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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방 이 구석 저 구석으로 굴러다니는 책 한 권이 있었습니다.
소설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소설책의 이름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새까만 바탕의 갈피에 가로등이 그려져 있는 책이었습니다.
나는 그 책갈피에 그려져 있는 가로등에다 노란색 크레용을 칠한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 어렸을 때도 그 가로등이 좋았던가 봅니다. 그 소설책은 노란색 크레용으로 새로 단장된 다음부터는 내 책상 위에 꽂혔습니다.
어른들이 읽는 소설이기 때문에 어린 내가 읽기에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소설을 억지 다짐으로 읽으려 하다가 몇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덮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처음 한두 페이지에서 받은 생각은 지금도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마치 안개가 자욱한 밤에 불빛이 풀어진 듯한 그런 안개 빛으로 내 안에 남아 있습니다.
어렸을 때의 일 가운데 어른이 다 되어도 아름답게 아름답게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인생의 중요한 사건입니다.
나는 그 후 불빛이 풀어진 안개를 내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제목을 잊은 그 소설의 얘기를 다시 더듬어 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기억은 늘 안개 속 같은 데 깊이 파묻혀 버리고만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내가 지은 이야기이면서 이젠 제목조차 잊은 그 소설의 향기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영국 런던의 거리에 저녁이면 가스등이 켜질 때의 일입니다. 그 때도 런던에는 자욱한 안개가 두껍게 끼었습니다.
지금처럼 어느 누구 한 사람이 스위치만 누르면 온 거리의 가로등이 일제히 켜지는 때가 아닙니다.
저녁이면 구청에서 일하는 사람이 골목마다 가스등을 켜러 다녀야 했습니다.
그 사람은 불씨로써 조그만 등불과 가스통과 그리고 사닥다리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날마다 저녁이면 찾아드는 골목이기 때문에 어느 새 가스등을 켜는 사람과 골목의 사람들과는 정다워지게 마련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녁 진지를 잡수셨어요?˝
˝네, 오늘 저녁은 안개가 깊군요.˝
그런 어느 골목이었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저녁마다 골목의 가스등에 불을 켜러 오는 할아버지를 집 앞에 서서 기다리는 버릇이 저절로 생겼습니다.
머리와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목청만은 쩌렁쩌렁 울리는 분이었습니다.
빛나는 두 눈에 일을 많이 한 두 손은 무척 컸습니다.
어둠이 내리는 속에서 가스등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부시럭거리면서 등을 닦고 불을 켜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린아이의 마음에는 그 할아버지가 한없이 거룩하게 보였습니다.
어둠이 내린 할아버지의 하얀 머리는 짙은 은빛이 되고, 그 은빛 머리 위에 펼쳐진 하늘은 끝없이 장엄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성서 속에 예수님은 목수 일을 했다는데, 저 할아버지처럼 가스등을 켜러 다녔으면 좋았겠다고……. 그러면 옛날에 예수님도 이 골목을 한 번쯤 다녀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아직 이 아이는 한 번도 가스등을 켜는 할아버지하고 말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녁때 골목에서 부딪치면 눈으로만 인사를 주고 받았을 뿐, 다른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가스등에 불만 켜 놓고는 바삐 다음 골목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할아버지는 비가 오는 밤이나 눈보라치는 밤이라도 하루도 빼지 않고 골목의 가스등을 켜 놓고 갔습니다.
만약 할아버지를 못 만났을 때도 밤이 깊어서 골목에 가만히 나가 보면 여전히 빗속이든지 눈보라 속에도 가스등은 켜져 있었습니다.
가스등이 만약 켜져 있지 않다면 비 오는 밤이나 눈보라치는 밤의 바람 소리가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러나 가스등 가의 빗줄기는 오히려 별빛 줄기처럼 아름답고, 휘날리는 눈송이는 꽃 이파리처럼 아름다울 때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이 어린아이가 앓아 누워 있었습니다.
저녁때 할아버지가 골목에 와서 가스등을 켤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깥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아이는 나가고 싶었으나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대로 어두워 가는 창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두워 가는 가스등 밑에 늘 오는 그 할아버지가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서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골목 밖으로 사라졌는데 그 할아버지가 떨어뜨린 그림자가 어린아이가 누워 있는 방에 들어왔습니다.
할아버지의 그림자는 가스등을 켜던 그 큰손으로 누워 있는 아이의 이마를 짚어 주었습니다. 이상하게 아이의 아픔은 이내 나은 것같이 생각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할아버지는 저녁이면 골목에 가스등을 켜러 왔습니다. 돌층계에서 안개의 냄새가 나는 어느 저녁이었습니다. 골목에 할아버지가 가스등을 켜러 올 때가 되었습니다. 아이는 밖에 나와 섰습니다.
˝어머나!˝
아이는 소스라쳤습니다.
안개가 집과 골목과 하늘까지 다 가리워 버렸습니다.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의 그림자도 안개 속에 풀어져 희끄무레했습니다.
가스등이 어디 서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 때, 딱딱거리는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아이가 얼른 그 소리 나는 쪽을 보니까, 안개 속에 희미하게 불빛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로등이 켜진 것입니다.
아이에게는 가로등의 불빛이 허공에 핀 것같이 생각되었습니다. 아이는 용기를 내어 안개 속에 숨은 가스등 위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응, 누구냐?˝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목소리만 가스등 위에서 떨어졌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부른 목소리에 할아버지가 대답해 준 것이 신기하였습니다.
˝할아버지, 왜 저녁마다 가스등을 골목에다 켜세요, 네?˝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천천히 안개 속 가스등에서 떨어졌습니다.
˝이 가스등은 지구의 별이란다. 나는 밤마다 별을 켜러 다니는 거지.˝
안개 속에서 들려 온 이 목소리는 이상하게 아이의 가슴에 빛살처럼 켜졌습니다.
˝그럼 할아버지! 하늘의 별도 할아버지 같은 분이 밤마다 켜고 다녀요?˝
˝암, 그렇고 말고…….˝
할아버지의 젖은 듯한 목소리가 안개 속에서 떨어졌습니다.
아이의 마음에는 안개 속에서 흘러 오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먼 하늘에서 흘러 오는 것같이 들렸습니다.
아이는 안개 속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사닥다리를 타고 가스등 위에 올라간 할아버지는 다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안개를 타고 하늘의 별을 켜러 올라갔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아이는 언제까지나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소설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소설책의 이름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새까만 바탕의 갈피에 가로등이 그려져 있는 책이었습니다.
나는 그 책갈피에 그려져 있는 가로등에다 노란색 크레용을 칠한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 어렸을 때도 그 가로등이 좋았던가 봅니다. 그 소설책은 노란색 크레용으로 새로 단장된 다음부터는 내 책상 위에 꽂혔습니다.
어른들이 읽는 소설이기 때문에 어린 내가 읽기에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소설을 억지 다짐으로 읽으려 하다가 몇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덮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처음 한두 페이지에서 받은 생각은 지금도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마치 안개가 자욱한 밤에 불빛이 풀어진 듯한 그런 안개 빛으로 내 안에 남아 있습니다.
어렸을 때의 일 가운데 어른이 다 되어도 아름답게 아름답게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인생의 중요한 사건입니다.
나는 그 후 불빛이 풀어진 안개를 내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제목을 잊은 그 소설의 얘기를 다시 더듬어 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기억은 늘 안개 속 같은 데 깊이 파묻혀 버리고만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내가 지은 이야기이면서 이젠 제목조차 잊은 그 소설의 향기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영국 런던의 거리에 저녁이면 가스등이 켜질 때의 일입니다. 그 때도 런던에는 자욱한 안개가 두껍게 끼었습니다.
지금처럼 어느 누구 한 사람이 스위치만 누르면 온 거리의 가로등이 일제히 켜지는 때가 아닙니다.
저녁이면 구청에서 일하는 사람이 골목마다 가스등을 켜러 다녀야 했습니다.
그 사람은 불씨로써 조그만 등불과 가스통과 그리고 사닥다리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날마다 저녁이면 찾아드는 골목이기 때문에 어느 새 가스등을 켜는 사람과 골목의 사람들과는 정다워지게 마련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녁 진지를 잡수셨어요?˝
˝네, 오늘 저녁은 안개가 깊군요.˝
그런 어느 골목이었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저녁마다 골목의 가스등에 불을 켜러 오는 할아버지를 집 앞에 서서 기다리는 버릇이 저절로 생겼습니다.
머리와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목청만은 쩌렁쩌렁 울리는 분이었습니다.
빛나는 두 눈에 일을 많이 한 두 손은 무척 컸습니다.
어둠이 내리는 속에서 가스등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부시럭거리면서 등을 닦고 불을 켜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린아이의 마음에는 그 할아버지가 한없이 거룩하게 보였습니다.
어둠이 내린 할아버지의 하얀 머리는 짙은 은빛이 되고, 그 은빛 머리 위에 펼쳐진 하늘은 끝없이 장엄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성서 속에 예수님은 목수 일을 했다는데, 저 할아버지처럼 가스등을 켜러 다녔으면 좋았겠다고……. 그러면 옛날에 예수님도 이 골목을 한 번쯤 다녀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아직 이 아이는 한 번도 가스등을 켜는 할아버지하고 말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녁때 골목에서 부딪치면 눈으로만 인사를 주고 받았을 뿐, 다른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가스등에 불만 켜 놓고는 바삐 다음 골목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할아버지는 비가 오는 밤이나 눈보라치는 밤이라도 하루도 빼지 않고 골목의 가스등을 켜 놓고 갔습니다.
만약 할아버지를 못 만났을 때도 밤이 깊어서 골목에 가만히 나가 보면 여전히 빗속이든지 눈보라 속에도 가스등은 켜져 있었습니다.
가스등이 만약 켜져 있지 않다면 비 오는 밤이나 눈보라치는 밤의 바람 소리가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러나 가스등 가의 빗줄기는 오히려 별빛 줄기처럼 아름답고, 휘날리는 눈송이는 꽃 이파리처럼 아름다울 때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이 어린아이가 앓아 누워 있었습니다.
저녁때 할아버지가 골목에 와서 가스등을 켤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깥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아이는 나가고 싶었으나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대로 어두워 가는 창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두워 가는 가스등 밑에 늘 오는 그 할아버지가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서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골목 밖으로 사라졌는데 그 할아버지가 떨어뜨린 그림자가 어린아이가 누워 있는 방에 들어왔습니다.
할아버지의 그림자는 가스등을 켜던 그 큰손으로 누워 있는 아이의 이마를 짚어 주었습니다. 이상하게 아이의 아픔은 이내 나은 것같이 생각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할아버지는 저녁이면 골목에 가스등을 켜러 왔습니다. 돌층계에서 안개의 냄새가 나는 어느 저녁이었습니다. 골목에 할아버지가 가스등을 켜러 올 때가 되었습니다. 아이는 밖에 나와 섰습니다.
˝어머나!˝
아이는 소스라쳤습니다.
안개가 집과 골목과 하늘까지 다 가리워 버렸습니다.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의 그림자도 안개 속에 풀어져 희끄무레했습니다.
가스등이 어디 서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 때, 딱딱거리는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아이가 얼른 그 소리 나는 쪽을 보니까, 안개 속에 희미하게 불빛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로등이 켜진 것입니다.
아이에게는 가로등의 불빛이 허공에 핀 것같이 생각되었습니다. 아이는 용기를 내어 안개 속에 숨은 가스등 위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응, 누구냐?˝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목소리만 가스등 위에서 떨어졌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부른 목소리에 할아버지가 대답해 준 것이 신기하였습니다.
˝할아버지, 왜 저녁마다 가스등을 골목에다 켜세요, 네?˝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천천히 안개 속 가스등에서 떨어졌습니다.
˝이 가스등은 지구의 별이란다. 나는 밤마다 별을 켜러 다니는 거지.˝
안개 속에서 들려 온 이 목소리는 이상하게 아이의 가슴에 빛살처럼 켜졌습니다.
˝그럼 할아버지! 하늘의 별도 할아버지 같은 분이 밤마다 켜고 다녀요?˝
˝암, 그렇고 말고…….˝
할아버지의 젖은 듯한 목소리가 안개 속에서 떨어졌습니다.
아이의 마음에는 안개 속에서 흘러 오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먼 하늘에서 흘러 오는 것같이 들렸습니다.
아이는 안개 속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사닥다리를 타고 가스등 위에 올라간 할아버지는 다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안개를 타고 하늘의 별을 켜러 올라갔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아이는 언제까지나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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