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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드리지 마아-.”
채린이가 잎새에 앉은 나비를 잡으려는 순간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그 바람에 교회당의 유리창 무늬처럼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나비는 그만 날아가 버렸습니다.
채린이가 뒤를 돌아다보니 얼굴이 까맣게 그을은 한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피, 이 섬에 사는 나비가 전부 자기 건가 뭐.’
채린이는 놓친 나비보다도 낯선 아이의 명령하는 듯한 말투에 더 마음이 상했습니다.
채린이는 앵토라져 곧장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저 멀리 외삼촌 댁의 너와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굴뚝에는 푸른 연기가 꽂혀 있었습니다.
“어딜 갔다 왔니? 한참 찾았어!”
외사촌 오빠 종국이가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산에.”
“길도 모르면서……. 이렇게 늦게 혼자 다니는 건 위험해. 산엔 독뱀도 있으니까.”
뱀이란 말에 채린이는 갑자기 등이 서늘해졌습니다.
“내일은 섬을 한 바퀴 구경시켜 줄게. 내 친구랑 굴참나무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해 놓았어.”
종국이가 쪽마루에 앉아 찐 옥수수를 채린이에게 건네면서 말했습니다.
나비섬에서는 아침해가 일찍 뜨는 바람에 늦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나비섬이 해가 떠오르는 동해바다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침 햇살이 창호지 문에 환하게 비치자 호랑나비 세 마리가 투명하게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쩌면, 나비를 창호지 문에 붙이다니……. 나뭇잎이나 꽃잎이라면 몰라도…….’
채린이는 문을 열기가 겁이 났습니다.
“경묵이가 기다리겠다.”
언제 일어났는지 오빠가 채집할 도구를 챙기면서 서둘렀습니다.
“그 앤 별명이 ‘작은 파브르’야. 나중에 파브르처럼 곤충학자가 되는 게 꿈이래. 그렇지만 한번도 곤충을 잡은 적은 없어. 관찰한 후에는 꼭 놓아 주지. 그래야만 생태계가 균형을 유지한다는 거야.”
저 멀리 굴참나무 그늘 아래 경묵이가 기다리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채린이는 갑자기 되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경묵이는 바로 어제 산에서 만났던 바로 그 아이었습니다.
“외사촌 동생이야.”
종국이의 말에 경묵이가 멋적은 듯이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습니다.
“어제는 미안했어. 어제 네가 잡으려던 그 나비는 쐐기풀나비였어. 날개의 비늘가루가 손에 묻을까 봐 건드리지 말라고 했던 거야. 쐐기풀나비는 아름답지만 독이 있거든.”
그러자 채린이의 마음 속에는 물 위를 걷는 빗방울 떼처럼 조그만 파문이 일었습니다.
“이 섬에 사는 나비의 종류는 아주 다양해. 왕오색나비, 물결부전나비, 모시나비, 굴뚝나비……. 사람들은 나비가 섬 사람들보다 많으니까 ‘나비섬’이라고도 부르지. 나비가 날개돋이를 어떻게 하는지 아니?”
그 때 노랑나비 한 마리가 채린이의 머리 위를 스치듯 날아올랐습니다.
“노랑나비는 암수 모두 쌍둥이처럼 똑같아서 육안으로 구별하기는 어렵지만 자외선을 비추면 수컷은 검게, 암컷은 희게 보이지. 암컷의 날개는 자외선을 반사할 수 있기 때문이야. 이것으로 수컷을 유인하지.”
“너희들 빨리 오지 않고 뭐 하고 있니? 왕오색나비를 잡으려면 개울 건너 숲으로 가야겠어.”
어느 새 저만치 앞서 간 종국이가 나비채를 휘두르며 말했습니다.
채린이가 서둘러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무릎에서 꽃잎 같은 피가 묻어 났습니다. 그러자 경묵이가 어디선지 이름 모를 풀잎을 뜯어 와 상처에 대고 채린이의 손수건으로 동여매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또다시 발을 헛디딜지 모르니까 징검돌을 바로 놓고 가야겠어.”
경묵이가 징검돌을 들어 사람들이 발을 딛기 좋은 위치에 옮겨다 놓았습니다.
채린이는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며 경묵이의 팔뚝에 돋아난 푸른 힘줄을 말없이 지켜보았습니다.
어느 새 채린이의 채집 병 속에는 여러 종류의 나비가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젠 나비채에 세 사람의 웃음소리밖에 걸리는 게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채린이는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채집 병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나비 떼가 물 위에 그림자를 만들며 한꺼번에 꽃잎처럼 흩어졌습니다.
경묵이와 종국이가 돌다리를 건너다 말고 말없이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밤하늘에는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별처럼 가득했습니다. 아마 나비섬에서는 별들도 밤이 되면 반딧불이가 되어 날아다니는 건지도 몰랐습니다.
그 날 밤, 채린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수천 수만 마리의 나비 떼가 채린이를 둘러쌌습니다. 그 중에는 채린이가 놓친 쐐기풀나비도 있었습니다.
집에 가야 할 날이 왔지만 채린이는 방학 숙제로 나비 채집을 하지 않은 게 조금도 마음 상하지 않았습니다. 나비를 잡지 않고도 마음 속에 채집하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올 때처럼 통통배를 타고 돌아가면서 채린이는 점점 멀리 날아가는 듯한 나비섬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습니다.
여름 방학도 끝나고 무릎의 상처도 분홍빛 흔적으로 남을 무렵, 나비섬에서 책이 한 권 배달되어 왔습니다. 그 책은 나비 박사 석주명 선생님의 전기였습니다.
책갈피 속에는 짤막한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어릴 적 눈으로 본 것은 지금도 확실히 그려 낼 수 있지만 이번 주일에 본 일은 다시 그려낼 수 없다.’
곤충학자 파브르의 말이야.
날개돋이를 끝낸 나비는 하늘을 날다가 처음 날개를 쉬어 간 꽃을 기억한대.
안녕! ==== 경묵이가
채린이가 잎새에 앉은 나비를 잡으려는 순간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그 바람에 교회당의 유리창 무늬처럼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나비는 그만 날아가 버렸습니다.
채린이가 뒤를 돌아다보니 얼굴이 까맣게 그을은 한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피, 이 섬에 사는 나비가 전부 자기 건가 뭐.’
채린이는 놓친 나비보다도 낯선 아이의 명령하는 듯한 말투에 더 마음이 상했습니다.
채린이는 앵토라져 곧장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저 멀리 외삼촌 댁의 너와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굴뚝에는 푸른 연기가 꽂혀 있었습니다.
“어딜 갔다 왔니? 한참 찾았어!”
외사촌 오빠 종국이가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산에.”
“길도 모르면서……. 이렇게 늦게 혼자 다니는 건 위험해. 산엔 독뱀도 있으니까.”
뱀이란 말에 채린이는 갑자기 등이 서늘해졌습니다.
“내일은 섬을 한 바퀴 구경시켜 줄게. 내 친구랑 굴참나무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해 놓았어.”
종국이가 쪽마루에 앉아 찐 옥수수를 채린이에게 건네면서 말했습니다.
나비섬에서는 아침해가 일찍 뜨는 바람에 늦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나비섬이 해가 떠오르는 동해바다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침 햇살이 창호지 문에 환하게 비치자 호랑나비 세 마리가 투명하게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쩌면, 나비를 창호지 문에 붙이다니……. 나뭇잎이나 꽃잎이라면 몰라도…….’
채린이는 문을 열기가 겁이 났습니다.
“경묵이가 기다리겠다.”
언제 일어났는지 오빠가 채집할 도구를 챙기면서 서둘렀습니다.
“그 앤 별명이 ‘작은 파브르’야. 나중에 파브르처럼 곤충학자가 되는 게 꿈이래. 그렇지만 한번도 곤충을 잡은 적은 없어. 관찰한 후에는 꼭 놓아 주지. 그래야만 생태계가 균형을 유지한다는 거야.”
저 멀리 굴참나무 그늘 아래 경묵이가 기다리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채린이는 갑자기 되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경묵이는 바로 어제 산에서 만났던 바로 그 아이었습니다.
“외사촌 동생이야.”
종국이의 말에 경묵이가 멋적은 듯이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습니다.
“어제는 미안했어. 어제 네가 잡으려던 그 나비는 쐐기풀나비였어. 날개의 비늘가루가 손에 묻을까 봐 건드리지 말라고 했던 거야. 쐐기풀나비는 아름답지만 독이 있거든.”
그러자 채린이의 마음 속에는 물 위를 걷는 빗방울 떼처럼 조그만 파문이 일었습니다.
“이 섬에 사는 나비의 종류는 아주 다양해. 왕오색나비, 물결부전나비, 모시나비, 굴뚝나비……. 사람들은 나비가 섬 사람들보다 많으니까 ‘나비섬’이라고도 부르지. 나비가 날개돋이를 어떻게 하는지 아니?”
그 때 노랑나비 한 마리가 채린이의 머리 위를 스치듯 날아올랐습니다.
“노랑나비는 암수 모두 쌍둥이처럼 똑같아서 육안으로 구별하기는 어렵지만 자외선을 비추면 수컷은 검게, 암컷은 희게 보이지. 암컷의 날개는 자외선을 반사할 수 있기 때문이야. 이것으로 수컷을 유인하지.”
“너희들 빨리 오지 않고 뭐 하고 있니? 왕오색나비를 잡으려면 개울 건너 숲으로 가야겠어.”
어느 새 저만치 앞서 간 종국이가 나비채를 휘두르며 말했습니다.
채린이가 서둘러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무릎에서 꽃잎 같은 피가 묻어 났습니다. 그러자 경묵이가 어디선지 이름 모를 풀잎을 뜯어 와 상처에 대고 채린이의 손수건으로 동여매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또다시 발을 헛디딜지 모르니까 징검돌을 바로 놓고 가야겠어.”
경묵이가 징검돌을 들어 사람들이 발을 딛기 좋은 위치에 옮겨다 놓았습니다.
채린이는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며 경묵이의 팔뚝에 돋아난 푸른 힘줄을 말없이 지켜보았습니다.
어느 새 채린이의 채집 병 속에는 여러 종류의 나비가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젠 나비채에 세 사람의 웃음소리밖에 걸리는 게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채린이는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채집 병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나비 떼가 물 위에 그림자를 만들며 한꺼번에 꽃잎처럼 흩어졌습니다.
경묵이와 종국이가 돌다리를 건너다 말고 말없이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밤하늘에는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별처럼 가득했습니다. 아마 나비섬에서는 별들도 밤이 되면 반딧불이가 되어 날아다니는 건지도 몰랐습니다.
그 날 밤, 채린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수천 수만 마리의 나비 떼가 채린이를 둘러쌌습니다. 그 중에는 채린이가 놓친 쐐기풀나비도 있었습니다.
집에 가야 할 날이 왔지만 채린이는 방학 숙제로 나비 채집을 하지 않은 게 조금도 마음 상하지 않았습니다. 나비를 잡지 않고도 마음 속에 채집하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올 때처럼 통통배를 타고 돌아가면서 채린이는 점점 멀리 날아가는 듯한 나비섬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습니다.
여름 방학도 끝나고 무릎의 상처도 분홍빛 흔적으로 남을 무렵, 나비섬에서 책이 한 권 배달되어 왔습니다. 그 책은 나비 박사 석주명 선생님의 전기였습니다.
책갈피 속에는 짤막한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어릴 적 눈으로 본 것은 지금도 확실히 그려 낼 수 있지만 이번 주일에 본 일은 다시 그려낼 수 없다.’
곤충학자 파브르의 말이야.
날개돋이를 끝낸 나비는 하늘을 날다가 처음 날개를 쉬어 간 꽃을 기억한대.
안녕! ==== 경묵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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