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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모래마을의 후크 선장

창작동화 안선모............... 조회 수 1814 추천 수 0 2005.05.09 13:10:12
.........
저기가 우리가 살 곳이다.˝
저녁 해가 마지막 뒷꼭지를 보이며 떨어지고 있었다.
잠에서 덜 깬 눈으로 바라보니 저녁 놀을 삼킨 듯한 산꼭대기의 집들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멋진 성 같았다.
언제나 높은 언덕에 우뚝 서 있는 성. 영주나 공작, 백작 같은 고귀한 분들이 사는 곳.
나의 눈에는 천국처럼 보였다.
휘황찬란하지는 않지만 빽빽이 켜져 있는 백열등의 불빛들이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사실 나는 자라면서 이렇게 불빛이 많은 것은 처음 보았다. 그러나 전혀 낯설지 않았다.
저들 속의 어느 집에 들어가 얼른 잠이라도 푹 잤으면…….
어머니께서 가리키신 곳은 언덕보다는 조금 큰 산이었다.
성냥갑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 같은 집.
언덕 위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앉아 있는 집들.
˝멋있다!˝
˝멋있어?˝
어머니는 의외라는 듯 다시 물으셨다.
˝정말 멋있어?˝
아버지는 묵묵히 담배만 빨고 계셨다. 무엇엔가 단단히 골 난 사람처럼 말없이 담배만 빨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요 근래 나는 종종 보아왔다.
무척 화가 나서 그 화를 식히고 있거나 아니면 무언가 골똘히 생각할 일이 있거나 그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감자 농사나 옥수수 농사가 잘 안 되었을 때 또는 농사 지은 것이 수매가 잘 안될 때 아버지는 늘 그러셨다.
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웠다.
운전석 옆 좁아터진 자리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틈새에 끼어 장장 6시간 여를 견딘다는 건 괴롭고도 힘든 일이었다.
˝우리 고향집보다야 못하겠지만 어쩔 수 있겠니?˝
아버지는 짐을 옮기시면서 힘들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전 이제 괜찮아요.˝
도시로 이사 간다고 결정이 내려졌을 때 제일 펄펄 뛴 것은 나였다.
눈알이 빨개지도록 울었던 기억이 떠오르자 나는 무안쩍은 표정으로 숱 많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사 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 것은 어머니였다.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겠수. 도시에선 파출부를 해도 수입이 괜찮다고 하잖아요.˝
무슨 일을 해도 남는 것 없는 농사일보다야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글쎄, 아무리 도시가 좋다지만 난 아무래도 양복 입고 갓 쓴 시골뜨기 같아서 영 어색하단 말이야…….˝
아버지가 씁쓰레 웃으셨다.
˝공장에서 일하는 것도 뭐 별 거 아니랍디다. 특별한 기술이야 서서히 익히면 될 일이고. 아무렴 농사일보다야 힘들겠수?˝
어머니는 아버지를 안심시키려는 듯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다. 그런 모든 이야기는 모두 이모에게서 들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일도 이모부가 주선했을 테니까.
˝배운 게 농사일밖에 없는데…….˝
아버지의 한숨 속에서 땅에 대한 미련이 뚝뚝 묻어 나왔다.
나는 뒤 울 안에서 키우던 토끼며 뀡, 그리고 두릅나무 구멍에서 어렵사리 잡은 새끼 청설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겨울잠을 안 자는 청설모의 모습에서 나는 언제나 농사꾼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봄, 여름, 가을에는 분주히 나무 위를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고 눈 내리는 겨울이 와도 다람쥐들처럼 겨울잠에 빠지지도 않고 또 다른 먹이 걱정으로 나무 밑을 헤매고 다니는 청설모.
나는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잽싸게 날아다니는 청설모의 모습을 언제나 신기하게, 경탄스럽게 쳐다보는 것을 좋아했었다.
전학 수속과 함께 들어선 학교는 읍내 중학교보다도 컸다.
운동장에도 교실에도 아이들로 꽉 차서 들썩거렸다.
교실로 가자 나는 그만 정신이 빠질 지경이었다.
고작해야 이십여 명이 되는 곳에서 공부하다 앞 뒤가 꼭 막힌 교실로 들어오니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자, 본인 소개를 해 볼까?˝
˝저……저는 강원도 평창군에서……온…….˝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반짝거리는 백여 개의 눈동자를 보자 나는 그만 뒷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으음, 강원도 평창, 참 아름다운 곳이지. 좋은 곳에서 태어났구나.˝
나를 응원해 주려는 듯한 선생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저는 산 좋고 물 좋은 강원도 땅에서 태어난 순 토박이 감자바위올시다.˝
나의 이 말에 아이들은 교실이 떠나 갈 듯이 웃어제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하면 곧잘 하시던 말씀이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것이었다.
˝나는 누가 뭐라해도 촌스러운 강원도 감자바위란 말이다. 내 조상의 뼈가 묻힌 이곳을 내가 왜 떠나냔 말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여길 떠난다 해도 난 못 가, 난 못 간단 말이야.˝
하나 둘씩 떠나 버려 빈 집이 많아졌다.
밭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도 미처 수확 못 하고 도시로 떠난 이웃의 가난한 농부들.
그 때문에 아버지의 주량은 늘어갔다.
집 앞 냇가에서 고기 잡던 친구들도 하나 둘씩 떠나갔다.

이사와서 처음 사귄 아이가 완이였다.
작은 키에 흰 얼굴.
그러자 내가 무엇보다 신기해 한 것은 그 아이의 곱슬곱슬한 파마머리였다. 남자가 파마한 것을 처음 보았다.
˝쟤네 아버지, 후크야.˝
옆 자리에 앉은 친구가 조그맣게 말했다.
˝후크? 후크가 뭔데?˝
˝이 바보. 후크도 몰라?˝
그러면서 그 아이는 집게 손가락을 구부려 보였다.
점심 시간이 되자 나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빵을 씹어야 했다. 미처 도시락을 준비 못했기 때문이었다.
˝너 나랑 이거 바꿔 먹을래?˝
완이가 내 자리로 왔다.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완이는 도시락을 나에게 밀쳐 놓고 내 빵을 덥석 집어다 먹는 것이었다.
˝너 보아하니 빵 먹기가 싫어 깨작대는 것 같아 그래. 나 역시 별로 도시락 먹고픈 마음 없고……상부상조잖아.˝
나는 참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1년에 한번 먹을까 말까한 카레라이스였다.
˝나, 사실……매일 카레라이스 싸와.˝
˝……?˝
˝아빠가 만들어줄 수 있는 게 그거니까. 물론 다른 거 싸올 때도 가끔은 있어.˝
˝…….˝
˝먹기 싫어도 할 수 없잖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너, 모래마을로 이사왔지?˝
˝모래마을?˝
˝너 이사오는 거 봤어. 나도 모래마을 살아.˝
˝거기 이름이 모래마을이야? 이름이 참 희한하다.˝
˝너도 그렇게 생각했구나! 나도 처음엔 모래가 잔뜩 쌓여 있는 동넨 줄 알았어.˝
˝아무리 봐도 모래는 없던데…….˝
˝모래는 잘 무너지잖아.˝
˝……?˝

내가 점점 도시 생활에 싫증을 낼 무렵 아버지의 우울증은 깊어갔다.
술은 안 마셔도 늦게 오시기 일쑤였다.
아버지는 인근 공단에 취직하셨다. 처음 몇 달 간은 긴장하셔서 그런지 제 시간에 집에 꼭 들어오셨다.
노는 날엔 우두커니 방에 앉아 계셨다.
˝답답하다, 답답해.˝
들판에 서시면 씩씩하게 보이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은 작은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어머니는 적응을 쉽게 하신 듯 살림 재미에 빠지셨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잘 어울려 이곳 저곳 일거리를 찾아 다니셨다.
심심하고 따분한 날들이었다.
산골짜기를 헤매며 싸돌아 다니던 고향의 냄새가 그리웠다. 눈만 감으면 고향의 모습들이 선명히 떠올랐다.
지금쯤 산자락은 붉게 타오르고 있겠지. 냇가의 송사리들도 살이 올랐을 거야.
아마 전나무들도 더 늘씬히 키를 키웠겠지.
아, 청설모 새끼들이 많이 자라 요즘 참 바쁠 거야. 잣나무에 오르내리느라 신나겠다.
웃말 흑염소 키우는 영기 아저씨 장가 갔을까? 노총각 신세 한탄 소리 정말 재미있었는데…….
기욱이네 참외 농사는 잘 됐는지……어지간히도 많이 서리해 먹었었는데……기욱인 참 힘들 거야. 지게 지고 나무 해 오려면……걔네 아버지 어지간해야지. 나무 하느라 땀 깨나 빼겠다.

인근 바다를 메꾼 허허벌판에 아파트가 쑥쑥 들어섰다. 자고 일어나면 생기는 것이 아파트며 빌딩이었다.
흙먼지가 일었고 포크레인이 들락날락 거렸다. 시멘트를 실은 트럭이 도로를 싱싱 달려왔다.
도시는 날로 발전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따분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집에 오면 나를 반기는 것은 방문을 채운 녹 슬은 자물통이었다. 그리고 식어빠진 찬 밥 한 덩이.
완이의 몸에선 항상 진한 스킨 냄새가 났다.
˝우리 집에 놀러가자. 내가 멋있는 거 보여줄게.˝
좁은 골목 골목을 지나 지붕이 낮은 모래마을 집들을 거의 다 지나 그 꼭대기에 완이는 살고 있었다.
˝시원하지? 아래는 답답해도 이 꼭대기는 시원해. 우리 아빠는 그래서 여기가 좋대.˝
˝와! 학교도 보이네!˝
˝충성! 김완, 무사히 공부 마치고 귀대함을 보고합니다..˝
완이의 경례를 받은 완이의 아빠는 역시 경례로 답했다.
˝오냐, 수고했다.˝
완이 아빠를 보는 순간 내 가슴은 얼어붙은 듯했다.
˝으악!˝
나는 소리를 질렀다.
˝하하하하…….˝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웃음 소리였다.
˝사내 녀석이…….˝
˝놀라지마. 우리 아빤 후크야, 후크. 후크 선장은 왼팔을 상어에게 물렸다지만 우리 아빤 오른팔이야. 전쟁 때문이었대.˝
˝전쟁? 6·25?˝
˝아니야. 월남 전쟁이었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이었대.˝
처음에 완이 아빠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흠칫 놀란다고 했다. 다섯 손가락 대신 무시무시한 쇠꼬챙이 손을 가지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어도 방 안은 어두웠다. 앞집과 뒷집들의 지붕들에 가려 언제나 해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완이야, 아빠 외출해야 하는데…….˝
˝알았어요.˝
완이는 능숙한 솜씨로 스킨을 찍어내어 아빠의 얼굴에 고루 펴발랐다. 진한 스킨 냄새가 방안을 맴돌았다.
누렇게 변색된 사진첩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군복을 입은 잘 생긴 육군 상사의 모습, 열대림 속에서 번들거리는 땀과 함께 활짝 웃던 남자의 모습.
그 남자와 다정히 팔짱을 끼고 있는 젊은 여자의 모습.
후크의 모습은 어디에고 없었다.
˝우리 엄마, 예쁘지?˝
˝늬네 엄마야?˝
내가 의외라는 듯 묻자 완이는 주먹질하며 한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웨딩드레스의 여자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야, 임마. 그럼 내가 엄마도 없는 앤 줄 알았어?˝
˝아니, 그게 아니고…….˝
˝우리 엄만 공장에 나갔어. 새벽에 나가시고 늦게 오기 때문에 밥은 아빠와 내 차지야. 우리 아빠가 제일 자신 있게 잘하는 게 카레야. 만들기 쉽거든.˝
완이가 보여 준 훈장들은 멋졌다.
˝이건 ´호랑이 작전´때 베트공 1개 사단을 전멸시킨 공로로 받은 훈장이고 이건 다낭에 침투한 스파이를 색출한 공로로…….
˝와……,˝
나도 모르게 낮은 신음 소리가 흘러 나왔다.
겪어보지 못한 전쟁 이야기가 아무리 과장이 많이 섞여 있다 해도 신나는 일임엔 틀림없었다.
그 후로 나는 공부만 끝났다 하면 완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완이 아빠에게 듣는 월남전의 이야기는 나를 사로잡았다. 꾹 속에서도 나는 밀림 속을 헤매기 일쑤였다. 어떤 때는 베트공과 일대 접전을 벌이기도 했다. 우거진 정글 속에서 이름 모를 독충들과 싸우며.
˝어느 비 내리는 날이었지. 열대 지방의 우기란 것은 그 느낌이 끈적끈적 하여 기분이 불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지. 우리 부대는 정글 속을 순찰하고 있었단다. 정보에 의하면 베트공들이 민간인으로 위장하고 마을에 숨어 있다는 거였어. 그런데 문제는 월남인들이었어. 그들은 누구의 편도 아니었지. 그들은 구경꾼이었어. 자기들의 전쟁이었지만 그들은 지칠대로 지쳐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는 표정들이었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나는 점차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점차 난폭해 졌다. 베트공이 어디로 숨어 있는지 말하지 않으면 이 마을을 불질러 버리겠다고……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무덤덤했었다 …….˝
그때 탄 훈장은 아직도 반짝거리는데 육군 상사의 오른팔은 어디선가 날아온 수류탄과 함께 멀리로 날아가 버렸다고 했다.
˝아마 정글속 어딘가에 가루가 되어 묻혀 있겠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들려주는 듯한 완이 아빠의 이야기는 나를 상상의 깊은 골짜기로 밀어 던졌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상상의 골짜기와 꿈 속에서 나는 실감나게 겪고 있었다. 마치 내가 김 상사가 된 기분이었다.
어머니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밀려 오는 소식에 의하면 우리 모래마을이 재개발되어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것이었다.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아파트 입주권이 주어진다기는 한다지만 모래마을 사람들의 능력으론 아무도 그 아파트에 입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몇 천 만원씩 하는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형편이라면 누가 여기에 살겠느냐는 거예요.˝
아버지는 담배만 빨고 계셨다.
˝보상금이라고 받아 봐야 전세금 밖에 안 되고, 들어가지도 못할 아파트 입주권 가지고 있으면 뭐하냐고 팔아 버린다고들 해요.˝
모래마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반대 데모였다. 무조건 재개발을 반대한다는 거였다. 하던 일을 모두 뒤로 미루고 사람들은 매달렸다.
구청에도 쫓아가고 시청에도 쫓아갔다. 연일 사람들은 모여 수군덕거렸다. 덩달아 아이들은 신나게 몰려다녔다.
온 동네가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소란스러웠다.
˝그 완이 아버진가 하는 그 사람이 주동이 되어 진정서를 낸다고들 해요.˝
˝나라에서 하는 일인데 그 사람이 무슨 힘이 있어서…….˝
˝글쎄 몇몇 사람들은 그깟 병신이 나서서 무슨 일이 되냐고들 해요.˝
어머니는 저녁이면 아버지에게 보고하기 바빴다.
˝우리야 뭐, 정 안되면 고향으로 내려가는 수밖에…….˝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기다렸다는 듯,
˝그러지 뭐, 고향집도 그대로 두고 왔고 또 밭떼기도 조금 남았으니까…….˝
하셨다.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갈 순 없잖수.˝
˝…….˝
˝그 사람 상이 군인말예요. 월남전에서 다쳤대요.˝
˝그래도 그 사람 똑똑하더라. 말하는 걸 보니 경우도 바르고…….˝
토요일 오후였다.
수업이 일찍 끝나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을 입구에 사람들이 잔뜩 앉아 있었다.
˝아빠다!˝
완이의 반가운 외침 소리는 떠들썩한 소리에 묻혔다.
˝여러분,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안 됩니다. 그들이 납득할 만한 요구사항을 내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뭐요? 당신이 말하는 요점이 뭐욧!˝
사람들은 빈정거리듯 대꾸했다.
˝고층 아파트도 좋습니다. 평수가 넓은 것도 좋습니다. 단지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 속에 작은 임대 아파트도 지어 달라는 겁니다. 돈 없는 사람도 부담 없이 들어가 살 수 있는 임대 아파트를 지어 달라는 겁니다. 우리에게도 우리가 살아온 이 터전 위에 두 발 뻗고 잠 잘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허락해 달라 이겁니다.˝
사람들은 서서히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모습도 보였다.
˝후크 선장님, 힘내세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온 것일까?
나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후크 선장이 오른팔을 번쩍 쳐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어이 없다는 듯 돌아보셨다.
나는 그날 밤 꿈을 꾸었다.
´모래마을호´라는 거대한 배에 타고 있었다. 완이도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이웃의 모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몰려 서 있었다.
바다는 성난 듯이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파도는 미쳐 날뛰었다. 금방이라도 배는 뒤집혀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힘 없는 이들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주저앉기 시작했다.
이때였다.
오른팔의 쇠꼬챙이 손을 번쩍 들며 후크 선장이 소리쳤다.
˝여러분! 모두 기운을 냅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앉아서 배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리시렵니까?˝
하늘은 신기하게 맑아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울음을 그치고 후크선장을 향해 섰다.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자! 출발!˝
닻이 올려지고 배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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