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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2006 한국일보 동화 당선작
농사짓는 아빠는 사십을 넘긴 나이에 필리핀에 사는 엄마와 국제결혼했다
***
황금빛 울타리 / 배덕임
“저놈의 짐승 좀 보소. 아침부터 왜 자꾸 날아드는 겨.”
할머니는 신발을 끄집으며 장대를 들고 까마귀를 쫓아갔다.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엉거주춤 펴더니 장대를 휘둘러 댔다. 거렁거렁한 목소리로 악을 써댔지만 까마귀는 좀더 높은 나뭇가지 위로 올라앉았다. 할머니는 장대로 감나무를 두들겨 댔다. 세찬 빗줄기가 양철지붕에 떨어지듯 후드득후드득 요란했다. 할머니의 말들은 점점 거칠어졌다. 까마귀가 마치 엄마나 되는 듯 엄마를 구박하던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할머니 앞에서 대꾸도 못하고 눈물만 떨어뜨리던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할머니, 왜 까마귀를 괴롭혀?”
“저 놈은 못된 놈의 짐승이여. 집안에 날아들면 나쁜 일이 생기는 겨.”
“할머니가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기는. 옛날부터 조상들이 그런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지.”
“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할머니는 조상님만 들먹여. 할머니가 그러니까 엄마도 집을 나갔잖아.”
“뭐? 니 에미가 집 나간 게 왜 내 탓이여.”
“할머니가 지금처럼 조상님 들먹이며 매일 구박해댔잖아.”
“아이쿠, 내 팔자야. 힘들게 키워놨더니 이제 와서 집 나간 지 에미 편드는 것 좀 보소.”하면서 할머니는 신세타령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책가방을 들고 도둑고양이처럼 내달렸다. 이제 할머니는 나한테 팔자타령을 해댈게 뻔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팔자타령을 시작하면 끝이 없다. 엄마가 집을 나간 뒤로는 더더욱 심해져 마치 스님이 염불을 외듯 한다. 대문을 벗어났는데도 할머니 푸념소리가 발자국처럼 따라왔다. 나는 소리를 떨쳐내려 힘껏 내달렸다. 달리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다시는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가 없는 곳으로 멀리 멀리 가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자꾸만 마음 한쪽이 ‘콕콕’ 거렸다.
마을 어귀에 나오자 기차가 지나갔다. 기차는 건널목을 앞두고 긴 기적소리를 울려댔다. 해질녘이면 고샅길에 나와 나를 부르던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엄마의 말소리는 어눌하고, 어색했다. 이런 엄마를 두고 사람들은 수군댔다.
엄마는 마을 어귀 정자나무 밑에 자주 앉아 있었다. 마치 이곳이 외갓집이나 되는 냥 힘든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곤 했다. 나는 엄마가 즐겨 앉았던 바위에 엉덩이를 추슬러 올라앉았다. 엄마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다. 엄마는 이 바위에 앉아 있다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달려와 업어주곤 했다. 차갑던 바위가 체온에 따스해지자 엄마 생각이 더 났다. ‘엄마!’ 하며 울고 싶었지만 애써 울지 않으려 어금니를 앙다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은 푸르렀다. 맑은 새털구름이 여기저기 퍼져 있어 엄마가 자주 들여다보던 사진 속의 바닷가를 보는 것 같았다. 새하얀 모래가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에 푸르른 하늘이 바다와 맞닿아 있던 사진. 사진 속에서 엄마와 아빠는 꽃처럼 웃고 있었다.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아빠는 백번 정도 선을 봤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할머니까지 모시고 살기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는 사십을 넘긴 나이에 필리핀에 사는 엄마와 국제결혼을 했다.
아빠와 결혼한 엄마는 우리말을 전혀 몰랐다. 아빠와 할머니가 하는 말들을 알아듣질 못했고, 엄마 생각도 말하지 못했다. 전혀 대화가 되질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아빠와 엄마는 대충 몸짓이나 느낌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한다. 아빠는 비록 말로 표현은 안 하지만 엄마를 사랑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달랐다. 우리 문화나 풍습을 전혀 모른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말까지 통하지 않았으니 엄마는 할머니의 구박덩어리였다. 할머니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 있냐?” 하며 매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평소에 말이 없고 무뚝뚝하던 아빠는 할머니 목소리가 탱자 울타리를 넘어가면 정신없이 술을 마셔댔다. 마치 사막을 건너온 사람이 물을 마시듯 벌컥벌컥 마셨다. 아빠는 술만 먹으며 변했다.
아빠는 할머니처럼 엄마에게 “병신, 바보” 해댔다. 마치 앵무새처럼 할머니가 하던 말을 따라 했다. 엄마는 이렇게 매번 당하기만 했다. 잔뜩 놀란 엄마의 눈동자는 어린 토끼 눈동자를 닮아보였다. 엄마는 겁에 질려 한쪽 구석에 오래된 고목나무처럼 웅크리고 앉아 슬피 울었다.
“엄마! 빨리 와!”
나는 커다란 정자나무를 올려다보며 외쳤다. 우듬지에 매달린 나뭇잎들이 내 말을 엄마에게 전해 줄 것만 같았다.
며칠 전이었다. 집에는 사람이 없는지 전화 벨소리가 계속 울렸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숨을 헐떡이며 수화기를 들었다. 내가 말을 했지만 저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번뜩, 엄마라는 예감이 들었다.
“엄마! 엄마지?”
“…….”
수화기 저편에서는 훌쩍이는 소리만 들렸다. 혹시라도 전화가 끊길까봐 바짝바짝 마음이 타들어갔다. 두 손으로 수화기를 꼭 붙잡았다. 얼굴을 수화기 안으로 밀어 넣고 싶을 정도였다.
“엄마, 엄마-”
장대비처럼 외쳐대는 내 소리에 “진우야-” 하는 엄마의 소리가 묻어났다. 엄마는 자꾸만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 동안 우리말을 적극적으로 배우지 않았던 게 후회 된다고 했다. 머지않아 데리러 올 테니 조금만 참으라 했다. 나는 엄마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바보 취급을 당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준비물을 챙기지 못 했다. 오늘은 그놈의 까마귀 때문이기는 하지만 난 자주 준비물을 못 챙긴다. 1학년 때는 엄마가 우리말을 잘 몰랐기 때문이고, 지금은 할머니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준비물 때문에 한두 번 혼난 것도 아닌데 하며 학교에 갔지만 마음은 찜찜했다.
“야! 울보. 깜장 울-보야, 어서 울어 봐.”
은석이가 내 어깨를 툭 치더니 혀를 날름거리며 앞서 갔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꿀꺽 삼켰다.
“얘들아, 저 녀석 엄마는 집 나갔데. 필리핀 사람이라 우리말도 잘 못했어. 무슨 말을 하면 꼭 바보 같이 웃기만 했다. 야, 깜장 울보야, 어서 울어 봐. 메롱메롱.”하며 은석이는 친구들 앞에서 호들갑을 떨어댔다.
“얼레리꼴레리 집 나갔대요. 엄마도 없대요.”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놀려대기 시작했다.
“에이, 재수 없어. 왕- 재수!”
곁에서 서 있던 동훈이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재수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뜨거운 물이 마음속에 쏟아진 것 같았다. 겨우 참았던 화가 불끈 치솟았다.
“뭐야, 인마.”
나는 동훈이 얼굴을 향해 힘껏 주먹을 날렸다.
“어, 피야. 피-”
곁에 있던 아이들이 동훈이 곁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나쁜 자식들, 내가 왜 재수 없어.’ 하고 수도 없이 마음속으로 외쳐댔다. 할머니와 아빠는 엄마한테 재수 없다는 말을 했다. 엄마 가슴을 멍들게 했던 말인데 내가 듣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선생님께 뛰어갔다. 선생님은 놀란 표정으로 “동훈아, 괜찮니?” 하며 달려왔다.
“선생님, 엉-엉-”
동훈이는 놀릴 때와는 다르게 선생님 앞에서 그 큰 등치로 서럽게 울어댔다. 나보고 울보라 놀리더니 이제 보니 동훈이가 울보였다. 내 주먹에 동훈이 코피가 터졌다.
“진우야, 왜 그랬어? 응?”
선생님은 다그쳐 물었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집에 엄마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 물음에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집에 엄마가 있냐는 물음은 마치 폭설 같았다. 수북이 쌓인 눈 때문에 가지가 휘듯 내 고개는 자꾸만 수그러들었다.
그 때 곁에 있던 은석이가 “선생님, 진우 엄마 집 나가 버렸대요.” 하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했다. ‘선생님도 날 놀릴 거야.’ 하는 생각 때문에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그-랬니? 진우야, 아빠는?” 선생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대답대신 고개만 가로 저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겁부터 났다.
“진우야, 그럼, 집에 누가 있니?” 선생님 목소리는 따끈한 찐빵 같았다.
“선생님, 진우 할머니 있어요.” 같은 마을에 사는 채영이가 말했다.
선생님은 동훈이 엄마와 우리 할머니를 학교로 불렀다. ‘내가 조금만 참을 걸.‘ 후회가 됐다. 할머니가 학교에 와서 욕이나 하지 않을지 걱정이 됐다.
“김동훈, 사실대로 말해 봐.”
선생님은 동훈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동훈이는 말을 못하고 한동안 망설였다. 그러더니 은석이 쪽을 바라봤다. 은석이는 동훈이가 바라보자 재빨리 고개를 돌려버렸다. 동훈이가 만약 거짓말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단단히 벼뤘다.
“사-실-은, 은석이랑 내가 진우를 놀렸어요.”
“동훈아, 뭐라고 놀렸는지 자세히 말해 보렴.” 선생님이 말했다.
“은석이가 진우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고 우리말도 잘 못한다며, 진우를 깜장 울보라고 했어요.”
“뭐? 우리 진우가 깜장 울보라고.” 하고 할머니가 소리쳤다. 할머니 얼굴에 있던 주름살이 우글거렸다.
“아냐, 재수 없다고 했단 말이야.”
나는 한꺼번에 서러움이 몰려와 울부짖었다.
선생님은 우리의 잘잘못을 하나하나 알려줬다. 결국 동훈이 엄마와 할머니는 서로 사과를 했다.
“앞으로는 친구들 손찌검 하지 마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치! 재수 없다는 소리 때문에 그랬단 말이야. 할머니, 나 엄마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진우야, 너 시방 뭐라고 했냐? 그럼, 니 에미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단 말이냐?” 할머니는 놀란 표정으로 다그쳐 물었다.
“싫어, 안 가르쳐 줄 거야. 엄마가 곧 나 데리러 온다고 했어. 엄마는 지금 우리말도 열심히 배우고 있대. 엄마 있는 곳 알려주면 데려다 또 구박하려고 그러지.”
“이 철없는 녀석아. 그런 소리 마라. 이제 다시는 구박 하는 일은 없을 거여.”
“할머니는 만날 조상님만 들먹이는데 어떻게 믿어?”
“이젠 조상님 안 들먹이마. 너희 엄마 집 나간 후 너희 아빠 망가진 것 안보이냐. 일도 안하고 매일 같이 술타령이나 해대고 있잖냐. 그리고 오늘 학교에 가보니 네 옷도 꼴이 아니더구나. 다른 애들과 다르게 어미 없는 티가 나더라. 네 엄마가 없으면 집안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너희들이 더 이상 망가진 꼴은 볼 수 없다. 진우야, 너희 엄마 어딨다던 응?”
“할머니, 약속할 수 있어? 진짜 엄마 오면 구박 안할 거야?”
“그려, 이 할미가 약속 하마. 앞으로는 절대로 구박하지 않으마.” 하면서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알았어. 할머니 말 믿을게.”
할머니와 나는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할머니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할머니와 손을 잡고 고샅길로 들어서는데 탱자나무 울타리가 보였다. 탱자나무 울타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탱자들이 어느새 황금빛으로 탐스럽게 익어 있었다.
농사짓는 아빠는 사십을 넘긴 나이에 필리핀에 사는 엄마와 국제결혼했다
***
황금빛 울타리 / 배덕임
“저놈의 짐승 좀 보소. 아침부터 왜 자꾸 날아드는 겨.”
할머니는 신발을 끄집으며 장대를 들고 까마귀를 쫓아갔다.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엉거주춤 펴더니 장대를 휘둘러 댔다. 거렁거렁한 목소리로 악을 써댔지만 까마귀는 좀더 높은 나뭇가지 위로 올라앉았다. 할머니는 장대로 감나무를 두들겨 댔다. 세찬 빗줄기가 양철지붕에 떨어지듯 후드득후드득 요란했다. 할머니의 말들은 점점 거칠어졌다. 까마귀가 마치 엄마나 되는 듯 엄마를 구박하던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할머니 앞에서 대꾸도 못하고 눈물만 떨어뜨리던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할머니, 왜 까마귀를 괴롭혀?”
“저 놈은 못된 놈의 짐승이여. 집안에 날아들면 나쁜 일이 생기는 겨.”
“할머니가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기는. 옛날부터 조상들이 그런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지.”
“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할머니는 조상님만 들먹여. 할머니가 그러니까 엄마도 집을 나갔잖아.”
“뭐? 니 에미가 집 나간 게 왜 내 탓이여.”
“할머니가 지금처럼 조상님 들먹이며 매일 구박해댔잖아.”
“아이쿠, 내 팔자야. 힘들게 키워놨더니 이제 와서 집 나간 지 에미 편드는 것 좀 보소.”하면서 할머니는 신세타령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책가방을 들고 도둑고양이처럼 내달렸다. 이제 할머니는 나한테 팔자타령을 해댈게 뻔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팔자타령을 시작하면 끝이 없다. 엄마가 집을 나간 뒤로는 더더욱 심해져 마치 스님이 염불을 외듯 한다. 대문을 벗어났는데도 할머니 푸념소리가 발자국처럼 따라왔다. 나는 소리를 떨쳐내려 힘껏 내달렸다. 달리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다시는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가 없는 곳으로 멀리 멀리 가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자꾸만 마음 한쪽이 ‘콕콕’ 거렸다.
마을 어귀에 나오자 기차가 지나갔다. 기차는 건널목을 앞두고 긴 기적소리를 울려댔다. 해질녘이면 고샅길에 나와 나를 부르던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엄마의 말소리는 어눌하고, 어색했다. 이런 엄마를 두고 사람들은 수군댔다.
엄마는 마을 어귀 정자나무 밑에 자주 앉아 있었다. 마치 이곳이 외갓집이나 되는 냥 힘든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곤 했다. 나는 엄마가 즐겨 앉았던 바위에 엉덩이를 추슬러 올라앉았다. 엄마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다. 엄마는 이 바위에 앉아 있다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달려와 업어주곤 했다. 차갑던 바위가 체온에 따스해지자 엄마 생각이 더 났다. ‘엄마!’ 하며 울고 싶었지만 애써 울지 않으려 어금니를 앙다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은 푸르렀다. 맑은 새털구름이 여기저기 퍼져 있어 엄마가 자주 들여다보던 사진 속의 바닷가를 보는 것 같았다. 새하얀 모래가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에 푸르른 하늘이 바다와 맞닿아 있던 사진. 사진 속에서 엄마와 아빠는 꽃처럼 웃고 있었다.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아빠는 백번 정도 선을 봤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할머니까지 모시고 살기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는 사십을 넘긴 나이에 필리핀에 사는 엄마와 국제결혼을 했다.
아빠와 결혼한 엄마는 우리말을 전혀 몰랐다. 아빠와 할머니가 하는 말들을 알아듣질 못했고, 엄마 생각도 말하지 못했다. 전혀 대화가 되질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아빠와 엄마는 대충 몸짓이나 느낌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한다. 아빠는 비록 말로 표현은 안 하지만 엄마를 사랑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달랐다. 우리 문화나 풍습을 전혀 모른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말까지 통하지 않았으니 엄마는 할머니의 구박덩어리였다. 할머니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 있냐?” 하며 매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평소에 말이 없고 무뚝뚝하던 아빠는 할머니 목소리가 탱자 울타리를 넘어가면 정신없이 술을 마셔댔다. 마치 사막을 건너온 사람이 물을 마시듯 벌컥벌컥 마셨다. 아빠는 술만 먹으며 변했다.
아빠는 할머니처럼 엄마에게 “병신, 바보” 해댔다. 마치 앵무새처럼 할머니가 하던 말을 따라 했다. 엄마는 이렇게 매번 당하기만 했다. 잔뜩 놀란 엄마의 눈동자는 어린 토끼 눈동자를 닮아보였다. 엄마는 겁에 질려 한쪽 구석에 오래된 고목나무처럼 웅크리고 앉아 슬피 울었다.
“엄마! 빨리 와!”
나는 커다란 정자나무를 올려다보며 외쳤다. 우듬지에 매달린 나뭇잎들이 내 말을 엄마에게 전해 줄 것만 같았다.
며칠 전이었다. 집에는 사람이 없는지 전화 벨소리가 계속 울렸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숨을 헐떡이며 수화기를 들었다. 내가 말을 했지만 저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번뜩, 엄마라는 예감이 들었다.
“엄마! 엄마지?”
“…….”
수화기 저편에서는 훌쩍이는 소리만 들렸다. 혹시라도 전화가 끊길까봐 바짝바짝 마음이 타들어갔다. 두 손으로 수화기를 꼭 붙잡았다. 얼굴을 수화기 안으로 밀어 넣고 싶을 정도였다.
“엄마, 엄마-”
장대비처럼 외쳐대는 내 소리에 “진우야-” 하는 엄마의 소리가 묻어났다. 엄마는 자꾸만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 동안 우리말을 적극적으로 배우지 않았던 게 후회 된다고 했다. 머지않아 데리러 올 테니 조금만 참으라 했다. 나는 엄마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바보 취급을 당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준비물을 챙기지 못 했다. 오늘은 그놈의 까마귀 때문이기는 하지만 난 자주 준비물을 못 챙긴다. 1학년 때는 엄마가 우리말을 잘 몰랐기 때문이고, 지금은 할머니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준비물 때문에 한두 번 혼난 것도 아닌데 하며 학교에 갔지만 마음은 찜찜했다.
“야! 울보. 깜장 울-보야, 어서 울어 봐.”
은석이가 내 어깨를 툭 치더니 혀를 날름거리며 앞서 갔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꿀꺽 삼켰다.
“얘들아, 저 녀석 엄마는 집 나갔데. 필리핀 사람이라 우리말도 잘 못했어. 무슨 말을 하면 꼭 바보 같이 웃기만 했다. 야, 깜장 울보야, 어서 울어 봐. 메롱메롱.”하며 은석이는 친구들 앞에서 호들갑을 떨어댔다.
“얼레리꼴레리 집 나갔대요. 엄마도 없대요.”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놀려대기 시작했다.
“에이, 재수 없어. 왕- 재수!”
곁에서 서 있던 동훈이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재수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뜨거운 물이 마음속에 쏟아진 것 같았다. 겨우 참았던 화가 불끈 치솟았다.
“뭐야, 인마.”
나는 동훈이 얼굴을 향해 힘껏 주먹을 날렸다.
“어, 피야. 피-”
곁에 있던 아이들이 동훈이 곁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나쁜 자식들, 내가 왜 재수 없어.’ 하고 수도 없이 마음속으로 외쳐댔다. 할머니와 아빠는 엄마한테 재수 없다는 말을 했다. 엄마 가슴을 멍들게 했던 말인데 내가 듣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선생님께 뛰어갔다. 선생님은 놀란 표정으로 “동훈아, 괜찮니?” 하며 달려왔다.
“선생님, 엉-엉-”
동훈이는 놀릴 때와는 다르게 선생님 앞에서 그 큰 등치로 서럽게 울어댔다. 나보고 울보라 놀리더니 이제 보니 동훈이가 울보였다. 내 주먹에 동훈이 코피가 터졌다.
“진우야, 왜 그랬어? 응?”
선생님은 다그쳐 물었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집에 엄마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 물음에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집에 엄마가 있냐는 물음은 마치 폭설 같았다. 수북이 쌓인 눈 때문에 가지가 휘듯 내 고개는 자꾸만 수그러들었다.
그 때 곁에 있던 은석이가 “선생님, 진우 엄마 집 나가 버렸대요.” 하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했다. ‘선생님도 날 놀릴 거야.’ 하는 생각 때문에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그-랬니? 진우야, 아빠는?” 선생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대답대신 고개만 가로 저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겁부터 났다.
“진우야, 그럼, 집에 누가 있니?” 선생님 목소리는 따끈한 찐빵 같았다.
“선생님, 진우 할머니 있어요.” 같은 마을에 사는 채영이가 말했다.
선생님은 동훈이 엄마와 우리 할머니를 학교로 불렀다. ‘내가 조금만 참을 걸.‘ 후회가 됐다. 할머니가 학교에 와서 욕이나 하지 않을지 걱정이 됐다.
“김동훈, 사실대로 말해 봐.”
선생님은 동훈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동훈이는 말을 못하고 한동안 망설였다. 그러더니 은석이 쪽을 바라봤다. 은석이는 동훈이가 바라보자 재빨리 고개를 돌려버렸다. 동훈이가 만약 거짓말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단단히 벼뤘다.
“사-실-은, 은석이랑 내가 진우를 놀렸어요.”
“동훈아, 뭐라고 놀렸는지 자세히 말해 보렴.” 선생님이 말했다.
“은석이가 진우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고 우리말도 잘 못한다며, 진우를 깜장 울보라고 했어요.”
“뭐? 우리 진우가 깜장 울보라고.” 하고 할머니가 소리쳤다. 할머니 얼굴에 있던 주름살이 우글거렸다.
“아냐, 재수 없다고 했단 말이야.”
나는 한꺼번에 서러움이 몰려와 울부짖었다.
선생님은 우리의 잘잘못을 하나하나 알려줬다. 결국 동훈이 엄마와 할머니는 서로 사과를 했다.
“앞으로는 친구들 손찌검 하지 마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치! 재수 없다는 소리 때문에 그랬단 말이야. 할머니, 나 엄마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진우야, 너 시방 뭐라고 했냐? 그럼, 니 에미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단 말이냐?” 할머니는 놀란 표정으로 다그쳐 물었다.
“싫어, 안 가르쳐 줄 거야. 엄마가 곧 나 데리러 온다고 했어. 엄마는 지금 우리말도 열심히 배우고 있대. 엄마 있는 곳 알려주면 데려다 또 구박하려고 그러지.”
“이 철없는 녀석아. 그런 소리 마라. 이제 다시는 구박 하는 일은 없을 거여.”
“할머니는 만날 조상님만 들먹이는데 어떻게 믿어?”
“이젠 조상님 안 들먹이마. 너희 엄마 집 나간 후 너희 아빠 망가진 것 안보이냐. 일도 안하고 매일 같이 술타령이나 해대고 있잖냐. 그리고 오늘 학교에 가보니 네 옷도 꼴이 아니더구나. 다른 애들과 다르게 어미 없는 티가 나더라. 네 엄마가 없으면 집안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너희들이 더 이상 망가진 꼴은 볼 수 없다. 진우야, 너희 엄마 어딨다던 응?”
“할머니, 약속할 수 있어? 진짜 엄마 오면 구박 안할 거야?”
“그려, 이 할미가 약속 하마. 앞으로는 절대로 구박하지 않으마.” 하면서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알았어. 할머니 말 믿을게.”
할머니와 나는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할머니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할머니와 손을 잡고 고샅길로 들어서는데 탱자나무 울타리가 보였다. 탱자나무 울타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탱자들이 어느새 황금빛으로 탐스럽게 익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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