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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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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
시편 8편에 나타난 구약성서의 인간관, 와우(waw)!
본문/ 시8:1-9
1. 들어가는 이야기
20세기 유럽 고전 음악계의 황제라고 불리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1989)은 晩年(만년)의 인터뷰에서, “이제까지 불멸의 음반을 많이 내셨는데 그 중 어느 것을 가장 최고라고 생각 하십니까?” 묻는 기자 질문에 아주 단호하게 "Nine, Nine...!" 하고, “나는 그 어느 음반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시 듣지도 않습니다.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나 음악을 한다면 그런 음반은 결코 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관점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이건 내가 UNITEL CLASSICA 채널에서 방영한 "Karajan, The Secon Life"에서 노인이 되어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진 카라얀의 육성으로 직접들은 소리다).
觀點(관점-a point of view)은 그렇게 중요합니다. 서양철학의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cism)적 관점과 성경의 신중심주의(theocentric-anthropology)적 관점은 判異(판이)합니다. 전자의 결론은 허무주의요, 후자의 결론은 하나님 안의 자유-쉼-평화(에이레네)입니다. 시편8편은 사람(인간-에노쉬-벤 아담)에 대한 구약성서의 관점을 頂門一鍼(정문일침) 하는 말씀입니다.
2. 시편8편 연구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1절)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2절)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3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4절)
그러나(waw-와우)!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5절)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6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7절)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8절)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9절)
(1) 1-4절: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자연의 엄청나고-신묘막측한 驚異(경이)-神秘(신비)-莊嚴(장엄) 앞에 단독자로 선 사람의 허무성-연약성-소멸성-헛됨 즉,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 하신 창2-3장(신학적 표현으로 야훼문서-J)의 신학적 관점에서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2) 그러나-와우-waw: 우리말 성경에는 4절과 5절을 연결하는 접속사가 나타나지 않으나, 히브리 성경 원문에는 "와우-waw-그러나" 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와우-waw” 라는 접속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시편 기자는 전반부(1-4절)의 사람에 대한 어둡고 우울한 관점과 달리 후반부에서는 현격한 顚倒(전도)-轉移(전이)를 일으킵니다. 히브리어 접속사 “와우-waw”는 단순한 “그러나”가 아닌 주제의 급격한 전이를 예고하는 기능을 합니다. 즉, 창2-3장(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의 관점에서 창1:26-28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심-이마고 데이-Imago Dei)의 관점으로 전환합니다.
(3) 5-9절: 시편 기자는 여기서 창1:26-28(신학적 표현으로 제사문서-P)과 함께 사람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위임통치권을 부여받은 영화롭고 존귀한 존재로 그 관점을 전혀 달리 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5절)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도다(6절)” 라고 한 것입니다.
3. 시편 8편 기자의 구약성서적 관점에서 본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첫째. 구약성서는 희랍적 이분법(hellenistic dichotomy)으로 사람을 몸(소마 혹은 살크스)과 영혼(푸쉬케 혹은 프뉴마)으로 구분하지 않고, 사람을 흙(앗팔 민-하다마)과 하나님의 생기(뉘솨마)가 결합한 생명체(네페쉬-nephesh)-통전적으로 살아 있는 생명체인 그 한 사람 그 자체를 말합니다.
둘째. 사람은 창2-3장 보는 바와 같이 “흙-허무-연약-헛됨”의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서 기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1:2, 1:14)-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실로 그러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다 할 사람 누가 있으리오?
셋째. “와우-waw-그러나” 사람은 존엄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상을 다스리는 위임 통치권을 부여받은 존재이며,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할 줄 아는 존재입니다(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13장)-실로 그러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다 할 사람 누가 있으리오?
그러므로 한스 발터 볼프는 이것을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찬양이 중단 곳에서, 사람은 자신의 헛됨과 자신의 존엄성 사이에 일어나는 역설적 긴장으로 갈등하게 되며, 마침내 비인간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참고: 김이곤, 제13회 성서신학마당, 제3강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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