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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외할머니 댁에는 뒤뜰이 있습니다. 흙이 햇볕에 익어 황금빛으로 빛이 나는 앞뜰과는 달리 거무죽죽한 이끼가 피어있는 거기, 기분을 착 가라앉게 만드는 그늘이 언제나 웅크리고 있었어요.
작년 여름이었어요. 하루 종일 냇가에서 물장난을 치다가 돌아와 깜빡 잠이 들었어요. 오줌이 마려웠어요. 너무 급해 대청마루의 뒷문을 열고…….
끼악!
정말 솥뚜껑 만한 두꺼비였어요. 꾸불텅거리는 커다란 지렁이를 물고 눈을 섬벅 거리는 꼴이라니. 갑자기 오줌을 뚝 그쳐 아랫배가 땡땡했지만 정말 그것을 내놓은 채 도망을 쳤다니까요?
뒤뜰.
뒤.
그래서 나는 이 ´뒤´자가 붙은 낱말을 싫어해요. 두꺼비 같아요. 왠지 목뒤가 스멀거리는 느낌이에요.
뒷골.
하필 그렇게 싫어하는 ´뒤´자가 붙은 골짜기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가실 게 뭐람? 커다란 파카를 입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두꺼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쁜 아이라고 반성을 해봐도 그 생각이 났어요. 한 번, 두 번, 세 번, 뒷골에 다녀오고 나서는 더 그 생각이 자주 났어요.
˝와! 저 바위 좀 봐요. 꼭 할머니 머리처럼 하얗게 되었어요.˝
아차, 했지만 이 입이 방정이라니까요? 걸레로 방 청소를 하다 외할머니의 하얀 머리칼을 집어들고 뚝뚝 눈물을 떨구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엄마가 잠깐 내게 눈길을 주었어요. 거북이처럼 목을 쏙 집어넣고 혼날 준비를 했는데…….
˝첫눈치고는 굉장하구나. 좀 쉬었다 가야 되겠어.˝
아빠는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차를 세웠어요. 지나가는 차가 뜸해졌어요. 눈이 유리창에 착착 쌓였어요. 차안이 조금씩 어둑해 졌어요.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그리고 나도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얼마동안 가만히 있었어요.
˝정말 협이 말대로 할머니 머리 같구나.˝
아빠는 쌓인 눈을 브러시를 밀어내면서 창에 얼굴을 바짝 붙였어요. 아빠의 손이 어깨에 얹혔어요. 묵직하니 좋았어요. 꽉 죄고 있는 밧줄이 툭 끊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솔직히 어제 저녁 심통을 부린 일 때문에 가슴이 답답했어요.
˝이제 뒷골에 가기 싫어. 재미도 없고.˝
심통은 엄마에게 부렸는데 화는 아빠가 더 내셨어요.
˝협이 너 이리 왓!˝
아빠의 고함에 찔끔해 무릎을 꿇었어요. 그렇게 소리를 높이는 아빠의 모습은 처음이었어요.
˝네가 말하는 재미있는 게 뭐지?˝
놀이공원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는 것, 스타들의 공연을 보는 것,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 햄버거와 치킨, 떡꼬치를 먹는 것.
´뒤´자가 붙은 낱말 다음으로 싫어하는 ´마´자로 끝나는 말.
하지마, 보지마, 가지마, 먹지마.
˝그만 해요. 투정을 부릴 만 하지 뭐. 벌써 몇 달 동안 요양원에 다녀오느라 놀아 주지도 못했는 걸 뭐.˝
엄마는 정말로 미안해 하는 얼굴이었어요.
외할머니가 며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엄마 아빠는 잠을 안 잤어요. 자다가 깨보면 두런두런, 또 자다가 깨보면 두런두런. 그렇지만 엄마는 낮에도 잠을 안자고 전과 다름없이 일을 했어요.
˝휘휴! 휘휴!˝
거실 구석에서, 피아노 틈에서, 베란다에서 살금살금 내쉬는 엄마의 한숨이 집안을 붕 뜨게 하는 것 같았어요. 집안을 걸어다니면 발을 헛디딘 듯 휘청휘청 거리는 느낌이었어요.
˝엄마, 기분이 이상해.˝
눈치없는 동생이 투정을 부렸어요. 엄마는 잠깐 동생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어요. 그때까지도 한숨이 엄마의 입꼬리에 간당간당 매달려 있었어요. 엄마는 번쩍 정신이 드는지 쓰윽 입을 닦고 동생의 어깨를 꼬옥 안았어요.
˝그래 효야. 저번에 엄마가 아팠을 때 효의 마음은 어땠지?˝
˝아팠어요.˝
˝그래, 효가 아팠듯이 엄마도 지금 할머니께서 편찮으셔서 마음이 많 이 아프단다.˝
˝…….˝
˝아이 참,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오빠와 효가 스스로 잘해줘 서 엄마가 빨리 나았듯이 할머니가 빨리 나으시려면 엄마도 잘해야 하는데.˝
오랜만에 엄마가 코를 디밀었어요. 우리 집은 사랑한다는 표시를 코맞춤으로 해왔어요. 코를 맞대고 비비다 보면 따스한 콧김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숨을 쉰다는 것은 언제나 마음을 든든하게 했어요. 한 번 잠들면 꼼짝 않는 동생의 모습을 보면 왠지 불안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슬쩍 볼을 건드리면 쌔근, 가까이 들여다보면 가슴이 달싹여 휘휴 한숨을 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외할머니는 가슴이 아파서 숨쉬기가 불편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엄마 아빠가 더 불안 해 하는 것 같았어요.
공부를 다 끝내고 동화책까지 읽었는데도 잠이 안 오는 밤이었어요. 왜 그렇게 오줌은 쉽게 마려운지.
˝항암 치료가 얼마나 고통이 심한 지 알아?˝
˝그렇다고…….˝
˝저번에 말한 대로 뒷골 요양원에 모십시다.˝
˝그 먼데를 어떻게…….˝
˝겨울을 넘기시면 꼭 좋아지실 거야. 그런 믿음이 생겨.˝
흑, 하고 터뜨리는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조심조심 발꿈치를 들고 안방 문을 지나쳤어요. 아빠가 엄마에게 코맞춤이라도 해준다면 엄마의 마음이 따뜻해질텐데…….
˝협이 너, 휴게소에서는 정말 잽싸더라? 역시 태권도 유단자다웠 어.˝
아빠가 어깨를 툭 치며 웃었어요. 방금 지나온 휴게소 잔디밭에서 첫눈맞이 콘서트가 열렸어요. 좀 서툴지만 전자올갠으로 만들어 내는 테크노 음악이 그런대로 괜찮았어요. 음악에 맞춰 어깨가 들썩이고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으로 봐서.
그런데 신나는 일이 생겼어요. 갑자기 선착순 30명에게 테잎을 준다고 했어요. 의자를 피해 잽싸게 튀어 나갔는데 글쎄 일등으로 줄을 섰어요. 맨 앞에 서서 엄마 아빠를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V자 사인을 보냈어요. 아빠와 동생은 박수를 쳐 주었고 엄마는 얼굴을 빨갛게 붉혔어요. 덕분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가수지만 멋진 사인도 받고 테잎도 받았어요. 생각해 보니까 그때부터 기분이 좋아졌어요. 아빠가 카세트에 테잎을 넣었어요.
˝아유, 정신없어.˝
엄마가 얼굴을 찡그렸지만 정말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엄마, 나 화장실.˝
동생이 울상이 되어 엄마의 손을 끌었어요. 엄마와 동생이 차 밖으로 나가고 아빠와 둘이 남았어요. 아빠가 음악소리를 낮췄어요.
˝협아, 만약 이렇게 눈이 오는 날에 이 차 속에 협이 혼자만 남으면 어떨까?˝
갑작스런 아빠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 지 몰랐어요.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뭔 줄 아니?˝
점점?
˝바로 외로움이라는 거야.˝
˝…….˝
˝어제는 아빠가 화를 내서 미안한데 지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는 무척 외로우실 거야. 협이가 이 차 속에 혼자 남는 것보다도 더.˝
문득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아빠가 화가 나 정말 여기에 혼자 남겨놓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몸이 아픈 것 보다 마음이 아픈 것이 더 아픈 거야. 생각해 봐라. 외할머니께서는 지금 몸이 아프신데 마음까지 아프셔서 되겠니?˝
˝탕- 탕- 탕.˝
동생이 유리창을 두드리지 않았더라면 아빠에게 잘못했다고 빌 수도 있었는데.
˝아빠! 오빠! 빨리 나와 봐. 눈이 참 포근 해.˝
˝그래요. 정말 솜처럼 포근해.˝
˝그래, 협아. 우리 나가서 눈싸움하자.˝
아빠가 문을 열고 나가는 바람에 끝내 잘못했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아빠를 따라 창문을 열자마자 눈덩이가 날아들었어요. 어림없지, 날아오는 눈덩이를 터억 받아 동생에게 던졌어요.
˝퍽!˝
˝씨이? 나는 슬쩍 던졌는데?˝
동생이 쌍콤하게 토라졌어요.
˝하- 하-, 우리 협이가 운동신경이 얼마나 빠른데…….˝
남자와 여자, 편을 갈라 몇 번 눈덩이가 오고 갔어요. 아빠는 일부러 엄마와 동생을 피해 눈덩이를 던지는 것 같았어요.
˝자, 자, 항복이다. 우리 남자들이 졌다.˝
아빠는 눈을 찡끗하며 두 손을 번쩍 들었어요. 엄마와 동생은 그것도 모르고 호호 깔깔 즐거워했어요. 어느새 산이 하얗게 변했어요.
˝정말 협이 말대로 저기 저 바위가 꼭 할머니 닮았지?˝
엄마도 동생도 아빠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살짝 돌아앉아 밤을 까주시는 외할머니의 모습처럼 보였어요.
˝와! 진짜 외할머니 닮았다.˝
동생이 까치발을 뛰며 소리쳤어요.
˝아냐, 저건 학처럼 생긴 거야.˝
왜 그 소리가 나왔는지 몰랐어요.
˝학?˝
엄마 아빠가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에이, 거짓말. 저게 무슨 학이야?˝
˝가만, 사람마다 모두 보는 눈이 다르지. 오빠가 무슨 생각으로 학이 라고 했는지 알아볼까?˝
아빠가 엄마와 동생을 가까이 불러 들였어요. 그리고 넷이 똑같이 똑같은 방향에서 바위를 바라보도록 했어요. 거북이 걸음으로 엉금엉금 다가오던 자동차에서도 그런 우리 가족이 이상했나 봐요. 사람들이 머리를 내밀어 바위를 쳐다보며 지나갔어요.
˝정말 이렇게 보니까 학처럼 보이네?˝
˝글세 말이야. 꼭 학이 날개를 펴 날아오르려는 것 같지?˝
엄마 아빠는 너무 신기해했어요. 그러나 동생은 아직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어요.
˝효야, 잘 봐. 저기가 머리고 저 소나무가 날개라고 생각하면 학처럼 보이지?˝
아빠는 몸을 낮춰 동생과 키를 맞추고 설명을 했어요.
˝와 - 아! 정말이네?˝
동생이 짝짝 박수를 쳤어요.
˝어때 당신…….˝
아빠는 엄마를 돌아보며 입가에 가득 웃음을 담았어요.
˝협아, 효야, 그리고 당신. 잘 들어. 가족이란 이렇게 한마음으로 한 쪽 방향을 보는 거야. 그래야 마음이 같아지거든. 우리 가족은 지금부터 마음에 저렇게 커다란 학 한 마리를 가지는 거야.˝
˝아빠, 얼마 전에 배웠는데 학은 십장생의 하나라던 데요?˝
˝우리 협이 제법인데? 바로 그거야. 우리 가족 마음에 학이 있는 한 할머니는 분명히 나으실 거야.˝
˝이 남자들이 오늘 왜 이럴까? 괜히 울게 만들고.˝
엄마는 참을 수 없는지 승용차 뒤로 돌아가면서 어깨를 들먹였어요. 동생도 엄마 꼬리에 붙어 따라가면서 눈물을 글썽였어요.
˝아빠 다음에 올 때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눈처럼 하얀 파카를 사다 드렸으면 좋겠어요.˝
왜? 하고 물으면 그냥요 라고 대답하려고 생각했어요. 까만 색 파카를 입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꼭 두꺼비 같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좋은 생각이지. 학처럼 오래 사시려면 날개가 필요하지. 그건 엄 마에게 비밀로 하고 아빠와 둘이서 준비하자?˝
다시 바위를 쳐다보았어요. 아빠의 손이 얹혀 있는 어깨가 훈훈해 졌어요. 살며시 아빠의 몸에 몸을 기댔어요. 아빠의 숨소리가 들렸어요.
˝자, 눈이 많이 쌓여 체인을 쳐야 되겠다.˝
아빠가 트렁크를 열어 체인을 꺼냈어요. 눈물을 닦은 엄마와 동생이 다가와 쪼그려 앉았어요.
˝추우니까 차안에 들어가 있어요.˝
아빠가 말했지만 엄마와 동생은 꼼짝도 안 했어요.
˝어서 들어가라니까 뭐하고 있지?˝
˝한쪽 방향으로 가려면 힘을 합쳐야 지요. 안 그러니 효야?˝
엄마가 동생에게 코맞춤을 했어요. 아빠와 나도 코맞춤을 했어요. 이러다가는 우리 가족 모두가 하얀 학이 되겠어요. 눈이 끊임없이 내리고 있어요. (끝)
작년 여름이었어요. 하루 종일 냇가에서 물장난을 치다가 돌아와 깜빡 잠이 들었어요. 오줌이 마려웠어요. 너무 급해 대청마루의 뒷문을 열고…….
끼악!
정말 솥뚜껑 만한 두꺼비였어요. 꾸불텅거리는 커다란 지렁이를 물고 눈을 섬벅 거리는 꼴이라니. 갑자기 오줌을 뚝 그쳐 아랫배가 땡땡했지만 정말 그것을 내놓은 채 도망을 쳤다니까요?
뒤뜰.
뒤.
그래서 나는 이 ´뒤´자가 붙은 낱말을 싫어해요. 두꺼비 같아요. 왠지 목뒤가 스멀거리는 느낌이에요.
뒷골.
하필 그렇게 싫어하는 ´뒤´자가 붙은 골짜기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가실 게 뭐람? 커다란 파카를 입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두꺼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쁜 아이라고 반성을 해봐도 그 생각이 났어요. 한 번, 두 번, 세 번, 뒷골에 다녀오고 나서는 더 그 생각이 자주 났어요.
˝와! 저 바위 좀 봐요. 꼭 할머니 머리처럼 하얗게 되었어요.˝
아차, 했지만 이 입이 방정이라니까요? 걸레로 방 청소를 하다 외할머니의 하얀 머리칼을 집어들고 뚝뚝 눈물을 떨구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엄마가 잠깐 내게 눈길을 주었어요. 거북이처럼 목을 쏙 집어넣고 혼날 준비를 했는데…….
˝첫눈치고는 굉장하구나. 좀 쉬었다 가야 되겠어.˝
아빠는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차를 세웠어요. 지나가는 차가 뜸해졌어요. 눈이 유리창에 착착 쌓였어요. 차안이 조금씩 어둑해 졌어요.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그리고 나도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얼마동안 가만히 있었어요.
˝정말 협이 말대로 할머니 머리 같구나.˝
아빠는 쌓인 눈을 브러시를 밀어내면서 창에 얼굴을 바짝 붙였어요. 아빠의 손이 어깨에 얹혔어요. 묵직하니 좋았어요. 꽉 죄고 있는 밧줄이 툭 끊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솔직히 어제 저녁 심통을 부린 일 때문에 가슴이 답답했어요.
˝이제 뒷골에 가기 싫어. 재미도 없고.˝
심통은 엄마에게 부렸는데 화는 아빠가 더 내셨어요.
˝협이 너 이리 왓!˝
아빠의 고함에 찔끔해 무릎을 꿇었어요. 그렇게 소리를 높이는 아빠의 모습은 처음이었어요.
˝네가 말하는 재미있는 게 뭐지?˝
놀이공원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는 것, 스타들의 공연을 보는 것,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 햄버거와 치킨, 떡꼬치를 먹는 것.
´뒤´자가 붙은 낱말 다음으로 싫어하는 ´마´자로 끝나는 말.
하지마, 보지마, 가지마, 먹지마.
˝그만 해요. 투정을 부릴 만 하지 뭐. 벌써 몇 달 동안 요양원에 다녀오느라 놀아 주지도 못했는 걸 뭐.˝
엄마는 정말로 미안해 하는 얼굴이었어요.
외할머니가 며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엄마 아빠는 잠을 안 잤어요. 자다가 깨보면 두런두런, 또 자다가 깨보면 두런두런. 그렇지만 엄마는 낮에도 잠을 안자고 전과 다름없이 일을 했어요.
˝휘휴! 휘휴!˝
거실 구석에서, 피아노 틈에서, 베란다에서 살금살금 내쉬는 엄마의 한숨이 집안을 붕 뜨게 하는 것 같았어요. 집안을 걸어다니면 발을 헛디딘 듯 휘청휘청 거리는 느낌이었어요.
˝엄마, 기분이 이상해.˝
눈치없는 동생이 투정을 부렸어요. 엄마는 잠깐 동생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어요. 그때까지도 한숨이 엄마의 입꼬리에 간당간당 매달려 있었어요. 엄마는 번쩍 정신이 드는지 쓰윽 입을 닦고 동생의 어깨를 꼬옥 안았어요.
˝그래 효야. 저번에 엄마가 아팠을 때 효의 마음은 어땠지?˝
˝아팠어요.˝
˝그래, 효가 아팠듯이 엄마도 지금 할머니께서 편찮으셔서 마음이 많 이 아프단다.˝
˝…….˝
˝아이 참,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오빠와 효가 스스로 잘해줘 서 엄마가 빨리 나았듯이 할머니가 빨리 나으시려면 엄마도 잘해야 하는데.˝
오랜만에 엄마가 코를 디밀었어요. 우리 집은 사랑한다는 표시를 코맞춤으로 해왔어요. 코를 맞대고 비비다 보면 따스한 콧김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숨을 쉰다는 것은 언제나 마음을 든든하게 했어요. 한 번 잠들면 꼼짝 않는 동생의 모습을 보면 왠지 불안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슬쩍 볼을 건드리면 쌔근, 가까이 들여다보면 가슴이 달싹여 휘휴 한숨을 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외할머니는 가슴이 아파서 숨쉬기가 불편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엄마 아빠가 더 불안 해 하는 것 같았어요.
공부를 다 끝내고 동화책까지 읽었는데도 잠이 안 오는 밤이었어요. 왜 그렇게 오줌은 쉽게 마려운지.
˝항암 치료가 얼마나 고통이 심한 지 알아?˝
˝그렇다고…….˝
˝저번에 말한 대로 뒷골 요양원에 모십시다.˝
˝그 먼데를 어떻게…….˝
˝겨울을 넘기시면 꼭 좋아지실 거야. 그런 믿음이 생겨.˝
흑, 하고 터뜨리는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조심조심 발꿈치를 들고 안방 문을 지나쳤어요. 아빠가 엄마에게 코맞춤이라도 해준다면 엄마의 마음이 따뜻해질텐데…….
˝협이 너, 휴게소에서는 정말 잽싸더라? 역시 태권도 유단자다웠 어.˝
아빠가 어깨를 툭 치며 웃었어요. 방금 지나온 휴게소 잔디밭에서 첫눈맞이 콘서트가 열렸어요. 좀 서툴지만 전자올갠으로 만들어 내는 테크노 음악이 그런대로 괜찮았어요. 음악에 맞춰 어깨가 들썩이고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으로 봐서.
그런데 신나는 일이 생겼어요. 갑자기 선착순 30명에게 테잎을 준다고 했어요. 의자를 피해 잽싸게 튀어 나갔는데 글쎄 일등으로 줄을 섰어요. 맨 앞에 서서 엄마 아빠를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V자 사인을 보냈어요. 아빠와 동생은 박수를 쳐 주었고 엄마는 얼굴을 빨갛게 붉혔어요. 덕분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가수지만 멋진 사인도 받고 테잎도 받았어요. 생각해 보니까 그때부터 기분이 좋아졌어요. 아빠가 카세트에 테잎을 넣었어요.
˝아유, 정신없어.˝
엄마가 얼굴을 찡그렸지만 정말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엄마, 나 화장실.˝
동생이 울상이 되어 엄마의 손을 끌었어요. 엄마와 동생이 차 밖으로 나가고 아빠와 둘이 남았어요. 아빠가 음악소리를 낮췄어요.
˝협아, 만약 이렇게 눈이 오는 날에 이 차 속에 협이 혼자만 남으면 어떨까?˝
갑작스런 아빠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 지 몰랐어요.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뭔 줄 아니?˝
점점?
˝바로 외로움이라는 거야.˝
˝…….˝
˝어제는 아빠가 화를 내서 미안한데 지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는 무척 외로우실 거야. 협이가 이 차 속에 혼자 남는 것보다도 더.˝
문득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아빠가 화가 나 정말 여기에 혼자 남겨놓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몸이 아픈 것 보다 마음이 아픈 것이 더 아픈 거야. 생각해 봐라. 외할머니께서는 지금 몸이 아프신데 마음까지 아프셔서 되겠니?˝
˝탕- 탕- 탕.˝
동생이 유리창을 두드리지 않았더라면 아빠에게 잘못했다고 빌 수도 있었는데.
˝아빠! 오빠! 빨리 나와 봐. 눈이 참 포근 해.˝
˝그래요. 정말 솜처럼 포근해.˝
˝그래, 협아. 우리 나가서 눈싸움하자.˝
아빠가 문을 열고 나가는 바람에 끝내 잘못했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아빠를 따라 창문을 열자마자 눈덩이가 날아들었어요. 어림없지, 날아오는 눈덩이를 터억 받아 동생에게 던졌어요.
˝퍽!˝
˝씨이? 나는 슬쩍 던졌는데?˝
동생이 쌍콤하게 토라졌어요.
˝하- 하-, 우리 협이가 운동신경이 얼마나 빠른데…….˝
남자와 여자, 편을 갈라 몇 번 눈덩이가 오고 갔어요. 아빠는 일부러 엄마와 동생을 피해 눈덩이를 던지는 것 같았어요.
˝자, 자, 항복이다. 우리 남자들이 졌다.˝
아빠는 눈을 찡끗하며 두 손을 번쩍 들었어요. 엄마와 동생은 그것도 모르고 호호 깔깔 즐거워했어요. 어느새 산이 하얗게 변했어요.
˝정말 협이 말대로 저기 저 바위가 꼭 할머니 닮았지?˝
엄마도 동생도 아빠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살짝 돌아앉아 밤을 까주시는 외할머니의 모습처럼 보였어요.
˝와! 진짜 외할머니 닮았다.˝
동생이 까치발을 뛰며 소리쳤어요.
˝아냐, 저건 학처럼 생긴 거야.˝
왜 그 소리가 나왔는지 몰랐어요.
˝학?˝
엄마 아빠가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에이, 거짓말. 저게 무슨 학이야?˝
˝가만, 사람마다 모두 보는 눈이 다르지. 오빠가 무슨 생각으로 학이 라고 했는지 알아볼까?˝
아빠가 엄마와 동생을 가까이 불러 들였어요. 그리고 넷이 똑같이 똑같은 방향에서 바위를 바라보도록 했어요. 거북이 걸음으로 엉금엉금 다가오던 자동차에서도 그런 우리 가족이 이상했나 봐요. 사람들이 머리를 내밀어 바위를 쳐다보며 지나갔어요.
˝정말 이렇게 보니까 학처럼 보이네?˝
˝글세 말이야. 꼭 학이 날개를 펴 날아오르려는 것 같지?˝
엄마 아빠는 너무 신기해했어요. 그러나 동생은 아직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어요.
˝효야, 잘 봐. 저기가 머리고 저 소나무가 날개라고 생각하면 학처럼 보이지?˝
아빠는 몸을 낮춰 동생과 키를 맞추고 설명을 했어요.
˝와 - 아! 정말이네?˝
동생이 짝짝 박수를 쳤어요.
˝어때 당신…….˝
아빠는 엄마를 돌아보며 입가에 가득 웃음을 담았어요.
˝협아, 효야, 그리고 당신. 잘 들어. 가족이란 이렇게 한마음으로 한 쪽 방향을 보는 거야. 그래야 마음이 같아지거든. 우리 가족은 지금부터 마음에 저렇게 커다란 학 한 마리를 가지는 거야.˝
˝아빠, 얼마 전에 배웠는데 학은 십장생의 하나라던 데요?˝
˝우리 협이 제법인데? 바로 그거야. 우리 가족 마음에 학이 있는 한 할머니는 분명히 나으실 거야.˝
˝이 남자들이 오늘 왜 이럴까? 괜히 울게 만들고.˝
엄마는 참을 수 없는지 승용차 뒤로 돌아가면서 어깨를 들먹였어요. 동생도 엄마 꼬리에 붙어 따라가면서 눈물을 글썽였어요.
˝아빠 다음에 올 때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눈처럼 하얀 파카를 사다 드렸으면 좋겠어요.˝
왜? 하고 물으면 그냥요 라고 대답하려고 생각했어요. 까만 색 파카를 입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꼭 두꺼비 같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좋은 생각이지. 학처럼 오래 사시려면 날개가 필요하지. 그건 엄 마에게 비밀로 하고 아빠와 둘이서 준비하자?˝
다시 바위를 쳐다보았어요. 아빠의 손이 얹혀 있는 어깨가 훈훈해 졌어요. 살며시 아빠의 몸에 몸을 기댔어요. 아빠의 숨소리가 들렸어요.
˝자, 눈이 많이 쌓여 체인을 쳐야 되겠다.˝
아빠가 트렁크를 열어 체인을 꺼냈어요. 눈물을 닦은 엄마와 동생이 다가와 쪼그려 앉았어요.
˝추우니까 차안에 들어가 있어요.˝
아빠가 말했지만 엄마와 동생은 꼼짝도 안 했어요.
˝어서 들어가라니까 뭐하고 있지?˝
˝한쪽 방향으로 가려면 힘을 합쳐야 지요. 안 그러니 효야?˝
엄마가 동생에게 코맞춤을 했어요. 아빠와 나도 코맞춤을 했어요. 이러다가는 우리 가족 모두가 하얀 학이 되겠어요. 눈이 끊임없이 내리고 있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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