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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내 짝궁 최영대

창작동화 채인선............... 조회 수 2424 추천 수 0 2005.08.09 22:38:45
.........
월 어느날 아침, 더벅머리를 한 남자아이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헐렁한 웃옷에 다 헤어진 운동화를 신은 꾀죄죄한 아이였어요. 아이들은 그 애의 모습이 신기한 듯 이리저리 살펴 보았어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그 애를 소개했어요. 이름은 최영대. 여기서 멀리 떨어진 어느 시골 학교에서 전학 온 거래요.

영대는 아주 조용했어요. 공부를 할 때도 조용하고 쉬는 시간에도 조용했어요. 그 애는 행동도 조용조용 했어요. 천천히 소리 안 나게 일어나서는 소리 안 나게 걸어다녔어요.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느렸어요. 글씨 쓰는 것도 느리고 밥 먹는 것도 느렸어요. 누가 자기 흉을 보아도 잠자코 있었어요. 아이들은 영대를 놀렸어요.

˝굼벵이 바보! 쟤는 말도 잘 못한대. 아마 듣지도 못할 거야.˝

영대는 언제나 같은 옷을 입고 왔어요. 몸두 잘 씻지 않는지 영대가 지나갈 때면 지독한 냄새가 났어요. 실내와도 없이, 가방은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고 준비물은 하나도 안 가져왔어요. 여자아이들은 영대와 같이 앉기 싫다며 선생님을 졸랐어요. 그래서 여름 방학이 다 되도록 영대는 맨 뒤에 혼제 앉아 있었어요.

아이들이 그러는데 영대는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난 다음부터 거의 말을 안 하고 지냈대요. 그래서 지금은 할 수 있는 말이 몇 안 된대요. 그리고 옷차림도 지저분해졌어요. 다른 식구도 없이 아버지와 단 둘이 산다는데, 생각해 보면 불쌍한 아이였지만 우리는 모두 영대를 따돌렸어요.

그래도 영대는 울지 않았어요. 몇 번 노려 보긴 했지만 그것으로 다예요. 그래서 더 바보 소리를 들었어요. 남자아이들은 걸핏하면 영대 가방을 빼앗아 교실 밖으로 던져 버렸어요. 또 어느 때는, 우유를 먹는 시간이었는데 일부러 그 애 팔을 흔들어 우유를 다 쏟게 한 일도 있어요. 그러고는 선생님께 이르는 거예요.

˝선생님, 영대가 우유를 엎질러 제 책상이 다 젖었어요. 혼내 주세요.˝

˝선생님, 영대를 복도로 쫓아내요. 냄새가 나요.˝

하지만 영대는 가만히 있었어요. 그래서 더 바보 소리를 들은 거예요.

아이들은 무슨 일만 있으면 영대를 괴롭혔어요. 선생님이 아이들을 벌주면 아이들도 영대를 벌주었어요. 누가 물건을 잃어버리면 분명히 영대가 가져갔을 거라며 영대 가방을 교실 바닥에 쏟아 놓고 샅샅이 뒤졌어요. 우리반 화장실이 더러운 게 바로 영대 때문이라고 날마다 화장실 청소도 시켰어요. 선생님이 몇 번 야단을 쳤지만 나중에는 선생님도 그냥 내버려 두었어요.

한번은 아주 큰 일도 있었어요. 영대를 벽에다 세워 놓고 남자아이들이 모두 한 대씩 때린 일이에요. 물론 선생님이 안 계실 때에요.

왜 얘를 때리냐고 나랑 여자아이들이 말렸지만 남자아이들은 눈을 흘기며 우리한테도 으르렁거렸어요. 영대는 코피가 터졌어요. 눈 주위에 시퍼런 멍도 들었어요. 그래도 울지 않았어요. 노려보기만 했어요. 나는 무서웠어요. 남자 아이들도 무서웠고 영대도 무서웠어요.

나처럼 영대를 불쌍하게 여기는 아이들도 몇 명 있었어요. 영대를 때리고 골려 주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다른 남자아이들이 하도 사납게 굴어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어느 날 청소 당번이어서 다른 때보다는 좀 늦게 교실에서 나오는데 영대가 학교 운동장 응달진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거예요. 말을 걸어 볼까? 했지만 그만 두었어요. 영대 표정이 슬퍼 보였기 때문이에요. 물끄러미 아이들 노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영대는 한 번도 그렇게 운동장에서 놀아 보지 못했을 거예요. 아무도 영대를 놀이에 끼워 주지 않았거든요. 영대가 다가오면 돌을 주워 들고 쫓기도 했어요.

하긴 나도 처음에는 영대가 바보인 줄 알았어요. 아이들이 다 ˝굼벵이 바보!˝ 라고 놀렸거든요. 우리 엄마는 영대 얘기를 들으시곤 가슴 아파했어요. 영대 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 얼마나 슬퍼하고 계시겠냐며 눈물을 글썽였어요. 나는 생각했어요. 만약에 우리 엄마도 영대 어머니처럼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영대처럼 되었을 거예요. 아니, 나는 엄마를 따라 죽어 버렸을 거예요.

나는 영대를 도와주고 싶었어요. 나도 한번 ˝굼벵아, 저리 가!˝ 하고 소리질렀는데 그걸 사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탕도 가져가고 점심 시간에 도시락 반찬을 건네 주어도 영대는 받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화가 난 것 같았어요.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되었어요. 10월 어느 날, 우리 3학년 학생들은 경주로 단체 여행을 가게 되었어요. 며칠 전부터 아이들은 기분이 들떠 있었어요. 서로 준비할 것을 의논하고 밤에 모두 둘러앉아 놀 궁리도 했어요. 나도 즐거웠어요. 이 때만큼은 아이들은 영대를 골탕 먹이지 않았어요. 전혀 안 그런 것은 아니지만. . . 영대도 가끔 미소를 띠었어요. 선생님이 여행 얘기를 하실 때와 아이들끼리 준비물 회의를 할 때 말이죠.

아이들은 영대도 같이 간다는 걸 알고 몹시 기분 나빠했어요. 바보가 따라가니 창피하다는 거예요. 선생님의 꾸중을 듣고서야 겨우 아이들은 잠잠해졌지만 선생님이 안 보실 때면 ˝너, 우리 따라가면 가만 안 둘 거야!˝ 하며 영대를 협박했어요. 영대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어요. 하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어요.

드디어 여행 날이 되었어요. 구름 한 점 없는 아주 맑은 가을날이었어요.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아침 일찍 출발했어요. 달리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는 노래를 죄다 불렀어요. 손뼉을 치고 발을 굴렀어요.

그 다음에는 도시락을 먹고 낮잠도 실컷 잤어요. 맨 앞에 혼자 앉은 영대는 아이들이 다 잠든 다음에도 한참 동안 창 밖을 내다보았어요. 영대의 얼굴은 햇빛을 받아 환히 빛나고 있었어요. 나도 어느새 잠이 들었어요.

오후에 경주에 내려 우리는 국립 경주박물관과 첨성대, 포석정을 구경했어요. 아이들은 가는 곳마다 ˝와!˝ 하며 탄성을 질렀어요.

저녁이 되니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을 쳤어요. 방에 짐을 풀자마자 우리는 식당에 내려가 저녁을 먹었어요. 밥도 맛있고 반찬도 맛있었어요. 아이들은 모두 밥을 다 먹었어요. 영대도 더 먹었어요. 밥풀도 안 흘리고 물도 안 흘렸어요. 그런 다음,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서로 웃고 떠들고 놀았어요.

방에 들어와 베개를 베고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질 않았어요. 선생님은 불을 끄고 창가에 서 계셨어요. 방은 캄캄했지만 유리창으로 달빛이 비쳐들어와 그리 어둡진 않았어요. 아이들이 모두 잠들 때까지 선생님은 창가에 서계실 작정이셨나 봐요. 하지만 잠자리가 낯설어 그런지, 엄마 얼굴도 가만가만 떠오르고 잠이 잘 오지 않았어요. 몇몇 아이들은 선생님이 어서 방을 나가시기를 기다리며 잠을 쫓고 있었어요. 선생님이 나가시면 저희들끼리 재미나게 놀 생각을 하면서요.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조용했어요. 아주 조용했어요.

그 때 방귀 소리가 뽕 하고 났어요. 아이들은 모두 그 소리를 듣고 말았어요. 선생님은 ˝누구야? 누가 잠 안 자고 방귀를 뀌는 거야?˝ 하고 호통을 치셨어요. 어두운 방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킥킥거렸어요. 그런데 누가 ˝굼벵이 바보가요! 저 바보가요.˝ 하고 대답하는 거예요. 어떤 애는 코를 싸매고는 ˝아휴, 방귀 냄새! 굼벵이 방귀 냄새는 역시 달라.˝ 하고 코맹맹이 소리를 냈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쿡쿡 웃으며 물으셨어요. ˝누구? 굼벵이?˝ 그랬더니 정말 굼벵이같은 반장이 영대를 가리키며 ˝이 애요. 엄마 없는 바보 말이에요.˝ 하고 소리쳤어요.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으앙!˝ 하고 울음 소리가 터져 나왔어요. 영대가 울음을 터뜨린 거예요.

아이들은 깜짝 놀랐어요. 영대가 울 수 있다는 걸 몰랐거든요. 영대는 한 번도 운 적이 없었어요. 그 울음 소리가 너무나 슬프고 괴로운 것이어서 더욱 놀랐어요. 울고 있는 영대의 모습이 어두운 방 한 구석에서 떠올랐어요. 모두들 영대를 볼 수 있었어요. 양 무릎 사이에 얼굴을 처박고 어깨를 출렁이며 울고 있었어요.

선생님도 당황하셨는지 잠자코 계셨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였어요. 잠시 후 나는 영대에게 기어가 ˝미안해, 그만 울어.˝ 하고 달랬어요. 나도 눈물이 나오려고 해 혼났어요.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다가와서는 미안하다는 말,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말, 다신 안 놀리겠다는 말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선생님도 영대를 달랠 수 없었어요. 야단을 칠 수도 없었어요.

선생님은 불을 켰어요. 그러곤 아이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모두 일어나! 너희들은 벌을 받아야 돼. 내가 그렇게 타일렀는데도 한 반 친구를 괴롭히다니, 나쁜 녀석들!˝

이렇게 선생님이 화를 내시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일어나! 앉아! 일어나! 앉아! 일어나! 앉아!˝

끝도 없이 선생님은 외치셨어요. 그 구령에 따라 우리도 끝도 없이 일어났다 앉았다 했어요. 모두 울상이 되었어요.

영대는 계속 울었어요. 아무 것도 귀에 들리지 않는 것 같았어요. 가끔 돌아가신 엄마를 부르는 듯 꺼이꺼이 울었어요. 그 동안 받은 설움을 모두 울음으로 토해 내려는 것 같았어요. 영대를 따라 아이들 사이에서도 울음이 조금씩 새어 나왔어요. 아이들은 울면서 ˝미안해, 미안해. 다신 안 그럴게.˝ 하며 사정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영대는 계속 울었어요. 울음 소리를 듣고 다른 방에서 아이들이랑 선생님들이 쫓아왔어요. 문을 열어 보고는 모두들 놀라 할 말을 잃은 모양이에요. 주임 선생님도 오시고 교감 선생님도 곧 달려오셨어요. 그러고는 잠자코 서 계시다가 그냥 돌아가셨어요. 우리는 계속 손을 머리 위에 포개고는 일어섰다 앉았다를 했어요. 우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졌어요. 결국 모두 다 주저앉아 울어 버렸어요. 선생님도 울어 버렸어요.

구경 온 다른 반 아이들도 울먹울먹하다가 선생님들께 붙들려 가 버리고 우리는 울음 바다가 되어 버린 방에서 마음껏 울었어요. 모두 영대한테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나처럼 사과를 하고 싶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저 울기만 했어요. 모두 영대 마음이 되어 영대처럼 울기만 했어요. 동이 틀 때까지 그러고만 있었어요. 울다가 잠이 들었어요.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다른 반은 전부 떠나 버리고 여관에는 우리 반만 남아 있었어요. 포항제철을 견학할 예정이었거든요. 우리들은 퉁퉁 부은 눈을 비비며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버스에 올라탔어요. 간밤에 있었던 일로 아이들은 이상한 만큼 점잖아졌어요. 영대도 점잖았어요.

영대는 전날처럼 버스 맨 앞에 앉았어요. 그런데 반장이, 영대에게 엄마도 없는 바보라고 놀렸던 반장이, 슬그머니 앞으로 나와 영대 옆에 앉는 거예요. 그러고는 영대 손에 무언가 건네 주려고 했어요. 영대가 안 받으려고 하자 반장을 겸연쩍게 웃으며 영대 가슴에 무억 꽂아 주는 거예요. 전날 국립 경주박물관에서 산 기념 배지였어요.

아이들이 다들 보고 있었어요. 버스 운전사 아저씨가 앉으라고 소리쳤지만 우리 모두 앞으로 몰려와 보고 있었어요. 내가 얼른 가서 영대 다른 쪽 옷에 내가 산 기념 배지를 꽂아 주었어요. 내 것이 더 예뻤거든요. 그랬더니 다른 애들도 제각각 자기 것을 가져 왔어요. 그러고는 한 명씩 그 애에게 기념 배지를 꽂아 주는 거예요. 배지를 사지 않은 아이는 호주머니에 사탕을 넣어 주기도 했고, 그저 악수를 청하고는 돌아서는 아이도 있었어요.

영대는 어리둥절했지만 아이들 하는 대로 가만 두었어요. 운전사 아저씨는 소동이 멎을 때까지 길 한쪽에 버스를 세워 두셨어요.

아이들이 다 물러간 다음 영대 옷을 보니 옷이 온통 배지로 가득했어요. 굉장히 멋진 옷이 되었어요. ´축 국립 경주박물관 관람기념´이란 금박 글자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어요. 옷 전체가, 버스 전체가 환해졌어요. 운전사 아저씨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그 애에게 씌워주며 ˝생일인가 보구나? 생일 축하한다!˝ 고 말씀하셔서 모두 웃음을 터뜨렸어요.

버스는 다시 신나게 달렸어요. 달리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는 노래를 죄다 불렀어요. 손뼉을 치고 발을 굴렀어요. 영대도 같이 불렀어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요.

잊을 수 없는 ´축 국립 경주박물관 관람기념´ 이었어요.

그 다음부터 영대는 좀 달라졌어요. 옷차림도 깨끗해지고 꾀죄죄한 얼굴도 조금씩 하얘졌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영대가 지금 발을 배우고 있다는 거예요. 반 아이들이 영대를 붙잡고 말하는 연습을 시켰거든요. 영대가 잘 안 된다고 울상을 지으면 아이들은 엄마처럼 달래주어요. 또 울음이 시작될까봐 겁이 나는 가 봐요. 이제 영대를 괴롭힌다는 걱정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어요. 영대는 우리 반에서 제일 소중한 아이가 되었어요. 나에게도 그래요. 영대는 지금 내 짝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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