다가오는 멧돼지 염소 머리 위로 훌쩍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목덜미를 물었다. 놀란 멧돼지 염소가 고개를 좌우롤 내리 흔들어댔다. 멧돼지 염소의 입에선 신음소리가 났고, 흰 거품이 내리흘렀다.
중후는 이때다 싶게 뛰어가 꽁달이를 안고는 돌아서서 뛰었다. 뛰면서 소리쳤다.
˝은고양이가 나타났어요! 은고양이.˝
꽁달이네 안방문이 화들짝 열리며 노랑머리 아저씨가 나타났다.
˝뭐가 은구렁이가!˝
˝저기요! 저기!˝
중후는 도랑가 밤나무 쪽을 가리켰다.
˝어디에?˝
그러나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다. 아직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꽁달이를 안고는 노랑머리 아저씨가 뛰었다. 중후도 뛰었다. 그러나 도랑엔 멧돼지 염소만 들어누워 신음을 할 뿐 은고양이는 없었다. 이리저리 살폈다. 없다. 먼 들판으로 눈길을 돌렸다.
˝저기요!˝
목이 긴 수수밭 사이로 흰빛이 휙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러나 그 빛은 이내 번개가 그렇듯 사라지고 말았다.
중후는 그날, 상처난 멧돼지 염소를 보며 대장장이 할아버지에게 은고양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이놈이 밤나무를 기어오르다 떨어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왜 상처가 났어요. 이 피 좀 봐요!˝
중후는 목덜미에 아직도 남아있는 피를 가리쳤다.
˝그 밑 마른 뿌리에 찔렸더라. 거기에 피가 묻을 걸 내 눈으로 똑똑히 이 녀석아. 봤단 말이다.˝
할아버지는 중후의 말읆 믿지 않았다.
˝참, 맞아요. 나랑 똑똑히 본 사람이 있어요. 꽁달이에요. 꽁달이.˝
그러나 말을 못하는 꽁달이도 증인이 돼주지 못했다.
일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어른들이란 그냥 나무뿌리에 찔렸다고 믿으면 믿고 마니까. 그리고 은고양이가 그리 중요한 것도 되지 못하니까. 하지만 중후에겐 그렇지 않았다. 어른 두 배 키의 화장실 지붕에서 10미터를 날던 일이며 굴뚝 위에 앉은 솔개를 잡던 일. 그리고 멧돼지 염소와
싸우던 은고양이의 화려한 싸움 솜씨며, 꽁달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불쑥 나타난 은고양이가 예사의 일이 아니었다. 그 놈은 매우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잇었으며 또한 뭔가를 지키는 의적같은 놈이었다.
그리고는 은고양이가 나타난 걸 중후는 보지 못했다. 1년이 가도 다시 새 봄이 와도. 그런데 분명한 건 그 후 이 마을에 쥐가 나타났다는 거다.
˝보세요. 쥐가 나타났잖아요.˝
그렇게 말하면 어른들은 그랬다.
˝인석아. 쥐란 의레 사람이 사는 곳이 있는 놈인 걸 같고.˝
˝그렇잖다고요. 은고양이가 떠낫기 떄문이에요.˝
그랬지만 누구도 은고양이를 믿지 않았다.
오늘 담벼락에 그려진 고양이는 분명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은빛털을 가진 녀석이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중후말고도 이 고양이를 본 사람이 이 마을에 있다는 게 틀림없다.
˝그래. 내가 본 건 허깨비가 아니었어.˝
중후는 담벼락의 고양이를 다시 떠올렸다. 그러나 이제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을, 그가 어른이든 아이이든 찾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중후의 마음 속에 그 커다란 은고양이를 간직하고 있으면 될 것 같았다.
옛날의 그 늠름하고 날렵했던 은고양이를 만나 보기 위해 먼 들판을 봤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다만 아지랑이만이 널름널름 솟아 오른다. *
어제까지 말짱하던 담장이었다. 그 담장에 고양이 그림을 그려져 있다. 하늘을 향해 날고 있는 듯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란 건 고양이의 빛깔이 은빛이라는 거다.
그 그림을 보자, 아직도 풀리지 않고 기억 밖으로 사라지고만 일 하나가 떠올랐다.
작년 가을 이후로 나타나지 않는 고양이다. 은고양이. 종후는 그렇게 큰 고양이를 여태껏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종후가 여태까지 본 고양이들과는 전혀 다른 전설 속에나 나올 은빛 여우같았다. 아니다. 어쩌면 그놈은 은빛 박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놈은 분명히 고양이었다.
종후가 맨 처음 그놈을 본 게 작년 이른 여름이었다.
줄장미 꽃이 피기 시작하던 그 쯤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노랑머리 아저씨네 집을 막 돌아서면 아저씨네 화장실이 있다. 아저씨네 화장실은 보통집 높이만큼 높았다. 길쭉하니. 그리고 그 위는 지붕이 없이 펀펀했다. 그러니까 지붕이 없는 화장실이었다. 그 화장실 위는 작은 줄장미가 벝어 올라와 있었다. 화장실과 줄장미. 만약 줄장미잎이 다 떨어진 겨울이면 중후는 코를 막고 그곳을 지났다.
바로 거기에서였다. 그놈을 본 것은.
길을 걷는데 화장실 줄장미 푸른 그늘에서 뭔가 야릇한 힘이 뻗쳐 왔다. 알 수 없는 힘이 중후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중후는 오싹하는 힘에 눌려 멈추어 섰다. 은빛 광채가 줄장미 그늘에서 휙 날아왔다. 처음엔 흰털개거니 했다. 그러나 그럴리 없다. 흰털개가 어른 키의 두 배가 되는 화장실 꼭대기에 올라갈 리가 없다. 다시 꼬나봤다. 줄장미 그늘에서 뿜어나오는 빛은 그냥 흰빛이 아니었다. 싸늘한 서리빛 같기도 하고, 거울 속에서 반사되는 강렬한 햇빛 같기도 했다. 그 빛은 꼼짝도 않은 채로 뭔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길은 화장실 뒤쪽, 그러니까 한 10미터 쯤 거리에 있는 측백나무 아래에 가 있었다. 풀은 없고 마른 흙 위였다. 자세히 봤다. 거기 예닐곱 마리의 참새가 모이를 줍고 있다. 그들은 지금 누군가가 자기들을 꼬누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네들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재재재 그런 울음을 울며 그들 나름대로 흙 속의 또 무언가를 쪼으고 있었다.
은고양이는 가엾게도 그 참새들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느라 은고양이는 중후가 자기 곁으로 오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중후와 은고양이와 참새는 서로 그만한 거리를 두고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후는 은고양이를, 은고양이는 참새를 참새는 모이들을. 중후는 은고양이가 그러
듯 숨을 멈추었다. 은고양도 숨을 멈추고 있었다. 중후는 발 앞으로 돌멩이를 집기 위해 은고양이를 노려보며 가만히 앉았다.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휙-˝
은고양이가 날았다. 그놈은 줄장미 잎 하나 건들지 않고 그 높은 화장실 꼭대기 줄장미 숲에서 10여미터를 날았다. 그러더니 참새를 앞발로 낚아채고는 방앗간 뒤로 달아났다. 순식간이었다. 중후는 머리칼이 서는 걸 느꼈다.
´저건 고양이가 아니야.´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른 키보다 더 높은 화장실 꼭대기에서 뛰어내린 10미터. 직선으로 날아내린 것이 아니라 약간의 포물선을 그리며 쏟아지는 빛 속을 뚫고 나는 화살 같았다. 튕겨져 오르는가 하는 순간 그놈은 벌써 10미터를 날아 측백나무 밑에 가 떨어졌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그 날렵한 몸. 온 몸을 최대한 길게 늘이면서도 유연하게 날아가던 모습. 그건 화장실 위에 앉아 있던 모습과는 달랐다. 그건 중후가 생각하던 고양이가 아니라 박쥐에 가까웠다. 그러나 박쥐라고 하기엔 분명 그놈에겐 날개가 없었다.
그놈의 몸엔 줄무늬가 있었다. 갈색의. 그 줄무늬는 흰빛에 감추어져 언뜻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흰바탕에 연한 갈색 줄무늬는 요란한 햇빛을 받아 오히려 은빛에 가까웠다. 온몸을 길게 늘인 그놈의 크기는 물개만 했다. 그리고 햇빛보다 더 빛나는 흰털빛은 그림자도 만들지 않고 날
았다. 마치 눈부신 유령처럼.
한참이나 서 있던 중후는 살금살금 은고양이가 날아내린 측백나무 밑으로 갔다. 고양이의 발자국이 얼핏 보이고는 더 이상의 흔적도 없다.
다시 고양이가 사라진 방앗간 뒤로 뛰어갔다. 없다. 저쪽으로 난 골목길이 펀히 보일 뿐.
˝아빠!˝
집에 돌아온 중후는 마루에 앉아 있는 아빠를 불렀다.
˝왜? 왜 놀란 얼굴이니?˝
˝저 말이예요. 굉장한 놈을 봤어요.˝
중후는 책가방을 내렸다.
˝괴장한 놈이라니?˝
˝고양이요.˝
˝고양이가 뭐 대단한 거라구.˝
˝그럼, 아빠도 그 고양이 봤어요. 은빛나는.˝
˝은빛나는 고양이도 있냐?˝
˝못 봤군요. 물개만 해요. 물속에서 막 물밖으로 올라오는 물개의 은빛나는 모습 같았어요. 근데 그놈이 10미터를 날아가 참새를 잡아채는 걸 봤어요.˝
중후는 그 일을 떠올렸다.
˝과장도 심하시지. 제아무리 날렵하대도 고양이가 10미터씩이나.˝
아빠는 장갑을 끼고는 자전거에 올랐다.
˝허튼 생각 말고 숙제나 하렴. 아빤 오이밭에 갈란다.˝
아빠는 그러고는 자전거를 타고는 훌쩍 떠났다. 가방을 벗어놓은 중후는 견딜 수 없었다. 다시 방앗간을 돌아 은고양이가 앉아 있던 노랑머리 아저씨네 화장실 곁으로 갔다.
˝고양이는 앉았던 자리에 또 온다더라.˝
언젠가 엄마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이쯤에서 멈칫 섰다. 줄장미 덤불 속을 봤다. 은고양이가 앉았던 자리에 푸른 그림자가 흐적하니 고여있다. 가까이 다가갔다. 갑자기 줄장이 덩쿨 안에서 은고양이가 날아나올 것 같다. 그러나 없다. 발돋움을 하였다. 보이지 않는다. 노랑머리 아저씨네를 돌아나오는데 아저씨네 꽁달이가 불렀다.
˝그, 그 꼬옷.˝
나이가 6살인데도 걸음이 서툴은 꽁달이가 내 손에 쥐여진 장미꽃을 가리켰다.
˝그래. 가지렴. 느네꽃이니까.˝
중후는 몽오리 맻힌 장미를 꽁달이 손에 쥐어주고 돌아섰다.
˝잘......가.˝
말더듬이 꽁달이의 목소리를 남겨 두고.
그날은 책상 맡에 앉아 보지 못했다. 오후내내 마을을 돌았다. 방앗간 벽돌 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멀찍이 서서 지붕위를 바라보기도 했다. 감나무 가지며 전신주, 텔레비전 안테나와 붉은 벽돌집 이층 옥상 위에 세워놓은 빨래대도 올려다 봤다.
˝야오옹, 야오옹.˝
중후는 은고양이를 불렀다. 그러나 그 소리 뒤엔 나타나기만 하면 냅다 뛰리라는 생각이 숨어있었다. 그때였다.
˝야우웅 야우우우!˝
늙은 고양이 목소리다. 돌아다 봤다. 대장장이 할아버지다. 앞뜰 도랑가 밤나무에 늙은 멧돼지 염소를 묶어 놓고 오는 걸 거다. 이맘 때면 늘 그러시니까.
˝할아버지!˝
중후는 할아버지, 하고 불러놓고 보았다.
˝왜 그런? 고양이가 되고 싶냐? 염소가 되고 싶냐?˝
˝그것 말고 말이에요. 우리 마을에 사는 은고양이 보신 적 있지요?˝
다짜고짜 그렇게 물었다.
˝검정 고양이는 봐도 그딴 고양인 본 적 없구나. 이거 어쩌누. 할애비한테 힘들게 묻는데 대답도 못해주고. 그런 고양인 거 뭐냐 서울에 있다더라. 무슨 대공원? 아. 아이들 대공원에.˝
˝어린이 대공원요.˝
˝그래 맞다. 거기나 가봐라. 여기서 애쓰지 말고.˝
˝할아버지. 살아오시면서 그런 고양이 혹 보시지는 못했나요?˝
˝아, 봤지. 내가 옛날, 그러니까 육이오 전쟁이 나기 전서부터 대장간을 했으니까.˝
˝그럼, 그 때에 보셨나요?˝
˝아니지. 그 무렵에 대장간을 할 때, 우리 할아버니도 대장간 일을 하셨는데, 우리 할아버니 말씀에 의하면.......˝
˝직접 보시지는 못하셨군요?˝
˝예끼 인석아. 아 다들어 보고 물어.˝
할아버지는 숨을 몰아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예.˝
˝으음. 예, 그래야지. 그때 말이다. 우리 할아버니께서 말씀하셨는데, 그 분의 2대조 할아버니. 그러니까 이 할애비의 4대조 할아버니 되시는 분이 말이다.˝
˝그 할아버지께서 보셨대요? 은고양이를?˝
˝하, 그녀석 참. 기다릴 줄 모르는 구만.˝
˝예, 알았어요.˝
˝그렇지. 예, 해야지. 그 분이 아니고, 그 분이 말씀하시길 그분의 할아버니, 그러니까 이 할애비의 6대조 되시는 할아버니.˝
중후는 다시 묻지 않았다. 그분이 보셨다구요. 그렇게.
˝에, 그 할아버니가 말이다. 보셨다는데. 송아지만한 고양이를 봤다지 아마.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놈은 고양이가 아니고 호랑이였다더라. 그래서 밤이면 그 놈이 무서워 불을 켜들고 몽둥이를 들고, 총을 들고 다녔다더라.˝
˝총이 그때 있었어요? 거짓말 마세요.˝
돌아서는 중후를 대장장이 할아버지가 후닥 잡았다.
˝말은 끝까지 다 듣는 법이야. 근데 그놈의 조상이 나이가 얼마나 된다는지 아누?˝
중후는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 대해 실은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고양이라는 것만 알았지. 알지 못했다.
˝이 할애비가 듣기로는 백만 년, 그래, 백만년은 됐다 하더라.˝
˝에잇, 거짓말!˝
그러고는 대장장이 할아버지 손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양이의 조상이 백만 년이나 됐다는 말도 그렇지만 어떻든 은고양이란 놈이 자꾸 신비하게 느껴졌다. 백과사전을 뒤져 봤다. 거기엔 고양이의 조상이 백만 년 이상이나 된 아프리카 산 야생 얼룩 고양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러고 보면 할아버지의 말이 순 거짓말을 아니었다. 더구나 놀란
것은 고양이는 호랑이와 사자의 친천뻘 된다고도 나와 있다. 검은고양이는 마술과 마력의 힘도 가지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은고양이에 대한 글을 없다.
그런 후에도 그 은고양이를 보기 위해 나는 거의 매일 담장 위와 헛간, 그리고 나무 뒤 그늘을 살폈다. 물론 노랑머리 아저씨의 화장실 위도. 그러나 그런 은고양이에 대한 호기심도 시간이 흐를수록 시들해져 버리고 말았다. 지친 중후가 거의 그 은고양이에 대한 관심을 포기해 가고 있을 때였다.
방앗간을 지나면 대숲집이 있다. 대숲집은 아주 오래된 기와집이다. 지금부터 약 300년 전에 지어진 중부지방의 대표적인 지주의 집이라고들 했다. 그 집엔 전봇대보다 더 높은 굴뚝이 있다. 흙으로 지은 굴뚝인데 사이사이로 깨어진 기왓장을 나란히 끼어넣고 만든 것인데 그 키가 어른들은 20자 높이라고들 했다. 20자라면 1자가 33센티미터니까 거의 7미터나 되는 높이다.
근데 그 굴뚝은 그 대숲집 뒤란에 있어 그 집을 들어가야 밑둥부터 볼 수 있다. 근데 그날은 아주 우연이었다.
그 굴뚝 곁에 있는 흙담장이 벌써 며칠째 내린 장미비로 1미터쯤 푹 주저앉아 있었다. 근데 거기에다 대숲집 아저씨가 철조망을 구불구불 구부려서 틀어막아 놓았다. 중후는 그 대숲집 뒤란을 들여다 보았다. 그 집 뒤란엔 신살구가 익고 있다는 게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철조망을 비집고 그 안 살구나무에서 눈을 돌리다가 중후는 그 자리에 딱 멈추었다. 뒤란 장독 뒤에 선 굴뚝 허리에 그 은고양이가 붙어 있었다. 그 놈은 그 빛나는 은빛 몸으로 굴뚝을 타고 있었다. 수직으로 서 있는 굴뚝의 흙과 꼭꼭 박은 기왓장을 네 발로 잡고 오르고 있었다. 처음 그 놈은 대숲집 아기의 흰 겨울 외투를 널어놓은 줄로 착각했었다. 그러나 그건 정말이지 착각이었다. 그놈은 살금살금 네 다리를 적당한 거리로 벌리고 숨긴 발톱으로 살금살금 기어오르고 있었다. 위로 오를수록 은고양이는 마치 국기가 게양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중후는 고개를 갸웃했
다. 그놈이 왜 굴뚝을 타는 걸까. 이상했다. 하늘을 날아오르려는 게 아닐까. 그건 전혀 엉뚱한 생각이지만 그걸 어떻게 아나. 고양이는 굴뚝의 위쪽까지 올라갔다. 굴뚝의 꼭대기에는 기왓장을 덮여 있다. 그 기왓장을 부여잡던 고양이가 떨어졌다.
´어이쿠!´
중후는 뒤로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은고양이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면서 몸의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는 마치 깃털이 날아내리듯 사뿐히 뒤란에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다시 굴뚝 위를 쳐다 봤다.
중후도 굴뚝 위를 봤다. 아. 거기에 뭔가가 앉아 있었다. 엉덩이만 이쪽으로 보였다. 그러나 다시 보고는 중후는 그게 솔개라는 걸 알았다. 종지네 암탉을 채어가던 솔개.
중후는 고개를 다시 갸웃했다.
´설마.´
그러나 은고양이는 다시 굴뚝을 탔다. 이번은 아까보다 더 잽싸게 탔다. 나무타는 원숭이처럼 굴뚝을 타오르던 은고양이가 맨 위에 덮은 기왓장을 소리없이 잡았다. 중후는 침을 꼴깍 삼켰다. 굴뚝 위에 앉은 솔개는 아직 자신의 발밑에 위험한 적이 올라오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듯 했다.
기왓장을 잡은 그 놈이 살그머니 고개를 치켜 올렸다. 솔개의 뒷꽁무니를 꼬나보는 사이로 그놈은 뒷발을 당겨 흙담장에 콱 박았다. 그러더니 와락 날아올랐다. 그건 정말이었다. 날아올랐다. 날아올라선 솔개의 등으로 날아내리며 솔개의 목덜미를 물었다. 솔개가 휘청하며 날개를 저었다. 솔개가 굴뚝 위로 날았다. 목덜미를 문 고양이를 등에 엎은 채로.
´와아아아...´
놀라운 일이었다.
은고양이 그놈은 솔개의 등 위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은 채 솔개의 등을 타고 있었다. 솔개가 날아올라 비틀거리더니 이내 대숲집 지붕 기왓골로 툭 떨어졌다. 그리고는 버르적거렸다. 그 사이 모든 동작은 바뀌고 말았다. 이번에는 은고양이가 버르적거리는 솔개를 물고는 날았다. 뒤란으로.
뒤란에 가볍게 날아내린 그 놈은 서너 걸음 달려서는 솔개를 문 채 대숲 뒤에 있는 담장을 타 넘었다.
중후는 대숲 뒤에 있는 담장 쪽으로 뛰었다. 대숲이 수르르 흔들리는 소리만 났지 그 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정말 놀랄 일이 한 순간에 벌어졌다. 그리고는 모든 일은 끝이 났다. 사방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다. 사람도, 강아지도 없다. 새소리도 없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다시 돌아왔다.
방앗간을 돌아나오는데 이번에도 그 대장장이 할아버지를 만났다. 또 멧돼지 염소를 매어 놓고 오시는 모양이었다.
˝할아버지!˝
˝뭐냐? 이번엔 솔개 배꼽이라도 봤냐!˝
그러셨다.
˝맞아요.˝
˝인석이 요새 장마비에 정신이 얼떨떨해진 모양이구나! 느네 아범을 보면 보약 좀 먹이라고 해야겠구나. 파란 나이에 벌써 그 모양이면 창창한 세월을 어떡게 보내려구, 쯧쯧쯧......˝
할아버지는 혀를 찼다.
˝보약은 나중에 먹을 거예요, 정 그러시다면. 근데 말이예요. 진짜, 진짜로 그 놈이 대숲집 굴뚝을 타고 올라 그 꼭대기에 앉은 솔개를 채어갔어요.˝
˝그 놈이라니!˝
˝그 놈 말이에요. 그 놈!˝
˝할애비 앞에서 말버릇이 고약하구만.˝
˝아니.할아버지. 저번에 말씀드렸던 은고양이 말이예요.˝
˝너 심해도 아주 많이 심하구나! 정말 그때 그일을 여태 믿고 있는 거누?˝
˝정말이예요. 그 증거가 있어요. 증거가. 솔개 깃털이.˝
중후는 솔개의 깃털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어디에 있단 말이냐? 네 깜깜한 꿈속에?˝
˝아니라구요.˝
중후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는 당당하게 대숲집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다. 하지만 부엌으로 해서 뒤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아까 솔개의 목덜미를 물고 날아내린 그 자리로 갔다.
˝아, 뭘 보자는 거냐. 이 할애비 머리도 너처럼 어떻게 할 작정이냐?˝
할아버지는 계속 엉두덜 거렸다.
˝이것 보세요. 이 깃털.˝
거기엔 두 개의 갈색 깃털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뒷담장 아래에도 작은 희고 갈색빛 나는 털이 떨어져 있었다.
˝이거예요. 이게 은고양이가 잡은 솔개의 깃털이란 말이예요.˝
할아버지는 중후가 내민 깃털을 손바닥에 얹었다.
˝틀림없는 솔개 깃털이다.˝
˝그것 보세요. 맞다니까요. 은고양이가 저 굴뚝 기왓장을 타고 날아서 솔개를 잡았다니까요. 정말이예요. 이젠 증거도 있으니 꼼짝 못하시지요?˝
할아버지는 손 안에 든 솔개의 깃털을 후우 불어 날리고는 다시 혀를 찼다.
˝네가 은고양인가 금고양인가 그 헛된 것에 단단히 홀렸구나. 내 6.25 때뿌터 대장간을 하며 괭이나 삽, 곡괭이나 칼을 만들어 팔아 왔지만 너처럼 얼토당토 않는 사람은 구경 못했다. 가거라.
내가 네 아범한테 보약 지어먹이라고 단단히 이를테니까.˝
그러고는 돌아섰다.
˝정말이라니까요. 할아버지.˝
중후가 애걸하듯 말했다. 그 말에 돌아선 할아버지가 혼잣소리를 했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내가 믿겠냐? 네 말을.˝
˝그건 왜지요? 왜 제 말을 안 믿지요?˝
중후는 큰소리로 물었다.
˝야. 인석아. 고양이가 네 말대로 솔개를 잡았다고 하자. 그러나 네 말을 더욱 믿지 못하는 건 이것 때문이다. 고양이란 눔은 말이다. 호랑이와 같아 대낮에는 사냥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건 아주 오래전부터.˝
˝6,25때부터요?˝
˝아, 그 이전부터지.˝
˝그렇지만 할아버지, 내 눈으로 똑똑히 본 걸요. 대낮에 솔개를 잡는 걸.˝
˝아, 너 좋을 대로 떠들어 보렴. 이 할애비가 믿을까.˝
할아버지와의 말다툼은 그걸로 끝났다. 끝날 수밖에. 더 어찌할 건가. 할아버지와 말다툼을 하는 것보다 학교에서 은고양이에 대한 글을 찾는 수 밖에 없었다. 도서실을 뒤지고, 생물도감을 뒤졌지만 은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하긴 은고양이가 진짜 고양이 이름인지 중후는 몰랐다.
그래서 흰고양이에 대해서도 찾았지만 중후가 본 그런 크기와 연한갈색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는 없었다. 겓다가 벽을 기어오른다거나 솔개를 잡는다거나 그런 어마어마한 이야기도 물론 없었다.
읍내에 있다는 도서관도 마찬가지였다.
중후는 급기야 밤마다 길거리로 나갔다. 그리고는 노랑머리 아저씨네 화장실 쪽으로 가끔 갔다.
그 사이 줄장미는 피었다가 다 졌다. 늦은 꽃이 쬐그맣게 한 두 송이 피었을 뿐이다. 은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근데 가끔씩은 길가의 보드라운 흙 위에 고양이의 발자국이 찍혀 있는 걸 보았다. 그게 은고양이의 발자국이라면, 아니 은고양이가 아니라하더라도 적어도 고양이 울음을 들었
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여태껏 중후는 물론 엄마에게 물었지만 아직 이 마을에서 고양이 울음을 들었다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에게 물었지만 그들도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대체 중후가 은고양이를 본 건 모두 꿈이었을까. 아니면 대장장이 할아버지 말처럼 중후의 머리가 어떻게 된 걸까. 답답한 건 누구도 그 놈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 놈의 그 놀라운 무용담조차
믿지 않는다는 거다.
중후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놈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밝혀주고 싶었다.
˝사람들이란 이상해. 왜 내 말을 믿지 않을까.˝
중후는 엄마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리고 대장장이 할아버지도 또 아이들도 믿어주지 않는 게 답답했다. 그리고 밉살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꼭 그들이 미운 것만은 아니다.
마을에서 다른 고양이를 본 적이 없다. 은고양이가 정말 있다면 그놈의 울음소리라도 한번은 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고양이 울음을 중후 자신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러고 보면 은고양이는 울지 않았다. 그놈은 자신을 감추며 다니는 게 틀림없다. 그 놈은 바람처럼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지나다닌다. 그것만으로도 쥐들에게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한 놈이었다.
그 놈은 울음으로가 아니라 그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떤 힘으로 자신의 영토를 지배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은고양이를 본 적이 없다는 것처럼 쥐를 본 사람도 이 마을엔 없었다.
˝대장장이 할아버지가 그러던데 말야.˝
아빠는 오이밭의 오이를 거두고는 그 자리에 배추 모종을 내기 시작했다. 배추밭으로 나가시던 아빠가 나를 보고 멈추어 섰다.
˝그 할아버지. 웃기는 분이예요.˝
˝웃기시다니. 그분이 그러는데 너 보약 좀먹이라고 하시더라. 어디 네 몸이 좀 안 좋니?˝
중후는 그간의 이야기를 아빠에게 해 드렸다. 중후의 이야기를 다 들은 아빠가 커커커 웃더니 수레 채를 잡았다.
˝그런 황당한 일에 신경쓰지 말아라.˝
아빠도 그러고는 나가셨다.
중후는 더 안달이 났다.
´누구에겐가 이 일을 보여 드리고 말테야.´
중후는 아빠가 쓰시던 낡은 사진기를 몰래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은고양이가 나타나면 멋지게 찍어 줄 작정이었다. 그 사진을 본다면 아빠도, 대장장이 할아버지도 놀라 자빠지실 거다. 뿐아니라 중후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던 말도 머쓱해질 것이다.
중후는 마음 먹은 대로 사진기를 들고 마을을 쏘다녔다. 하지만 모든 게 그렇듯 또 한 20일쯤 지나면 생각이란게 시들해지기 마련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버지 배추밭 일을 돕든가 아니면 방구석에 틀어박혀 잡지를 들추었다.
하지만 가끔은 은고양이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 놈은 언제나 중후가 잊을 때쯤 되면 다시 나타났다. 노랑머리 아저씨네 화장실 위의 줄장미가 화장실 위로 뻗쳐 올라가고, 방앗간 일이 바빠질 때였다. 그날은 정말 예기치 않았다.
아무 예고도 없이 은고양이가 나타난 거다.
대문을 빠져나가 막 노랑머리 아저씨네 쪽으로 돌 때였다.
뭔가 다급한 일이 등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걸 느꼈다. 돌아다 봤다.
˝저 놈이!˝
중후는 선 채로 외쳤다.
대장장이 할아버지네 멧돼지 염소가 노랑머리네 말더듬이 꽁달이를 꽉 막아섰다. 고삐가 풀린 모양이었다. 그 놈은 그 굵도 험한 뿔로 꽁달이의 뱃구레를 들이받고 있었다. 걸음도 겨우 걷는 꽁달이가 울지도 못하고 넘어질 듯 비틀거렸다.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멧돼지 염소는 어른들도 무서워하는 염소다. 뭔가 다가오기만 하면 수레든 자동차든 어른이든 닥치는 대로 뿔로 들이받는 놈이다. 그 놈을 갑자기 만나면 우리들은 가까운 나무에 뛰어올라 위기를 모면했다.
˝비키지 않을래!˝
중후는 돌멩이를 찾아 들었다. 그러나 꽁달이 때문에 던질 수가 없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 꽁달이가 뒤로 넘어지며 멧돼지 염소가 꽁달이를 타고넘을 때였다. 그 때 어디선가 후닥 나타난 놈이 있었다. 은고양이었다. 은고양이는 잽싸게 멧돼지 염소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그 바람에 멧돼지 염소가 홱 은고양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시 은고양이가 반대쪽 옆구리로 덤벼들었다.
뒤로 넘어진 꽁달이를 두고 은고양이와 멧돼지 염소가 마주 섰다. 은고양이의 눈에서 뜨거운 불빛 한자락이 염소쪽으로 날아갔다. 멧돼지 염소가 끄덕도 않았다. 은고양이가 갑자기 비실거렸다.
˝저걸 어쩌나.˝
그러는 사이로 멧돼지 염소가 은고양이에게 화닥 덤벼들었다. 은고양이가 가볍게 비켰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다리를 절름거리며 바보처럼 느럭느럭 옆으로 비칠비칠 돌았다. 멧돼지 염소의 뿔에 안 보이는 틈에 받혔는가 했다. 그런 고양이를 본 염소가 이상하다는 듯 두 뿔을 앞세우고는 마치 너는 이제 내 밥이야 그러듯이 서너 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다가갔다. 그럴수록 더 심한 모습으로 은고양이는 도랑 쪽으로 쫓기듯 뒷걸음질을 쳤다.
이제 멧돼지 염소는 긴장을 늦추고 마치 재미있다는 듯 한발 한발 허공에 뿔질만 해대며 다가갔다. 그러나 그건 은고양이의 속임수였다.
도랑가 밤나무쯤 밀리던 은고양이가 경계없이 다가오는 멧돼지 염소 머리 위로 훌쩍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목덜미를 물었다. 놀란 멧돼지 염소가 고개를 좌우롤 내리 흔들어댔다. 멧돼지 염소의 입에선 신음소리가 났고, 흰 거품이 내리흘렀다.
중후는 이때다 싶게 뛰어가 꽁달이를 안고는 돌아서서 뛰었다. 뛰면서 소리쳤다.
˝은고양이가 나타났어요! 은고양이.˝
꽁달이네 안방문이 화들짝 열리며 노랑머리 아저씨가 나타났다.
˝뭐가 은구렁이가!˝
˝저기요! 저기!˝
중후는 도랑가 밤나무 쪽을 가리켰다.
˝어디에?˝
그러나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다. 아직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꽁달이를 안고는 노랑머리 아저씨가 뛰었다. 중후도 뛰었다. 그러나 도랑엔 멧돼지 염소만 들어누워 신음을 할 뿐 은고양이는 없었다. 이리저리 살폈다. 없다. 먼 들판으로 눈길을 돌렸다.
˝저기요!˝
목이 긴 수수밭 사이로 흰빛이 휙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러나 그 빛은 이내 번개가 그렇듯 사라지고 말았다.
중후는 그날, 상처난 멧돼지 염소를 보며 대장장이 할아버지에게 은고양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이놈이 밤나무를 기어오르다 떨어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왜 상처가 났어요. 이 피 좀 봐요!˝
중후는 목덜미에 아직도 남아있는 피를 가리쳤다.
˝그 밑 마른 뿌리에 찔렸더라. 거기에 피가 묻을 걸 내 눈으로 똑똑히 이 녀석아. 봤단 말이다.˝
할아버지는 중후의 말읆 믿지 않았다.
˝참, 맞아요. 나랑 똑똑히 본 사람이 있어요. 꽁달이에요. 꽁달이.˝
그러나 말을 못하는 꽁달이도 증인이 돼주지 못했다.
일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어른들이란 그냥 나무뿌리에 찔렸다고 믿으면 믿고 마니까. 그리고 은고양이가 그리 중요한 것도 되지 못하니까. 하지만 중후에겐 그렇지 않았다. 어른 두 배 키의 화장실 지붕에서 10미터를 날던 일이며 굴뚝 위에 앉은 솔개를 잡던 일. 그리고 멧돼지 염소와
싸우던 은고양이의 화려한 싸움 솜씨며, 꽁달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불쑥 나타난 은고양이가 예사의 일이 아니었다. 그 놈은 매우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잇었으며 또한 뭔가를 지키는 의적같은 놈이었다.
그리고는 은고양이가 나타난 걸 중후는 보지 못했다. 1년이 가도 다시 새 봄이 와도. 그런데 분명한 건 그 후 이 마을에 쥐가 나타났다는 거다.
˝보세요. 쥐가 나타났잖아요.˝
그렇게 말하면 어른들은 그랬다.
˝인석아. 쥐란 의레 사람이 사는 곳이 있는 놈인 걸 같고.˝
˝그렇잖다고요. 은고양이가 떠낫기 떄문이에요.˝
그랬지만 누구도 은고양이를 믿지 않았다.
오늘 담벼락에 그려진 고양이는 분명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은빛털을 가진 녀석이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중후말고도 이 고양이를 본 사람이 이 마을에 있다는 게 틀림없다.
˝그래. 내가 본 건 허깨비가 아니었어.˝
중후는 담벼락의 고양이를 다시 떠올렸다. 그러나 이제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을, 그가 어른이든 아이이든 찾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중후의 마음 속에 그 커다란 은고양이를 간직하고 있으면 될 것 같았다.
옛날의 그 늠름하고 날렵했던 은고양이를 만나 보기 위해 먼 들판을 봤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다만 아지랑이만이 널름널름 솟아 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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