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돌아! 오늘은 소 배가 좀 이상하다. 밖에 몰고 나가진 말고 네가 풀을 뜯어다가 넣어 주도록 해라.”
아버지는 바지게에다 괭이를 담아 지고 나가시면서 돌이를 보고 말했다.
그러나 돌이는 방바닥에다 배를 붙이고 누워 있으면서 아무 대꾸도 안했다.
아버지가 미워 죽겠는 것이다.
돌이는 누나가 베던 베개에다 볼을 대고 누워서 울기 시작했다.
“누나! 누나! 누나는 우리 집 생각 안 나나?”
차디찬 눈물이 귀 안으로 들어갔다.
“누나야! 나는 누나가 보고 싶어서 꼭 죽겠어.”
눈물이 연달아서 흘러내렸다.
귀 안이 제법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돌이는 때묻은 베개에다 코를 대고서 또 숨을 들이켜봤다.
누나의 냄새가 그대로 났다.
돌이는 두 팔로 베개를 꼭 껴안았다.
“누나!”
눈물이 코 안으로도 새어 내려오는지 콧등이 찡하고 아프다.
코를 훌쩍거려 보려니까 코 안이 막혀서 잘 훌쩍여지지를 않았다.
돌이의 집은 깊은 산중에 있었다.
깊은 산중 중에서도 더 깊은 산중.
더 깊은 산중 중에서도 더 더 깊은 산중의 중턱에 있는 외딴집이 돌이네가 사는 집이었다.
돌이네 집은 이웃이 없다.
그끄저께 누나가 산너머로 시집을 갔으니까 식구도 아버지하고 돌이하고 단둘뿐이다.
어머니는 돌이가 세 살 나던 때 돌아가셨다니까 돌이는 어머니가 어떻게 생겼는지, 말소리가 어떠했는지 모른다.
무덤은 언덕 너머에 있는 큰 바위 밑에 있기 때문에, 그 앞을 지나칠 땐 한 번씩 쳐다보고 가는 것뿐이다.
돌이네 집은 이웃이 없어서 참 심심하다.
만날 보는 하늘, 만날 보는 산, 만날 보는 나무, 만날 보는 짐승들.
여엉 어떤 때는 못 견딜 듯이 심심해서 한달음에 산꼭대기까지 달려 올라간다.
그러나 산너머에 산이 있고 또 그 산너머에도 산이 있을 뿐, 사람이 사는 집은 한 군데도 보이지 않았다.
돌이네 집 식구는 화전을 갈아먹고 사는 화전민(火田民)이었다.
산에다 불을 지르고서, 그 자리를 쪼아 감자를 심고 감자를 거두고 해서 살아가는 가난한 농삿집이었다.
그런데 돌이네 집에는 다른 가축은 없어도, 누렁 암소 한 마리가 있다.
새끼를 배어서 곧 낳게 되어 있다.
새끼를 배게 한다고, 아버지는 열 달 전 몇 십리 밖의 먼 산골 마을로 소를 몰고 갔다오신 일이 있었던 것이다.
만날 보는 하늘, 만날 보는 산, 만날 보는 나무, 만날 보는 짐승뿐이었지만, 돌이에게는 단 하나 사람의 말소리로서 대해 주는 동무가 있었다.
그것은 메아리였다.
“오-”
하고 목을 뽑아 외쳐보면, 산 저쪽에서도
“오-”
하고 대답을 해준다.
“내 산아-”
하고 부르면,
“내 산아-”
하고 대답해준다.
“잘 잤나-”
하고 물으면,
“잘 잤나-”
하고 되물어 준다.
“메아리는 흉내쟁이-”
하면,
“메아리는 흉내쟁이-”
하고 고대로 또 흉내를 내면서 돌이하고 장난을 하는 것이다.
돌이는 요 며칠 동안 메아리하고의 장난도 끊어 버렸다.
누나 생각이 나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진 것이었다.
그끄저께의 전날 밤이었다.
“돌아 자니?”
“아아니.”
아버지는 종일 감자 캐느라 고단해서 그런지, 코를 연해 골고만 있다. 이번에는 돌이가 먼저 물었다.
“누나!”
“응!”
“왜 자느냐고 물었어?”
“저…….”
“응?”
“난 내일 간다.”
“어디루?”
“시집가는 거래.”
“시집이 뭐야?”
“나두 몰라. 남의 집으루 가는 거래.”
“남의 집으루?”
“남의 집이지만 아버지가 가라시니까 가야 할거야.”
누나는 열다섯 살이었다.
아버지는 머리를 목침 밑으로 툭 떨어뜨리더니만 한참 숨을 안 쉬고 있었다. 자다가 몸부림을 치는 모양이었다. 돌이는 밤내 잠을 자지 않았다. 누나도 가만가만 울면서 날이 부예 오도록 안 자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밥을 먹고 나니까 어떤 낯선 남자 둘이 찾아왔다. 하나는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고, 하나는 눈이 툭 불거진 젊은 사나이였다.
나이 먹은 사람은 보자기에서 누나에게 입힐 물들인 새 옷과 비녀라는 것을 내놓았다.
그리고 종이에다 싼 것을 펴주면서 얼굴에다 바르라고 했다.
아버지가 가르쳐 주는 대로 가루를 얼굴에다 발랐다.
누나의 얼굴은 보얘서 보기가 얄궂었다.
아버지는 누나의 머리를 틀어서 뒤에다가 비녀로 쪽을 찌어 주었다.
감자밥 한 그릇씩을 먹고 나서, 두 손님과 아버지, 누나, 네 사람은 재를 넘어갔다. 누나는 집을 나가면서 울었다.
아무도 울지 마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나가 입은 푸른 저고리와 붉은 치마에서는 무슨 이상한 냄새가 났다.
걸을 땐 워석워석 소리도 났다.
“나 저녁때쯤 되면 돌아올 테니까, 넌 그새 소 몰고 나가서 풀이나 뜯기고 있어라.”
오래간만에 두루마기를 입고서 같이 나가는 아버지는 돌이를 돌아다보고서 말했다.
그러나 돌이는 대답을 하지 않고 일부러 옆만 돌아보고 있었다.
누나를 가게 내버려두는 아버지가 미워서였다.
네 사람은 서쪽 산 갈포막진 비탈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돌이의 눈엔 붉은 치마를 입은 누나만 똑똑하게 보였다.
산마루에 올라서더니만, 사람들의 걸음은 조금 느린 것 같았다.
누나는 첨으로 고개를 돌려 집을 내려다봤다. 돌이는 눈물이 막 쏟아지는 사이, 그만 누나를 놓치고 말았다.
눈물을 닦고 나서 보니, 사람들은 고개 저쪽으로 넘어가고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돌이는 그제야 뛰어서 고갯마루까지 올라갔다.
숨이 차서 길에 엎어질 것 같았지만, 참고서 자꾸 허우적거려 올라갔다.
그래도 돌이는 쉬지 않고 고갯마루까지 올라갔다.
내려다봤지만 아무데도 사람 가는 데는 없었다.
돌이는 양 옆을 돌아다봤다.
아무도 없어서 맘놓고 울기가 좋았다.
그러고는 돌멩이를 집어 팔매를 치면서 길게 소리를 질렀다.
“에끼, 망할 놈의 새끼들아-”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신 조금 있으니까, 같은 소리가 메아리되어서 이편 쪽으로 되돌아왔다.
“에끼, 망할 놈의 새끼들아-”
메아리는 참으로 아무 때나 얄밉다.
누나를 데리고 간 그 낯선 두 사람을 보고 욕을 한 건데, 메아리는 그런 사정도 모르고 흉내만 내는 것이다.
‘에끼, 망할 놈의 새끼’란 것은, 소가 보습을 잘 안 당길 때 아버지가 쓰는 욕이었다. 그보다 더 시원한 욕이 있었으면 그것을 썼겠지만 돌이에게는 아는 욕이 그것밖에 없었다.
돌이는 오래도록 울다간 팔매질을 하고 또 울다간 팔매질을 하며 돌아왔다.
저녁 늦게 아버지는 돌아왔지만 돌이는 저녁도 안 먹고 그대로 잤다.
그전 같으면 언제든지 아버지가 일하는 밭에 따라나갔던 것이지만, 인제부터는 아버지를 따라나가지 않는 돌이였다.
아버지가 없을 때면 돌이는 언제고 혼자 남아서 울었다.
누나가 베던 그 때묻은 베개를 안고 누나의 냄새를 맡아 가면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파랑 저고리도 안 입고, 붉은 치마도 안 입고, 머리도 그 이상하게 틀어 쪽찐, 그런 누나가 아닌 누나가 보고 싶어서 죽을 것만 같았다.
돌이는 아버지가 감자 캐러 나가고 난 뒤, 혼자 베개를 안고서 울고 울고 하다가 소는 그대로 둔 채 재를 넘어갔다.
누나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돌이는 안 걸어 보던 길을 자꾸만 내려갔다.
어쩌면 잃어질 듯한 가느다란 산길이었다.
몇 번 재를 넘었는지, 몇 번 산모롱이를 돌았는지 몰랐다.
그러나 아직은 사람이 사는 집이 나서지 않았다.
돌이는 누나가 간 곳이 얼마나 먼데인가를 물어 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싶었지만, 지금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돌이는 돌팍 위에 앉아서 다리를 쉬었다.
이럴 때 어디서 누나가 뛰어나오면서
“돌아……!”
하고 불러 준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싶었지만, 누나는 나타나 주지 않았다.
가도 가도 산이었다.
어디서나 보는 산이고, 어디서나 보는 나무요, 짐승뿐이었다.
그러구러 날이 저물었다.
돌이는 무서운 생각이 났다.
되돌아서려니까 새들이 잘 집에 드느라고, 여기저기서 날개를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돌이는 혼자 울면서 걸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길이 잘 안 보일 것 같아서, 돌이는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산모롱이가 몇 개나 남았는지 모르는데, 날이 깜빡 어두워졌다.
돌이는 울면서 기었다.
때로는 움푹 발이 빠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나뭇가지가 찌르기도 했다.
돌이는 그래도 쉬지 않고 길을 더듬었다.
사람의 냄새를 맡고서 이런 때 호랑이라도 나타나면 어떡하나!
돌이는 인제는 걷는 것이, 앞으로 가는 것인지 뒤로 가는 것인지 분별이 되지 않았다.
돌이는 막상 더 걸을 수가 없을 만큼 어두워지자, 그만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다.
이럴 때, 눈앞에 쳐다보이는 산마루 위에서 사람의 소리가 나면서 횃불이 보였다.
“돌아- 돌아-”
맺혀지도록 외치고 있는 아버지의 슬픈 목소리였다. 돌이는 집에까지 어떻게 업혀 왔는지 몰랐다. 앞에서 불이 밝았다 어두웠다 하고, 아버지의 등에서 퀴퀴한 땀 냄새가 나던 것밖에 기억되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에 돌이는 겨우 눈을 떴다.
“돌아, 정신이 나니?”
“아버지!”
“그새 네 동생이 하나 났어!”
“아버지! 내 동생이?”
벌떡 일어나자, 아버지는 돌이를 안으면서 외양간을 가리켰다.
“조금 전에 우리 소가 새끼를 낳았어!”
“응? 아버지!”
돌이는 밖으로 쫓아나갔다.
외양간 안에 조그마한 새끼 소 한 마리가 누워 있는데, 어미 소는 연해 혀로 핥아 주고 있다.
“아버지, 어쩌면 저렇게 예쁘장스레 생긴 새끼 소가?”
“인제 저건 네 거야. 큰 소는 내 거구.”
돌이는 외양간 안으로 기어 들어가서 송아지를 안아 봤다.
큰 소는 코똥을 피잉 뀌면서 돌이를 떠받아 내려고 했다.
그래도 돌이는 송아지의 몸에서 손을 떼지는 않았다. 털이 물에 젖어서 뜨뜻무리했다. 돌이는 낮에 소를 굶겼던 일을 후회했다.
“인젠 두고 나와! 너무 가까이 있으면 어미가 안 좋게 생각하니깐.”
아버지가 나오라고 했다.
돌이는 그 예쁘장하게 생긴 송아지의 입에다 손을 한번 더 대어보고는 밖으로 나왔다.
돌이는 밖에 나와서 비로소 외양간 앞에 등불이 켜 달려 있고, 앞에 물그릇 놓인 소반이 놓여 있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 저 물은 뭘 하는 거지?”
“송아지 잘 크라고 비는 물이야.”
인제는 식구 하나가 늘었다.
돌이는 누나가 시집가던 전날 밤처럼, 날이 새도록 잠을 자지 않았다.
이번에 너무도 좋고 좋아서였다.
아침에 잠깐 잠을 들였다가 나가서 보니, 송아지는 아버지가 입던 헌 저고리를 덮어 입고서 외양간 안을 쫓아 다니고 있었다.
털이 빨갰다. 돌이는 아버지가 지어 주는 감자밥을 가지고 가서 송아지한테 먹여 주려고 했다. 그러나 큰 소는 송아지를 만질까 해서 그러는지 뿔을 가지고 떠받으려고 했다.
돌이는 밥을 먹고 나서, 누나가 넘어가던 산마루로 올라가서 길게 소리를 질렀다.
“내 산아-”
한참만에 메아리가 “내 산아-”하고 대답을 해왔다.
“우리 집엔 새끼 소 한 마리가 났어-”
“우리 집엔 새끼 소 한 마리가 났어-”
“내 동생야-”
“내 동생야-”
“허허허-”
“허허허-”
“너두 좋니-”
“너두 좋니-”
메아리는 저도 반가운지 같이 흉내를 내어 장난한다.
돌이는 메아리가 누나 있는 곳에도 가서, 그대로 이 소식을 전해 줄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아버지는 바지게에다 괭이를 담아 지고 나가시면서 돌이를 보고 말했다.
그러나 돌이는 방바닥에다 배를 붙이고 누워 있으면서 아무 대꾸도 안했다.
아버지가 미워 죽겠는 것이다.
돌이는 누나가 베던 베개에다 볼을 대고 누워서 울기 시작했다.
“누나! 누나! 누나는 우리 집 생각 안 나나?”
차디찬 눈물이 귀 안으로 들어갔다.
“누나야! 나는 누나가 보고 싶어서 꼭 죽겠어.”
눈물이 연달아서 흘러내렸다.
귀 안이 제법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돌이는 때묻은 베개에다 코를 대고서 또 숨을 들이켜봤다.
누나의 냄새가 그대로 났다.
돌이는 두 팔로 베개를 꼭 껴안았다.
“누나!”
눈물이 코 안으로도 새어 내려오는지 콧등이 찡하고 아프다.
코를 훌쩍거려 보려니까 코 안이 막혀서 잘 훌쩍여지지를 않았다.
돌이의 집은 깊은 산중에 있었다.
깊은 산중 중에서도 더 깊은 산중.
더 깊은 산중 중에서도 더 더 깊은 산중의 중턱에 있는 외딴집이 돌이네가 사는 집이었다.
돌이네 집은 이웃이 없다.
그끄저께 누나가 산너머로 시집을 갔으니까 식구도 아버지하고 돌이하고 단둘뿐이다.
어머니는 돌이가 세 살 나던 때 돌아가셨다니까 돌이는 어머니가 어떻게 생겼는지, 말소리가 어떠했는지 모른다.
무덤은 언덕 너머에 있는 큰 바위 밑에 있기 때문에, 그 앞을 지나칠 땐 한 번씩 쳐다보고 가는 것뿐이다.
돌이네 집은 이웃이 없어서 참 심심하다.
만날 보는 하늘, 만날 보는 산, 만날 보는 나무, 만날 보는 짐승들.
여엉 어떤 때는 못 견딜 듯이 심심해서 한달음에 산꼭대기까지 달려 올라간다.
그러나 산너머에 산이 있고 또 그 산너머에도 산이 있을 뿐, 사람이 사는 집은 한 군데도 보이지 않았다.
돌이네 집 식구는 화전을 갈아먹고 사는 화전민(火田民)이었다.
산에다 불을 지르고서, 그 자리를 쪼아 감자를 심고 감자를 거두고 해서 살아가는 가난한 농삿집이었다.
그런데 돌이네 집에는 다른 가축은 없어도, 누렁 암소 한 마리가 있다.
새끼를 배어서 곧 낳게 되어 있다.
새끼를 배게 한다고, 아버지는 열 달 전 몇 십리 밖의 먼 산골 마을로 소를 몰고 갔다오신 일이 있었던 것이다.
만날 보는 하늘, 만날 보는 산, 만날 보는 나무, 만날 보는 짐승뿐이었지만, 돌이에게는 단 하나 사람의 말소리로서 대해 주는 동무가 있었다.
그것은 메아리였다.
“오-”
하고 목을 뽑아 외쳐보면, 산 저쪽에서도
“오-”
하고 대답을 해준다.
“내 산아-”
하고 부르면,
“내 산아-”
하고 대답해준다.
“잘 잤나-”
하고 물으면,
“잘 잤나-”
하고 되물어 준다.
“메아리는 흉내쟁이-”
하면,
“메아리는 흉내쟁이-”
하고 고대로 또 흉내를 내면서 돌이하고 장난을 하는 것이다.
돌이는 요 며칠 동안 메아리하고의 장난도 끊어 버렸다.
누나 생각이 나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진 것이었다.
그끄저께의 전날 밤이었다.
“돌아 자니?”
“아아니.”
아버지는 종일 감자 캐느라 고단해서 그런지, 코를 연해 골고만 있다. 이번에는 돌이가 먼저 물었다.
“누나!”
“응!”
“왜 자느냐고 물었어?”
“저…….”
“응?”
“난 내일 간다.”
“어디루?”
“시집가는 거래.”
“시집이 뭐야?”
“나두 몰라. 남의 집으루 가는 거래.”
“남의 집으루?”
“남의 집이지만 아버지가 가라시니까 가야 할거야.”
누나는 열다섯 살이었다.
아버지는 머리를 목침 밑으로 툭 떨어뜨리더니만 한참 숨을 안 쉬고 있었다. 자다가 몸부림을 치는 모양이었다. 돌이는 밤내 잠을 자지 않았다. 누나도 가만가만 울면서 날이 부예 오도록 안 자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밥을 먹고 나니까 어떤 낯선 남자 둘이 찾아왔다. 하나는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고, 하나는 눈이 툭 불거진 젊은 사나이였다.
나이 먹은 사람은 보자기에서 누나에게 입힐 물들인 새 옷과 비녀라는 것을 내놓았다.
그리고 종이에다 싼 것을 펴주면서 얼굴에다 바르라고 했다.
아버지가 가르쳐 주는 대로 가루를 얼굴에다 발랐다.
누나의 얼굴은 보얘서 보기가 얄궂었다.
아버지는 누나의 머리를 틀어서 뒤에다가 비녀로 쪽을 찌어 주었다.
감자밥 한 그릇씩을 먹고 나서, 두 손님과 아버지, 누나, 네 사람은 재를 넘어갔다. 누나는 집을 나가면서 울었다.
아무도 울지 마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나가 입은 푸른 저고리와 붉은 치마에서는 무슨 이상한 냄새가 났다.
걸을 땐 워석워석 소리도 났다.
“나 저녁때쯤 되면 돌아올 테니까, 넌 그새 소 몰고 나가서 풀이나 뜯기고 있어라.”
오래간만에 두루마기를 입고서 같이 나가는 아버지는 돌이를 돌아다보고서 말했다.
그러나 돌이는 대답을 하지 않고 일부러 옆만 돌아보고 있었다.
누나를 가게 내버려두는 아버지가 미워서였다.
네 사람은 서쪽 산 갈포막진 비탈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돌이의 눈엔 붉은 치마를 입은 누나만 똑똑하게 보였다.
산마루에 올라서더니만, 사람들의 걸음은 조금 느린 것 같았다.
누나는 첨으로 고개를 돌려 집을 내려다봤다. 돌이는 눈물이 막 쏟아지는 사이, 그만 누나를 놓치고 말았다.
눈물을 닦고 나서 보니, 사람들은 고개 저쪽으로 넘어가고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돌이는 그제야 뛰어서 고갯마루까지 올라갔다.
숨이 차서 길에 엎어질 것 같았지만, 참고서 자꾸 허우적거려 올라갔다.
그래도 돌이는 쉬지 않고 고갯마루까지 올라갔다.
내려다봤지만 아무데도 사람 가는 데는 없었다.
돌이는 양 옆을 돌아다봤다.
아무도 없어서 맘놓고 울기가 좋았다.
그러고는 돌멩이를 집어 팔매를 치면서 길게 소리를 질렀다.
“에끼, 망할 놈의 새끼들아-”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신 조금 있으니까, 같은 소리가 메아리되어서 이편 쪽으로 되돌아왔다.
“에끼, 망할 놈의 새끼들아-”
메아리는 참으로 아무 때나 얄밉다.
누나를 데리고 간 그 낯선 두 사람을 보고 욕을 한 건데, 메아리는 그런 사정도 모르고 흉내만 내는 것이다.
‘에끼, 망할 놈의 새끼’란 것은, 소가 보습을 잘 안 당길 때 아버지가 쓰는 욕이었다. 그보다 더 시원한 욕이 있었으면 그것을 썼겠지만 돌이에게는 아는 욕이 그것밖에 없었다.
돌이는 오래도록 울다간 팔매질을 하고 또 울다간 팔매질을 하며 돌아왔다.
저녁 늦게 아버지는 돌아왔지만 돌이는 저녁도 안 먹고 그대로 잤다.
그전 같으면 언제든지 아버지가 일하는 밭에 따라나갔던 것이지만, 인제부터는 아버지를 따라나가지 않는 돌이였다.
아버지가 없을 때면 돌이는 언제고 혼자 남아서 울었다.
누나가 베던 그 때묻은 베개를 안고 누나의 냄새를 맡아 가면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파랑 저고리도 안 입고, 붉은 치마도 안 입고, 머리도 그 이상하게 틀어 쪽찐, 그런 누나가 아닌 누나가 보고 싶어서 죽을 것만 같았다.
돌이는 아버지가 감자 캐러 나가고 난 뒤, 혼자 베개를 안고서 울고 울고 하다가 소는 그대로 둔 채 재를 넘어갔다.
누나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돌이는 안 걸어 보던 길을 자꾸만 내려갔다.
어쩌면 잃어질 듯한 가느다란 산길이었다.
몇 번 재를 넘었는지, 몇 번 산모롱이를 돌았는지 몰랐다.
그러나 아직은 사람이 사는 집이 나서지 않았다.
돌이는 누나가 간 곳이 얼마나 먼데인가를 물어 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싶었지만, 지금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돌이는 돌팍 위에 앉아서 다리를 쉬었다.
이럴 때 어디서 누나가 뛰어나오면서
“돌아……!”
하고 불러 준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싶었지만, 누나는 나타나 주지 않았다.
가도 가도 산이었다.
어디서나 보는 산이고, 어디서나 보는 나무요, 짐승뿐이었다.
그러구러 날이 저물었다.
돌이는 무서운 생각이 났다.
되돌아서려니까 새들이 잘 집에 드느라고, 여기저기서 날개를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돌이는 혼자 울면서 걸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길이 잘 안 보일 것 같아서, 돌이는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산모롱이가 몇 개나 남았는지 모르는데, 날이 깜빡 어두워졌다.
돌이는 울면서 기었다.
때로는 움푹 발이 빠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나뭇가지가 찌르기도 했다.
돌이는 그래도 쉬지 않고 길을 더듬었다.
사람의 냄새를 맡고서 이런 때 호랑이라도 나타나면 어떡하나!
돌이는 인제는 걷는 것이, 앞으로 가는 것인지 뒤로 가는 것인지 분별이 되지 않았다.
돌이는 막상 더 걸을 수가 없을 만큼 어두워지자, 그만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다.
이럴 때, 눈앞에 쳐다보이는 산마루 위에서 사람의 소리가 나면서 횃불이 보였다.
“돌아- 돌아-”
맺혀지도록 외치고 있는 아버지의 슬픈 목소리였다. 돌이는 집에까지 어떻게 업혀 왔는지 몰랐다. 앞에서 불이 밝았다 어두웠다 하고, 아버지의 등에서 퀴퀴한 땀 냄새가 나던 것밖에 기억되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에 돌이는 겨우 눈을 떴다.
“돌아, 정신이 나니?”
“아버지!”
“그새 네 동생이 하나 났어!”
“아버지! 내 동생이?”
벌떡 일어나자, 아버지는 돌이를 안으면서 외양간을 가리켰다.
“조금 전에 우리 소가 새끼를 낳았어!”
“응? 아버지!”
돌이는 밖으로 쫓아나갔다.
외양간 안에 조그마한 새끼 소 한 마리가 누워 있는데, 어미 소는 연해 혀로 핥아 주고 있다.
“아버지, 어쩌면 저렇게 예쁘장스레 생긴 새끼 소가?”
“인제 저건 네 거야. 큰 소는 내 거구.”
돌이는 외양간 안으로 기어 들어가서 송아지를 안아 봤다.
큰 소는 코똥을 피잉 뀌면서 돌이를 떠받아 내려고 했다.
그래도 돌이는 송아지의 몸에서 손을 떼지는 않았다. 털이 물에 젖어서 뜨뜻무리했다. 돌이는 낮에 소를 굶겼던 일을 후회했다.
“인젠 두고 나와! 너무 가까이 있으면 어미가 안 좋게 생각하니깐.”
아버지가 나오라고 했다.
돌이는 그 예쁘장하게 생긴 송아지의 입에다 손을 한번 더 대어보고는 밖으로 나왔다.
돌이는 밖에 나와서 비로소 외양간 앞에 등불이 켜 달려 있고, 앞에 물그릇 놓인 소반이 놓여 있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 저 물은 뭘 하는 거지?”
“송아지 잘 크라고 비는 물이야.”
인제는 식구 하나가 늘었다.
돌이는 누나가 시집가던 전날 밤처럼, 날이 새도록 잠을 자지 않았다.
이번에 너무도 좋고 좋아서였다.
아침에 잠깐 잠을 들였다가 나가서 보니, 송아지는 아버지가 입던 헌 저고리를 덮어 입고서 외양간 안을 쫓아 다니고 있었다.
털이 빨갰다. 돌이는 아버지가 지어 주는 감자밥을 가지고 가서 송아지한테 먹여 주려고 했다. 그러나 큰 소는 송아지를 만질까 해서 그러는지 뿔을 가지고 떠받으려고 했다.
돌이는 밥을 먹고 나서, 누나가 넘어가던 산마루로 올라가서 길게 소리를 질렀다.
“내 산아-”
한참만에 메아리가 “내 산아-”하고 대답을 해왔다.
“우리 집엔 새끼 소 한 마리가 났어-”
“우리 집엔 새끼 소 한 마리가 났어-”
“내 동생야-”
“내 동생야-”
“허허허-”
“허허허-”
“너두 좋니-”
“너두 좋니-”
메아리는 저도 반가운지 같이 흉내를 내어 장난한다.
돌이는 메아리가 누나 있는 곳에도 가서, 그대로 이 소식을 전해 줄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