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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우리의 보물

창작동화 김영순............... 조회 수 1169 추천 수 0 2005.02.11 18:50:01
.........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 도자기 박람회에 갔다.
[세계 도자기엑스포 2001 경기도]는 8월 10일부터 10월 28일까지 광주와 이천, 여주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는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광주행사장으로 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정문으로 들어섰다.
나는 관람표를 창구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사물패가 나를 에워싸고 풍물을 울렸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나는 깜짝 놀랬다.
그 때, 예쁜 ´엑스포아가씨´가 내 머리에 왕관을 씌워준다. *´3백만의 왕´이라 쓴 왕관!
˝우리 도자기엑스포에 오시는 손님은 왕입니다. 손님은 3백만 번 째로 찾아주신 왕입니다.˝
엑스포아가씨는 내 볼에 뽀뽀를 한다.
˝3백만의 왕께는 보물도 드립니다. 자, 저 쪽 전통가마로 가시지요.˝
나는 꼭 꿈을 꾸는 것만 같다. 열 살의 소년이 3백만의 왕이라니? 믿을 수 없다. 나는 기분좋게 아가씨의 손을 잡고 전통가마가 있는 곳으로 갔다.
윤광조 도공의 분청자가마가 있는 그곳으로 갔다. 쉰 몇 살쯤으로 보이는 그는 내 머리에 쓴 왕관을 보더니,
˝왕께는 오늘 이 가마에서 나오는 보물 한 점을 들이겠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가슴이 벅차오른다.
´우리집에 있는 [분청사기 덤벙문 대접]도 5천만원이란 감정가가 나왔다는데...... 그런 보물을 내게 상으로 준다니?´
나는 그 보물을 얼른 보고싶다. 그러나 도공은 느긋하다. 딴청만 피운다.
˝가마에서 작품을 꺼내려면 몇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니까 저 쪽 전시장에 가서, 우리 도자기와 일본, 중국에는 어떤 보물들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그래서 나는 도공을 따라 ´동북아 도자기 교류전´으로 갔다. 그곳에는 많은 초. 중학교 학생들이 메모를 하느라고 북적인다. 나도 수첩을 꺼내서 도자기의 발달과정을 적어 나갔다.

그 도자기 전시장에는 뜻밖에도 우리집 보물인 도자기 3점이 진열되어 있었다.
˝도공아저씨, 이것은 700살 먹은 우리 고려청자고요, 또 저 쪽 중간엔 500살이 된 분청사기 덤벙문 대접이고요, 또 저 끝에 있는 것은 300년 된 청포도문 백자항아리예요.˝
나는 도공아저씨의 손을 잡고 다니며, 연대 순으로 진열 된 우리집 보물 도자기들을 자랑했다.
˝맞아요. 3백만의 왕께서는 어쩜 그렇게 보물도자기의 나이들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까? 참으로 놀랍습니다.˝
도공아저씨는 내가 오늘 3백만의 왕관을 쓸만한 자격이 있다고 칭찬까지 한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가르쳐 주셨어요. 그런데 우리집 보물도자기가 왜 이 곳에 와 있지요?˝
나는 그것이 의문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보물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할아버지께서 가져오셨나봐요.˝
˝우리 할아버지가요?˝
나는 이 도자기들이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아니 그 고조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우리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란 이야기도 했다.
˝그래요. 이런 보물은 한 집안의 보물일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보물이기도 해요. 일본에 있는 5백년 된 분청자는 국보로 지정된 것도 있어요.˝
도공아저씨는 일본의 분청자를 살펴보며 그렇게 말한다.
나는 아저씨의 그런 말을 듣고 일본도자기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런데 일본 분청자의 색은 회청색이 많고, 시멘트색이나 녹갈색 등 여러 가지다. 아저씨의 말로는 ´유약에 신경을 쓰지않은 탓´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고려청자에 비하면 색깔이 좀 나쁜 편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분청자도 고려청자와는 다르게 예쁘질 않다.
˝아저씨, 참 이상해요? 기술이 점차로 발전해야 하는데, 왜 몇 백년 늦게 나온 분청자는 고려청자 보다 못하지요?˝
˝이 아저씨도 그것이 이상해서 30여 년을 연구했는데, 이제야 겨우 그 까닭을 알게 됐어요.˝
아저씨는 우리나라의 도자기가 변천되어 온 역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준다.
우리 도자기는 ´고려청자, 분청자, 조선백자´로 구분하는데, 고려청자는 실생활의 그릇으로 쓰려고 만들었다기 보다는 대개가 임금님이 사는 궁궐의 장식품이나, 또 왕과 귀족들의 무덤에 부장품으로 묻으려고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그러므로 상감청자(고려청자)들은 매우 공들여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770년 전에 평화롭던 고려에 원나라(몽고)가 여섯 차례나 침입하여 30년 동안이나 고려를 괴롭혔다.
그 결과 고려는 20여 만명의 인명을 빼앗겼고, 또 몽고군이 지나간 고려땅은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이 때 고려청자를 만들던 뛰어난 도공들이 모두 원나라로 끌려 갔다.
그리하여 고급스럽게 고려청자를 만들던 뛰어난 도공들이 없어 고려청자의 맥이 끊어졌다.
그러므로 이 땅에 남아 있는 도공들은 기술이 부족하여 상감청자를 만들지 못하게 되었다.
상감청자는 하나하나 공들여서 도자기의 겉면에 그림이나 무늬를 새기고, 거기에 금이나 은, 또는 자개 등을 끼워 넣어 장식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뛰어난 도공이 아니면 흉내도 못 낸다.
그리하여 고려 땅에 남아 있는 기술이 부족한 도공들은 그들이 빚은 도자기의 겉면에 물고기나 꽃무늬 같은 것을 새긴 도장을 찍는 것으로 상감을 대신했다.
이렇게 도장무늬를 찍으면 일손도 덜 들고, 기술도 간편해서 기술이 부족한 도공들도 곧잘 도자기를 만들 수 있었다. 이리하여 분청자를 만든 시초가 되었다.
이들이 만든 분청자는 색깔이 좀 칙칙하다 하더라도 그릇이 튼튼하여, 실용적인 밥그릇이나 대접, 찻잔, 접시 같은 그릇들을 만들어 서민들까지 실용적으로 즐겨 사용했다.
˝이것 보세요, 이 분청자는 예쁜 엑스포아가씨의 얼굴에 분을 바른 것처럼 뽀얀 분을 발라서 청자처럼 예쁘지 않습니까? 이런 분청자는 150여 년동안, 조선백자가 나올 때까지 꾸준히 발전해 왔어요.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번에는 그 분청자를 만들던 도공들이 모두 일본으로 잡혀갔죠.˝
도공아저씨의 말로는 임진왜란 때문에 결국 분청자의 맥도 끊어졌다는 것이다.

드디어 윤광조 도공아저씨는 가마에서 분청자를 꺼내어 하나씩 검사를 한다.
˝...... 이것도 불합격!˝
도공아저씨는 멀쩡해 보이는 분청자들을 하나씩 하나씩 망치로 깨버린다. 보매 보기에 예쁜 그릇들이 망치를 맞고 깨질 때마다 나는 내가 매를 맞는 것같아 마음이 아프다.
˝아저씨, 왜 이렇게 예쁜 그릇들을 자꾸만 깹니까? 이 그릇들을 용서해 주셔요.˝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아저씨의 손을 잡았다.
˝나는 400년 전의 그 예쁜 분청자가 나올 때까지 이렇게 깰겁니다.˝
아저씨는 분청자의 전통을 찾기 위해 합격품이 나올 때까지 계속 깨고 있다.
그런데 그 많은 그릇 중에서 분청자의 맥을 이을만한 합격품은 겨우 열 개 뿐이었다.
˝이런 합격품은 참된 흙과 작가(도공)의 정성과 불의 심판이 하나로 합치될 때만 나오는 것입니다.˝
아저씨는 내가 알아듣기에 알쏭달쏭한 말만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 400년이나 500년이 지나면 오늘 이 합격품들이 꼭 이 나라의 보물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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