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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워, 추워요. 엄마!˝
나는 추위를 피해 엄마의 날개 속으로 자꾸 파고 들었습니다.
샛노란 바탕에 갈색과 빨강이 줄을 이룬 엄마의 날개는 참 아름답습니다.
˝그래. 폭 들어가거라.˝
엄마는 날개를 펴 나를 감싸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간 이어진 차디찬 날씨는 엄마의 날개 속까지 차갑게 했습니다. 더욱이 엄마의 날개는 내게 너무 작은 것이어서 아무리 파고 들어도 내 몸을 감싸주질 못했습니다.
몸을 조금 빼서 엄마의 눈치를 살펴보니, 엄마는 나를 골똘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엄마, 왜 내 털옷은 회색빛이에요?˝
˝글쎄……˝
엄마는 시선을 얼른 베란다 유리문 쪽으로 돌렸습니다.
˝아참, 나도 어른이 되면 엄마처럼 예쁜 털옷으로 갈아입게 된다고 했지요?˝
˝그래. 정말 그럴 거야. 나는 굳게 믿고 있거든. 믿고 말고.˝
엄마는 ´믿는다´는 말을 자꾸 했습니다.
한 번이면 족한 말을 여러 번 하니 내 귀에 좀 낯설게 들렸습니다.
엄마는 내 털옷을 힐끔 살펴보았습니다.
내 눈치를 피해 또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엄마!˝
˝걱정 마라. 잠시 후면 주인 아저씨가 우리를 방으로 데려갈 것이야.˝
나는 그냥 불러본 것인데, 엄마는 얼른 다른 말로 바꾸었습니다.
서로 간에 잠시 말이 없었고 그 사이 나는 창살 너머 허허로운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만약 창살이 열린다거나 갑자기 부서져 버린다면, 아, 정말 그렇게 된다면, 엄마와 나는 그 허허로운 세상을 훨훨 날 것입니다.
언젠가 내가 들뜬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엄마는 뜻밖에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 우느냐고 묻자, 허허로운 세상으로 나가면 우리가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말하자, 그런 일이 생길 가능성이 많다고 했습니다. 서로 간에 헷갈리는 대화였습니다.
˝엄마!˝
˝주인 아저씨는 우리를 사랑하니까.˝
엄마는 또 말을 바꾸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인 아저씨가 미운 적이 많았단 말이에요.˝
˝그런 소리 마라.˝
˝저번에 우리를 이 베란다에 그냥 놔둔 채 밤을 보냈잖아요. 술을 골아떨어지도록 마셨는지……˝
˝그러나 오늘은 그런 일이 절대 없을 것이야. 오늘은 너무 추운 날씨니까……주인 아저씨도 우리가 떨고있는 처지를……˝
˝엄마도 주인 아저씨를 미워했다면서요?˝
˝그땐 그랬지.˝
내 말에 엄마는 한숨을 푹 쉬었고 그렇게 또 말이 없었습니다. 갑갑함과 짜증을 느낀 나는 엄마에게 졸라 보았습니다.
˝그 이야기 해 줘요.˝
˝다섯 번째인데?˝
˝또 듣고 싶으니까요. 그리고 너무 심심하잖아요. 추우니까요.˝
그러게 말하면서도 나는 ´왜 엄마가 나보다 덩치가 작을까´ 하고 순간순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 나도 너에게 귀가 닳도록 해주어야 할 말이란다. 이번에도 잘 들어 두어라.˝
바람이 쌔앵 불며 창살이 흔들렸고 저녁 추위가 살갗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빨리요!˝
˝내가 어찌 산에서 잡혀온 때를 잊을 수 있겠니. 다리를 총에 맞았거든. 기절하다시피 하며 나무에서 떨어졌어. 지금도 나를 총으로 쏜 주인 아저씨의 잔악함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단다.˝
˝그러나 주인 아저씨는 엄마를 사랑했다면서요?˝
˝참으로 사람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주인 아저씨는 나를 잡아 불속에 던질 줄 알았는데, 구워 먹을 줄 알았거든. 그런데 내 아름다운 모습을 유심히 살펴 보더니 오히려 병원에 데려 가더구나. 나를 정성껏 치료하여 여기에 넣은 거야. 매일같이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며 먹이도 충분히 주고 말야. 그게 사랑이더냐?˝
˝엄마를 잘 살게 했으니까 사랑이지요.˝
˝그러나 주인 아저씨는 한 때 이 새장을 발로 걷어찼단다. 내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자기의 낮잠을 깨웠다는 거야. 이리저리 발로 차는 바람에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고 원망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참 이상해요.˝
˝그래. 뭐가 뭔지 모르겠구나. 그토록 발로 차던 사람이 다음 날 아침 내 부리에 뽀뽀를 하며 사랑스럽다고 말했으니까.˝
˝왜요?˝
˝내가 어찌 알겠니. 사랑한다면 그게 사랑이려니 해야지.˝
˝언젠가는 엄마를 며칠간 굶겼다면서요?˝
˝잘도 기억하는구나. 하기야 배가 너무 고팠던 그때를 내가 어찌 잊겠니. 죽는 줄 알았으니까. 자기는 밥을 배불리 먹으면서도 나에겐 전혀 안주는 거야.˝
˝주인 아저씨는 참 나빠요.˝
˝그렇지만은 안단다. 그 후의 일이지만, 산에서 잃어버린 내 귀한 알을 가져와 주었으니까. 얼마나 보고 싶었던 알인지 모른다. 얘야, 네 생명의 은인이란다. 너를 나에게 데려다 분 주인 아저씨가 눈물겹게 고맙더구나.˝
엄마를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 너무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왜 엄마의 눈동자는 노란테 모양일까요? 엄마의 말에 의하면, 나중에 나도 크면 노란테 모양의 눈동자를 가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엄마!˝
˝그날 이후부터 주인 아저씨가 나를 극진히 사랑하니까, 오늘도 나를 사랑하겠거니 하고 생각할 따름이지. 너도 사랑하고.˝
˝그렇지만 오늘은 밤이 깊어가는데, 우리를 왜 따뜻한 방으로 데려가지 않는 거에요, 씨!˝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것을 아까 봤단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잠시 후면 주인 아저씨가 술에서 좀 깰 것이고 다시금 내 부리와 네 부리에 뽀뽀를 해줄 것이야. 믿어라. 오늘밤 우리는 따뜻한 방에서 자게 될 거야.˝
˝언제, 언제, 언제요?˝
나는 투정부리다시피 했습니다. 너무나 오래 추운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차츰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네가 잠들면……˝
사실 나는 지금껏 졸리움을 애써 참고 있었습니다. 추운 날씨였지만, 엄마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 있자니 졸음이 막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잠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원했던 일이었습니다. 내가 잠자고 있는 사이 주인 아저씨가 분명 우리를 따뜻한 방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막 들렸습니다. 눈을 떠보니, 새벽이 가까운 밤, 눈보라가 거세게 내리치고 있었습니다. 살을 에는 눈보라!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눈을 뒤집어 쓴 엄마가 창살을 마구 깨물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그런 행동에 더럭 무서움을 느꼈는데, 흐린 불빛을 타고 자세히 보니 엄마의 부리가 깨어지고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엄마, 엄마, 왜 그래요……˝
추위 때문이 아니라 무서움으로 내 목소리는 떨렸습니다.
거세게 휘몰아 치는 눈보라를 그대로 맞으며 엄마가 말했습니다.
˝내가 이 창살을 휘어놓을 테다. 이 만큼 휘어졌지 않느냐.˝
엄마는 정말 내가 잠든 사이 창살을 휘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부리가 깨지고 피가 철철 흘렀습니다. 그러면서 창살을 어느 정도 휘어놓은 것입니다. 놀랍기도 했습니다.
˝엄마, 이 창살을…… 어떻게…… 엄마!˝
˝주인 아저씨는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도록 우리를 여기에 그냥 놔둘 것이야. 빨리 여기를 빠져 나가야지. 여기를 빠져나가 추위를 녹일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이대로 있다가는 분명 얼어 죽어.˝
그러나 창살 벌려진 틈을 내 뚱뚱한 몸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었습니다.
˝낑낑! 엄마, 안돼요. 어떻게 해요!˝
나는 울상을 지었습니다. 엄마의 말대로 정말 이곳을 빠져나가 어느 포근한 처마 밑이나 짚더미 속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자, 나처럼 빠져 나와 봐. 어서!˝
나보다 덩치가 작은 엄마는 간신히 창살 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다시 낑낑거리며 들어왔습니다.
˝왜 다시 들어오는 거예요?˝
내 떨리는 목소리에, 엄마는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예전의 그 자상한 눈빛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엄마의 목소리는 딱딱하고 거칠었습니다. 표독스럽기까지 했습니다. .
˝잘 들어라.˝
˝엄마!˝
˝내가 이 틈새를 만든 것은 오랜 시간 전이다. 분명 그랬어. 나는 빠져나갈 수 있었지. 그렇지만 내가 어찌 너를 두고 떠나겠냐. 너까지 탈출시키려고 지금껏 갖은 고생을 했지만 이 틈새 이상으로는 안되는구나.˝
엄마의 표독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눈을 질근 감고 싶었습니다.
˝엄마!˝
˝잘 들어라. 너는 내 새끼가 아니란다.˝
˝엄마!˝
˝그러기 때문에 나는 너를 떠날 수 있는 거야. 내 새끼가 아니니까. 눈물 흘릴 필요도 없이 훌쩍 떠날 수 있는 거야. 너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정말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엄마는 울고 있었습니다. 어둠속 세찬 눈보라를 녹일 양 그 눈물은 너무 뜨거운 것입니다.
나는 다시 틈새로 가서 있는 힘껏 빠져나가려고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엄마의 억센 부리로도 더 이상 틈새를 넓힐 수 없었습니다.
˝엄마……˝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거야. 미안하다. 잘 있거라.˝
엄마는 틈새를 빠져 나갔습니다. 몇 번이든 뒤돌아 보며 눈물을 흘렸지만, 마음을 표독하게 먹은 듯 마침내 어둠속으로 훨훨 날아갔습니다. 어느 포근한 곳으로 날아가는 모양이었습니다.
너무나 추운 밤이었고 수시로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나를 가둔 새장을 흔들어댔습니다.
´나는 이대로 얼어 죽는구나!´
눈물이 쏟아졌지만 그렇다고 나는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껏 나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푼 엄마였고 나까지 탈출시켜려고 부리가 깨지도록, 피가 철철 흐르도록 갖은 고생을 한 엄마였습니다.
´아, 나의 진짜 엄마는 누구인가?´
일찍부터 눈치를 챈 일이지만, 나는 원래 고아였습니다. 그러기에 엄마가 ´너는 내 새끼가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도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들오들 떨며, 애써 잠에 빠지면서, 진짜 엄마를 그려 보았습니다. 따뜻한 가슴으로 나를 조건없이 사랑해줄 엄마! 나처럼 회색 털옷을 입었고 하얀 눈동자를 지닌 엄마! 나를 낳아준 엄마! 나를 잃어버린 엄마!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나를 어딘가에서 애타게 찾고 있을 엄마가 너무나 그리운 밤이었습니다. 엄마가 꿈결 가득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나를 와락 감싸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눈보라가 나를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눈물이 쏟아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그렇게 꿈을 꾸듯 나는 애써 잠을 자고자 했습니다. 죽음으로 향하는 긴 터널 속으로 빨려들어 갔습니다.
˝어, 새가 얼어 죽었네! 이를 어째!˝
꿈인지 생시인지, 그 소리를 나는 또렸하게 들었습니다. 눈을 뜨자 주인 아저씨가 창살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진 것은, 아, 샛노란 바탕에 갈색과 빨강이 줄을 이룬 참 아름다운 날개! 그는 다름아닌 나의 엄마였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내가 엄마의 주검을 보며 울음을 터뜨리자 주인 아저씨는 얼른 창살문을 닫았습니다.
˝떠들지 마라. 너는 짜식아, 이 어미새로 인해 살아난 거야. 추운 날씨에 네 몸을 감싸고 있다가 얼어 죽었으니까. 그러니 어미새에게 고맙다고 해라. 어, 창살이 벌려져 있네? 누가 벌려놓은 거지? 이 어미새가 그랬나, 허?˝
주인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며 엄마의 주검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쓰레기통에 내던지는 것입니다.
˝아, 엄마! 추운 밤중에 왜 다시 돌아왔어요. 무엇 때문에!˝
나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한없이 울어대자 주인 아저씨는 다시 문을 열고 나를 꺼냈습니다.
˝그만 울어라. 이 녀석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한다고. 앞으로는 따뜻한 방에서 키우마. 먹이도 충분히 줄테니……˝
그러면서 주인 아저씨는 뽀뽀를 하자며 입을 내밀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있는 힘껏 그의 입을 쪼아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추위를 피해 엄마의 날개 속으로 자꾸 파고 들었습니다.
샛노란 바탕에 갈색과 빨강이 줄을 이룬 엄마의 날개는 참 아름답습니다.
˝그래. 폭 들어가거라.˝
엄마는 날개를 펴 나를 감싸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간 이어진 차디찬 날씨는 엄마의 날개 속까지 차갑게 했습니다. 더욱이 엄마의 날개는 내게 너무 작은 것이어서 아무리 파고 들어도 내 몸을 감싸주질 못했습니다.
몸을 조금 빼서 엄마의 눈치를 살펴보니, 엄마는 나를 골똘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엄마, 왜 내 털옷은 회색빛이에요?˝
˝글쎄……˝
엄마는 시선을 얼른 베란다 유리문 쪽으로 돌렸습니다.
˝아참, 나도 어른이 되면 엄마처럼 예쁜 털옷으로 갈아입게 된다고 했지요?˝
˝그래. 정말 그럴 거야. 나는 굳게 믿고 있거든. 믿고 말고.˝
엄마는 ´믿는다´는 말을 자꾸 했습니다.
한 번이면 족한 말을 여러 번 하니 내 귀에 좀 낯설게 들렸습니다.
엄마는 내 털옷을 힐끔 살펴보았습니다.
내 눈치를 피해 또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엄마!˝
˝걱정 마라. 잠시 후면 주인 아저씨가 우리를 방으로 데려갈 것이야.˝
나는 그냥 불러본 것인데, 엄마는 얼른 다른 말로 바꾸었습니다.
서로 간에 잠시 말이 없었고 그 사이 나는 창살 너머 허허로운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만약 창살이 열린다거나 갑자기 부서져 버린다면, 아, 정말 그렇게 된다면, 엄마와 나는 그 허허로운 세상을 훨훨 날 것입니다.
언젠가 내가 들뜬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엄마는 뜻밖에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 우느냐고 묻자, 허허로운 세상으로 나가면 우리가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말하자, 그런 일이 생길 가능성이 많다고 했습니다. 서로 간에 헷갈리는 대화였습니다.
˝엄마!˝
˝주인 아저씨는 우리를 사랑하니까.˝
엄마는 또 말을 바꾸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인 아저씨가 미운 적이 많았단 말이에요.˝
˝그런 소리 마라.˝
˝저번에 우리를 이 베란다에 그냥 놔둔 채 밤을 보냈잖아요. 술을 골아떨어지도록 마셨는지……˝
˝그러나 오늘은 그런 일이 절대 없을 것이야. 오늘은 너무 추운 날씨니까……주인 아저씨도 우리가 떨고있는 처지를……˝
˝엄마도 주인 아저씨를 미워했다면서요?˝
˝그땐 그랬지.˝
내 말에 엄마는 한숨을 푹 쉬었고 그렇게 또 말이 없었습니다. 갑갑함과 짜증을 느낀 나는 엄마에게 졸라 보았습니다.
˝그 이야기 해 줘요.˝
˝다섯 번째인데?˝
˝또 듣고 싶으니까요. 그리고 너무 심심하잖아요. 추우니까요.˝
그러게 말하면서도 나는 ´왜 엄마가 나보다 덩치가 작을까´ 하고 순간순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 나도 너에게 귀가 닳도록 해주어야 할 말이란다. 이번에도 잘 들어 두어라.˝
바람이 쌔앵 불며 창살이 흔들렸고 저녁 추위가 살갗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빨리요!˝
˝내가 어찌 산에서 잡혀온 때를 잊을 수 있겠니. 다리를 총에 맞았거든. 기절하다시피 하며 나무에서 떨어졌어. 지금도 나를 총으로 쏜 주인 아저씨의 잔악함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단다.˝
˝그러나 주인 아저씨는 엄마를 사랑했다면서요?˝
˝참으로 사람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주인 아저씨는 나를 잡아 불속에 던질 줄 알았는데, 구워 먹을 줄 알았거든. 그런데 내 아름다운 모습을 유심히 살펴 보더니 오히려 병원에 데려 가더구나. 나를 정성껏 치료하여 여기에 넣은 거야. 매일같이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며 먹이도 충분히 주고 말야. 그게 사랑이더냐?˝
˝엄마를 잘 살게 했으니까 사랑이지요.˝
˝그러나 주인 아저씨는 한 때 이 새장을 발로 걷어찼단다. 내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자기의 낮잠을 깨웠다는 거야. 이리저리 발로 차는 바람에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고 원망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참 이상해요.˝
˝그래. 뭐가 뭔지 모르겠구나. 그토록 발로 차던 사람이 다음 날 아침 내 부리에 뽀뽀를 하며 사랑스럽다고 말했으니까.˝
˝왜요?˝
˝내가 어찌 알겠니. 사랑한다면 그게 사랑이려니 해야지.˝
˝언젠가는 엄마를 며칠간 굶겼다면서요?˝
˝잘도 기억하는구나. 하기야 배가 너무 고팠던 그때를 내가 어찌 잊겠니. 죽는 줄 알았으니까. 자기는 밥을 배불리 먹으면서도 나에겐 전혀 안주는 거야.˝
˝주인 아저씨는 참 나빠요.˝
˝그렇지만은 안단다. 그 후의 일이지만, 산에서 잃어버린 내 귀한 알을 가져와 주었으니까. 얼마나 보고 싶었던 알인지 모른다. 얘야, 네 생명의 은인이란다. 너를 나에게 데려다 분 주인 아저씨가 눈물겹게 고맙더구나.˝
엄마를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 너무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왜 엄마의 눈동자는 노란테 모양일까요? 엄마의 말에 의하면, 나중에 나도 크면 노란테 모양의 눈동자를 가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엄마!˝
˝그날 이후부터 주인 아저씨가 나를 극진히 사랑하니까, 오늘도 나를 사랑하겠거니 하고 생각할 따름이지. 너도 사랑하고.˝
˝그렇지만 오늘은 밤이 깊어가는데, 우리를 왜 따뜻한 방으로 데려가지 않는 거에요, 씨!˝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것을 아까 봤단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잠시 후면 주인 아저씨가 술에서 좀 깰 것이고 다시금 내 부리와 네 부리에 뽀뽀를 해줄 것이야. 믿어라. 오늘밤 우리는 따뜻한 방에서 자게 될 거야.˝
˝언제, 언제, 언제요?˝
나는 투정부리다시피 했습니다. 너무나 오래 추운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차츰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네가 잠들면……˝
사실 나는 지금껏 졸리움을 애써 참고 있었습니다. 추운 날씨였지만, 엄마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 있자니 졸음이 막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잠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원했던 일이었습니다. 내가 잠자고 있는 사이 주인 아저씨가 분명 우리를 따뜻한 방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막 들렸습니다. 눈을 떠보니, 새벽이 가까운 밤, 눈보라가 거세게 내리치고 있었습니다. 살을 에는 눈보라!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눈을 뒤집어 쓴 엄마가 창살을 마구 깨물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그런 행동에 더럭 무서움을 느꼈는데, 흐린 불빛을 타고 자세히 보니 엄마의 부리가 깨어지고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엄마, 엄마, 왜 그래요……˝
추위 때문이 아니라 무서움으로 내 목소리는 떨렸습니다.
거세게 휘몰아 치는 눈보라를 그대로 맞으며 엄마가 말했습니다.
˝내가 이 창살을 휘어놓을 테다. 이 만큼 휘어졌지 않느냐.˝
엄마는 정말 내가 잠든 사이 창살을 휘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부리가 깨지고 피가 철철 흘렀습니다. 그러면서 창살을 어느 정도 휘어놓은 것입니다. 놀랍기도 했습니다.
˝엄마, 이 창살을…… 어떻게…… 엄마!˝
˝주인 아저씨는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도록 우리를 여기에 그냥 놔둘 것이야. 빨리 여기를 빠져 나가야지. 여기를 빠져나가 추위를 녹일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이대로 있다가는 분명 얼어 죽어.˝
그러나 창살 벌려진 틈을 내 뚱뚱한 몸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었습니다.
˝낑낑! 엄마, 안돼요. 어떻게 해요!˝
나는 울상을 지었습니다. 엄마의 말대로 정말 이곳을 빠져나가 어느 포근한 처마 밑이나 짚더미 속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자, 나처럼 빠져 나와 봐. 어서!˝
나보다 덩치가 작은 엄마는 간신히 창살 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다시 낑낑거리며 들어왔습니다.
˝왜 다시 들어오는 거예요?˝
내 떨리는 목소리에, 엄마는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예전의 그 자상한 눈빛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엄마의 목소리는 딱딱하고 거칠었습니다. 표독스럽기까지 했습니다. .
˝잘 들어라.˝
˝엄마!˝
˝내가 이 틈새를 만든 것은 오랜 시간 전이다. 분명 그랬어. 나는 빠져나갈 수 있었지. 그렇지만 내가 어찌 너를 두고 떠나겠냐. 너까지 탈출시키려고 지금껏 갖은 고생을 했지만 이 틈새 이상으로는 안되는구나.˝
엄마의 표독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눈을 질근 감고 싶었습니다.
˝엄마!˝
˝잘 들어라. 너는 내 새끼가 아니란다.˝
˝엄마!˝
˝그러기 때문에 나는 너를 떠날 수 있는 거야. 내 새끼가 아니니까. 눈물 흘릴 필요도 없이 훌쩍 떠날 수 있는 거야. 너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정말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엄마는 울고 있었습니다. 어둠속 세찬 눈보라를 녹일 양 그 눈물은 너무 뜨거운 것입니다.
나는 다시 틈새로 가서 있는 힘껏 빠져나가려고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엄마의 억센 부리로도 더 이상 틈새를 넓힐 수 없었습니다.
˝엄마……˝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거야. 미안하다. 잘 있거라.˝
엄마는 틈새를 빠져 나갔습니다. 몇 번이든 뒤돌아 보며 눈물을 흘렸지만, 마음을 표독하게 먹은 듯 마침내 어둠속으로 훨훨 날아갔습니다. 어느 포근한 곳으로 날아가는 모양이었습니다.
너무나 추운 밤이었고 수시로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나를 가둔 새장을 흔들어댔습니다.
´나는 이대로 얼어 죽는구나!´
눈물이 쏟아졌지만 그렇다고 나는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껏 나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푼 엄마였고 나까지 탈출시켜려고 부리가 깨지도록, 피가 철철 흐르도록 갖은 고생을 한 엄마였습니다.
´아, 나의 진짜 엄마는 누구인가?´
일찍부터 눈치를 챈 일이지만, 나는 원래 고아였습니다. 그러기에 엄마가 ´너는 내 새끼가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도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들오들 떨며, 애써 잠에 빠지면서, 진짜 엄마를 그려 보았습니다. 따뜻한 가슴으로 나를 조건없이 사랑해줄 엄마! 나처럼 회색 털옷을 입었고 하얀 눈동자를 지닌 엄마! 나를 낳아준 엄마! 나를 잃어버린 엄마!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나를 어딘가에서 애타게 찾고 있을 엄마가 너무나 그리운 밤이었습니다. 엄마가 꿈결 가득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나를 와락 감싸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눈보라가 나를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눈물이 쏟아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그렇게 꿈을 꾸듯 나는 애써 잠을 자고자 했습니다. 죽음으로 향하는 긴 터널 속으로 빨려들어 갔습니다.
˝어, 새가 얼어 죽었네! 이를 어째!˝
꿈인지 생시인지, 그 소리를 나는 또렸하게 들었습니다. 눈을 뜨자 주인 아저씨가 창살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진 것은, 아, 샛노란 바탕에 갈색과 빨강이 줄을 이룬 참 아름다운 날개! 그는 다름아닌 나의 엄마였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내가 엄마의 주검을 보며 울음을 터뜨리자 주인 아저씨는 얼른 창살문을 닫았습니다.
˝떠들지 마라. 너는 짜식아, 이 어미새로 인해 살아난 거야. 추운 날씨에 네 몸을 감싸고 있다가 얼어 죽었으니까. 그러니 어미새에게 고맙다고 해라. 어, 창살이 벌려져 있네? 누가 벌려놓은 거지? 이 어미새가 그랬나, 허?˝
주인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며 엄마의 주검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쓰레기통에 내던지는 것입니다.
˝아, 엄마! 추운 밤중에 왜 다시 돌아왔어요. 무엇 때문에!˝
나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한없이 울어대자 주인 아저씨는 다시 문을 열고 나를 꺼냈습니다.
˝그만 울어라. 이 녀석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한다고. 앞으로는 따뜻한 방에서 키우마. 먹이도 충분히 줄테니……˝
그러면서 주인 아저씨는 뽀뽀를 하자며 입을 내밀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있는 힘껏 그의 입을 쪼아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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