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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조선일보] 12월의 동물원 -

신춘문예 김정옥............... 조회 수 1739 추천 수 0 2005.05.16 20:09:07
.........
1999년 조선일보 당선작
      
코끼리 열차가 동물원을 출발했어.
손님은 겨우 네 사람뿐이었어. 마지막 소풍을 나선 우리 식구지.
동물원은 우리가 가장 즐겁게 놀던 곳이야. 아빠, 나, 그리고 내 동생 재진이는 동물이라면 잠을 자다가도 뛰어나가거든. 그래서 여기 동물원에 오는 걸 가장 좋아해.
하지만 오늘은 별로 오고 싶지 않았어. 이런 기분으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프리카 치타라도 보고 싶지 않아.
내가 안 간다고 고집을 피우자, 엄만 우실 것 같았어.
˝아빨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데... 형진아, 아빠하고 웃으면서 인사해야지.˝
엄만 우리 식구들이 오늘 꼭 동물원에 와야 한다고 생각하셔. 오늘 해가 지면 아빠가 먼 시골로 떠나시거든. 아빠 새 일자리랑 우리가 살집을 위해서 가시는 거래. 그러니까 우리가 좋아하는 동물원에서 재미있게 보내다가, 아빠가 내일이라도 돌아오실 것처럼 인사를 해야 한대.
난 아빠가 가지 않았음 좋겠어. 언제 오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거든.
요즘 우리 아빠는 옛날 같지가 않아. 마치 사라지는 사람처럼 우리 곁을 떠나려고 하지 뭐야. 그래서 난 오늘 동물원에 오기 싫었어.
헤어질 걸 생각하니까, 동물원으로 들어가는 큰문이 더 쓸쓸해 보여.
재진이는 예전처럼 쪼르르 제일 앞서서 들어갔어. 녀석은 아빠가 떠나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가 봐.
12월에 만난 동물원은 거울 속 세상 같아. 아주 조용해.
아이들의 재잘거림, 잃어버린 꼬마를 찾는 방송... 모두 어디로 숨어버렸어. 남쪽 나라로 날아갔나 봐.
뒤로 처진 채 어슬렁어슬렁 식구들을 따라갔어. 하지만 곧 우리 모두가 놀랄 일이 생겨버렸어.
커다란 우리가 텅 빈 거야!
´그물무늬 기린´이라는 푯말을 단 우리야. 동물원에 동물이 없다니!
모두들 떫은 감을 씹은 얼굴이었어.
˝추워서 저 바위 집에 들어갔나 봐.˝
˝아이엠에프라고 먹이도 줄였다던데...˝
˝기린이 배고파서 죽었어요?˝
우리 식구들 풀 죽은 목소리들만 텅 빈 우리로 퍼져나갔어.
나도 기린을 못 보는 게 서운해.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어.
´우리 집에도 아빠가 곧 안 계실 텐데. 기린이 없는 건 아무 것도 아니야.´
어깨가 축 늘어진 엄마 아빠 뒤를 줄레줄레 좇아갔어.
물개, 표범, 바다사자 집을 찾아온 건 좀 잘한 일이야. 차가운 물 속에서 녀석들은 신나게 헤엄치고 있었거든.
바다사자 방 앞에서 발걸음이 딱 붙어버렸어. 물 위로 얼굴만 삐죽 내놓고선 숨쉬는 모습 보았니? 맨들맨들한 얼굴에 까만 콧구멍이 뽕 뚫려 있거든. 그게 벌어졌다 오무려질 땐, 콱 깨물어주고 싶도록 귀여워.
물 속에선 벌러덩 누워서도 수영을 잘 해. 아빠 바다사자인가 봐. 한없이 부풀어 올라 팡 터질 듯한 몸이 물 속을 쌔앵~ 헤엄쳐 나가. 둥그렇게 구부러진 곳을 지날 때는, 한 손을 까닥까닥 하면서 방향을 잡아.
˝저것 봐. ´안녕! 안녕!´ 하는 것 같지요?˝
재진이는 덩달아 신이 났어.
˝´나 잘하지´ 하는 것 같은데.˝
아빠를 쳐다보았어. 입가에 웃음이 살짝 걸렸지만, 씁쓸한 맛이 나는 웃음이었어.
저렇게 웃으면서 대꾸해준 건 정말 오랜만이야. 요즘 아빠는 말도 잘 안 하고 웃지도 않으셔. 그 대신 뻑뻑뻑 담배만 늘었어. 아빠는 나하고 맺은 옛날의 약속을 잊으신 거야.
˝힘든 일 있으면 서로 얘기하기다. 자, 사나이끼리 약속!˝
아빠가 우리에게 축구공이랑 쵸코 우유를 사다줄 수 없다고 해도 난 괜찮아. 하지만 우리 약속을 잊는 건 싫어. 내 눈길을 피하는 아빠는 낯선 사람 같아. 난 아빠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아빠가 떠나고 안 계실 때, 동생은 아빠 왜 빨리 안 오시냐고 떼를 쓰겠지. 그리곤 틀림없이 지금을 생각하면서 울 거야. 그걸 생각하니까 다시 기분이 안 좋아졌어.
바다사자들은 좋겠어. 자기 아빠랑 저렇게 재미있게 사니까. 우리 아빠는, 아빠 바다사자보다 못한 것 같아. 우리를 내버려두고 혼자 떠나니까.
바다사자 때문에 아빠가 안 계시면 분명히 더 나쁠 거야. 아빠가 생각나면 바다사자 가족도 생각날 테니까. 그 때마다 내 마음은 엉망이 될 거라구.
길가 기슭에 잔돌이 보였어. 납작한 걸로 집어들었어. 돼지 같은 아빠 바다사자를 향해 던졌지.
돌멩이도 바보야. 물 속에 빠지더니 꼬로록 힘없이 가라앉고 말았어. 날쌔게 헤엄치는 바다사자들은 아무도 맞지 않았어.
난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어. 어느 새 아빠가 날 봐버린 거야. 동물을 좋아하는 아빠한테 불호령을 맞겠지? 그러나 그뿐이었어. 뭐라고 할 듯 하다가 그만두셨어. 아빠는 왜 날 야단치질 못 하시지? 난 그런 아빠가 너무 멀게 느껴져. 아빠한테 안 혼나는 게 이런 기분일지 몰랐어.
우리에서 놀고 있는 동물들이 별로 없었어. 빈 우리에는 작은 발자국조차 남아 있질 않았어.
그 대신 나무들이 걸고 있는 이름표가 자주 눈에 뜨여. 층층나무, 줄참나무, 계수나무, 자귀나무, 굴피나무, 아그배나무, 회화나무... 길 곁에 촘촘히 자리를 잡은 나무들이야.
우리에서 동물이 사라지자, 나무들도 잎새를 하나씩 떨궈 버렸나 봐. 벌거벗은 몸뚱이에 이름표만 달랑 남았지 뭐야. 아빠가 안 계신데 아빠 문패가 그대로 있을 우리 집 같지?
아주아주 커다란 새장으로 왔어. ´큰물새장´이야.
큰물새장은 철골과 그물로 엮어졌어. 마치 새들의 성 같아.
성의 철탑 꼭대기에는 새집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어.
˝언제 새 집이 저렇게 만들어졌지? 저건 새들이 자기 힘으로 지은 것 같은데?˝
˝엄마, 나뭇잎들이 가려주지도 않는데 왜 저기에 집을 짓지요? 여름에 비가 오면 어쩌려구.˝
˝큰물새장에 지붕을 이는 것 같아요.˝
˝물새들은 지붕이 생겨서 더 좋겠구나.˝
재진이는 두루미가 몰려 있는 곳에서 까불거리고 있었어. 가서 손을 잡아주었어. 손이 차가운데도, 외다리로 서 있는 두루미가 신기하기만 한가 봐.
˝새들도 튼튼하게 자기 집을 지어 가는데... 난 집을 두고 떠나다니, 당신이랑 아이들 볼 낯이 없어.˝
재진이 손을 따뜻하게 비벼주는 나한테도 들렸어. 너무나 깊게 가라앉은 아빠 목소리였어. 엄마가 고개를 푹 숙이셨어. 나도 깊은 곳으로 쑤욱 떨어지는 느낌이었어. 키 작은 엄마가 아빠 등을 쓰윽 쓱 문질러 주셨어.
´아빠가 힘들어 하시는구나.´
뒤돌아 걷는데, ´꺼억´하는 새 울음소리가 났어. 목구멍 저 밑에서부터 끌어올리는 울음이야. 큰물새장에서 들려왔어. 아빠가 울면 저런 울음일까?
걷다가 슬쩍 아빠 얼굴을 훔쳐보았어. 입술은 바싹 말라서 하얗게 터 있어.
동물이 없는 동물원은 그저 커다란 공원일 뿐이야. 나무들이 더 많이 보이니까 더 그런 것 같아.
겨울 햇빛에 물든 나무는, 혼자서 양떼를 지키는 양치기 같아. ´너 안 무섭니?´ 하고 물으면, ´뭐, 그렇지.´ 하고 싱긋 웃어버릴 것 같아.
먼데로 가면, 아빠도 저 겨울 나무처럼 씩씩하게 잘 계실까? 우리가 보고 싶어 혼자 가만히 울지 않을까?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쌍봉낙타였어. 낙타는 사막을 건너는 동물이래.
˝낙타 등에는 물이 있대요. 목마를 때 그걸 조금씩 마신대요.˝
˝사실은 기름이야. 사막에 없는 것은 물만이 아니야. 먹을 것도 없어. 밤이 되면 추운데, 추위를 피할 곳도 없고. 배고프고 추울 때, 낙타는 영양분이 그득한 기름기를 조금씩 꺼내 먹는 거야. 그러면 춥지도 지치지도 않지. 목도 덜 마르고.˝
내 손을 잡아 아빠 호주머니에 넣어 주시면서 그랬어. 나는 손을 뺄까 하다가 그대로 있었어.
˝물이 아니라서 다행이네. 물이라면 사막을 건너다가 슬플 때, 눈물로 흘려버릴 거야.˝
질겅질겅 마른 풀을 씹는 낙타를 바라보며 엄마가 말씀하셨어.
˝물이 슬플 때 눈물로 나온다면, 기름기는 무엇이 되지?˝
그런 아빠 목소리는 오늘 처음이야. 팽이를 막 풀어내고 있는 팽잇줄처럼 팽팽하거든.
˝... 사막을 건너는 데 필요한 지혜나 용기 같은 거야.˝
조용히 서 계시던 아빠가 우리를 모으셨어. 그리곤 세차게 안아주셨어.
건너편에는 처음 보았던 기린네 집이야. 얇아진 햇살이 기린이 밟았을 희뿌연 흙판을 비추고 있어. 아빠가 나직나직 말씀하셨어.
˝내 눈엔 저기에 푸른 풀들이 우북하게 돋아난 게 보여. 지금은 저래도 새 봄이 오면 풀들이 솟아오를 거야. 그러면 기린이 돌아오겠지. 텅 빈 우리에 동물들이 다시 돌아올 때, 우리도 함께 모여사는 거야.˝
아, 난 이제 아빠를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좀 빨리 갈까? 아빠 차 시간 다 돼가.˝
엄마가 시계를 보셨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물원 대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어. 거울 속같이 조용한 동물원이 다다닥 뜀박질 소리로 출렁거렸어.
난 잠깐 뒤돌아서 손을 흔들어 주었어.
´모두 새 봄에 만나. 겨울 나무가 눈뜨면 우리도 다시 돌아올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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