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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동화] 도룡 노인 낡은 집

이현주동화 이현주............... 조회 수 1458 추천 수 0 2005.04.07 13:44:31
.........
도룡 노인은 혼자서 낡은 집에 살고 있어요. 지붕에는 풀이 우거지고 기둥마다 벌레들이 구멍을 내었지만 그래도 도룡 노인은 낡은 집이 좋습니다.
도룡 노인은 한 번도 이 집을 떠나서 살아 본 적이 없답니다. 어려서부터 줄곤 이 집에서만 살았지요. 도룡 노인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 집에서 돌아가셨고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이 집에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얘기로 듣기는 도룡 노인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이 집을 지으셨다는데, 정말 그런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요.

하루는 도룡 노인이 꿈을 꾸었어요. 머리도 수염도 하얀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더니,
˝도룡아, 도룡아.˝
˝예?˝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내가 바로 이 집을 지은 네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다.˝
도룡 노인은 얼른 일어나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께 절을 했지요.
˝이제 네 손으로 이 집을 허물어라. 때가 되었다.˝
˝예?˝
˝이 집 구들장 밑에 보물이 묻혀 있다. 집을 허물고 보물을 꺼내어 그것으로 새 집을 지어라.˝
˝예.˝
˝알았거든 날이 밝는 대로 곧 일을 시작하거라.˝
˝예.˝
그리고서 꿈을 깨었습니다.

도룡 노인은 꿈에 들은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말씀대로 정말 집을 허물어야 할는지 잘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웃집 부들 영감한테 물어 봤지요.
˝여보게, 부들 영감. 우리 집 구들장 밑에 보물이 묻혀 있다는데, 이 집을 허물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구들장 밑에 보물이 묻혀 있다고?˝
˝그래.˝
˝무슨 보물.˝
˝그건 모르지.˝
˝누가 그러던데?˝
˝꿈에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그러셨어.˝
부들 영감이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나? 자네 집이니 자네 맘이지. 맘대로 하시게.˝

자네 맘대로 하라는 부들 영감 말이 맞지요. 그래서 도룡 노인은 방에 들어와 자기 마음한테 물어 보기로 했어요.
˝이 집을 허물까? 말까?˝
도룡 노인 오른쪽 가슴에서 도룡 노인 마음이 대답합니다.
˝허물지 말자. 꿈에 본 이상한 노인 말을 듣고 집을 허물었다가 괜히 보물은커녕 집만 없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도룡 노인 왼쪽 가슴에서 다른 마음이,
˝할아버지 말씀대로 허물어야 해. 구들장 밑에 보물이 묻혀 있다잖아? 그걸 꺼내어 팔면 이 집보다 더 좋은 집을 새로 지을 수 있어.˝
˝글쎄, 거기 정말 보물이 있는지 없는지 누가 알아?˝
˝할아버지 말씀인데 믿어야지.˝
˝그 할아버지가 진짜 할아버지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지?˝
˝그분이 당신 입으로, 내가 네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라고 그러셨잖아?˝
˝그 꿈이 개꿈이라면? 괜히 집만 날아가고 마는 거야. 자네, 이 집을 좋아하잖아?˝
˝그건 그래. 하지만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으면 그것도 좋은 일이지.˝
도룡 노인은 왼쪽 마음하고 오른쪽 마음이 서로 달라, 어느 마음대로 해야 할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집한테 곧장 물어 보기로 했지요.
먼저 눈에 띈 것이 대들보였어요. 그래서 대들보한테 물어 봅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셔서 이 집을 허물라고 하셨다네. 어떻게 하면 좋겠나?˝
대들보가 대답하기를,
˝나는 대들보지, 집이 아닙니다. 그러니 나한테 묻지 마셔요.˝
이번에는 기둥한테 묻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셔서 이 집을 허물라고 하셨어. 어떻게 하면 좋겠나?˝
기둥이 대답하기를,
˝나는 기둥이지, 집이 아닙니다. 나한테 묻지 마셔요.˝

도룡 노인은 방에 들어와 구들장한테 물어 봅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꿈에 이 집을 허물라고 하셨다네. 어떻게 하면 좋겠나?˝
˝나는 구들장이지, 집이 아닙니다. 나한테 묻지 마셔요.˝
벽도, 문도, 서까래도, 지붕도, 마루도, 부엌도, 모두 모두 같은 대답입니다.
˝나는 집이 아니예요. 나한테 묻지 마셔요.˝

도룡 노인은 아무리 둘러보고 살펴보아도 집을 만날 수 없었어요.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들은 대들보요, 기둥이요, 구들장이요, 벽이요, 문이요, 서까래요, 지붕이요, 마루요, 부엌이지 집은 아니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군요.
˝집이 어디 있지?˝
에라, 모르겠다.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파서 도룡 노인은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뒷동산으로 올라갔어요.
거기 뒷동산에는 늙은 소나무가 두 그루 나란히 서 있는데, 그 그늘에 앉아 있으면 엄마 품에 안긴 젖먹이처럼 몸과 마음이 편안했지요.
그런데 거기서 보니까 집이 보이는 거예요.
˝어? 저기 우리 집이 있잖아?˝
맞습니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낡은 기와집 한 채가 언제나처럼 거기 있었어요.
˝흐음, 저 집 구들장 밑에 보물이 묻혀 있단 말이지?˝
˝글쎄 그 말을 어떻게 믿어? 꿈에 본 이상한 노인 말을 듣고 집만 날려 버릴 수도 있다구!˝
어느새 왼쪽 마음하고 오른쪽 마음이 또 씨름입니다. 언제나 그랬어요. 도룡 노인은 자기 마음이 왼쪽도 오른쪽도 아니고 가슴 복판에 하나만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또 마음대로 안 되는 거예요.

그러고 있는데 등뒤에서, 매애애애… 염소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돌아다보니 호두나뭇집 수남이가 염소를 끌고 언덕을 내려옵니다.
˝염소를 끌고 어디 가니?˝
˝아버지가 오늘 장에 내다 파신다고 끌어 오랬어요.˝
˝그 놈이 풀을 잔뜩 먹고 살이 포동포동 쪘구나?˝
˝예. 아버지는 염소 팔아서 오리를 사신대요. 난 오리보다 염소가 좋은데…….˝
˝그러면 팔지 말라고 말씀드리지 그랬어?˝
˝말했지만 소용없어요.˝
˝왜?˝
˝아버지가 염소 주인이니까요. 뭐든지 주인 맘대로 아닌가요?˝
안 가려는 염소를 억지로 끌고 사라지는 수남이를 바라보다가 도룡 노인은 무릎을 탁 쳤어요.
˝그래! 무엇이든 주인 맘대로렷다! 호두나뭇집 최 서방이 염소 주인이니까 제 맘대로 장에 내다 팔 수 있는 거야. 염소 맘대로가 아니고 염소 주인 맘대로다, 그런 말이지.˝
도룡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이제 집 주인을 만나 집을 허물 것인지 말 것인지 물어 보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생겼어요. 누가 집 주인인지 알 수 없으니, 어쩌지요?
하릴없이, 이번에도 이웃집 부들 영감에게 물어 보기로 합니다. 부들 영감은 모르는 게 없거든요.
˝여보게, 부들 영감. 누가 우리 집 주인인지 자네는 알고 있나?˝
부들 영감이 눈을 둥그레 뜨고 되묻습니다.
˝자네 집 주인이 누구냐고? 그거야 자네 아닌가?˝
˝나? 나는 아니지. 내가 이 집을 지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데, 어떻게 내가 주인이란 말인가?˝
˝흠, 그거 말 되는군. 그럼 자네 아버님이 주인 아닐까?˝
˝아버님도 아닐세. 우리 아버님도 이 집을 지으시거나 사신 분이 아니거든. 게다가 우리 아버님은 돌아가셨네.˝
˝그럼 자네 할아버님이 주인 아닐까?˝
˝할아버님도 아니야. 왜냐하면 꿈에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당신이 이 집을 지으셨다고 하셨거든.˝
˝그러면 자네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이 집 주인이시군 그래.˝
˝그렇구먼!˝
도룡 노인은 부들 영감에게 물어 보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부들 영감은 모르는 게 없군요.
자, 이제 도룡 노인은 망설일 까닭이 없습니다. 집 주인인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 집을 허물라고 하셨으니까요. 뭐든지, 주인 맘대로 아닙니까?
도룡 노인은 마을 젊은이들을 불러다가, 보물이 나오면 삯을 넉넉히 줄 터이니 집을 허물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러자 한 젊은이가 말하기를,
˝그랬다가 보물이 안 나오면 나만 손해 아닙니까? 먼저 삯을 주지 않으면 일할 수 없어요.˝
˝보물은 틀림없이 있네.˝
˝그걸 어찌 압니까?˝
˝이 집 주인이신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
˝쳇! 그걸 우리가 어떻게 믿습니까?˝
˝안 믿어진다면야, 어쩔 수 없지.˝
도룡 노인이 젊은이들을 둘러보며 말을 계속했어요.
˝좋아.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돌아들 가시게. 돈이 없으니 삯을 미리 줄 수는 없어. 내 말이 믿어지는 사람만 남아서 일을 도와 주시게나.˝
그렇게 해서 마을 젊은이들 가운데 둘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돌아갔습니다.
도룡 노인은 두 젊은이를 데리고 용마루부터 시작하여 지붕을 벗기고, 서까래를 뜯고, 대들보를 내리고, 벽을 허물고, 기둥을 뽑고, 그리고 구들장을 걷어 내었어요.
몇 날 며칠, 열심히 일한 끝에 마침내 낡은 집 한 채가 땅 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자, 이제 여기를 파보게. 보물이 묻혀 있으니 조심해야 하네.˝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서 구경을 합니다. 도룡 노인 말을 믿지 않고 돌아갔던 젊은이들도 모두 왔지요.
괭이로 조심스레 흙을 파내던 젊은이가,
˝있다, 있어!˝
소리를 지르자 모두들 자라처럼 목을 뽑고 괭이 끝을 노려봅니다.
˝와아.˝
손으로 흙을 파헤치는데 이윽고 큼직한 항아리 뚜껑이 드러납니다.
˝보물 항아리다! 어서 뚜껑을 열어 봐!˝
젊은이가 도룡 노인을 쳐다보고 눈으로 묻습니다.
˝열어 볼까요?˝
도룡 노인이 침을 꿀컥 삼키고 대답합니다.
˝열어 보시게.˝
젊은이가 뚜껑을 열자 항아리 안에 누런 황금이 그득 들어 있는 게 보입니다.
˝이크, 황금이다, 황금이야!˝
보물 항아리 안에는 황금만 들어 있는 게 아니었어요. 금, 은, 마노, 유리, 거거, 진주, 매괴, 일곱 가지 보석이 골고루 들어 있었답니다.
마을에 깨끗하고 아름다운 집이 세 채 나란히 생겼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크고 잘생긴 집이 도룡 노인 집이고요, 나머지 두 집 주인이 누군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요? 도룡 노인 말을 믿고 낡은 집을 함께 헐었던 두 젊은이지요, 뭐.

새 집에 들어 살게 된 첫날밤, 도룡 선생은 또 꿈을 꾸었습니다.
머리와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도룡아, 도룡아.˝
˝예?˝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예.˝
도룡 노인이 얼른 일어나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께 큰절을 올렸습니다.
˝네가 집 짓고 남은 보물을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한테 모두 나눠 준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예.˝
˝내 오랜 꿈이 이제 다 이루어졌구나. 홀가분하다.˝
˝예, 할아버님.˝
˝너는 자식이 없으니, 이 집을 누구한테 물려주려느냐?˝
˝글쎄요…….˝
도룡 노인이 뭐라고 대답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모습이 안개처럼 사라져 보이지를 않습니다.
꿈을 깬 도룡 노인은 이 집을 누구한테 물려줄까 곰곰 생각해 보았어요. 잘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걱정은 되지 않네요. 왜냐하면 이제 이 집은 다른 누구 집이 아니라 바로 자기 집이니까요. 주인이 있으니 주인 맘대로 하면 되지 않겠어요?
아침부터 까치가 두 마리 날아와, 까앗까앗, 우짖습니다. 반가운 손님이 오시려나? (*)
[시와 동화. 200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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