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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별명

창작동화 송년식............... 조회 수 1318 추천 수 0 2005.05.25 14:47:22
.........
누구나 한두 가지씩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별명이 있을 거야. 나도 그래. 아이들은 나더러 한쪽 팔이 없다고 ´외팔이´라고 해.
눈이 크다고 ´왕눈이´라고 하는 애도 있어. 모두 생김새와 관계된 것들이지.
내 눈이 큰 건 엄마를 닮아서래. 엄마의 눈은 내가 봐도 커. 어쩌다 엄마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이 보이기도 해.
엄마의 눈은 작아 질 때도 있지. 손바닥을 턱에 괴고 조각품처럼 앉아 계실 때. 야단을 치고 난 뒤 한동안 나를 펴다 보실 때……. 그럴 때 엄마의 눈꺼풀은 상점의 셔터가 내려오듯 스르르 감겨지지.
그 틈으로, 흐린 샘물이 고이곤 해. 눈물 때문이겠지만 엄마의 눈 속에서 내가 지워지면 덩달아 슬퍼져. 그때 내 마음속에서는 ‘철커덕’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그렇지만 말이야. 내가 팔이 없는 건 누굴 닮아서가 아니야. 2학년 여름 방학 때였어. 아빠네 회사에서 자녀들에게 공장을 견학시켜 주었지. 그 때 그만 사고를 당한 거야.
기계 장비 근처에는 가지 말라고 공장을 안내하던 아저씨가 말씀하셨지만 깜빡 잊어버렸지 뭐야. 컨베이어에서 미끄럼을 타며 쏟아져 내려오는 물건들 모습이 참 신기했거든. 그래서 가까이 가서 보려고 좀 더 다가갔어.
나도 기초적인 영어는 좀 알아. 그런데 봉지들이 휙휙 지나가 버리니 읽을 수가 있어야지.
얼른 봉지를 집어 들었지. 물론 읽고 나서 곧 제자리에 둘 작정이었어. 정말이야. 궁금해서 그랬던 것뿐이야. 그런데 다시 갖다 놓으려고 팔을 내민 순간 그만…….
어른들은 나 같은 사람을 보고 ‘지체 부자유’ 라고도 해. 팔다리나 몸이 불편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
그런데 이해 할 수 없는 건 ‘뇌졸중(중풍)으로 몸이 불편해진 사람은 장애인이 될 수 없다는 거야. 뇌졸중을 앓은 사람은우리 동네에도 있는데 그분은 가족도 못 알아 봐. 그런 정도면 분명히 장애인이잖아. 그런데 왜 장애인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건지 모르겠어. 참 이상하지?
이것 때문이었어. 작년에 같은 반이었다가 다른 학교로 간 내 친구 경진이, 경진이 아버지는 손해를 봤어. 장애인들은 ‘장애인 수첩’만 보여 주면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거든. 그런데 경진이 아버지는 그 수첩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같은 장애인이면서 혜택을 못 받았지.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다른 얘기도 더 할게. 들어 볼래?
장애인은 통일호나 무궁화호 열차는 돈을 반만 내면 탈 수 있어. 하지만 난 열차를 탈 때면, 그냥 돈을 다 내고 타자고 박박 우기곤 해. 왜 그런지 알아? 내 참 치사해서……. 여러분도 알 거야. 통일호나 무궁화호가 새마을호보다 시설이 좋지 않다는 거 말이야. 그렇지만 장애인들에게 새마을호는 할인이 안 된다는 거 알아?
결국 불편한 사람들에게 불편한 열차만 할인을 해주는 셈이지 뭐. 사실, 장애인들은 웬만하면, 할인이 안 되더라도 몸을 편히 뉠 수 있는 새마을호를 탄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야.
경진이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파. 아버지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돈이 많이 들어갔나 봐. 그전에는 그리 못 사는 집이 아니었거든. 그런데 작은 집으로 이사하게 된 거야. 나도 걔네 집에 놀러 가 봤는데 햇빛이 안 들어오는 지하였어. 내가 봐도 참 한심했는데 경진이는 어땠겠어.
그런데 그것마저 견디기 어려웠나 봐. 어머니가 돈 벌러 나가셨는데 벌이가 신통치 않았던 것 같아. 결국 시골에 있는 큰아버지네 집으로 이사한다고 하더라고.
걔네가 이사하는 날, 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안개가 끼어서 그랬을 거야. 경진이네가 떠나가는 날 세상은 온통 젖어 있는 것 같았어. 가족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경진이 아버지를 경진이와 걔네 어머니가 부축하며 떠난 모습. 그 생각만 하면 나는 지금도 왈칵 목이 메어져.
나와 친하게 지내는 현정이 누나의 경우도 안타까워. 그 누나는 ‘척추 장애인’ 이거든. 간혹 그 누나를 ‘곱사등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 그런데 그 누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침대를 만들어 주는 회사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어.
그래, 그 누나는 옷 사기도 참 힘들었지. 언젠가 그 누나와 그 누나 어머니를 따라 백화점에 같이 간 적이 있어. 그 때 얼마나 헤맸는지 알아? 마음에 드는 옷은 너무 크고, 몸에 맞는 어린아이에게나 어울리는 것들이었어.
척추 장애인들치고 키가 큰 사람은 별로 없어. 팔을 보면 틀림없이 키가 컸을 사람인데도 작달만하지. 등에 장애가 생겨 상체가 성장을 못 해서 그런 거래.
달라진 건 없어. 우리 반 애들도 짓궂게 구는 녀석들은 여전해. 오늘도 나는 그 녀석 때문에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몰라.
시험을 봤거든. 시험이 끝나면 우리들은 으레 “야, 만세다.” 하고 앞 다투어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곤 해. 나도 운동을 좋아해서 뛰어 나갔지. 그런데 나 때문에 시비가 벌어진 거야.
축구 경기는 문지기 외에는 손이나 팔로 공을 만질 수 없다는 거 알지? 물론 공이 밖으로 나가서 던지기 공격을 할 때는 예외지만 말이야.
그런데 그만 그 공이 내 오른 팔 끝 부분에 닿았던 거야. 바로 상대편 골문 앞에서였거든. 상대편에서는 반칙이라고 그러고, 우리 편에서는 옷에 닿은 게 무슨 반칙이냐고 승강이를 벌이게 된 거야.
“야, 네가 말해 봐. 반칙이야, 아니야?”
애들은 저희들끼리 한참 다투다가 내게 물었어. 그렇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축구 경기 규칙도 잘 모르는데다가, 사실은 나도 공이 팔에 닿았는지 잘 알 수 없었거든. 게다가 내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달라질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함부로 말할 수 있겠어.
그것도 그렇지만 내 말대로 애들이 고개를 끄덕여 주지도 않을 것 같았어. 엄격하게 말하면 그건 내가 판정하는 게 아니기도 해. 심판이 하는 거지. 하지만 같은 반 애들끼리 운동시합을 하는데 심판을 따로 두는 경우란 거의 없어. 나 때문에 문제가 된 것 뿐이야.
“야, 외팔이! 너 말 안 할래?”
내가 판정을 망설이자 원호라는 애가 내 별명을 부르며 재촉했어. 난 화가 났지. ‘외팔이란 별명은 딱 질색이거든. 괘씸한 녀석! 녀석을 노려보았지. 그러다가 언뜻 걔 별명을 생각해 낸 거야.
“이 꼴뚜기 같이 생긴 게…….”
“뭐, 꼴뚜기?”
내가 별명을 지어 부르자, 원호는 얼굴이 금방 벌겋게 달아올랐어. 막 달려들더라고.
나도 맞닥뜨렸지. 힘으로 하면 내가 얻어터질 게 뻔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아이들이 뜯어말리면 말릴수록 우리는 펄펄 뛰었어. 나는 녀석에게 계속 ‘꼴뚜기’라고 부르는 걸 잊지 않았고, 원호 녀석은 내게 ‘외팔이’니 어쩌니 험한 소리를 마구 퍼부었어.
나는 교실에 들어가지 않았지. 아니, 들어 갈 기분이 아니었어. 철봉이 있는 모래밭으로 가서 발을 탁탁 걷어차고는 학교에서 꽤 떨어져 있는 둑으로 달려갔지.
나무가 많은 둑길은 아주 조용했어. 노인 몇 분이 군데군데 벤치에 앉아 계셨지만 작은 바람 외에는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어.
‘나쁜 녀석, 저도 별명을 부르면 싫어하면서 남의 별명은 왜 남으로 부르고 야단이야.’
나는 분이 풀리지 않아 둑의 이 쪽에서 저쪽을 왔다 갔다 했어. 그러다가 조금 힘이 들어서 그네에 앉아 있었지.
‘미술 시간이나 음악 시간이 없으면 좋겠어.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들고 다니는 것만 해도 무거운데, 미술 도구와 악기까지 갖고 가려면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 더구나 폐품까지 갖고 가야 하는 날이면……. 으휴, 한쪽 팔이 없기 때문만은 아닐 거야. 다른 애들도 힘들어하는 걸 보면.’
그 때였어.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깜빡 졸았던 모양이야. 꿈속에서처럼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그게 나를 부르는 소리였나 봐.
“얘, 너 거기서 혼자 뭐 하니?”
고개를 돌렸지. 그렇지만 나는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 볼 수가 없었어. 무엇엔가 햇빛에 반사되는 바람에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있어야지. 그 때문에 잡시 아무것도 안보였던 거야.
거제도 학동 마을에서였어. 바람이 숲을 흔드는 소리, 파도가 차르르 해변을 씻어 내는 소리, 이따금 갈매기들이 친구 갈매기들을 부르는 소리가 가득했던 학동마을. 그 마을 옆 동백나무 우거진 숲 속 오솔길에서였어. 아빠는 내가 힘들다고 말하자 업어 주면서 노래를 부르셨지.
나는 아빠 등에서 노래를 듣다가 잠이 들었어. 눈을 떴을 때 아빠는 백사장에 서 계셨는데, 아빠의 어깨너머 바닷물이 햇빛에 유리조각처럼 빛나고 있었지. 내가 미안해져서 내려 달라고 하자 슬며시 나를 쳐다보시던 아빠, 아빠의 안경테에서 빛나던 그 햇빛. 그 햇빛이 휠체어에서 빛나고 있었던 거야.
“얘, 무슨 생각 해?”
아마 그 애가 재차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으면 나는 아빠 생각을 더 했을지 몰라.
“아,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정식으로 인사하자. 난 단비라고 그래. 넌?”
“응, 난 준호.”
내가 이름을 가르쳐 주자 단비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소개를 했어. 알고 보니 단비는 나보다 두 살이나 많았어. 옆 동네 초등학교 6학년인데 오늘은 개교 기념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았대. 나보다 두 살이나 많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물었지.
“6학년이라고? 그렇게 안 돼 보이는데?”
“정말이야. 너 사람 말을 못 믿는 거니?”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열네 살인데 어떻게 6학년이야?”
“아, 그거? 내가 학교를 1년 쉬어서 그래.”
“왜?”
“보다시피 이렇게 다리를 다쳤거든.”
“아…….”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어. 어쩌다 다리를 다치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꼬치꼬치 캐묻고 싶지 않았어. 나중에 알게 될 테지, 뭐.
“그럼 내가 누나라고 불러야겠네?”
“그래?”
“나도 6학년이지만 난 생일이 1월이라 학교를 한 해 일찍 들어갔거든.”
“너 편한 대로 해. 하지만 같은 6학년인데. 뭐 그럴 거 있니? 우리 그냥 친구 하자.”
“정말?”
“그래. 너와 난 이제 친구다. 그런데 어디 사니?”
“저어기.”
나는 아파트가 있는 쪽을 가리켰어. 단비는 내 손가락 끝을 따라 고개를 돌렸지. 그때 바람에 찰랑 긴 머리가 파도치고,
목덜미가 뽀얗게 드러났지. 단비의 그 모습은 너무 가슴을 떨리게 했어.
나는 다시 고개를 돌리는 단비의 눈을 얼른 피했지. 무슨 잘못을 들킨 것처럼 말이야. 그러고는 재빨리 몸을 틀어 왼손으로 내 오른쪽 옷소매를 바지 주머니에 깊이 찔러 넣었어. 바람 때문에 주머니에 꽂아 두었던 옷소매가 빠져 나올까 봐.
“아파트에 사는구나?”
단비가 말했어.
“아니, 그 뒤쪽이야.”
“학교는?”
“저어기.”
“어디?”
“여기서는 안 보여. 저기 빨간 벽돌 건물 보이지? 거기서 조금 더 뒤편으로 가야 해.”
“학교가 꽤 머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고는 딴청을 부렸지.
학교에 대해서 자꾸 물어보면 축구 시합을 하다가 있었던 일도 얘기해야 되잖아. 좀 창피했거든.
“너 별명 있어?”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축구 시합일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야. 단비에게 갑자기 별명은 왜 물었담? 아마 나는 내 별명 이상으로 충격적인 단비의 별명을 들으면서 위로를 받고 싶었나봐. 그런데 단비는 자기의 별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거야. 난 좀 놀랐지.
“난 ‘바퀴벌레’야.”
“바퀴벌레?”
“응, 원래 내 별명은, 이렇게 휠체어에만 앉아 있으니까 ‘바퀴’라고 그랬는데, 나중에 ‘벌레’ 자를 붙인 거야. 책을 많이 읽는다고 ‘책벌레’라는 별명도 있었거든. 그런데 ‘책’ 자는 빼고 ‘바퀴’ 자와 합쳐서 바퀴벌레라고 하게 된 거야. 어때? 내 별명 좋지?”
˝좋아? 바퀴벌레란 별명이?“
“뜻이 좋잖아. 근데 넌 별명 없어?”
“…….
왜? 말하기 싫어?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아니, 아니야아.”
참 이상했어. 난 내 별명이 굉장히 싫거든. 오늘도 그것 때문에 싸움이 벌어진 거잖아.
그런데 내가 스스로 내 별명을 말하다니. 별명뿐 아니라 축구 시합 하다 있었던 일 하며, 그래서 교실에 안들어가고 이리로 왔다는 얘기까지 단비에게 모두 말했어.
“그랬구나. 화가 많이 났었겠네.”
“응, 조금.”
“나도 속상할 때가 많아.”
“어, 그래?”
“그럼, 뭐 나라고 속상한 게 없는 줄 아니?”
“…….”
“우리 집은, 여기 오기 전 세종문화 회관 뒤쪽에 살았어.”
“아, 그래?”
“응, 그런데 보통 때 같으면 아빠가 필요한 책은 모두 사다주시는데 말이야. 그날은 아빠가 늦게 오신다고 그런 거야. 난 급히 책을 사야 했는데…….”
“그래서?”
“뭐 할 수 없이 내가 교보문고에 가기로 했지. 근데 되게 힘들더라. 눈앞에 교보가 왜 그렇게 머냐.”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아니야?”
˝이런…… 나 같은 사람은 계단을 오르내릴 수가 없잖아.“
“어, 맞아. 그렇지.”
“횡단보도를 찾아야 했는데, 횡단보도가 나와야 말이지.”
“그래서?”
“종합 청사를 지나고 경복궁 쪽으로 건너서 한국일보 앞 어디쯤 가면 교보로 가는 횡단보도가 나올 줄 알았지. 그렇지만 웬걸! 풍문여중을 지나고 걸스카우트 회관을 지나고 현대빌딩도 자나서 창덕궁 앞에까지 가서야 횡단보도가 나타나더라.”
“아, 그렇구나! 몰랐어.˝
˝아휴! 말마. 창덕궁 앞에서 길을 건너 임본 문화원을 지나서 운현궁까지 간 다음, 다시 길을 건너서 인사동 쪽으로 한참 걸어가니까 그제야 조계사 맞은편이 나오더라. 잘 다녀보지 않았으니까 자리를 몰라서 얼마나 헤맸는지 몰라.“
“정말 그러네. 그렇게 빙빙 돌아가야 하는지 나도 미처 몰랐다.”
“휠체어를 타 본적이 없을 테니 당연하지 뭐.”
“음…….”
나는 괜히 미안해져서 할 말이 없었어.
“근데 나처럼 휠체어를 탄 사람은 택시 잡기도 힘들어. 버스는 복잡해서 탈 수 없고, 어쩌다 외출하면 택시를 잡는 게 보통인데, 이게 잡혀야 말이지. 기사님들은 차를 세우기는커녕 우리가 손을 들면 오히려 더 빨리 지나쳐 버려.”
“아…….
나는 단비의 말을 듣고, 나보다 더 불편한 사람도 있다는 걸 새삼스레 알게 됐어. 그러고 보면 나는 참 다행이야. 걸을 수는 있잖아.
“이제부턴 내가 같이 학교 다닐게, 단비야.”
“피! 넌 학교 안 가니?”
˝너 데려다 주고 가면 되지, 뭐.”
“아유, 됐다. 말만 들어도 고맙다. 하지만 나 혼자서도 다닐 수 있어. 걱정 안 해도 돼. 정 도움이 필요하면 널 부를게.”
“그래, 언제든지 불러. 실은 나도 왼손으로 글씨를 써야 하니까 좀 느리거든. 아직도 글씨가 삐뚤빼뚤하고 말이야. 너도 내가 어려울 때 좀 도와 줘.”
“그래, 그럴게.”
“근데 딴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어.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데 말이야. 오늘만 해도, 그 자식, 신체와 관련이 있는
별명을 들으면 장애인이 얼마나 기분이 나쁜지 모르는 모양이야.”
“훗! 너 별명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했구나? 하긴 뭐 기분 좋을 리는 없지. 하지만 상관 할 필요 있니?”
“넌 괜찮단 말이야?”
“괜찮지는 않지만 못 들은 척하는 거야. 우리 아빠가 그러셨는데 누가 뭐라 그러든 꿈만 포기하지 말고 살래. 아이들이 놀리면 ‘그래. 몸은 이렇지만 마음은 너희들 못지않은 큰 꿈을 갖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래.”
그래, 단비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런데 참 이상해. 아무리 같은 말이라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듣는 사람 기분에 따라 다를 수 있다지만, 단비의 말은 어째서 이렇게 반박할 수 없는 거지?
“넌 꿈이 뭔데?”
내가 단비에게 물었어.
“응, 새가 되어서 하늘을 훨훨 날고 싶어.”
“어떻게?”
“뭐든지 열심히 하면 이 휠체어가 은빛 날개가 되어 나를 훨훨 날게 해 줄 거라고 아빠가 말씀하셨어. 그러면서 아빠는, 그러려면 팔 힘이 세야 하니까 남에게 의지할 생각하지 말고 될 수 있으면 혼자 휠체어를 타고 다니라고 하셨어.”
단비는 그 말을 하면서 팔을 쑥 내밀더니 으쓱해 보였어. 정말 팔이 단단해 보였어. 휠체어를 밀고 다니느라 근육이 생긴 거겠지만 단비의 팔은 정말 건강해 보였어.
사람이 새가 될 수야 없겠지만 새처럼 날 수는 있을 거야. 가령, 비행기를 탈 수도 있고 애드벌룬을 탈 수도 있고. 아니면 스스로 타지 못하더라도 자기가 설계한 비행기를 보면서 흐뭇해 할 수 있잖아?
하지만 나는 단비에게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어. 비행사가 아니면 어떻고, 비행기를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면 어때. 단비에게는 휠체어가 있으니까 얼마든지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야.
나는 단비가 하늘을 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저것 봐 단비의 휠체어가 흰 비둘기의 날개 짓 같지 않아?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잖아.
나는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 단비의 뒷모집이 멀어져가는 걸 보며 단비는 조금씩 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 누구든지 별명은 있는 거야. 나는 내 별명에다 꿈을 담아 두고 싶어. 내 왼팔의 꿈이 크면 클수록 오른팔의 쭈글쭈글한 옷 주름도 펴질 거야.
자 봐! 내 오른 팔의 옷 주름이 벌써 좍 펴지고 있잖아. 바람이 불어서라고 생각해? 아니야, 내 꿈이 크고 있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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