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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왕하21:1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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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4.1.22 http://www.john316.or.kr |
열왕기하(51) 뒤늦은 회개도 귀한 것입니다 (왕하21:19-26)
아몬은 20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2년간 왕으로 있었습니다(19절). 아몬도 므낫세처럼 우상을 섬기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20-21절). 결국 신복들이 반역해 아몬 왕을 궁중에서 죽였습니다(22-23절). 왜 신하들이 왕을 죽이는 반역을 일으켰을까요? 므낫세 치하 55년 동안 악정에 시달린 신하들이 젊은 왕 밑에서 다시 몇 십 년 동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우상숭배 가운데 살아야 할 것을 생각하니까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래서 이판사판이란 심정으로 점차 모반의 기운이 싹텄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성경에서는 그 반역의 이유에 대해 전혀 언급하고 않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합니다. 첫째, 무명의 선지자에 의해 도전을 받은 신하들이 우상숭배에 빠진 왕을 죽였을 것입니다. 둘째, 당시 국제정세의 역학관계에서 신하들이 외세를 등에 업고 왕을 죽였을 것입니다. 셋째, 평소에 므낫세가 많은 사람들을 무고하게 죽였기에 앙심을 품은 신하들에 의해 죽게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신하들이나 백성들이 더 이상 학정 아래서 장기간을 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기회를 찾아 거사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처럼 흑암의 때가 마냥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어느 날, 기도가 쌓이고 때가 되면 흑암이 물러나 순식간에 광명이 비치는 때가 올 것입니다. 북한에 그런 때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처럼 신하들이 우상숭배와 악정을 펼친 젊은 왕을 죽였는데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백성들이 기뻐할 줄 알았는데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아몬의 아들 요시야를 대신 왕으로 삼은 것입니다(24절).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다윗의 위가 영원하게 될 것이란 다윗 언약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므낫세의 말년의 회개가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얻게 하는 큰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회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뒤늦은 회개도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뒤늦은 회개도 귀하게 받아주십니다. 성도에게는 아무리 부족한 모습을 보였어도 죽기 전까지는 언제나 새로운 은혜의 기회가 있습니다. 그런 기회를 얻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진실한 회개입니다. 뒤늦게 회개해도 진실한 회개라면 회복의 은혜를 얻는 귀한 불씨가 됩니다.
< 회개는 회복의 불씨입니다 >
막힌 길을 뚫으려면 회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위기를 회개의 기회로 받아들이면 거칠 것이 없는 존재가 됩니다. 일이 안 되고, 길이 안 열리고, 축복이 늦어지는 것을 회개를 도전하는 음성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시급한 기도제목이 있을 때 그 기도제목보다 더 시급한 기도제목이 내가 하나님이 앞에 회개할 것을 찾아 회개하는 것임을 아는 사람이 천국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회개에 대한 자각의 크기가 인물의 크기를 좌우합니다.
결국 축복의 문을 결정적으로 여는 시발점이 바로 회개입니다. 신앙생활을 제일 잘하는 성도는 회개를 잘하는 성도이고 제일 영성이 높은 성도도 회개를 잘하는 성도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제일 못하는 것이 ‘회개를 잘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흉내는 잘 내지만 진짜 회개를 잘 못합니다. 회개는 쉽지 않습니다. 회개를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회개를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이 회개하는 마음도 주셔야 합니다. 축복의 원리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면 축복의 씨앗은 뿌려집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여러 문제를 통해 회개를 도전합니다. 그러므로 기분 나쁜 말을 기분 나쁘게 듣지 않는 훈련을 하고 기분 나쁜 문제를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는 훈련을 하십시오. 기분 나쁜 말과 문제를 회개를 촉구하는 음성으로 듣고 받아들이는 훈련을 잘하면 축복의 문은 점차 열리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 앞에서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심한 말을 들어도 자기의 죄보다는 덜 심한 말을 들었다고 여기고 어떤 큰 문제를 만나도 자기의 죄보다는 덜 큰 문제를 만났다고 여기십시오. 그런 마음이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회개하는 고백을 입으로 하는 만큼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 화를 내고 괴롭히고 모함하고 죽이려는 사람조차 ‘악한 사탄 마귀’라고 여기는 대신에 ‘자신의 회개를 촉구하는 반면교사 역할을 하는 사자’라고 여긴다면 그는 누구보다 깊은 회개의 영성을 가진 존재가 되고 그때부터 대반전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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