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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동화] 하느님의 눈물

권정생동화 권정생............... 조회 수 1700 추천 수 0 2005.02.21 21:47:14
.........
눈이 노랗고 털빛도 노란, 돌이 토끼는 산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돌이 토끼는 산토끼인 셈이죠.
어느 날 돌이 토끼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칡덩쿨이랑 과남풀이랑 뜯어 먹으면 맛있지만 참말 마음이 아프구나, 뜯어 먹히는 건 모두 없어지고 마니까.´
돌이 토끼는 중얼거리면서 하얀 이슬이 깔린 산등성이로 뛰어갔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난 먹어야 사는 걸. 이렇게 배가 고픈걸.´
돌이 토끼는 뛰어가던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둘레를 가만히 살펴보았습니다. 쪼꼬만 아기 소나무 곁에 풀무꽃풀이 이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앉아 있었습니다.
돌이 토끼는 풀무꽃풀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풀무꽃풀아, 널 먹어도 되니?˝
풀무꽃풀이 깜짝 놀라 쳐다봤습니다.
˝......˝
˝널 먹어도 되는가 물어 봤어. 어떡하겠니?˝
풀무꽃풀은 바들바들 떨었습니다.
˝갑자기 그렇게 물으면 넌 뭐라고 대답하겠니?˝
바들바들 떨면서 풀무꽃풀이 되물었습니다.
˝......˝
이번에는 돌이 토끼가 말문이 막혔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대답을 제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 이나 있겠니?˝
˝정말이구나. 내가 잘못했어. 풀무꽃풀아. 나도 그냥 먹어 버리려니까 안되어서 물어 본 거야.˝
˝차라리 먹으려면 묻지 말고 그냥 먹어.˝
풀무꽃풀이 꼿꼿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먹힌다는 것, 그리고 죽는다는 것, 모두가 운명이고 마땅한 일인 것입니다.
돌이 토끼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말없이 돌아섰습니다.
깡충깡충 뛰어서 풀밭 사이로 갔습니다. 댕댕이 덩굴이 얽혀 있었습니다. 잠깐 쳐다보다가 말없이 돌아섰습니다.
´댕댕이도 먹을까 물으면 역시 무서워할 거야.˝
돌이 토끼는 갈매 덩굴 잎사귀 곁에 가서도 망설이다가 돌아섰습니다. 바디취 나물도 못 먹었습니다. 고수대 나물도 , 수리취 나물도 못 먹었습니다.

한낮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해님이 서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해님 아저씨, 어떡해요? 나 아직 아무 것도 못 먹었어요.˝
˝왜 아무 것도 못 먹었니?˝
해님이 눈이 둥그래져서 물었습니다.
돌이 토끼는 오늘 하루 동안 겪은 얘기를 죄다 들려 주었습니다.
˝정말 넌 착한 아이로구나. 하지만, 먹지 않으면 죽을텐데. 어쩌지.˝
해님이 걱정스레 말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어요. 괴롭지만 않다면 죽어도 좋아요.˝
돌이 토끼는 기어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고 말았습니다.
해님도 덩달아 울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새빨개진 채 서산 너머로 넘어갔습니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하늘에 별님이 반짝거리며 나왔습니다.
돌이 토끼는 자꾸 자꾸 울다가 잠시 눈을 떠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수많은 별빛이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돌이 토끼는 말했습니다.
˝하느님, 하느님은 무얼 먹고 사셔요?˝
어두운 하늘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습니다.
˝보리수 나무 이슬하고 바람 한 줌, 그리고 아침 햇빛 조금 마시고 살지.˝
˝어머나! 그럼 하느님, 저도 하느님처럼 보리수 나무 이슬이랑, 바람 한 줌, 그리고 아침 햇빛을 먹고 살아가게 해 주셔요.˝
˝그래, 그렇게 해 주지. 하지만, 아직은 안 된단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처럼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이 오면, 금방 그렇게 될 수 있단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가요?˝
˝그래, 이 세상 사람 모두가.˝
하느님이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는데도 사람들은 기를 써 가면서 남을 해치고 있구나.˝
돌이 토끼 얼굴에 물 한방울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하느님이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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