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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은행잎 하나가 팽그르르 맴을 돌며 떨어지다가 바람을 만나 6학년 3반 교실로 날아들었다.
석모는 은행잎을 주워 부채질을 하다가 선생님의 세모꼴 눈을 보고 찔끔하여 동작을 멈추었다.
˝자알한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석모는 책으로 눈길을 떨어뜨렸다. 1학년 1학기 책이다.
˝6학년에서 제대로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것이 너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장난이 어디서 나와.˝
선생님이 화내시는 것은 당연하다. 석모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아이들이 돌아간 늦은 오후에 혼자 쉬고 싶으실 텐데 석모 나머지 공부 때문에 꼼짝을 못 하신다.
며칠 전, 전학 온 석모가 장님 길 가듯 더듬더듬 책을 읽자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받아쓰기 시험문제를 내었다. 열 문제 중에서 맞은 것은 어머니 하나뿐이었다.
˝원 세상에.˝
선생님은 혀를 차면서 아주 못마땅한 얼굴을 하셨다. 공부를 잘해도 반가울까말까한 전학생인데. 석모는 그런 선생님을 이해한다.
˝오늘부터 당장 나머지 공부하고 가.˝
˝우리 반 평균을 팍팍 깍아 먹는 친구가 오셨군.˝
아이들도 석모를 놀리고 괴롭혔다.
˝야, 그 실력 가지고 전학은 뭣하러 다니니. 한 학교 성적만 버리지 뭣하러 돌아다녀.˝
석모는 친구들의 비웃음도 이해했다.
이해를 한다고 하여 공부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은 석모에게 잡히고 석모는 선생님에게 잡혀 방과 후 시간을 숨막히게 보내기 시작한 지 오늘로 꼭 4일째다.
˝줄쳐 준 것 읽고 써. 조금 있다가 받아쓰기할 테니깐.˝
석모는 공부가 하기 싫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니깐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도 없다. 나머지 공부해서 잘할 수 있었다면 진작 잘했을 것이다. 1학년 때부터 나머지 공부 안 해본 학년이 어디 있었던가? 그런데도 여전히 그 타령이다. 석모는 귀를 세워 앞교사 너머에 있는 운동장에서 야구하는 아이들 소리를 듣는다. 뒷교사 세 개 너머에 있는 찻길에서 나는 그 차소리를 듣는다. 두 눈에 졸음이 가득 차 올랐다. 책만 보고 있으면 졸리운 것도 병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선생님이 소리를 빽 지르셨다.
˝박석모, 너 정말 이럴 거야?˝
선생님 간 떨어질 뻔했습니다.
석모는 선생님이 소리치실 만하다고 생각하며 눈꺼풀을 위로 밀어 올렸다.
˝정말, 정말 널 보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어.˝
다섯 시가 되자 퇴근 준비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석모도 다섯 시가 되면 나머지 공부가 끝난다는 것을 안다.
˝집에 가서 써 와. 내일 받아쓰기 시험 봐서 틀리면 때려 줄 거야.˝
매일 똑같은 말씀으로 인사를 대신한 선생님은 교실문을 잠그고 석모보다 먼저 복도를 빠져 나가셨다.
˝안녕히 가세요.˝
석모는 선생님 뒤에 대고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석모는 서둘지 않았다. 같이 놀아 주려고 기다리는 친구도 없고 집에 가야 다들 일하러 나가 텅 비어 있으니 서둘 필요가 뭐 있겠는가.
석모는 학교도 집도 재미가 없었다.
˝신나는 일 없나?˝
석모는 발 아래 있는 돌맹이를 냅다 걷어찼다.
˝아차.˝
돌이 날아가는 방향을 보며 후회하였으나 쨍그랑 하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귓속을 후벼들었다.
머리칼이 모두 곤두설 것같이 쭈뼛하였다. 휙 돌아서 도망치려는데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전학 온 석모가 알 리가 없었다. 그랬다고 겁이 덜 난다는 것은 아니다.
˝너 몇 학년 몇 반 누구야? 엉?˝
묻는 소리가 얼마나 무섭던지 석모는 잔뜩 쪼그라드는 목소리로
˝6학년 3반.˝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차 싶었다. 성난 선생님과 놀리고 괴롭힐 반 애들이 머리에 떠 올랐다.
˝에잇.˝
석모는 있는 힘을 다하여 교장 선생님을 밀치고 달아났다.
˝어이쿠.˝
갑자가 당한 일이라서 교장 선생님은 그만 뒤로 벌렁 넘어지셨다.
˝교장 선생님!˝
유리창 깨지는 소리에 달려왔던 학교 수위 아저씨가 교장 선생님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어어, 어이쿠.˝
교장 선생님은 비명을 지르셨다.
다음날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교장 선생님이 넘어지실 때 다치셔서 출근을 못하신 것이다.
˝석모야, 너 어제 집에 가다가 교장 선생님 못 만났니?˝
선생님이 교실에 막 들어서는 석모를 붙잡고 물으셨다.
˝아뇨.˝
교장 선생님을 모르니 거기까진 거짓말이 아니었다.
˝너 유리창 안 깨뜨렸어?˝
좀전에 ´아뇨´하고 대답하였던 혓바닥이 다시
˝아뇨.˝
하였다. 그 시간에 거기에 있었다면 석모가 틀림없을 것 같은데 아니라니깐 선생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는 것이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교감 선생님한테서 꾸지람을 듣고 온 선생님은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유리창 깨뜨린 것은 그렇다고 쳐. 학교 다닐 때 유리창 한두 장 안 깨뜨린 사람도 드물 테니깐 말야. 문제는 교장 선생님을 밀치고 달아났다는 데 있는 거야.˝
선생님은 엎드려 뻗쳐 시킨 아이들 머리 위에 대고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니.˝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석모 제 죄가 크다 싶었다. 벌받을 만하다고 생각하였다.
˝지금이라도 나오면 용서를 하겠어.˝
등에 선생님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면서도 석모는 선뜻 일어서지 못하였다.
˝........˝
여기저기서 끙끙거리는 소리와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첫째 시간이 다 끝나 갈 무렵이었다.
˝반 친구들이 자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나오지 않겠다는 것이지. 좋아, 좋아. 그럼 이번에는 다른 벌을 주겠어.˝
˝........˝
˝모두 운동장에 나가 모여.˝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일어선 아이들은 초상집에 가는 발걸음으로 교실을 말없이 빠져나갔다.
˝박석모.˝
석모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섰다.
˝교실 문 잠그고 나와.˝
잠시 후 모두들 운동장 한가운데 모여 섰다.
선생님은 아직 나오지 않으셨다.
˝어떤 녀석인지 나오기만 해 봐라.˝
˝우리를 골탕먹이는 녀석이 도대체 누구냐?˝
아이들이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하였다.
˝6학년 3반 어린이들은 다 교실로 들어가요.˝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의아한 얼굴로 투덜거리며 교실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교감 선생님에게 조그만 쪽지를 보이면서 사정하고 있었다.
˝석모를 한 번만 용서해 주시죠. 네? 교감 선생님.˝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선생임. 저는 누가 교장 선생임을 자빠뜨렸는지 암니다. 박석모가 버민임니다. 박석모는 나쁘내임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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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는 은행잎을 주워 부채질을 하다가 선생님의 세모꼴 눈을 보고 찔끔하여 동작을 멈추었다.
˝자알한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석모는 책으로 눈길을 떨어뜨렸다. 1학년 1학기 책이다.
˝6학년에서 제대로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것이 너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장난이 어디서 나와.˝
선생님이 화내시는 것은 당연하다. 석모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아이들이 돌아간 늦은 오후에 혼자 쉬고 싶으실 텐데 석모 나머지 공부 때문에 꼼짝을 못 하신다.
며칠 전, 전학 온 석모가 장님 길 가듯 더듬더듬 책을 읽자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받아쓰기 시험문제를 내었다. 열 문제 중에서 맞은 것은 어머니 하나뿐이었다.
˝원 세상에.˝
선생님은 혀를 차면서 아주 못마땅한 얼굴을 하셨다. 공부를 잘해도 반가울까말까한 전학생인데. 석모는 그런 선생님을 이해한다.
˝오늘부터 당장 나머지 공부하고 가.˝
˝우리 반 평균을 팍팍 깍아 먹는 친구가 오셨군.˝
아이들도 석모를 놀리고 괴롭혔다.
˝야, 그 실력 가지고 전학은 뭣하러 다니니. 한 학교 성적만 버리지 뭣하러 돌아다녀.˝
석모는 친구들의 비웃음도 이해했다.
이해를 한다고 하여 공부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은 석모에게 잡히고 석모는 선생님에게 잡혀 방과 후 시간을 숨막히게 보내기 시작한 지 오늘로 꼭 4일째다.
˝줄쳐 준 것 읽고 써. 조금 있다가 받아쓰기할 테니깐.˝
석모는 공부가 하기 싫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니깐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도 없다. 나머지 공부해서 잘할 수 있었다면 진작 잘했을 것이다. 1학년 때부터 나머지 공부 안 해본 학년이 어디 있었던가? 그런데도 여전히 그 타령이다. 석모는 귀를 세워 앞교사 너머에 있는 운동장에서 야구하는 아이들 소리를 듣는다. 뒷교사 세 개 너머에 있는 찻길에서 나는 그 차소리를 듣는다. 두 눈에 졸음이 가득 차 올랐다. 책만 보고 있으면 졸리운 것도 병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선생님이 소리를 빽 지르셨다.
˝박석모, 너 정말 이럴 거야?˝
선생님 간 떨어질 뻔했습니다.
석모는 선생님이 소리치실 만하다고 생각하며 눈꺼풀을 위로 밀어 올렸다.
˝정말, 정말 널 보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어.˝
다섯 시가 되자 퇴근 준비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석모도 다섯 시가 되면 나머지 공부가 끝난다는 것을 안다.
˝집에 가서 써 와. 내일 받아쓰기 시험 봐서 틀리면 때려 줄 거야.˝
매일 똑같은 말씀으로 인사를 대신한 선생님은 교실문을 잠그고 석모보다 먼저 복도를 빠져 나가셨다.
˝안녕히 가세요.˝
석모는 선생님 뒤에 대고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석모는 서둘지 않았다. 같이 놀아 주려고 기다리는 친구도 없고 집에 가야 다들 일하러 나가 텅 비어 있으니 서둘 필요가 뭐 있겠는가.
석모는 학교도 집도 재미가 없었다.
˝신나는 일 없나?˝
석모는 발 아래 있는 돌맹이를 냅다 걷어찼다.
˝아차.˝
돌이 날아가는 방향을 보며 후회하였으나 쨍그랑 하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귓속을 후벼들었다.
머리칼이 모두 곤두설 것같이 쭈뼛하였다. 휙 돌아서 도망치려는데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전학 온 석모가 알 리가 없었다. 그랬다고 겁이 덜 난다는 것은 아니다.
˝너 몇 학년 몇 반 누구야? 엉?˝
묻는 소리가 얼마나 무섭던지 석모는 잔뜩 쪼그라드는 목소리로
˝6학년 3반.˝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차 싶었다. 성난 선생님과 놀리고 괴롭힐 반 애들이 머리에 떠 올랐다.
˝에잇.˝
석모는 있는 힘을 다하여 교장 선생님을 밀치고 달아났다.
˝어이쿠.˝
갑자가 당한 일이라서 교장 선생님은 그만 뒤로 벌렁 넘어지셨다.
˝교장 선생님!˝
유리창 깨지는 소리에 달려왔던 학교 수위 아저씨가 교장 선생님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어어, 어이쿠.˝
교장 선생님은 비명을 지르셨다.
다음날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교장 선생님이 넘어지실 때 다치셔서 출근을 못하신 것이다.
˝석모야, 너 어제 집에 가다가 교장 선생님 못 만났니?˝
선생님이 교실에 막 들어서는 석모를 붙잡고 물으셨다.
˝아뇨.˝
교장 선생님을 모르니 거기까진 거짓말이 아니었다.
˝너 유리창 안 깨뜨렸어?˝
좀전에 ´아뇨´하고 대답하였던 혓바닥이 다시
˝아뇨.˝
하였다. 그 시간에 거기에 있었다면 석모가 틀림없을 것 같은데 아니라니깐 선생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는 것이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교감 선생님한테서 꾸지람을 듣고 온 선생님은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유리창 깨뜨린 것은 그렇다고 쳐. 학교 다닐 때 유리창 한두 장 안 깨뜨린 사람도 드물 테니깐 말야. 문제는 교장 선생님을 밀치고 달아났다는 데 있는 거야.˝
선생님은 엎드려 뻗쳐 시킨 아이들 머리 위에 대고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니.˝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석모 제 죄가 크다 싶었다. 벌받을 만하다고 생각하였다.
˝지금이라도 나오면 용서를 하겠어.˝
등에 선생님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면서도 석모는 선뜻 일어서지 못하였다.
˝........˝
여기저기서 끙끙거리는 소리와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첫째 시간이 다 끝나 갈 무렵이었다.
˝반 친구들이 자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나오지 않겠다는 것이지. 좋아, 좋아. 그럼 이번에는 다른 벌을 주겠어.˝
˝........˝
˝모두 운동장에 나가 모여.˝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일어선 아이들은 초상집에 가는 발걸음으로 교실을 말없이 빠져나갔다.
˝박석모.˝
석모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섰다.
˝교실 문 잠그고 나와.˝
잠시 후 모두들 운동장 한가운데 모여 섰다.
선생님은 아직 나오지 않으셨다.
˝어떤 녀석인지 나오기만 해 봐라.˝
˝우리를 골탕먹이는 녀석이 도대체 누구냐?˝
아이들이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하였다.
˝6학년 3반 어린이들은 다 교실로 들어가요.˝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의아한 얼굴로 투덜거리며 교실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교감 선생님에게 조그만 쪽지를 보이면서 사정하고 있었다.
˝석모를 한 번만 용서해 주시죠. 네? 교감 선생님.˝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선생임. 저는 누가 교장 선생임을 자빠뜨렸는지 암니다. 박석모가 버민임니다. 박석모는 나쁘내임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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