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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2687. 남대문, 경성 이미 조선시대부터 쓰던 이름
오늘은 5년 전 국보 제1호 숭례문이 불탔던 날입니다.(2008년 2월 10일) 그때 온 겨레는 눈물을 흘렸고, 큰 충격을 받았었지요. 그런데 불이 나기 전 우리는 “숭례문”을 흔히 “남대문”이라고 불렀습니다. 숭례문 옆의 큰 시장은 숭례문시장이 아닌 “남대문시장”이라 불렀고, 그곳에 있는 수입상가도 ”남대문도깨비시장“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남대문이란 이름은 일제가 숭례문을 비하하고자 부른 것이다."란 말이 상식처럼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남대문”이란 말은 일제가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태조실록》 5년(1396) 9월 24일 치 기록에 보면 “정북(正北)은 숙청문(肅淸門), 동북(東北)은 홍화문(弘化門)이니 속칭 동소문(東小門)이라 하고, 정동(正東)은 흥인문(興仁門)이니 속칭 동대문(東大門)이라 하고, 동남(東南)은 광희문(光熙門)이니 속칭 수구문(水口門)이라 하고, 정남(正南)은 숭례문(崇禮門)이니 속칭 남대문이라 하고, 소북(小北)은 소덕문(昭德門)이니, 속칭 서소문(西小門)이라 하고, 정서(正西)는 돈의문(敦義門)이며, 서북(西北)은 창의문(彰義門)이라 하였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따라서 “남대문”이란 이름은 “동대문”, “서대문” 등과 함께 정식 이름은 아니지만 4대문을 처음 지은 태조 때부터 속칭으로 불러온 것입니다.
일제는 1933년 8월 9일 제령 제6호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을 공포하여 보물 1, 2호를 정식 이름이 아닌 남대문과 동대문이란 이름으로 지정했을 뿐이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은 남대문, 동대문은 일제가 격을 낮춰 부른 이름이라고 오해합니다. 우리가 ‘경성(京城)’이란 서울의 또 다른 별명도 일제강점기에 생긴 이름으로 오해하지만 《선조실록》 30년 1월 27일에 이미 나오는 이름입니다. 일제가 왜곡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하지만 이런 오해는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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