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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품]
드디어 눈입니다. 옥수수 튀긴 것의 곱이나 될 것 같은 눈송이가 무수히 날아와 쌓입니다. 성아는 눈송이가 날아내리는 우유빛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망아지처럼 훌쭉훌쭉 뜁니다. 금세 눈은 발목이 빠질만큼 쌓였습니다. 이렇게 되길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릅니다. 성아는 운동화를 졸라맸습니다.
<고 녀석 오늘은 꼼짝 못할테지.>
생각하니 신이 납니다. 쏜살같이 집을 뛰쳐 나갑니다.허벌터벌 뒷산을 추어오릅니다. 발목 위가 눈 속에 푹푹 파묻힙니다. 머리 위도 하얗게 눈이 쌓입니다. 어깨도 눈입니다. 그래서 더욱 신이 납니다. 운동화 속엔 벌써 녹은 눈물이 질퍽하게 배었습니다. 그럴 수록 걸음은 한층 빨라집니다. 이내 까칫골의 서쪽 등성 마루에 올라 섰습니다. 까칫골이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솜이불을 덮은듯 하얗습니다. 막막하기만 합니다.
˝으웍 워어이!˝
성아는 목청껏 소리를 뽑았습니다. 눈을 인 소나무에서 까치 한 마리가 파드득 날아왔습니다. 우유빛 하늘 속으로 까맣게 사라졌습니다. 그뿐, 다시 조용합니다. 골짜기는 하나 가득 눈 뿐입니다. 움직이는 것도 모두 소리 없이 내려와 쌓이는 눈 뿐입니다.
˝토끼야아--!˝
이번엔 목청껏 토끼를 불러 봅니다.
˝토끼야아--!˝
가늘게 메아리가 돌아 왔습니다.
˝토끼야 나오너라! 네 아기가 기다리고 있다아! 춥지도 않다아! 먹이도 많이 있다아! 얼마든지 편안하게 해주마!˝
성아는 목청껏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역시 대답은 메아리가 해 줬습니다. 좀 무서워집니다. 갑자기 듣지도 보지도 못한 깊고 깊은 산중에 내던져진 것 같은 마음입니다.
˝토끼야--˝
대답은 커녕 이젠 메아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소리가 작았는지 무서워서 못들었는지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토끼야아--!˝
소리치고 나니 이번엔 왈칵 겁이 납니다. 성아의 마음을 몰라주는 토끼가 야속하다는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그저 무섭습니다. 길을 분간할 수 없는 산비탈을 재빨리 되돌아 내려 갑니다. 뭐가 뒤따라 오는 것 같아 머리 끝이 쭈삣합니다. 뛰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그만 쑥 눈덩에 빠집니다. 쑤욱 자꾸 빠져 들어 갑니다. 목청껏 비명을 지릅니다.
˝아얏, 사람 살려요!˝
그 바람에 번쩍 눈을 뜹니다.
˝얘야, 너 또 꿈을 꿨구나 응?˝
엄마가 걱정스럽게 내려다 보고 전신에 식은 땀이 내뱄습니다. 성아는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너 또 토끼 때문에 꿈을 꿨지? 그러지 말고 그걸 삼촌 집에 줘 버리자꾸나. 그것 때문에 요즘 네가 하는 걸 보니 걱정이구나. 고집 부리지 말고, 약에 쓰시게 응?˝
˝싫어요. 싫어, 싫어!˝
성아는 와락 고함을 지릅니다. 세차게 어깨까지 흔듭니다.
˝온 얘두, 너 대체 어쩔려구 이러니? 내 곧 삼촌한테 연락하겠다. 고분고분 내드려.˝
˝싫어! 안 돼. 절대 안 돼!˝
성아는 횅하니 밖으로 내빼면서 더욱 소리를 높였습니다. 해가 저만치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한 시간은 더 잠들었던 모양입니다. 오전 내 너무 피로했던가 봅니다. 성아는 토끼장에서 토끼를 꺼냈습니다. 새끼 토끼도 이젠 영 지친 모양입니다. 별로 퍼덕이지도 않습니다. 축대에 놓아둔 올가미를 쥡니다.
˝그만둬라 그만둬. 그런다고 너한테 잡혀 줄 토끼가 있을성 싶니! 어림도 없다. 아버지한테 혼나기 전에 집에 가만히 있어요. 응!˝
따라 나오시면서 엄마는 애원조 입니다. 그렇지만 성아는 이미 집 밖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가고 있습니다.
<안 돼요, 싫어요>를 속으로 수없이 되뇌입니다.
성아는 또 까칫골로 향해 재우쳐 오릅니다. 오전의 피로는 이제 깨끗이 풀렸습니다.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볕살이 흐릿합니다. 찬바람이 귓쌈을 지나갑니다.
<언제 눈이 올텐가 씨--.>
침을 ´퇴´ 뱉으며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눈이 와도 조금전의 꿈 생각을 하니 영 걱정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꼭 잡아야지.>
성아는 새끼 토끼를 꼭 껴안으며 생각합니다.
지난 화요일의 일입니다.
성아네 학교 4, 5, 6학년 아이들이 난로의 땔감을 주우러 까칫골로 갔습니다. 큰 길을 벗어나 등성 마루 아래로 접어들었을 때, 5학년 박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조금만 가면 까칫골이야. 오늘은 꿩 먹고 알 먹는 일을 해보자. 땔 감도 줍고 토끼 사냥도 하잔 말이다. 내가 시킨대로 까칫골을 포위해. 그리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면서 포위망을 좁혀. 물론 나무를 주우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 토끼를 발견하거든 고함을 지르면서 빠른 동작으로 아래 쪽으로 몰아라. 토끼가 혼이 빠지게 고함을 질러야 해.˝
아이들은 환성을 질렀습니다. 손뼉을 치는 아이, 신끈을 조르는 아이, 손바닥에 침을 뱉는 아이, 주머니에 돌멩이를 주워 넣는 아이……, 잠시동안 법석을 부렸습니다. 박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늘어섰습니다. 까칫골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아래로 내려 가면서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 갔습니다. 성아는 지난해 겨울, 졸업반 6학년 형님들이 이렇게해서 잡은 커단 토끼를 안고 뽑내던 일을 기억합니다.
<오늘은 내가 잡았으면-->
성아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토끼가 숨었을 듯한 솔포기에 돌멩이를 던지며
˝으웍, 워어이!˝
소리를 지릅니다. 땔나무 주울 생각은 통 없습니다. 빈 가방을 휘휘 내두르며 노루처럼 껑충껑충 아래 쪽으로 내려 뜁니다.
˝야아--, 토끼다. 토끼다! 잡아라, 잡아라 야아, 야아!˝
성아가 선 맞은편 줄기에서 갑자기 어지러운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성아는 우뚝 멈춰서서 고개를 빼며 보았습니다. 정말 토끼입니다. 솔포기에 가렸다 나왔다 하면서 도망쳐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쪽을 향해 아이들이 사방에서 벌떼처럼 뛰어 내립니다. 선생님도 아이들 속에 어울리셨습니다. 고함을 지릅니다. 돌멩이가 쏟아집니다. 성아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고, 쫓기는 노루처럼 아래로 뛰어내립니다.
˝잡아라! 야아, 야아 - ! 두 마리다 두 마릿!˝
고함 소리가 골짜기를 찌렁찌렁 흔듭니다.
정말 토끼는 두 마리였습니다. 엄마와 새끼 토끼였습니다. 엄마 토끼는 새끼 토끼 때문에 더 안절부절인가 봅니다.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고 할딱이면서 이리 닿고 저리 닿습니다. 토끼는 펑퍼짐한 골짜기로 쫓겨 내렸습니다. 성아도 골짜기로 뛰어내렸습니다. 성아는 마주 닿는 토끼를 앞으로 엎으러지며 덮쳤습니다. 토끼는 날쌔게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도망칩니다. 분합니다.
<꼭 내가 잡아야지>
성아는 손도 털 새 없이 뒤따릅니다. 다른 아이들도 질세라 서로 잡으려고 갈팡질팡 법석을 떨어댑니다. 그 바람에 포위망이 흐트러졌습니다. 엄마 토끼는 그 틈새로 날쌔게 빠져 나갔습니다. 쫓겨 내려왔던 산줄기를 쏜살같이 추어 오릅니다.
˝저리간다! 잡아라, 잡아라!˝
아이들이 한 떼 그 쪽으로 뒤따라 갑니다. 박 선생님도 소리치며 따라 가십니다. 엄마를 잃은 새끼 토끼는 영혼이 빠졌는가 봅니다.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민구가 덮치려니까 기겁을 하며 성아 쪽으로 쫓겨 왔습니다. 성아는 무릎을 꿇으며 두 손으로 확 덮쳤습니다. 푹신한 털과 함께 자그마한 토끼의 몸뚱이가 꽉 잡혔습니다.
˝잡았다! 잡았다!˝
성아는 신바람이 나서 헐떡이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정말 성아가 잡았습니다. 아이들이 삥 둘러쌌습니다. 서로 만져보려고 밀고, 당기고, 고함치고 했습니다. 성아는 새끼 토끼의 귀를 잡고 엉덩이를 받쳐들었습니다. 파닥거리는 것이 무척 귀여웠습니다.
˝비켜라 비켜!˝
성아는 싸움에 이긴 장군처럼 으시대며 선생님 앞으로 갔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주욱 뒤따라왔습니다.
˝이건 아직 영 새끼구나. 안주감은 틀렸는데 핫하하.˝
˝비린내가 나겠수다. 성아가 잡았으니까 정 선생님 반에서 기르시구려. 내년 이맘 때나 잡아 먹읍시다.˝
토끼를 번갈아 쳐들어보며 하시는 선생님들의 말씀입니다. 6학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성아는 갑자기 새끼 토끼를 길러보고 싶었습니다.
˝엣다 성아야. 네가 잡았으니까 네가 갖고 가.˝
토끼를 도로 받아든 성아는 뛸듯이 기뻤습니다.
<꼭 길러야지, 산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편안히 해줄 테야.>
성아는 거듭 마음을 다졌습니다.
어미토끼를 따라 등너머로 갔던 선생님과 아이들이 애석해 하며 도로 넘어 왔습니다. 어미 토끼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성아의 소원대로 6학년 형님들을 다 젖혀놓고 성아만 토끼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성아는 더 우쭐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성아는 식구들 앞에서 자랑을 해댔습니다. 이야기 할 때마다 어깨가 절로 우쭐거렸습니다.
˝너한테 잡히다니, 그녀석이 아마 발에 쥐가 났었나 보지.˝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 형이 신통찮다는듯 대꾸했습니다.
˝흥 왜 이래? 이래뵈도 누구보다 빠르다구.˝
˝핫하하, 그럼 그렇게나 어린 녀석을 잡았음 대체 어떻게 할 셈이니?˝
˝기를 테야. 큰 토끼를 만들어 보겠어.˝
성아는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참 산토끼가 홍역 잘못 앓은 사람에게 영약이라더라. 삼촌댁에 갖다드려라. 규일이 놈 약에 쓰게 응?˝
옆에서 듣고 계시던 엄마의 말입니다.
˝싫어, 싫어요! 난 꼭 기르겠어요!˝
성아는 뛸듯이 그말에 대꾸했습니다. 뽀로통하게 화가 난 얼굴로 방을 뛰쳐 나갔습니다. 성아는 토끼 집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형을 못견디게 졸라댔습니다. 엄마는 성아를 마구 나무라셨습니다. 엄마 말을 들어야 착한 사람이 된다고 타이르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아무리 얼려도 막무가네였습니다. 토끼 집을 지을 빈 사과 상자를 가져와서 형을 또 조릅니다. 엄마는 혀를 차며 더는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형은 토끼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조그마하고 참한 토끼 집 속에 아기 토끼를 넣은 성아는 그제사 안심을 합니다. 아기 토끼에겐 꼭 어울리는 집입니다. 성아는 뒤란에서 배추 잎을 뜯어다 넣어줬습니다. 새끼 토끼는 입도 대지 않았습니다. 먹긴 커녕 널빤지에 머리를 쥐어 박으며 도망치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다 지치면 상자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겁먹은 눈알을 굴릴 뿐입니다. 배추잎을 싫어하는 모양입니다. 게다가 사람이 가까이 오는 것이 몹시 무서운가 봅니다. 걱정입니다. 배추잎도 겨울을 넘기는 것이라 귀합니다. 성아는 보리를 생각합니다. 그거라면 혹시 먹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부리나케 보리를 뜯어옵니다. 놀라지 않게 살짝 넣어주고 저만치 비켜서서 지켜봅니다. 그렇지만 아기 토끼는 보리 잎을 못본쳅니다.
<옳지 그래야지.>
성아는 헐레벌덕 까칫골로 달려갑니다. 까칫골 살던 토끼니까 거기서 따온 열매나 풀은 먹을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덩쿨가시의 빨간 열매도 따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풀을 뜯습니다. 서두노라 막 땀이 납니다. 해질녘이야 되돌아옵니다. 허덕허덕 뜁니다. 이젠 지쳤는지 구석에 멍히 앉아있는 토끼에게 따온 것을 가만히 넣어 줍니다. 토끼는 몸을 더욱 구석께로 움츠릴뿐 눈도 주지 않았습니다. 몹시 낙심이 됩니다.
<정말 기를 수 없을까?>
성아는 갑자기 영 풀이 죽어버립니다.
˝단식 투쟁이다. 너한테 데모라도 하는 모양인데.˝
중학교에 다니는 형이 보고 있다가 뭐든지 안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형. 정말 왜 안 먹을까?˝
˝흥, 먹을 맘이 나게 생겼어? 보니 엄마 젖 밖에 생각나는게 없는걸. 엄마한테 보내달라! 자유를 달라! 하고 너한테 굶으며 데모하는 모양이야.˝
형은 놀림조로 마구 늘어댔습니다.
하지만 성아는 그 말을 무심코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그럴 것도 같았습니다. 성아는 새끼 토끼를 위하는 길은 어미 토끼와 같이 있게 하는 길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새끼 토끼를 놓아 줄 마음은 통 없습니다. 성아는 어미 토끼도 잡아와서 같이 길러야 겠다고 단단히 결심합니다. 잘만 보살펴 준다면 험한 산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사는 것보다 몇 배나 좋아할 것으로 성아는 생각합니다. 꼭 그래야 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합니다.
다음날 학교를 파한 후 성아는 같은 반의 친구 셋을 데리고 까칫골로 달려갔습니다. 넷은 해질 녘까지 막대기를 휘드르며 까칫골 등성이를 이잡듯 헤맸습니다. 그렇지만 토끼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습니다. 해님이 방어산을 넘고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새 토끼장 안에 넣어 준 열매와 풀이 조금 줄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안 보는 새에 그만큼 먹은 모양입니다. 뛸듯이 기뻤습니다. 헛탕친 서운함을 충분히 씻을만한 기쁨이었습니다.
다음날 글짓기 시간에 성아는 산토끼에 대하여 썼습니다. 아기 토끼를 잡은데서부터 여태 일어난 일을 낱낱이 썼습니다. 꼭 엄마 토끼를 잡아와서 아기 토끼와 같이 기를 생각이라고 썼습니다. 성아는 글짓기를 잘합니다. 그래서 글짓기 시간이면 종종 뽑혀 나가서 지은 글을 읽습니다.
그날도 성아가 뽑혀 나가서 지은 글을 읽었습니다.
˝그것 참 굉장한 결심인데--. 그래 어미 토끼를 잡을 자신이 있니?˝
글을 들으신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성아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산채로 잡는 게 그리 쉬운 줄 아니? 눈이 많이 와서 토끼가 눈에 빠지기라도 하면 모르겠지만.˝
성아도 그런 줄은 압니다. 그래도 아기 토끼를 위해서 꼭 잡아와야 합니다.
˝꼭 잡아 볼 생각이예요.˝
성아는 입을 꼬옥 다물며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선생님, 토끼 잡으러 가요. 우리도 성아를 도와주고 싶어요!˝
민구가 벌떡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왁자지껄 다른 아이들도 그러자고 떠들었습니다. 한 동안 교실이 소란했습니다. 선생님은 한참동안 말없이 서 계시다 천천히 입을 여셨습니다.
˝우리 반 만으로는 안 될 거야. 그렇지만 너희들 마음이 정 그렇다면 가보기로 해.˝
˝야 -. 야아 신난다!˝
아이들은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제일 신나는 사람은 성아였습니다. 반 동무들이 한없이 고마왔습니다. 전번처럼 등성이를 따라 삥둘러서서 아래로 몰았습니다. 고함을 질렀습니다. 돌을 던졌습니다. 성아가 제일 신을 내며 앞장 섰습니다.
˝토끼다! - 토끼다!˝
전번과는 반대편 등성이에서 이런 함성이 터졌습니다. 성아는 몸을 뽑고 바라봤습니다. 정말 전번 놓친 잿빛털의 엄마토끼 였습니다. 아래로 쫓겨 내려 오고 있었습니다.
˝잡아라, 잡아 와와--와아!˝
성아도 고함을 치며 구르는 바위처럼 뛰어내렸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며 숨가쁘게 뛰어 내렸습니다. 골짜기 아래에 서 계시던 선생님도 소리치며 토끼쪽으로 뛰어 오셨습니다. 토끼는 선생님한테 쫓겨 북쪽등성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그쪽 아이들이 돌멩이를 던지고 고함을 지르며 뛰어 내려왔습니다. 토끼는 기겁을 하며 골짜기로 뛰어 내려 왔습니다. 이제 독안에 든 쥐처럼 완전히 포위 되었습니다. 토끼는 안절부절 입니다. 도망칠 구멍을 찾기 위해 이리 닿고 저리 닿고 합니다. 그때마다 한꺼번에 여러개의 손과 발이 덮쳤습니다. 몇 번을 잡힐듯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차´하는 새에 정호의 손을 스치며 휙 포위망을 빠져나갔습니다. 비탈을 추어오르는 데는 토끼를 당할 재주가 없습니다. 또 헛탕입니다. 성아는 너무도 분해서 눈물이 다 나오려고 했습니다.
˝운이 없는 모양이야. 이젠 영 멀리 도망치는지도 몰라. 눈이 왔더라면 쉽게 잡았을 걸.˝
선생님이 성아의 어깨를 짚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성아는 정말 눈물을 뚝 떨어뜨렸습니다.
˝울긴 왜. 그렇기도 서운하니? 정 눈 올 때가지 기다리지 못하겠다면 이렇게 하는 수 밖에 없어. 잃은 새끼를 못 잊어 또 까칫골로 올지도 모르니까 말이지. 새끼의 발목에 길고 가는 끈을 매어 멀리 놓아두고 숨어서 망을 보는 거야. 어미 토끼가 나타나서 새끼 토끼를 보고 반가와서 정신없이 야단일 때 홱 올가미를 씌우는거지. 꼭 잡힐거라고 바랄 수 없지만 그길 밖에 없어.˝
말을 마친 선생님은 성아의 어깨를 툭툭 치셨습니다. 성아는 금세 새로운 기운이 났습니다. 꼭 그렇게 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잔뜩 토요일을 벼르고 있다가 토요일 오후와 오늘 오전을 꼬박 이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헛탕이었습니다. 토끼가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영 지쳤습니다. 꿈이 아니었더면 해지도록 잠에 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뛰쳐나온 건 순전히 엄마의 성화 때문입니다.
까칫골에 도착한 성아는 오전과는 다른 자리에 끈을 매었습니다. 아기 토끼는 놓아 줘도 이젠 도망칠 생각조차 않았습니다. 쪼그리고 앉은 채 눈만 말똥거렸습니다. 성아는 가까운 솔포기 뒤에 몸을 숨겼습니다. 머리 위로 산새가 포르르 날아 갑니다.
시간이 자꾸 흐릅니다. 그래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30분…, 한시간, 그래도 기척이 없습니다. 1시간 반…, 2시간, 이젠 영 몸부림이 나서 견딜 수 없습니다. 지칩니다.
바로 그때 서쪽 등성이의 소나무 아래서 뭐가 훌쩍 나타났습니다. 아! 토낍니다. 정신이 번쩍 납니다. 올가미를 꼭 쥡니다. 토끼는 갑자기 속력을 내어 아기 토끼 쪽으로 달려왔습니다. 새끼를 본 모양입니다 새끼 토끼도 마주 달려 갑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나 싶을 정도입니다. 엄마와 새끼는 끈이 다하지 전에 만났습니다. 신음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서로 몸을 부빕니다. 머리를 처박아 밀기도 하고 훌쩍 뛰어 오르기도 합니다. 서로 입을 맞대고 낑낑거리다가 훌쩍 머리에 앞발을 얹기도 합니다. 만난 것을 기적 같이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기뻐서 기뻐서 한정이 없는 모양입니다. 자꾸 낑낑거리는 것은 너무 반가와서 우는 소리인가 봅니다. 꼭 그래 보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내 성아도 콧날이 찡합니다. 넋을 놓고 그것을 바라봅니다.
한참동안 그런 일이 계속 되었습니다. 좀만에 엄마 토끼는 도망가야 한다는 걸 깨달은 모양입니다. 서쪽 등성이를 향해 껑충껑충 뜁니다. 새끼 토끼는 엄마를 따릅니다. 그제사 성아는 퍼뜩 제 정신으로 돌아옵니다.
˝아차˝합니다. 가슴이 뜁니다. 선생님 말씀마저 잊고 멍청히 구경만 한 것을 후회합니다. 이내 새끼 토끼가 뒷다리를 뻗으며 나동그라집니다. 일어서서 뛰려다 또 나동그라집니다. 몇번이나 같은 동작을 되풀이 합니다. 어미 토끼가 되돌아 옵니다. 나동그라지는 새끼 토끼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며 가까이 갑니다. 새끼 토끼의 주위를 뱅 돕니다. 새끼 토끼는 살려달라는 듯 주저 앉은채 낑낑거리며 엄마 토끼를 바라봅니다. 끈에 메어진 한쪽 발이 뒤로 축 쳐져 있습니다. 엄마 토끼는 아까처럼 또 앞으로 뛰어갑니다. 새끼 토끼도 몇번을 또 곤두박질을 칩니다.
엄마 토끼가 되돌아옵니다. 여러번 그런 동작이 끝나고 엄마 토끼는 새끼 토끼의 발에 달린 끈을 물어 뜯기 시작했습니다.
성아는 가만히 일어섰습니다. 더 있으면 끈이 끊겨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도로 주저앉고 맙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발에 쥐가 난 것입니다. 굉장히 저립니다. 엄마 토끼는 한사코 끈을 물어 뜯고 있습니다. 꾸물거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일어섭니다. 발에 감각이 통 없습니다. 간신히 한 걸음 떼놓다가 그만 기우뚱 쓰러지며 아래로 쭈욱 미끄러 집니다.
벌떡 일어났을 때는 이미 일이 영 틀려버린 후였습니다. 엄마 토끼는 저만치 쏜살같이 도망치고 있고 아기 토끼만 남아서 아까보다 더 다급하게 곤두박질을 치고 있습니다. 옷의 먼지를 털고 절름거리며 새끼 토끼한테로 갑니다. 새끼 토끼는 발광하듯 뛰고 쓰러지고 뛰고 쓰러지고 했습니다. 그 꼴을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합니다. 눈알이 시큰거립니다.
<아무래도 널 기를 수 없나보다. 너의 보금자리는 여기인 걸>
퍼덕이는 새끼 토끼를 꼬옥 껴안은 성아의 눈에서 눈물이 맺혀 떨어졌습니다.
<놓아 줘야 겠다.>
성아는 결심합니다. 다리의 줄을 풉니다. 줄이 감긴 자리에 껍질이 벗겨져 조금씩 피가 배어 나옵니다. 손수건을 찢어서 상처를 처맵니다. 다 처매자 땅에 내려 놓습니다. 내려 놓기가 무섭게 새끼 토끼는 어미 토끼가 도망친 비탈을 뛰기 시작했습니다. 뒷발을 조금씩 절룩거렸지만 참으로 빨랐습니다. 성아는 토끼가 안보일 때까지 멍청히 지켜보고 서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성아는 토끼 집이 놓인 곳으로 먼저 갔습니다. 텅빈 토끼 집을 치울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랬는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글쎄, 토끼장 속에 눈보다 흰 새끼 토끼 두 마리가 입을 호물거리며 빠알간 눈을 굴리며 성아를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엄마!˝
성아는 달뜬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습니다. 안방 문이 펄쩍 열리며 엄마가 나오셨습니다.
˝이 토낀 웬 거예요?˝
˝삼촌이 사주셨어. 네 한테 선사 하신대. 그걸 기르고 산토끼는 삼촌 집에 드려라.˝
성아는 가슴이 철렁 합니다. 고개를 푹 숙입니다.
˝그 산토끼는 어쨌니?˝
˝……………˝
성아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안절부절입니다.
˝너 왜 그러니? 어쩐 일이니 응?˝
˝엄마, 좀 전에 그 토끼를 놓쳐 버렸어요.˝
성아는 용케 이렇게 둘러댔습니다. 다음에 정직하게 일러드리고 사과할지라도 우선은 어쩔 수 없습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니 응? 아이구 원 이녀석아!˝
엄마는 마구 쥐어박을 듯이 손을 저으시며 나무라셨습니다. 엄마의 꾸중을 들은 성아의 눈엔 피잉 눈물이 고입니다.
그렇지만 잘못했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눈물은 아닙니다. 성아는 호물호물 귀엽게 받아먹는 토끼에게 배추잎을 먹이며, 엄마가 간 곳을 향해 껑충껑충 달려가던 잿빛 새끼 토끼를 눈앞에 그립니다
드디어 눈입니다. 옥수수 튀긴 것의 곱이나 될 것 같은 눈송이가 무수히 날아와 쌓입니다. 성아는 눈송이가 날아내리는 우유빛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망아지처럼 훌쭉훌쭉 뜁니다. 금세 눈은 발목이 빠질만큼 쌓였습니다. 이렇게 되길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릅니다. 성아는 운동화를 졸라맸습니다.
<고 녀석 오늘은 꼼짝 못할테지.>
생각하니 신이 납니다. 쏜살같이 집을 뛰쳐 나갑니다.허벌터벌 뒷산을 추어오릅니다. 발목 위가 눈 속에 푹푹 파묻힙니다. 머리 위도 하얗게 눈이 쌓입니다. 어깨도 눈입니다. 그래서 더욱 신이 납니다. 운동화 속엔 벌써 녹은 눈물이 질퍽하게 배었습니다. 그럴 수록 걸음은 한층 빨라집니다. 이내 까칫골의 서쪽 등성 마루에 올라 섰습니다. 까칫골이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솜이불을 덮은듯 하얗습니다. 막막하기만 합니다.
˝으웍 워어이!˝
성아는 목청껏 소리를 뽑았습니다. 눈을 인 소나무에서 까치 한 마리가 파드득 날아왔습니다. 우유빛 하늘 속으로 까맣게 사라졌습니다. 그뿐, 다시 조용합니다. 골짜기는 하나 가득 눈 뿐입니다. 움직이는 것도 모두 소리 없이 내려와 쌓이는 눈 뿐입니다.
˝토끼야아--!˝
이번엔 목청껏 토끼를 불러 봅니다.
˝토끼야아--!˝
가늘게 메아리가 돌아 왔습니다.
˝토끼야 나오너라! 네 아기가 기다리고 있다아! 춥지도 않다아! 먹이도 많이 있다아! 얼마든지 편안하게 해주마!˝
성아는 목청껏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역시 대답은 메아리가 해 줬습니다. 좀 무서워집니다. 갑자기 듣지도 보지도 못한 깊고 깊은 산중에 내던져진 것 같은 마음입니다.
˝토끼야--˝
대답은 커녕 이젠 메아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소리가 작았는지 무서워서 못들었는지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토끼야아--!˝
소리치고 나니 이번엔 왈칵 겁이 납니다. 성아의 마음을 몰라주는 토끼가 야속하다는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그저 무섭습니다. 길을 분간할 수 없는 산비탈을 재빨리 되돌아 내려 갑니다. 뭐가 뒤따라 오는 것 같아 머리 끝이 쭈삣합니다. 뛰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그만 쑥 눈덩에 빠집니다. 쑤욱 자꾸 빠져 들어 갑니다. 목청껏 비명을 지릅니다.
˝아얏, 사람 살려요!˝
그 바람에 번쩍 눈을 뜹니다.
˝얘야, 너 또 꿈을 꿨구나 응?˝
엄마가 걱정스럽게 내려다 보고 전신에 식은 땀이 내뱄습니다. 성아는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너 또 토끼 때문에 꿈을 꿨지? 그러지 말고 그걸 삼촌 집에 줘 버리자꾸나. 그것 때문에 요즘 네가 하는 걸 보니 걱정이구나. 고집 부리지 말고, 약에 쓰시게 응?˝
˝싫어요. 싫어, 싫어!˝
성아는 와락 고함을 지릅니다. 세차게 어깨까지 흔듭니다.
˝온 얘두, 너 대체 어쩔려구 이러니? 내 곧 삼촌한테 연락하겠다. 고분고분 내드려.˝
˝싫어! 안 돼. 절대 안 돼!˝
성아는 횅하니 밖으로 내빼면서 더욱 소리를 높였습니다. 해가 저만치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한 시간은 더 잠들었던 모양입니다. 오전 내 너무 피로했던가 봅니다. 성아는 토끼장에서 토끼를 꺼냈습니다. 새끼 토끼도 이젠 영 지친 모양입니다. 별로 퍼덕이지도 않습니다. 축대에 놓아둔 올가미를 쥡니다.
˝그만둬라 그만둬. 그런다고 너한테 잡혀 줄 토끼가 있을성 싶니! 어림도 없다. 아버지한테 혼나기 전에 집에 가만히 있어요. 응!˝
따라 나오시면서 엄마는 애원조 입니다. 그렇지만 성아는 이미 집 밖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가고 있습니다.
<안 돼요, 싫어요>를 속으로 수없이 되뇌입니다.
성아는 또 까칫골로 향해 재우쳐 오릅니다. 오전의 피로는 이제 깨끗이 풀렸습니다.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볕살이 흐릿합니다. 찬바람이 귓쌈을 지나갑니다.
<언제 눈이 올텐가 씨--.>
침을 ´퇴´ 뱉으며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눈이 와도 조금전의 꿈 생각을 하니 영 걱정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꼭 잡아야지.>
성아는 새끼 토끼를 꼭 껴안으며 생각합니다.
지난 화요일의 일입니다.
성아네 학교 4, 5, 6학년 아이들이 난로의 땔감을 주우러 까칫골로 갔습니다. 큰 길을 벗어나 등성 마루 아래로 접어들었을 때, 5학년 박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조금만 가면 까칫골이야. 오늘은 꿩 먹고 알 먹는 일을 해보자. 땔 감도 줍고 토끼 사냥도 하잔 말이다. 내가 시킨대로 까칫골을 포위해. 그리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면서 포위망을 좁혀. 물론 나무를 주우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 토끼를 발견하거든 고함을 지르면서 빠른 동작으로 아래 쪽으로 몰아라. 토끼가 혼이 빠지게 고함을 질러야 해.˝
아이들은 환성을 질렀습니다. 손뼉을 치는 아이, 신끈을 조르는 아이, 손바닥에 침을 뱉는 아이, 주머니에 돌멩이를 주워 넣는 아이……, 잠시동안 법석을 부렸습니다. 박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늘어섰습니다. 까칫골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아래로 내려 가면서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 갔습니다. 성아는 지난해 겨울, 졸업반 6학년 형님들이 이렇게해서 잡은 커단 토끼를 안고 뽑내던 일을 기억합니다.
<오늘은 내가 잡았으면-->
성아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토끼가 숨었을 듯한 솔포기에 돌멩이를 던지며
˝으웍, 워어이!˝
소리를 지릅니다. 땔나무 주울 생각은 통 없습니다. 빈 가방을 휘휘 내두르며 노루처럼 껑충껑충 아래 쪽으로 내려 뜁니다.
˝야아--, 토끼다. 토끼다! 잡아라, 잡아라 야아, 야아!˝
성아가 선 맞은편 줄기에서 갑자기 어지러운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성아는 우뚝 멈춰서서 고개를 빼며 보았습니다. 정말 토끼입니다. 솔포기에 가렸다 나왔다 하면서 도망쳐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쪽을 향해 아이들이 사방에서 벌떼처럼 뛰어 내립니다. 선생님도 아이들 속에 어울리셨습니다. 고함을 지릅니다. 돌멩이가 쏟아집니다. 성아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고, 쫓기는 노루처럼 아래로 뛰어내립니다.
˝잡아라! 야아, 야아 - ! 두 마리다 두 마릿!˝
고함 소리가 골짜기를 찌렁찌렁 흔듭니다.
정말 토끼는 두 마리였습니다. 엄마와 새끼 토끼였습니다. 엄마 토끼는 새끼 토끼 때문에 더 안절부절인가 봅니다.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고 할딱이면서 이리 닿고 저리 닿습니다. 토끼는 펑퍼짐한 골짜기로 쫓겨 내렸습니다. 성아도 골짜기로 뛰어내렸습니다. 성아는 마주 닿는 토끼를 앞으로 엎으러지며 덮쳤습니다. 토끼는 날쌔게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도망칩니다. 분합니다.
<꼭 내가 잡아야지>
성아는 손도 털 새 없이 뒤따릅니다. 다른 아이들도 질세라 서로 잡으려고 갈팡질팡 법석을 떨어댑니다. 그 바람에 포위망이 흐트러졌습니다. 엄마 토끼는 그 틈새로 날쌔게 빠져 나갔습니다. 쫓겨 내려왔던 산줄기를 쏜살같이 추어 오릅니다.
˝저리간다! 잡아라, 잡아라!˝
아이들이 한 떼 그 쪽으로 뒤따라 갑니다. 박 선생님도 소리치며 따라 가십니다. 엄마를 잃은 새끼 토끼는 영혼이 빠졌는가 봅니다.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민구가 덮치려니까 기겁을 하며 성아 쪽으로 쫓겨 왔습니다. 성아는 무릎을 꿇으며 두 손으로 확 덮쳤습니다. 푹신한 털과 함께 자그마한 토끼의 몸뚱이가 꽉 잡혔습니다.
˝잡았다! 잡았다!˝
성아는 신바람이 나서 헐떡이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정말 성아가 잡았습니다. 아이들이 삥 둘러쌌습니다. 서로 만져보려고 밀고, 당기고, 고함치고 했습니다. 성아는 새끼 토끼의 귀를 잡고 엉덩이를 받쳐들었습니다. 파닥거리는 것이 무척 귀여웠습니다.
˝비켜라 비켜!˝
성아는 싸움에 이긴 장군처럼 으시대며 선생님 앞으로 갔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주욱 뒤따라왔습니다.
˝이건 아직 영 새끼구나. 안주감은 틀렸는데 핫하하.˝
˝비린내가 나겠수다. 성아가 잡았으니까 정 선생님 반에서 기르시구려. 내년 이맘 때나 잡아 먹읍시다.˝
토끼를 번갈아 쳐들어보며 하시는 선생님들의 말씀입니다. 6학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성아는 갑자기 새끼 토끼를 길러보고 싶었습니다.
˝엣다 성아야. 네가 잡았으니까 네가 갖고 가.˝
토끼를 도로 받아든 성아는 뛸듯이 기뻤습니다.
<꼭 길러야지, 산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편안히 해줄 테야.>
성아는 거듭 마음을 다졌습니다.
어미토끼를 따라 등너머로 갔던 선생님과 아이들이 애석해 하며 도로 넘어 왔습니다. 어미 토끼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성아의 소원대로 6학년 형님들을 다 젖혀놓고 성아만 토끼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성아는 더 우쭐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성아는 식구들 앞에서 자랑을 해댔습니다. 이야기 할 때마다 어깨가 절로 우쭐거렸습니다.
˝너한테 잡히다니, 그녀석이 아마 발에 쥐가 났었나 보지.˝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 형이 신통찮다는듯 대꾸했습니다.
˝흥 왜 이래? 이래뵈도 누구보다 빠르다구.˝
˝핫하하, 그럼 그렇게나 어린 녀석을 잡았음 대체 어떻게 할 셈이니?˝
˝기를 테야. 큰 토끼를 만들어 보겠어.˝
성아는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참 산토끼가 홍역 잘못 앓은 사람에게 영약이라더라. 삼촌댁에 갖다드려라. 규일이 놈 약에 쓰게 응?˝
옆에서 듣고 계시던 엄마의 말입니다.
˝싫어, 싫어요! 난 꼭 기르겠어요!˝
성아는 뛸듯이 그말에 대꾸했습니다. 뽀로통하게 화가 난 얼굴로 방을 뛰쳐 나갔습니다. 성아는 토끼 집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형을 못견디게 졸라댔습니다. 엄마는 성아를 마구 나무라셨습니다. 엄마 말을 들어야 착한 사람이 된다고 타이르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아무리 얼려도 막무가네였습니다. 토끼 집을 지을 빈 사과 상자를 가져와서 형을 또 조릅니다. 엄마는 혀를 차며 더는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형은 토끼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조그마하고 참한 토끼 집 속에 아기 토끼를 넣은 성아는 그제사 안심을 합니다. 아기 토끼에겐 꼭 어울리는 집입니다. 성아는 뒤란에서 배추 잎을 뜯어다 넣어줬습니다. 새끼 토끼는 입도 대지 않았습니다. 먹긴 커녕 널빤지에 머리를 쥐어 박으며 도망치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다 지치면 상자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겁먹은 눈알을 굴릴 뿐입니다. 배추잎을 싫어하는 모양입니다. 게다가 사람이 가까이 오는 것이 몹시 무서운가 봅니다. 걱정입니다. 배추잎도 겨울을 넘기는 것이라 귀합니다. 성아는 보리를 생각합니다. 그거라면 혹시 먹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부리나케 보리를 뜯어옵니다. 놀라지 않게 살짝 넣어주고 저만치 비켜서서 지켜봅니다. 그렇지만 아기 토끼는 보리 잎을 못본쳅니다.
<옳지 그래야지.>
성아는 헐레벌덕 까칫골로 달려갑니다. 까칫골 살던 토끼니까 거기서 따온 열매나 풀은 먹을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덩쿨가시의 빨간 열매도 따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풀을 뜯습니다. 서두노라 막 땀이 납니다. 해질녘이야 되돌아옵니다. 허덕허덕 뜁니다. 이젠 지쳤는지 구석에 멍히 앉아있는 토끼에게 따온 것을 가만히 넣어 줍니다. 토끼는 몸을 더욱 구석께로 움츠릴뿐 눈도 주지 않았습니다. 몹시 낙심이 됩니다.
<정말 기를 수 없을까?>
성아는 갑자기 영 풀이 죽어버립니다.
˝단식 투쟁이다. 너한테 데모라도 하는 모양인데.˝
중학교에 다니는 형이 보고 있다가 뭐든지 안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형. 정말 왜 안 먹을까?˝
˝흥, 먹을 맘이 나게 생겼어? 보니 엄마 젖 밖에 생각나는게 없는걸. 엄마한테 보내달라! 자유를 달라! 하고 너한테 굶으며 데모하는 모양이야.˝
형은 놀림조로 마구 늘어댔습니다.
하지만 성아는 그 말을 무심코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그럴 것도 같았습니다. 성아는 새끼 토끼를 위하는 길은 어미 토끼와 같이 있게 하는 길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새끼 토끼를 놓아 줄 마음은 통 없습니다. 성아는 어미 토끼도 잡아와서 같이 길러야 겠다고 단단히 결심합니다. 잘만 보살펴 준다면 험한 산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사는 것보다 몇 배나 좋아할 것으로 성아는 생각합니다. 꼭 그래야 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합니다.
다음날 학교를 파한 후 성아는 같은 반의 친구 셋을 데리고 까칫골로 달려갔습니다. 넷은 해질 녘까지 막대기를 휘드르며 까칫골 등성이를 이잡듯 헤맸습니다. 그렇지만 토끼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습니다. 해님이 방어산을 넘고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새 토끼장 안에 넣어 준 열매와 풀이 조금 줄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안 보는 새에 그만큼 먹은 모양입니다. 뛸듯이 기뻤습니다. 헛탕친 서운함을 충분히 씻을만한 기쁨이었습니다.
다음날 글짓기 시간에 성아는 산토끼에 대하여 썼습니다. 아기 토끼를 잡은데서부터 여태 일어난 일을 낱낱이 썼습니다. 꼭 엄마 토끼를 잡아와서 아기 토끼와 같이 기를 생각이라고 썼습니다. 성아는 글짓기를 잘합니다. 그래서 글짓기 시간이면 종종 뽑혀 나가서 지은 글을 읽습니다.
그날도 성아가 뽑혀 나가서 지은 글을 읽었습니다.
˝그것 참 굉장한 결심인데--. 그래 어미 토끼를 잡을 자신이 있니?˝
글을 들으신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성아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산채로 잡는 게 그리 쉬운 줄 아니? 눈이 많이 와서 토끼가 눈에 빠지기라도 하면 모르겠지만.˝
성아도 그런 줄은 압니다. 그래도 아기 토끼를 위해서 꼭 잡아와야 합니다.
˝꼭 잡아 볼 생각이예요.˝
성아는 입을 꼬옥 다물며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선생님, 토끼 잡으러 가요. 우리도 성아를 도와주고 싶어요!˝
민구가 벌떡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왁자지껄 다른 아이들도 그러자고 떠들었습니다. 한 동안 교실이 소란했습니다. 선생님은 한참동안 말없이 서 계시다 천천히 입을 여셨습니다.
˝우리 반 만으로는 안 될 거야. 그렇지만 너희들 마음이 정 그렇다면 가보기로 해.˝
˝야 -. 야아 신난다!˝
아이들은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제일 신나는 사람은 성아였습니다. 반 동무들이 한없이 고마왔습니다. 전번처럼 등성이를 따라 삥둘러서서 아래로 몰았습니다. 고함을 질렀습니다. 돌을 던졌습니다. 성아가 제일 신을 내며 앞장 섰습니다.
˝토끼다! - 토끼다!˝
전번과는 반대편 등성이에서 이런 함성이 터졌습니다. 성아는 몸을 뽑고 바라봤습니다. 정말 전번 놓친 잿빛털의 엄마토끼 였습니다. 아래로 쫓겨 내려 오고 있었습니다.
˝잡아라, 잡아 와와--와아!˝
성아도 고함을 치며 구르는 바위처럼 뛰어내렸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며 숨가쁘게 뛰어 내렸습니다. 골짜기 아래에 서 계시던 선생님도 소리치며 토끼쪽으로 뛰어 오셨습니다. 토끼는 선생님한테 쫓겨 북쪽등성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그쪽 아이들이 돌멩이를 던지고 고함을 지르며 뛰어 내려왔습니다. 토끼는 기겁을 하며 골짜기로 뛰어 내려 왔습니다. 이제 독안에 든 쥐처럼 완전히 포위 되었습니다. 토끼는 안절부절 입니다. 도망칠 구멍을 찾기 위해 이리 닿고 저리 닿고 합니다. 그때마다 한꺼번에 여러개의 손과 발이 덮쳤습니다. 몇 번을 잡힐듯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차´하는 새에 정호의 손을 스치며 휙 포위망을 빠져나갔습니다. 비탈을 추어오르는 데는 토끼를 당할 재주가 없습니다. 또 헛탕입니다. 성아는 너무도 분해서 눈물이 다 나오려고 했습니다.
˝운이 없는 모양이야. 이젠 영 멀리 도망치는지도 몰라. 눈이 왔더라면 쉽게 잡았을 걸.˝
선생님이 성아의 어깨를 짚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성아는 정말 눈물을 뚝 떨어뜨렸습니다.
˝울긴 왜. 그렇기도 서운하니? 정 눈 올 때가지 기다리지 못하겠다면 이렇게 하는 수 밖에 없어. 잃은 새끼를 못 잊어 또 까칫골로 올지도 모르니까 말이지. 새끼의 발목에 길고 가는 끈을 매어 멀리 놓아두고 숨어서 망을 보는 거야. 어미 토끼가 나타나서 새끼 토끼를 보고 반가와서 정신없이 야단일 때 홱 올가미를 씌우는거지. 꼭 잡힐거라고 바랄 수 없지만 그길 밖에 없어.˝
말을 마친 선생님은 성아의 어깨를 툭툭 치셨습니다. 성아는 금세 새로운 기운이 났습니다. 꼭 그렇게 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잔뜩 토요일을 벼르고 있다가 토요일 오후와 오늘 오전을 꼬박 이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헛탕이었습니다. 토끼가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영 지쳤습니다. 꿈이 아니었더면 해지도록 잠에 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뛰쳐나온 건 순전히 엄마의 성화 때문입니다.
까칫골에 도착한 성아는 오전과는 다른 자리에 끈을 매었습니다. 아기 토끼는 놓아 줘도 이젠 도망칠 생각조차 않았습니다. 쪼그리고 앉은 채 눈만 말똥거렸습니다. 성아는 가까운 솔포기 뒤에 몸을 숨겼습니다. 머리 위로 산새가 포르르 날아 갑니다.
시간이 자꾸 흐릅니다. 그래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30분…, 한시간, 그래도 기척이 없습니다. 1시간 반…, 2시간, 이젠 영 몸부림이 나서 견딜 수 없습니다. 지칩니다.
바로 그때 서쪽 등성이의 소나무 아래서 뭐가 훌쩍 나타났습니다. 아! 토낍니다. 정신이 번쩍 납니다. 올가미를 꼭 쥡니다. 토끼는 갑자기 속력을 내어 아기 토끼 쪽으로 달려왔습니다. 새끼를 본 모양입니다 새끼 토끼도 마주 달려 갑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나 싶을 정도입니다. 엄마와 새끼는 끈이 다하지 전에 만났습니다. 신음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서로 몸을 부빕니다. 머리를 처박아 밀기도 하고 훌쩍 뛰어 오르기도 합니다. 서로 입을 맞대고 낑낑거리다가 훌쩍 머리에 앞발을 얹기도 합니다. 만난 것을 기적 같이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기뻐서 기뻐서 한정이 없는 모양입니다. 자꾸 낑낑거리는 것은 너무 반가와서 우는 소리인가 봅니다. 꼭 그래 보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내 성아도 콧날이 찡합니다. 넋을 놓고 그것을 바라봅니다.
한참동안 그런 일이 계속 되었습니다. 좀만에 엄마 토끼는 도망가야 한다는 걸 깨달은 모양입니다. 서쪽 등성이를 향해 껑충껑충 뜁니다. 새끼 토끼는 엄마를 따릅니다. 그제사 성아는 퍼뜩 제 정신으로 돌아옵니다.
˝아차˝합니다. 가슴이 뜁니다. 선생님 말씀마저 잊고 멍청히 구경만 한 것을 후회합니다. 이내 새끼 토끼가 뒷다리를 뻗으며 나동그라집니다. 일어서서 뛰려다 또 나동그라집니다. 몇번이나 같은 동작을 되풀이 합니다. 어미 토끼가 되돌아 옵니다. 나동그라지는 새끼 토끼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며 가까이 갑니다. 새끼 토끼의 주위를 뱅 돕니다. 새끼 토끼는 살려달라는 듯 주저 앉은채 낑낑거리며 엄마 토끼를 바라봅니다. 끈에 메어진 한쪽 발이 뒤로 축 쳐져 있습니다. 엄마 토끼는 아까처럼 또 앞으로 뛰어갑니다. 새끼 토끼도 몇번을 또 곤두박질을 칩니다.
엄마 토끼가 되돌아옵니다. 여러번 그런 동작이 끝나고 엄마 토끼는 새끼 토끼의 발에 달린 끈을 물어 뜯기 시작했습니다.
성아는 가만히 일어섰습니다. 더 있으면 끈이 끊겨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도로 주저앉고 맙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발에 쥐가 난 것입니다. 굉장히 저립니다. 엄마 토끼는 한사코 끈을 물어 뜯고 있습니다. 꾸물거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일어섭니다. 발에 감각이 통 없습니다. 간신히 한 걸음 떼놓다가 그만 기우뚱 쓰러지며 아래로 쭈욱 미끄러 집니다.
벌떡 일어났을 때는 이미 일이 영 틀려버린 후였습니다. 엄마 토끼는 저만치 쏜살같이 도망치고 있고 아기 토끼만 남아서 아까보다 더 다급하게 곤두박질을 치고 있습니다. 옷의 먼지를 털고 절름거리며 새끼 토끼한테로 갑니다. 새끼 토끼는 발광하듯 뛰고 쓰러지고 뛰고 쓰러지고 했습니다. 그 꼴을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합니다. 눈알이 시큰거립니다.
<아무래도 널 기를 수 없나보다. 너의 보금자리는 여기인 걸>
퍼덕이는 새끼 토끼를 꼬옥 껴안은 성아의 눈에서 눈물이 맺혀 떨어졌습니다.
<놓아 줘야 겠다.>
성아는 결심합니다. 다리의 줄을 풉니다. 줄이 감긴 자리에 껍질이 벗겨져 조금씩 피가 배어 나옵니다. 손수건을 찢어서 상처를 처맵니다. 다 처매자 땅에 내려 놓습니다. 내려 놓기가 무섭게 새끼 토끼는 어미 토끼가 도망친 비탈을 뛰기 시작했습니다. 뒷발을 조금씩 절룩거렸지만 참으로 빨랐습니다. 성아는 토끼가 안보일 때까지 멍청히 지켜보고 서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성아는 토끼 집이 놓인 곳으로 먼저 갔습니다. 텅빈 토끼 집을 치울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랬는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글쎄, 토끼장 속에 눈보다 흰 새끼 토끼 두 마리가 입을 호물거리며 빠알간 눈을 굴리며 성아를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엄마!˝
성아는 달뜬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습니다. 안방 문이 펄쩍 열리며 엄마가 나오셨습니다.
˝이 토낀 웬 거예요?˝
˝삼촌이 사주셨어. 네 한테 선사 하신대. 그걸 기르고 산토끼는 삼촌 집에 드려라.˝
성아는 가슴이 철렁 합니다. 고개를 푹 숙입니다.
˝그 산토끼는 어쨌니?˝
˝……………˝
성아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안절부절입니다.
˝너 왜 그러니? 어쩐 일이니 응?˝
˝엄마, 좀 전에 그 토끼를 놓쳐 버렸어요.˝
성아는 용케 이렇게 둘러댔습니다. 다음에 정직하게 일러드리고 사과할지라도 우선은 어쩔 수 없습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니 응? 아이구 원 이녀석아!˝
엄마는 마구 쥐어박을 듯이 손을 저으시며 나무라셨습니다. 엄마의 꾸중을 들은 성아의 눈엔 피잉 눈물이 고입니다.
그렇지만 잘못했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눈물은 아닙니다. 성아는 호물호물 귀엽게 받아먹는 토끼에게 배추잎을 먹이며, 엄마가 간 곳을 향해 껑충껑충 달려가던 잿빛 새끼 토끼를 눈앞에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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