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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난 찬밥이 아니에요

창작동화 허은순............... 조회 수 1536 추천 수 0 2005.02.24 23:51:00
.........
엄마배가 점점 뚱뚱해집니다. 하지만, 자꾸 뚱뚱해지는 배를 보면서도 엄마랑 아버진 즐거운 표정입니다. 요즘 엄마는 밥을 정말 많이 드신답니다.
밖에 나갔던 산이가 들어오니 엄마는 누워 있습니다. 불룩한 엄마 배가 보입니다. 산이는 북처럼 두드리면 어떤 소리가 날까 궁금했습니다. 살짝 다가가서 주먹을 북채 삼아 펑 쳤습니다. 엄마는 깜짝 놀라 일어났습니다.
˝어머나!˝
˝아니, 얘가 큰일 내려고!˝
아버지도 놀라서 엄마 배를 만집니다. 산이가 울먹울먹하자, 엄마는 산이의 손을 잡고 엄마 배에 갖다 대며 말합니다.
˝산아, 엄마 뱃속엔 아기가 들어있어. 네 동생이야.˝
˝네?˝
˝아기가 들어 있다구, 네가 그렇게 엄마 배를 치면 뱃속에서 아기가 놀래. 아파해.˝
˝아기요? 내 동생이 있다구요?˝
˝그래, 곧 아주 예쁜 아기를 보게 될 거야.˝
엄마는 산이 뺨을 쓰다듬으며 말합니다.
˝우리 산이, 좋겠다. 이젠 동생이 생기니 말야. 앞으로 엄마 배를 그렇게 때리면 안 된다. 알았지?˝
하지만, 산이 눈엔 엄마 배속에 동생이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커다란 북 같이 보일 뿐입니다.

엄마는 산이에게 두터운 외투를 입히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쌀쌀한 바람 때문에, 산이 모자가 벗겨지려 합니다. 산이는 장갑 낀 손으로 모자를 꾹 눌렀습니다. 엄마가 산이를 데리고 간 곳은 집에서 멀지 않은 병원이었습니다. 엄마는 산이 손을 잡고 진찰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 산이, 엄마가 동생 보여줄게.˝
진찰실 안에는 조그만 텔레비전이 있습니다. 엄마는 작은 텔레비전 앞에 있는 의자에 산이를 앉혔습니다.
˝잘 봐, 산아. 네 동생이 보일 거야.˝
엄마가 작은 텔레비전을 가리켰습니다.
˝자, 어디 동생이 잘 있나 한 번 볼까? 잘 봐라.˝
의사 선생님은 두터운 외투를 입어서 두루뭉실한 산이를 보시더니 씨익 웃었습니다.
산이는 엄마 뱃속에 동생이 있다면서 왜 저 텔레비전을 보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곧 까맣던 화면에 뭔가 흐릿한 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산이 눈엔 아무리 봐도 그것이 동생같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생 없어요.˝
˝그래? 다시 한 번 보여줄게. 그래, 여기 보이는 구나.˝
˝어머나!˝
엄마도 놀라셨나 봅니다.
작은 텔레비전 화면에는 아주 작은 발바닥 두 개가 나란히 나타났습니다. 아주 잘 보였습니다. 작은 발바닥 두 개에는 정말 아주 아주 작은 발가락 열 개가 줄 콩처럼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산이는 가만히 그것을 쳐다봅니다. 그리곤 자기 발을 들어 쳐다봅니다. 다시 작은 텔레비전에 있는 아기 발을 쳐다봅니다.
˝네 동생 발가락 예쁘지?˝
산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산이는 좋겠다.˝
의사 선생님이 산이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병원에서 나오면서도 산이는 아까 본 발바닥을 생각했습니다.

삼월이 되자, 할머니가 오셨어요.
산이는 할머니를 참 좋아합니다. 할머니도 산이를 무척 귀여워하시죠. 손주라고는 산이 하나 뿐이거든요. 올해로 여섯 살이 되었는데도 할머니는 산이를 꼭 아기같이 대하신 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이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엄마도 없고, 아버지도 없었습니다. 산이는 화장실에도 가보고, 서재와 베란다에도 가 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할머니, 엄마는?˝
˝니 엄마 밤에 동생 낳으러 병원에 갔어. 예쁜 고추 낳았대.˝
산이는 할머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는 남겼습니다.
˝왜 더 먹지 않구?˝
˝먹기 싫어요.˝
˝맛이 없누?˝
˝.......˝
산이는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이 생각났습니다.
˝엄마한테 갈래요.˝
˝그래, 가자. 우리 강아지. 우리 산이 동생 보러 할미랑 같이 가보자.˝

산이는 할머니 손을 꼭 붙들고 병원으로 갑니다. 날이 많이 풀렸지만, 아직 바람은 쌀쌀합니다. 할머니가 모자 씌워 주는 것을 잊으셔서 산이는 귀가 시려웠습니다. 산이는 손으로 귀를 막았습니다. 엄마가 누워 있는 병실에 들어서니 엄마 옆에 작은아기가 이불에 쌓여있습니다.
˝우리 산이 왔니?˝
엄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산이를 보면서 말합니다.
˝동생 봐라. 예쁘지?˝
아버지가 이불을 조금 걷어 아기 얼굴이 잘 보이게 했습니다.
동그랗고 불그스름한 얼굴에 머리카락은 삐죽삐죽했습니다. 눈도 뜨지 않은데다가 입은 개구리같이 컸습니다. 산이 보기엔 하나도 예쁘지 않습니다.
˝하나도 안 예뻐요. 입이 이만해요.˝
산이가 양 손가락으로 아기 입이 큰 것을 흉내내어 보입니다.
˝이 녀석 귀 좀 봐라. 빚어 놓은 것 같이 예쁘잖아.˝
할머니가 하나도 예쁘지 않은 동생을 예쁘다고 하시자, 산이는 은근히 샘이 났습니다.
˝나는 요, 할머니?˝
˝너도 예쁘지, 그럼.˝
대답은 그렇게 하셨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아기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산이는 시무룩해집니다.

동생이 집에 온 후, 엄마는 하루종일 동생만 안고 계셨습니다.
엄마에게 좀 안겨보려 하면, 하나도 예쁘지 않은 동생이 안겨 있습니다.
˝나도 안아 줘.˝
˝다 큰놈이 어리광은... 지금 아기 젖먹이니까 이따가 안아줄게.˝
˝싫어. 지금 안아 줘.˝
˝아기 젖 먹는데?˝
˝지금 안아 줘.˝
산이가 투정 부렸지만, 엄마는 동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산이는 하나도 안 예쁜 동생을 쳐다봅니다. 엄마 젖을 빨고 있습니다. 산이는 손바닥으로 아기 얼굴을 밀어냈습니다.
˝야, 임마. 비켜. 엄마 젖 먹지마.˝
엄마 젖꼭지를 놓친 아기가 ˝응애 응애˝하고 숨넘어갈 듯이 웁니다. 그러자 얼굴이 새빨개집니다.
˝산아, 아기를 그렇게 하면 어떡해?˝
산이는 심술이 나서 부루퉁한 얼굴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밖에 나갔더니 옆집 아주머니가 빨래를 널고 계셨습니다. 아주머니는 빨래를 널다 말고 산이를 보고는,
˝산이 나왔니?˝
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나, 산이는 인사도 않고, 담벼락에 주저앉았습니다. 담벼락에 해가 비쳐서 따뜻했습니다.
˝동생 태어났으니 넌 이제 찬밥이다.˝
아주머니가 갑자기 이렇게 말씀하시니 산이는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그만 이렇게 말하고 말았어요.
˝나 찬밥 아니에요, 산이에요!˝
산이는 웅크리고 앉아 머리를 팔 사이에 묻었습니다. 괜히 눈물이 났습니다.
산이는 매일 밤 엄마 옆에서 자는 동생이 미웠습니다.
원래 그 자리는 산이 자리였죠. 동생이 태어난 후로는 동생 차지가 되었습니다. 슬그머니 동생이랑 엄마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누우면, 금방 아버지가 덜렁 들어서는 아버지 옆자리에 눕혔습니다. 산이가 엄마 옆으로 가려해도, 아버지가 꽉 끌어안아서 꼼짝할 수가 없어요.

어느 날이었어요. 엄마가 빨래하고 있는 사이, 산이는 몰래 아기에게 갔습니다.
´넌 왜 맨날 잠만 자냐? 눈도 안 뜨고.´
´야, 여기 내 자리야.´
산이는 가만히 아기 눈을 쿡 찔러 봅니다. 아기가 움찔했지만, 계속 잡니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예쁘다 시던 아기 귀를 쭉 잡아당겨 봅니다. 그랬더니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응애애.˝
엄마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고, 산이는 얼른 도망갔습니다. 또 하루는 산이가 아기 이부자리를 잡아당겨 저기 방구석으로 옮겨 놓는 거예요. 그리곤 아기 이불이 있던 자리에 누웠습니다. 산이는 신이나서 손발을 버둥거렸습니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굴러도 봅니다. 그리고는 아기 가 베고 있던 배게를 슬쩍 빼앗아 베고 눕습니다. 아기 배게에서 젖 냄새도 나고 땀 냄새도 났습니다. 산이는 발로 아기 이부자리를 더 밀어 놉니다. 가만히 아기 배게를 베고 있으니 잠이 왔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실 때였습니다. 산이도 오줌이 마려웠습니다. 그러나 산이는 화장실에 가지 않고, 입고 있던 바지에 그냥 오줌을 쌌습니다.
˝어머나, 얘 좀 봐.˝
엄마는 아기 기저귀를 갈다 말고, 산이 옷부터 벗겼습니다. 그러자 산이는 아기를 보고 ´메롱!´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엄마는 얼른 산이 옷을 갈아 입히고 나서 다시 아기한테 가서는,
˝아유, 예쁜 우리 아기.˝
하면서 아기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셨습니다. 산이는 쌓여있던 아기 기저귀를 발로 툭 차서 흐트러뜨리고는 방을 나가버렸습니다. ´퍽´ 애꿎은 장난감도 던졌습니다.

그 다음날, 모처럼 산이를 데리고 밖에 나갔던 아버지가 급히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여보, 이리 좀 와봐.˝
˝왜요?˝
˝얘, 똥 쌌어.˝
˝어머머.˝
엄마가 부리나케 뛰어 왔습니다. 엄마가 산이를 번쩍 들어올려 안고는 목욕탕으로 갔습니다. 엉덩이는 뭉글거렸지만, 엄마 품에 안기니 너무 좋았습니다. 엄마는 산이를 씻기면서,
˝산아, 네 동생 예쁘지 않니?˝
하고 물으십니다.
˝아니요, 예뻐요.˝
˝미울 때는 없구?˝
˝...... 조금 미울 때도 있어요.˝
˝왜?˝
엄마가 산이 몸에 비누칠을 하며 물으십니다.
˝엄마랑 아버진 아기만 예뻐하잖아요.˝
산이가 입을 삐죽거립니다.
˝아니야. 엄만 산이도 예뻐.˝
˝치! 엄만 맨날 동생만 데리고 자고, 아버지도 맨날 맨날 동생만 안아주면서.˝
˝그래?˝
˝쟤는 옷에다 막 오줌싸고 똥 싸서 냄새나는데도, 엄만 ´에구, 예쁜 우리 아기´ 이러구...˝
산이는 엄마의 목소리와 표정을 흉내내어 말합니다.
˝그건 말야. 너 처음 태어날 때도 그랬어.˝
˝언제요?˝
˝처음에. 너도 아기 만할 때.˝
˝에이, 내가 언제요.˝
˝너도 엄마 뱃속에서 금방 나왔을 땐 맨날 엄마 젖만 먹고, 기저귀에다 오줌싸고 똥싸고 그랬어.˝
˝피! 거짓말.˝
˝보여줄까?˝
엄마는 산이 몸에 묻은 비누거품을 씻고, 큰 수건으로 산이를 둘둘 말아서 안고 나왔습니다. 산이는 엄마 가슴에 얼굴을 대보았습니다. 엄마의 심장소리가 쿵! 쿵! 들렸습니다. 엄마 품은 따뜻하고도 포근합니다.
엄마는 옷장을 뒤져서 사진첩을 꺼냈습니다. 이리 저리 뒤적이더니, 산이를 오라고 손짓합니다.
˝산아, 이거 봐.˝
거기에는 동생 사진이 잔뜩 있었습니다. 젖 먹는 사진도 있고, 누워 자는 사진도 있었습니다.
˝이건 전부 동생이잖아요.˝
˝산이 넌데?˝
˝이게 어떻게 나예요?˝
˝산이, 너 맞아. 너 아기 때 찍은 거야. 봐. 여기 사진에 있는 이불이랑 옷이랑 지금 네 동생 거랑 다르잖아.˝
산이는 사진을 사진첩에서 뽑아 가까이 들여다봤습니다. 동생 한 번 쳐다보고, 사진 한 번 보고. 지금 동생은 곰돌이가 있는 내복을 입고 있는데, 사진 속의 아기는 그렇지 않았어요. 배게도 달랐습니다. 가만 보니, 입도 동생처럼 크지 않았습니다.
˝이거 정말 나예요?˝
˝응.˝
˝나도 엄마 젖 먹었어요?˝
˝그럼.˝
˝나도 기저귀에 똥 쌌어요?˝
˝그럼. 그것도 아주 많이 쌌지.˝
˝으으으.˝
˝그때도 엄마가 ´아유, 예쁜 우리 아기´ 하면서 이렇게 산이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지.˝
그렇게 말하면서 엄마가 산이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셨습니다.
˝엄마 젖 많이 먹고, 우리 산이 이렇게 쑥쑥 컸지.˝
˝그래두 쟤는 젖 말고 다른 거 먹으면 안 돼요?˝
˝왜?˝
˝맨날 쟤만 엄마가 안아주니까.˝
엄마는 산이를 안아줍니다. 꼭 끌어안고는 손으로 산이 등을 어루만집니다.
˝우리 산이 정말 많이 컸구나.˝
˝히∼.˝
산이가 해죽 웃습니다. 엄마 품은 참으로 포근합니다.
산이는 살그머니 아기가 누워있는 방으로 갑니다. 가만히 아기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아기의 뺨을 살짝 쓰다듬어 보았어요. 너무 너무 보드랍습니다.
´새근새근´
아기 숨소리가 들립니다. 이번에는 아기 몸에 귀를 대보았습니다.
´콩닥! 콩닥!´
심장소리가 들려요. 산이는 다시 아기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가만 보니 입은 좀 크지만, 정말 귀엽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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