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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어머니와 딸

창작동화 손춘익............... 조회 수 1257 추천 수 0 2005.07.24 13:55:38
.........
  안타까운 딸꾹질이 멎자, 딸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 고요히 두눈을 감았습니다.
무척 총명하고 상냥스런 딸이었어요.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몇 달만 지나면 중학생이 될 터인데, 병마는 끝내 그 애를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버린 것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 딸이 백혈병에 걸린 것은 삼 년 전 봄이었습니다.
딸은 그때 열 살이었지요. 애초에는 가벼운 감기증세였다고 해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온몸이 나른해지고 힘이 부치기 시작했어요. 조금만 가파른 길이라도 버거워 했어요. 몇 걸음 걷지 않아 딸은 그 자리에 주저앉곤 했지요. 그런데도 어머니는
“얘, 너 왜 그러니. 어디가 아프니?˝
하고 염려는 하면서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어요.
“아냐. 괜찮아. 조금 쉬면 나아질거야.˝
딸도 늘 이렇게 대꾸했거든요.
하지만 딸은 점점 병세가 심해졌어요. 온 몸에 미열이 나고 무엇보다도 고단에 겨워 움직이기를 싫어했어요. 그때서야 어머니는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어 딸을 가까운 동네 내과의원으로 데리고 갔어요. 감기려니 하고 말이죠. 의사도 처음에는 그런 증세로 여기는 듯 했어요. 그러나 진찰을 하고 나자 의사는 갑자기 심각한 얼굴이 되며 말했어요.
“종합병원으로 가보세요. 좀더 자세히 진찰을 받아봐야겠어요.˝
그 말만 듣고서도 어머니는 벌써 가슴이 떨려왔어요. 어머니는 애가 타서
“선생님 무슨 병인데 그러세요?˝
하고 당황스레 물었어요.
“글쎄요. 여기서는 정확하게 진단을 내릴 수가 없네요. 아무래도 종합병원으로 가보시는게 좋겠습니다.˝
의사는 성가신 듯 말했어요.
그때 비로소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택시를 불러타고 큰 종합병원으로 갔어요. 그리고 거기서 다시 진찰을 받았어요. 사진도 찍고 피검사도 하느라고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영애가 백혈병에 걸린 사실이 밝혀진 것은 거기서였지요. 그날부터 괴롭고 고달픈 투병생활이 시작됐어요.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터널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했어요. 영애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입원을 했어요. 딸이 입원해 있는 동안 어머니도 그림자처럼 늘 그 곁에 붙어 있었지요. 커다란 주사기가 딸의 척추에 꽂힐 때마다 어머니는 딸보다도 훨씬 더 고통스러워 했어요. 딸보다도 오히려 어머니가 환자가 된거지요. 차라리 딸 대신에 자기가 그런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지난 삼 년 동안 어머니는 정말 극진히 딸을 간호했어요.
딸은 몇 달씩 병원에 입원해 있다 좀 차도가 난다 싶으면 퇴원을 하고, 다시 또 입원을 하고…… 그런 생활이 마냥 이어졌어요.
그처럼 엄청난 고통을 참아냈는데도 삼 년을 끌다 끝내 죽음으로 끝이 난 거지요.
딸을 잃고 나자 어머니는 넋이 나간 듯 했어요. 며칠동안, 아무것도 입에 대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눈물만 흘리고 있었어요. 하늘처럼 아득한 슬픔이었지요. 슬픔의 강물은 끝이 없었어요. 어머니는 기약없이 그 강물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어요.
그런 어느 날 아침 불현듯 딸의 영혼이 어머니를 찾아왔어요. 애달픈 그 영혼은 그 동안 줄곧 허공을 헤매이고 다녔지요. 차마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예전에 살던 곳에 머물러 있었지요. 살았을 때나 다름없이 제 방에서 잠을 자고 또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하고 주방 식탁에 앉아 코를 발름거리며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를 맡기도 하고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기도 했지요. 딸은 정말 그렇게 하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어요.
마침내 그날 아침 학교에 갈 시간이 되자 딸의 영혼은 살그머니 어머니를 찾아 와 ‘엄마 엄마. 나 학교에 가고 싶어. 엄마 제발 좀 그렇게 해줘요 네.´ 하고 졸랐어요. 제 힘으로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까 어머니께 떼를 쓴거지요. 살았을 때도 늘 그랬거든요.
그 순간 어머니는 문득 슬픔에서 깨어나 아, 참 학교에 가야지. 늦겠네.´ 하고 딸의 목소리로 말했어요. 그리고 딸의 방에 들어가 책가방을 챙겨 들고 바깥으로 나왔어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학교가 있었으므로 딸은 늘 걸어서 다녔지요.
어머니도 딸이 오가던 길을 걸어서 가고 있어요. 거기로 가는 동안 어머니는 마음에 기쁨이 넘쳐났어요. 아침 학교 길은 참 즐거웠거든요.
“안녕.˝ ˝안녕.˝
정다운 동무들도 길에서 만나지요. 불현듯 단짝 정숙이가 떠올랐어요.
‘아, 참 정숙이네 집에 들러 정숙이랑 함께 가야지.´ 문득 그 생각이 들자 어머니는 이웃한 정숙이네 집을 찾아가 대문앞에서
“정숙아! 학교에 가자!
하고 소리쳐 불렀어요.
어머니가 깊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딸은 또 어느새 어머니를 찾아와
“아 햇빛이 눈부시네. 엄마, 놀이터에 바람 쐬러 가요. 응.˝
하고 졸라댑니다. 어머니는 딸이 되어 동네 놀이터로 달려갑니다. 놀이터는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빈터에 아이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조그만 공원이지요. 딸은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그 놀이터에서 놀곤 했습니다. 놀이터는 아이들의 왕국입니다. 비록 웬만한 집마당만한 크기이지만, 그 둘레에는 소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며 울타리를 치고 있고 미끄럼틀, 그네, 시이소 같은 놀이기구도 마련돼 있거든요. 그뿐만 아니라 한가운데에는 모래밭도 있어 꼬마들은 늘 그곳에서 소꼽놀이를 하지요. 그곳에만 가면 언제나 동무들을 만날 수가 있답니다. 꼬마들은 꼬마들대로, 좀 큰 애들은 또 그애들대로 어울려 마냥 신바람이 나서 뛰어놀곤 합니다.놀이터에 온 어머니는 미끄럼틀에 올라가 주르르 미끄럼을 타봅니다.
“야 신난다!˝
어머니가, 아니 딸이 싱글벙글거리며 소리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네를 찾아가 걸터앉아 봅니다. 이럴 때 갑자기 등뒤에서 바람이 우하니 불어와 밀어주면 좀 좋겠어요. 아마 그러면 딸은 하늘 저편으로 붕하니 떠오를지도 모르지요. 그네 타기도 시들해지자 어머니는 모래밭에 앉아 소꼽놀이를 합니다. 사금파리를 주워와 혼자서 밥도 짓고 국도 끓이고, 또 김치도 담그지요. 딸도 늘 그랬거든요.
어머니는 놀이터에서 모처럼 참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소꼽놀이에 골몰해 있는 동안 갑갑하던 가슴이 후련해졌습니다.
어느덧 날도 저물었고요. 열린 창문 사이로 부드러운 바람이 슬며시 불어옵니다. 그 바람결에 향기로운 냄새가 은은히 묻어나더군요. 아마 라일락이 아니면 아카시아꽃향기겠지요. 어머니는 딸이 하던 대로 코를 발름거리며 그 냄새를 맡아봅니다.
그러자 갑자기 겨드랑이에 천사처럼 날개가 돋혔습니다.
어머니는 사뿐히 창문 사이를 빠져 나옵니다. 그리고 까마득히 눈부신 햇빛 속을 날아오릅니다. 어머니는 꿈나라를 찾아가고 있답니다. 딸이 하던 대로 어머니는 문득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거지요. 딸은 제방 책상에 앉아 골똘히 숙제를 하다가도 그처럼 엉뚱한 생각에 빠져들곤 했거든요. 딸은 늘 먼 세상을 그리워했어요. 그 나라에는 온 산과 들에 빨강·노랑·하양·분홍·보라색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습니다. 벌들이 잉잉대며 꽃봉우리 속 꿀샘에 머리를 박고 나비들도 나폴나폴 춤을 추며 날아다닙니다. 아 머리 위에는 눈부신 금싸라기 햇빛, 하늘은 파아랗고, 하얀 솜털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릅니다. 땅에서는 바위 틈 어디선가 옹달샘이 포옹퐁 솟아 오르지요. 옹달샘은 맑은 냇물을 이루며 흘러갑니다. 냇물에는 또 피라미니 붕어니 걀거니가 떼지어 돌아 다니지요.
딸은 천사가 되어 마음껏 그 하늘과 땅 사이를 돌아다닙니다. 꽃밭에 가서는 꽃들과 동무가 되고 또 냇물에서는 고기들과 술래잡기도 하지요. 가슴에 기쁨이 벅차 오릅니다. 마냥 신바람이 나네요. 어쩌면 딸도 지금 그 나라에 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죠. 늘 그렇게 되기를 꿈꾸어 왔으니까요. 어느 날 어머니는 또 그 나라를 찾아갔어요. 너무 외롭고 쓸쓸했거든요. 어머니가 딸의 방에 들어가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데, 불현듯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혔지요. 아마 별안간 되살아난 가슴이 찢어질듯한 슬픔의 힘이 그렇게 했나봐요. 그 나라에만 가면 어머니는 금방 슬픔에서 놓여나거든요. 그런데 거기 어디선가 어머니는 딸을 만났어요. 처음에는 딸인 줄 몰랐대요. 끝없이 이어진 빨간 장미꽃길 저편에 단발머리 소녀가 하나 나타났어요. 머리에 빨간 장미꽃송이를 꽂고 있네요.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소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깡충깡충 뜀박질을 하며 점점 앞으로 다가 왔어요. 어머니는 걸음을 멈췄어요. 어쩐지 소녀가 자기를 찾아오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소녀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엄마!˝
하고 소리쳤어요.
“오, 영애야!˝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어요. 그리고 팔을 벌려 딸을 와락 껴안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딸은 살짝 비껴나 어머니의 품에 안기지 않으려고 했어요.
˝영애야, 왜 그러니? 엄마가 싫으니?˝
어머니는 무척 섭섭해 나무라듯 물었어요.
“아냐. 엄마. 어서 가셔요. 여긴 엄마가 올 곳이 아니야.˝
딸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어요.
“왜 그러니! 난 여기가 좋은데……˝
“엄마, 여기는 내가 사는 곳이야. 자 봐. 난 여기서 행복하게 잘 살잖아. 그럼 됐지? 다음부터는 여기에 오지 마셔요. 엄마가 찾아갈 곳은 여기가 아니예요. 여기서는 엄마가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잖아요. 하지만 그곳에 가면 모두 엄마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요. 제발 그렇게 해주세요, 네.˝
딸이 간절히 빌었어요.
“거기가 어딘데? 그보다도 난 여기서 너랑 함께 살고 싶어.
너도 그게 좋지 않니?˝
“엄마 아니야, 난 이제 엄마가 없어도 행복하게 살수가 있어! 하지만, 그 애들은 그렇지가 않아. 엄마가 꼭 필요해! 엄마, 조금만 기다리세요. 때가되면 그곳으로 데려다 줄게, 응!˝
딸이 다시 말했어요. 어머니는 잠자코 딸이 시키는대로 했어요. 딸과 헤어져 어머니는 다시 제 정신을 찾은 거지요. 5월 5일 어린이날이었어요. 그날 하루만은 온 세상에 어린이가 주인이 되는 날이지요. 욕심꾸러기 어른들도 그날만은 모처럼 어린이 시절로 돌아가기로 했나봐요. TV에서는 아침부터 어린이날 특집프로가 방영되고 있었지요. 아마 모든 어린이들을 과자나라와 인형나라에 초대하기로 계획을 세웠나봐요. 아니 그뿐만 아니라 하루 내 만화왕국에서 살게 하려는가 봐요.
그날 TV 화면에서는 하루 내 그런 것들만 나타나고 있었거든요. 어머니는 숫제 TV를 켤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어요. 또 슬픔에 잠겨 멍하니 앉아 있었지요. 어린이날이 돌아오니 딸이 더욱 그리워졌거든요. 그때 문득 딸이 말했어요.
“엄마, 뭘해 TV를 좀 켜 봐요. 보고 싶단 말이야!˝
“오, 그래. 영애야 TV 켤까.˝
어머니는 자기도 모르게 문득 TV를 켰어요. <천사네집>이 방영된 것은 그 순간이었어요. 신통하게도 그 시간만은 과자나라와 인형나라, 또 만화나라가 사라지고 어느 고아원이 소개되고 있었어요. 아마 그런 고아원은 이 지구상에서 그곳 한군데 뿐인지도 모르죠. <천사네집>은 뇌성마비 장애아들만 모여 사는 고아원이랍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그런 고아원이 있다는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어요. 자나깨나 딸 생각만 하느라고 곁눈 살필 겨를이 없었거든요. 사람이 너무 자기 혼자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눈도 멀고 귀도 멀게 되는 지도 모르지요.
우연히 TV 화면에 시선이 간 어머니는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뜨고 뚫어지듯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몸이 온전한 사람은 한 아이도 없었어요.
혼자서는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모여 지금 뭘 하고 있는 줄 아세요. 어린이날을 맞이해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어요. 그 몸으로 어떻게 악기를 다루느냐고요. 자 보세요. 이렇게 하고 있답니다.
저마다 자기 몸이 할 수 있는대로 아무렇게나 앉고 눕고 엎드립니다.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벽이나 방바닥에 비스듬히 기대앉기도 하고 또 아예 모로 누워버리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북, 나팔, 플롯, 실로폰, 심벌즈, 바이올린, 첼로 같은 악기를 들고 연주를 하고 있지요.
손으로 안되면 입으로, 입으로 안되면 발가락으로 그것도 거북하면 머리로, 온몸을 비틀어 대며 연주를 하고 있지요. 하지만 그런데도 악기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고 있어요. 마치 천사들이 연주하는 하늘나라 악단처럼.
그날 오후 어머니는 <천사네집>을 찾아갔지요.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알아냈지요. <천사네집>은 산비탈 달동네 맨꼭대기에 있었어요. 방이 여럿 달린, 속이 텅 빈 블록으로 지은 단층집이었어요. 한 방에 뇌성마비장애아들이 열 명씩 함께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그들은 한 방에서 형제처럼 서로 돕고 지낸대요. 서로 옷도 입혀주고 양말도 신겨주고, 또 밥도 떠 먹여주는 거지요. 다리가 아픈 아이는 팔이 아픈 아이를 도와주고 팔이 아픈 아이는 또 다리가 아픈 아이를 도와주고 있어요. 힘들고 짜증스런 노릇인데도 그 애들은 전혀 그런 마음이 아닌 듯 했어요. 비록 몸은 망가지고 비틀어져도 마냥 밝고 따스한 표정인 걸요. 아마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즐겁기만 한가봐요. 그것은 불편한 몸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광경보다 더 감격적인 모습이었어요.
어머니는 오랫동안 눈시울을 적시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어요. 그리고 그날부터 <천사네집>의 자원봉사자가 되었어요. 날마다 <천사네집>을 찾아와 그 애들을 알뜰히 돌봐주는 거지요. 그 애들의 손과 발이 되어 주기도 하고 또 따스한 엄마의 사랑을 베풀어 주었어요. 그러는 동안 어머니는 차츰 딸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났어요. 어머니는 천사가 되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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