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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3) 건강한 자아상의 산실

고린도전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145 추천 수 0 2014.02.26 23: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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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15:8-11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2013.10.13 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행복한 가정(3) 건강한 자아상의 산실
고전15:8-11

어느 집사님의 상담 편지입니다. 한 번 들어 보시고 이 집사님의 가정의 문제는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40대 초반의 가정주부입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정부일 등을 하면서 홀어미를 도왔습니다. 18세 때 유부남이었던 남편을 만나 동거했으나, 얼마 후부터 구타를 일삼고 대화가 불가능하여 몇 번을 도망쳐 나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두 아이가 있어 하는 수 없이 다시 들어가 살았으나 시집살이가 너무나 어려워 아이들과 동반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정이 어느 정도 안정되는가 싶었는데,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2년 후 남편의 간청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 때문에 다시 합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은 합치기 직전부터 시작했는데, 10여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체험하고, 구역장도 하면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만 기다리면서 10년 동안 남편 구원을 위해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자 포기하고 싶고, 아들이 성격과 행동에 문제가 심해지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불안하여 자꾸만 절망적인 생각에 휩싸이곤 합니다.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피해의식이 많이 느껴지고, 쉽게 믿지 못하며, 실제의 못난 내 모습을 알면 다른 사람들이 실망할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이런 건을 일종의 마음의 병이라고 하던 데, 믿음이 부족해서 일까요? 인내심이 부족해서 일까요? 고민을 하면서 죄책감을 느낍니다.”

이 집사님의 문제는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낮은 자존감'이 문제입니다. 건강하지 못한 병든 자아상이 문제입니다. 자라면서 부모님이나 다른 중요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사랑이나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존중이 여기는 마음이 낮은 것입니다. 낮은 자존감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비하하고, 매사 자신감이 없고,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열등의식, 피해의식, 비교의식에 사로잡히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조울증적 태도를 가지게 합니다. 이 집사님처럼 믿음생활 잘하고 내 상태가 좋을 때는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셔서 나를 사랑해 주시고 내 편이고 믿어지지만, 마음이 편치 못할 때는 금방 자신의 모습에 실망을 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회의에 빠집니다. 이런 가정은 그대로 놓아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이들에게 병든 자아상을 대물림하는 가정이 됩니다. 가정이 건강한 자아상, 높은 자존감의 산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병든 자아상, 낮은 자존감을 만들어 주는 산실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식들에게 물려줄 큰 재산 3가지를 들라면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돈이라는 경제적 재산입니다. 둘째는 건강이라는 신체적 재산입니다. 셋째는 지식, 인격, 양심, 기술과 같은 정신적 재산입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재산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마다 다르지만 제가 볼 때는 정신적인 재산입니다. 돈이라는 재산이 좋기는 좋지만 건강이라는 재산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건강이라는 재산이 귀중하기는 귀중하지만 정신이 나가면 그 건강도 단지 정신 나간 육체 덩어리에 불과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정신의 가장 기본을 이루는 것이 바로 자아상입니다.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는 것입니다. 이 자아상에서 자존감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자존감 문제가 인간 삶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마음 탐구'의 저자 Gary R. Collins은 가족치료의 영역 가운데 80%가 "자존감의 치유"의 영역이며, 성에 대한 임상치유에 있어서도 약 10%만이 신체적, 육체적 문제의 영역일 뿐 거의 90%의 문제는 자존감과 의사소통의 문제이기에 자기존중은 정신건강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말합니다. 자존감의 문제는 인간의 모든 문제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감정과 생각과 말, 그리고 그의 태도와 행동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이 자존감이 영향을 줍니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청년까지 그리고 장년에서 노년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심각하게 영향을 줍니다. 심리상담가인 토니 험프리스 '8살 이전의 자존감이 평생 행복을 결정한다'라는 책에서 우리 자존감의 몸통은 8살 이전에 완성된다고 주장합니다. 자존감은 중요한 타인들의 영향, 기질과 성격적인 영향, 사회 환경적 영향에 의해 만들어 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가정에서 부모가 어떻게 아이를 대하고 키우느냐에 따라 거의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 자존감은 자아관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건강하고 긍정적인 자아관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니 적극적이 되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며 감사하며 자신감이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자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세상을 매사 부정적으로 봅니다. 그러니 매사 소극적이고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며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으며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이 자아관은 가정이 산실인데 우리가 건강한 자아관을 갖게 만들기 위해 어떤 가정을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1. 우리 가정은 자기비하의 산실이 아니라 자기 가치감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7-9)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보면서 자기를 비하하며 자아상이 병든 사람이 있고 자신의 조건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가치 있게 여기며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존감은 자기 가치감(존중감) 더하기 자신감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현재 주어진 조건을 얼마나 귀중하게 보냐에 따라 자신을 존중히 여기고 가치 있게 보기도 하고 자신을 무가치하게 생각하며 자기 비하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주어진 환경, 외모, 능력, 실력 등을 보면서 부정적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누가 부정적으로 평가해 줍니까? 보모입니다. 특히 어머니입니다. 사람의 자아상은 부모에게 가장 영향을 받습니다.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오는 외모나 정신적 기질이나 성품같은 유전적인 영향도 부모에게서 받고, 후천적으로 자아상에서 가장 영향력을 주는 것도 부모입니다. 세 살까지 부모가 어떤 양육태도로 양육하느냐에 따라 자녀들의 자아상에는 많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충분히 사랑해 주고 긍정적으로 대해 주면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게 되고 긍정적인 자아상은 높은 자존감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부모와 충분한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부정적으로 대하면 부정적인 자아상이 만들어 지고 부정적인 자아상은 아이들에게 낮은 자존감을 갖게 만듭니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어떤 말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은 부모의 부정적인 말을 듣고 자랐을 확률이 높습니다. “네 버릇 남 주니? 말 안 들으려면 나가 버려라. 그것도 점수라고 받아왔냐? 난 너를 못 믿어. 넌 왜 항상 그 모양이냐?” 등 아이의 말이나 행동을 늘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비웃고, 주눅 들게 합니다. 이런 말을 자주 들으면 아이들은 “난 항상 이 모양이구나, 역시 난 안 돼.”라고 부정적인 자아상을 만들어 버립니다. 왜 이런 말을 부모가 합니까? 자꾸 아이들의 부정적 조건들을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자아상을 어떻게 가지고 있습니까? 8절에 보십시오. 자신을 만삭되지 않아서 낳은 자 같다고 말씀합니다. 칠삭둥이 팔삭둥이라는 것입니다. 신체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외모가 변변치 못했습니다. 질병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말은 잘하지만 외모가 변변치 못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외모에 따라 자아상이 만들어집니다. 9절에 보니까 자신을 지극히 작은 자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주어진 조건, 즉 자신의 과거를 평가할 때 바울은 1)만삭되지 못하여 낳은 자와 같고 2)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이며 3)교회를 핍박한 자고 4)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한 자이고 5)죄인 중에 괴수였다고 평가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부정적인 조건만 보면 얼마든지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정적인 과거 경력을 가지고 있는 자신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만나 주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만나 눈이 멀었다가 보게 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고, 직접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사도라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사도 중의 작은 사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 비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현재의 모습을 알고 용납하는 것입니다. 겸손을 말하는 것이지 자기 비하나 굴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부인은 자신을 무시하며 아무 것도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격 없음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은 무가치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음을 말하지 무가치 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할 정도의 부정한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바울을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을 핍박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울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사도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얼마든지 과거의 부정적 조건을 극복하고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으로 인해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할 정도로 살아갔습니다.(고전4:16; 고전11:1; 빌3:17; 살후3:7)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4:16)”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 왜 그렇습니까?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홍 같은 과거의 죄라도 다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온 천하보다 가치 있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질그릇 같은 자신이지만 바울 안에 보배가 있기 때문입니다.(고후4:7) 바울 에베소서 1장에 보면 창세전에 하나님이 택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에 대하여 그래 누가 뭐라 해도 나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건강한 자아상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조건에 대하여 부모의 말, 친구의 말, 자신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합니다. 건강한 자아상은 하나님이 나를 보듯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을 에게 주어진 조건을 볼 때 우리의 시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대하여야 합니다.
모세가 살인자가 되어 광야에 쫓겨나 모든 것을 잃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살인자로 비난하지 않고 민족의 지도자로 보았습니다. 야곱이 사기 치고 삼촌 집으로 도망갔다고 해서 하나님이 야곱을 사기꾼으로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언약의 후손으로 본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감옥에 들어갔다고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패배자로 보고 버린 것이 아니라 민족을 위한 선지자로 본 것입니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다고 하나님이 요셉을 죄인으로 보며 버린 것이 아니라 훈련시켜 사용한 위대한 종으로 본 것입니다. 부모는 우리의 조건을 보며 버리고 형제는 우리의 조건을 보고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한 번 택한 백성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 것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하나님의 아들 딸 삼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는 이 예수뿐일세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쟎네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449장 1절)
검은 구름 덮이고 광풍 일어도 예수 나의 힘 되니 겁낼 것 없네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쟎네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449장 2절)
괴로운 일 당해도 낙심 말아라 영원한 주 능력이 붙드시겠네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쟎네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449장 3절)"

 

주어진 조건 보며 자신을 비하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하나님을 보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토니 험프리스는 자존감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신의 힘을 믿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심축이 있습니다.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느낌'과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입니다. 아이들이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부모들은 신체적 자아에 대하여 "네 몸은 항상 옳다"라고 말해라는 것입니다. 정서적 자아에 대하여 "넌 아무 조건 없이 사랑받는 가족의 소중한 일원이다"이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지적 자아에 대하여는 "네게는 세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이 있다"라고 하고 행동적 자아에 대하여는 "노력이 곧 재능이며 네 존재만으로도 기쁨이다"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사회적 자아에 대하여는 "넌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다"라고 말하고 창조적 자아에게는 "너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자랄 권리가 있다"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자기중심성'을 포기하고 '하나님 중심'적으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에 의해 받아들여졌고 소중하게 여겨지며 사랑 받고 있습니다. 자기 비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의 가치를 부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 용서와 구속의 은혜를 받을 만한 피조물로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관점, 하나님의 느낌, 하나님의 행위에 근거를 둔 자존감이 진정한 자존감입니다. 과거가 어떻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실 정도로 천하보다 귀중한 지극히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가스펠 싱어 레나 마리아를 보십시오. 태어날 때부터 두 팔이 없고 한 쪽 다리가 짧은 장애우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어진 조건을 보며 인생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장애인 올림픽의 수영 4관왕이며 세계적 복음가수로 선교적 사명에 불타는 삶을 살았습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었습니다. 미남 청년과 결혼해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내는 행복한 여자가 되었습니다. 양 팔이 없지만 아니 하나의 다리 밖에 없지만 오늘도 그는 하나님을 힘차게 노래합니다. “예수님 당신께 제 마음과 영혼을 드리겠습니다. 당신 손에 제 인생을 올려 드리겠습니다.”

 

반대로 20세기 최고의 여류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소르본대학에 재학 중이던 18세 때 '슬픔이여 안녕'이란 소설을 발표한 천재작가요 미녀이며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피드 광증 때문에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으며 두 차례의 이혼과 도박· 알코올 중독,약물 남용으로 비참한 삶을 마감하면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자학했습니다. 왜일까요? 병든 자아상 때문입니다. 깨진 거울에는 깨진 얼굴이 보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새롭게 보입니다. 윌리엄 데이먼의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의 30년에 걸친 인간발달 연구의 최종 결과물인 기념비적인 책입니다. 그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의 삶을 가장 짓누르는 문제인 "왜 그렇게 많은 청소년들이 첫 걸음을 내딛는 데 실패하는가?"에 대해 탐구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인생에 동기를 부여하는 목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청소년기의 신앙심이 유일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천하보다 귀한 가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유일한 사람, 하나 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내 아들 딸들 하나님이 가치 있게 보고 계십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2. 우리 가정은 열등감의 산실이 아니라 자신감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9-10)
자존감은 자기 존중감 더하기 자신감입니다. 자신감이 없으면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 열등감은 부정적인 자아상을 만들고 낮은 자존감을 만듭니다. 개인의 지능, 신체적 매력, 교육, 재력, 권력, 성취 등에 따라 자존감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자존감의 공식을 욕구분의 성공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성공하면 할수록 자존감은 커진다는 것입니다. 욕구가 크면 클수록 자존감은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를 많이 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낮습니다. 신체적으로 열등한 부분이 있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습니다. 눈이 작다든지 키가 작다든지 신체적 장애가 있으면 자존감이 낮아집니다. 가난하다든지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다든지 하면 자존감이 낮아집니다.

 

사람이 건강하지 못한 부정적인 자아관을 갖는 것은 자신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은 다른 사람에 비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평가할 때도 자식들의 능력이 없는 것을 보며 부정적으로 평가를 합니다. 그러면 자신감이 없어지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늘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병든 자아관을 가지고 그런 부정적인 자아관을 가진 사람은 결국 부정적인 병든 자존감을 가지게 됩니다. 나는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무능력하고, 나는 세상의 쓰레기이고,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단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자신감을 꺾어버리는 부모의 말로 인하여 자녀들은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감을 꺾어버리는 것은 아이의 모든 것을 보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일부 부정적인 조건을 보고 그러는 것입니다. 대부분 공부 못한다고 그러는 것입니다. 학교 성적은 암기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암기력만 전부입니까? 그것은 인생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것 하나로 완전히 가정에서 자녀의 자신감을 싹부터 뭉게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당대 최고 명문인 가말리엘 문하생 출신입니다. 율법에 열심히 있는 사람입니다. 가정이나, 학벌, 사회적 지위, 경제 능력 등이 그렇게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질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9절을 보십시오. 교회를 핍박한 것입니다. 자신의 부정적인 조건만 보면 그것 하나라도 집중하면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입니다. 맥스웰 말쯔라는 사람은 “현대인의 95%가 열등감의 질병에 시달리고 단지 5%의 사람만이 자신에 대해 만족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해 나간다.”고 말했습니다. 좀 심한 말 같지만 자신을 바라 볼 때 한 가지라도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면 사람들은 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한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에 초점을 맞추면 열등감이 아니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 같은 사람에게 나타나셨다고 말씀하시면서 바로 이어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부족한 자신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로서 자신감을 가지고 뭐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감이 따른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것입니다. 긍정적인 자존감의 표현입니다. 나는 무능합니다. 나는 실패합니다. 나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내 놓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사도로서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 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감을 가지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는 삶을 사고 있습니까?

 

바울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후 4:8)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9)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

 

머리와 몸통 그리고 발가락이 두 개뿐 닉 부이치치를 보십시오. 그는 지금도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등 세계를 다니며 행복을 전하는 행복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자신의 신체적 장애로 인해 아픔과 절망의 나날를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예수님의 생명, 참 빛이 있었습니다. 8세 이후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믿음으로 일어섰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서핑을 하고, 드럼을 연주하고, 골프공을 치고, 컴퓨터를 했습니다. 15세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인생이 변한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저는 백 번이라도 다시 일어나려고 시도할 거예요” "아직도 기적을 믿어요. 하나님은 제게 위대한 사명을 주셨어요. 저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입니다." 자신은 모라라는 구석이 많지만 “나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리고 그분의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나를 창조하셨다라는 깨달음이 나의 행복의 비밀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예쁜 아내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자신감 넘치는 삶입니까?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를 보십시오. 장애인으로 정상인도 어렵다는 <쇼팽의 즉흥 환상곡>을 열정적으로 연주합니다. 강연장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손을 번쩍 들어 주먹을 꽉 주라고 주문하면서 "You can do it" 선창하면서 따라하게 합니다.
'1.3 1.3 송가네 공부법'을 쓴 송하성 교수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상업고등학교에 들어갔답니다. 빛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희망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교회 가까이서 자취하다 자연스럽게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답니다. 목사님 설교를 듣는 중에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마 7:7-12)'라는 말씀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게 되었답니다. 학생회 예배 외에도 주일예배를 꼬박꼬박 참석하고, 새벽기도를 매일 나가면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는 "그 말씀 하나로 가정에는 혁명이 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어둠의 가정에 빛이 들어 온 것입니다. 동생들은 "형이 교회 다니면서 달라졌다"며 증거했고, 동생들도 형을 따라 공부했답니다. 그는 2학년 겨울방학 때 청소년 수련회에 가서 다시 한 번 도전을 받게 되었답니다. "여러분들은 이 시대의 요셉입니다. 큰 꿈을 가지십시오. 자신이 품은 꿈만큼 되는 것입니다" 라는 설교를 듣고, 대충 은행에 취직해서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접고, 대학 진학의 꿈을 키웠답니다. 고학으로 대학을 다니며 행정고시에 합격했답니다. 경제기획원과 공정거래위원회, 청와대 등에서 경제 관료를 지냈답니다. 5형제인데 모두 고시에 합격했답니다. 예수를 믿으면 은혜로 말미암아 자신의 가치가 최대화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3. 우리 가정은 소극적 태도의 산실이 아니라 적극적 태도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10-11)
부정적인 자아상은 낮은 자존감을 가지게 만들고 낮은 자존감은 소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게 하고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게 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면 높은 자존감을 가지게 되고 높은 자존감은 매사에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게 하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기대하게 만듭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건강한 자아관을 가지니까 자신에 대하여 높은 자존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어진 자신의 일, 복음 전하는 일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소극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쉬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나 그들이나 이렇게 복음을 힘껏 전하고 있으며 또한 여러분은 그 복음을 이렇게 믿었습니다.” 복음을 힘껏 전했다는 것입니다. 10절에서도 누구보다 더 열심을 내어 일했다고 했습니다. 은혜 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으니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으로 열심을 내어 적극적으로 복음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사명을 감당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 황혼기에 바울은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7)"
달려가는 인생이었다는 말입니다. 적극적으로 일을 감당하였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과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죽인 사람입니다. 질병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능숙하게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고후 10:10)"
이것은 바울의 사역에는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문제 때문에 자신에게 맡겨준 사명을 소극적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적극적으로 임하였습니다. 달려갔습니다. 갈 수 없으면 편지를 썼고, 방문할 수 있으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지라도 그곳에 가서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태장을 맞았습니다. 갖가지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꺽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약한 것을 자랑하며 복음 사역을 하였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고후 11:23)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고후 11:24)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고후 11:25)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고후 11:26)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7)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고후 11:29)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30)”

 

우리는 과거 때문에, 실패 때문에 , 자신의 환경 때문에 소극적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만 실패했습니까? 아담도 실패했습니다. 노아도 실패했습니다. 술 먹고 추태를 부렸습니다. 아브라함도 실패했습니다. 두 번이나 아내를 이방 왕에게 맡겼습니다. 모세도 실패했습니다. 다윗도 솔로몬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은 영원히 실패한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낙망하지 마십시오. 비관자가 되지 마십시오. 더 적극적으로 더 낙관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면서 사명을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니까 힘 있게 감당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고, 봉사할 수 있는 힘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일학교 8백 명의 아이들을 3만 3천 명으로 늘린 미국 선생님에 대한 글을 보았습니다. 아주 비만한 여인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너무 초라해서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번번이 살아났답니다. 한 번은 약을 먹고 누워 잇는데 잠들어 있는 줄 알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소곤거렸답니다. '여보 우리 제니가 죽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모에게도 쓸모없는 존재였답니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이 네비게이토 성경공부 모임에 들게 되었답니다. 회원들이 영, 육이 다 병들어 버린 그녀를 끌어들여 함께 기도하고 성경공부를 시작했답니다. 6개월 동안 12명의 기도그룹이 제니 하나를 두고 최선을 다해 기도해 주었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게 되었고 마침내 새 세계가 시작되었답니다.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아니라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아이로 변한 것입니다.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이 존귀한 사람이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녀는 교회에서 8명의 유치부 아이들을 맡아 가르치기 시작했답니다. 유치부 아이들은 자신의 선생이 얼마나 예쁘고 미운가를 따지지 않았답니다. 아이들은 사랑으로 가르치는 제니에게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따라 다녔답니다. 적극적으로 교사를 감당한 것입니다. 제니는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고 잠들기 전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내 사랑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이들로 가르칠 수 있을까요?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 아침에 눈을 떠서도 똑같이 기도했답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그녀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답니다. 문득문득 번개처럼 기발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 행복한 부모, 행복한 자녀가 되시길 원하십니까?
가정을 건강한 자아관을 만드는 산실이 되게 하십시오.
자기비하의 산실이 아니라 자기 가치감의 산실이 되게 하십시오.
열등감의 산실이 아니라 자신감의 산실이 되게 하십시오.
소극적 태도의 산실이 아니라 적극적 태도의 산실이 되게 하십시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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