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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아기 개구리 와와

창작동화 김충도............... 조회 수 1140 추천 수 0 2005.02.11 18:56:58
.........
문 좀 열어 주세요. 제발 문 좀 열어 주세요.˝
아무리 폴짝거리며 문을 두드려 보지만 굳게 닫힌 문은 꼼짝 하지 않습니다.
저녁 무렵부터 거세어지기 시작하던 바람은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 심술스러워집니다.
´아이 추워, 추워 죽겠어.´
아기개구리 ´와와´는 차가운 댓돌 위에서 연신 앞발을 부벼보지만 추위를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도련님, 정인이 도련님!˝
또 다시 폴짝폴짝 뛰며 마루문을 두드립니다. 여전히 안에서는 기척이 없습니다. 이제는 아예 방안과 마루에 켜져 있던 불빛마저 꺼져버리고 텔레비전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식구들은 모두가 잠자리에 든 것이 틀림없습니다.
´모두가 내 잘못이었어.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릴 걸. 엄마, 엄마야...´

갑자기 지난 가을 헤어진 엄마 생각이 납니다. 헤어지기 전에 엄마는 몇 번이고 간곡하게 당부를 했습니다.
˝와와야, 이제 곧 겨울이 온단다. 그러면 우리는 땅속으로 피난을 가야 돼. 네가 들어갈 집은 내가 벌써 찾아 두었어. ... 포슬포슬 잘 파헤쳐진 흙 밑이어서 네가 겨울을 나기에는 안성맞춤이란다.
그러나, 이것만은 명심해야 된단다. 겨울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리 어둡고 답답하더라도 밖으로 나와서는 안 돼. 우린 바깥에서 차가운 겨울을 이겨낼 수가 없어. 섣불리 나왔다가는 금새 꽁꽁 얼어죽고 만단다.
...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할 때가 있어. 그건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란다. 바로 봄이 오기 직전이지. 며칠 동안 포근해진다고 , 흙들이 부산스럽게 서두른다고 성급하게 뛰쳐나왔다가는 큰 일을 겪게 돼. 알겠니, 와와야?
우리가 나와도 좋은 건 겨울 내내 땅 속에 웅크렸던 씨앗들이 껍질을 깨고 나가고도 한참을 더 지난 뒤라야 한단다.
와와야, 서둘지 말아라. 절대로 서둘지 말아라.˝
엄마는 그밖에도 얼마나 더 많은 주의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고는 미리 보아 두었던 담장 밑 화단의 부드러운 흙더미를 헤치고 와와가 깊이깊이 숨는 것을 확인하고는 어디론가 떠났습니다.

그 뒤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갔는지 와와는 모릅니다. 몇 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갔는지도 모릅니다. 캄캄한 땅 속에 웅크린 채 자다가는 깨고, 깨었다가는 다시 잠들고 이렇게 마냥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와와는 자기가 겨울잠을 자고 있는 곳이 바로 정인이네 집 꽃밭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쩌다 잠이 깨서 있노라면 멀지 않은 곳에서 말소리들이 들려오곤 했습니다.
˝얘들아, 손 씻고 밥 먹어라.˝
이건 정인이 엄마 목소리입니다.
˝얼른 들어오너라. 엄마 말 잘 들어야 착한 아이들이지.˝
정인이 아빱니다.
˝예, 곧 들어가요.˝
요건 정인이의 누나인 유진이 음성입니다. 새 봄이 되면 초등학생이 된다고 날이 갈수록 의젓해지고 있습니다.
˝씨, 조금만 더 놀다가...˝
볼멘 소리로 어김없이 투정을 부리는 건 정인이입니다.
하도 자주 듣다 보니 이제 와와는 목소리만 들어도 그게 누구란 걸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와와는 어쩐지 정인이네 가족들 가운데서 정인이가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따금씩 아빠, 엄마 속을 썩여서 꾸중을 듣기도 하고, 누나를 울리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하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정인이가 한없이 원망스럽습니다.
바로 오늘 아침이었습니다. 그러잖아도 며칠동안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고 주위에 있는 흙들이 부산스럽게 수런대는 소리들에 와와도 덩달아 몸이 근질거리는 참인데, 정인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입니다.
˝엄마, 엄마, 이젠 봄이지.˝
˝그래, 완전히 봄 날씨로구나.˝
˝그러면 꽃도 피고, 나비도 오겠네.˝
˝그럼, 그렇고 말고. 이제 머지않아 제비도 날아오고 아지랑이도 피어오를 거야.˝
와와는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아, 마침내 봄이 왔구나. 봄,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봄이 드디어 왔구나. 와와는 자기도 모르게 주춤주춤 머리 위의 흙더미를 헤치기 시작했습니다. 포슬포슬한 흙더미들은 쉽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엄마가 그토록 간곡하게 타이르던 말도 그 때의 와와에게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한참만에 와와의 머리는 불쑥 땅 밖으로 솟았습니다.
´아뿔싸´
바깥으로 나와서야 와와는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록 빛살은 따뜻했지만 주위의 모습들은 전혀 낯이 설었습니다. 화단에는 푸른빛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벌거벗은 나무들 몇 그루만 화단 군데군데에서 빈손을 벌리고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엄마가 말하던 그 가장 위험한 때가 바로 지금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새삼스럽게 다시 그 답답하고 캄캄한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갈 생각은 나지 않았습니다. 우선 빛살이 포근하기도 했지만, 마당에서 마루에 앉은 엄마에게 무어라고 계속 말을 걸면서 자전거를 타고 노는 정인이의 모습이 하도 귀여웠기 때문입니다.
처음 보는 정인이었지만, 전혀 낯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목소리를 들으면서 항상 상상해 오던 얼굴과 꼭 맞아떨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와와는 큰 눈을 더욱 동그랗게 굴리며 좀더 정인이가 잘 보이는 곳으로 폴짝폴짝 뛰어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들켜서는 안됩니다. 무궁화나무 밑둥치 뒤에 살짝 숨었습니다. 고개만 내밀고 넋없이 정인이를 따라 눈알을 굴렸습니다.
몇 차례 방안이며, 마루 위를 들락날락거리기도 하면서 정인이는 혼자서 잘도 놉니다.
그런데, 포근하던 날씨는 오후가 되자 조금씩 이상해졌습니다. 바람이 슬슬 일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구름이 가득 끼고 기온마저 뚝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자, 아빠가 유진이 손을 잡고 바깥에서 들어오셨습니다. 유진이 손에 가방이며, 새 신발이 들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유진이가 곧 학교 갈 날이 되어가는가 봅니다.
˝꽃샘 추위가 밀어닥칠 모양이다. 오늘 저녁에는 추워지겠다. 얼른 방에 들어가자.˝
아빠가 들고 있던 물건 꾸러미를 엄마에게 건네주며 유진이와 정인이를 채근했습니다.
˝꽃샘 추위가 뭐야, 엄마?˝
유진이가 들고 있던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마루에 놓으며 물었습니다.
˝응, 꽃샘 추위는 말이야. 새 봄이 오는 걸 시샘하는 추위란다. 겨울이 마지막 심술을 부리는 거야.˝
˝...씨, 겨울은 심술쟁이야.˝
엄마와 유진이의 말을 듣고 있던 정인이가 신발을 벗으면서 불쑥 한 마디 뱉았습니다.
˝하하하. 그래, 정인이 말이 맞다. 겨울은 심술쟁이야.˝
˝호호호.˝
아빠의 말에 엄마도 유진이도 함께 웃었습니다.
정인이네 가족들이 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마당은 금세 텅 비었습니다.
´그래, 아직은 내가 나올 때가 아닌 거야.´
조금씩 추위를 느끼기 시작한 와와는 다시 땅 밑으로 되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헤치고 나왔던 흙더미 있는 곳으로 폴짝폴짝 뛰어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새 흙더미가 단단히 굳어져 버렸는지 아무리 두 발로 파헤쳐도 흙이 파지지 않습니다. 모르는 새 앞발도 뒷발도 감각이 무디어져 갔습니다.
그만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큰일났다, 큰일났어. 꽃샘추위가 온다는데...˝
와와의 머릿속에는 저녁 무렵에 정인이네 가족들이 주고받던 꽃샘추위라는 말이 몹시도 무서운 말로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해가 지자 바람은 더욱 사납게 불고, 몸이 덜덜 떨리도록 추워졌습니다. 오도가도 못하게 되어버린 와와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정인이네 꼭꼭 닫혀진 마루창 밑에 와서 아까부터 구원을 청하게 된 것입니다.
´정인이 도련님, 날 좀 살려주세요!´
와와는 다시 한 번 힘껏 몸을 튕겨서 마루문을 두들겼지만 여전히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습니다.
´아, 엄마 말을 듣지 않아서, 나는 결국 이렇게 얼어죽고 마는구나.´
와와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무심코 밤하늘로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 와와의 눈에 반짝하고 보인 것이 있습니다. 더욱 자세히 보았습니다. 별님이었습니다. 잔뜩 구름이 낀 하늘에 오직 숨지 않은 별님 하나가 정인이네 마당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아, 별님. 나를 살려주세요. 제발 나를 살려주세요.´
와와는 앞발을 마주 비비며 간절하게 빌었습니다. 마침내 밤하늘의 별님과 와와의 눈빛이 맞닿았습니다.
˝아니, 넌 개구리가 아니냐? 이 추운 밤에 밖에서 웬일이냐?˝
˝그래요, 별님. 나는 아기개구리 와와여요. 그만 계절을 잘못 알고 성급하게 나왔다가 이렇게 되고 말았어요. 추워 죽겠어요. 어떻게 날 좀 살려주세요.˝
˝쯧, 쯧, 딱하게 되었구나. 허지만 내게 무슨 힘이 있어야지...˝
별님도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습니다.
˝난 밤새 얼어죽고 말 거예요.˝
˝그걸 알면 처음부터 성급하게 나오지 말았어야지.˝
˝하지만 난 벌써 완전히 봄이 온 줄 알았지 뭐예요.˝
와와는 울먹거리며 정인이와 엄마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바깥으로 나오게 된 까닭을 쭉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별님은 한참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는지 반짝 빛을 밝혔습니다.
˝됐다. 방법이 있어. 널 정인이의 꿈속에 담아주면 되겠구나. 정인이가 마루문을 열게 할 테니,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라.˝
˝마루 안으로 뛰어들라는 말씀인가요?˝
˝그래, 추위는 오늘밤이 고비야. 내일부턴 다시 날이 풀어질 거야. 봄은 벌써 이 집 담장 밖에까지 와 있거든... 자, 눈을 감아라.˝
와와는 몸을 덜덜 떨면서 눈을 꼭 감았습니다. 별님이 자기 몸 속에서 가장 밝은 빛 한 줄기를 아래로 화살처럼 쏘았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빛은 금새 와와의 이마를 한번 스치고는 바늘끝 만큼 벌어진 창문 틈을 비집고는 날쌔게 마루를 지나서 방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방안을 한 번 춤추듯이 맴돌다가 곧 쌔근쌔근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정인이의 눈썹에 매달렸습니다. 다음 순간 눈썹에 매달렸던 빛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이미 정인이의 꿈 속 나라로 찾아간 것입니다.

정인이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따뜻한 봄날입니다. 마당의 화단에는 이미 꽃들이 할짝 피었습니다. 맨드라미, 채송화, 다알리아, 분꽃, 백일홍과 튤립도 피었습니다. 나비들이 훨훨 춤을 춥니다. 별들도 부지런히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닙니다.
식구들은 모두 외출을 하고 마침 집에는 정인이 혼자 뿐입니다. 혼자서 세 발 자전거를 타고 마당을 뺑뺑 돌고 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저쪽 무궁화나무 근처에서 정인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인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전거를 세우고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아기개구리 한 마리가 눈을 동그랗게 굴리며 앞발로 정인이를 부르고 있습니다.
˝정인이 도련님, 이리 와 보세요. 이리 와 보세요.˝
˝아니, 넌 누구니?˝
˝내 이름은 와와예요. 도련님의 친구예요.˝
˝그럼, 이리로 나와.˝
˝아니예요. 도련님이 오셔요. 나는 나갈 수가 없어요.˝
˝그럼 기다려. 내가 갈께.˝
˝빨리 오세요. 늦으면 안 돼요.˝
그러나 정인이가 자전거에서 내려 꽃밭으로 미처 들어서기도 전에 개구리의 모습이 점차 희미해집니다.
˝기다려, 기다려, 아기개구리야.˝

정인이는 번쩍 눈을 떴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와와의 음성이 여전히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어서 오셔요. 도련님, 어서요.˝
그 소리는 문 밖에서, 아니면 마당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정인이는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더듬더듬 방문을 열었습니다. 마루로 나섰습니다. 아기개구리 와와는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손짓을 하는 듯 했습니다.
굳게 닫힌 마루문을 열었습니다.
˝드르르˝
찬바람이 휙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추운 줄도 모르고 정인이는 바깥을 내다봅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 화단은 알아 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어두운 밤하늘에 구름에 숨지 못한 별님 하나가 반짝반짝 빛을 보내주고 있을 뿐입니다.
´아하, 꿈이었구나.´
정인이는 그제사 제가 꿈을 꾸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갑자기 밤바람이 차갑게 느껴집니다. 얼른 마루문을 닫았습니다. 으스스 몸이 떨립니다. 그렇지만 어디 바깥 날씨와야 비교가 되겠습니까?
정인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서 이불 속으로 쑥 들어갑니다. 지금 마루에는 정인이가 열었던 문으로 아기개구리 와와가 무사히 들어와서 얌전스레 추위를 피하고 있는 줄을 조금도 모릅니다. 금방 정인이는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번에는 꿈속에서 아기개구리 와와를 만나 함께 즐겁게 뛰어 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밤은 평화롭게 점점 깊어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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