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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2698. 알몸으로 단령만 입고 잔치에 간 대사헌 김덕함
성옹(醒翁) 김덕함(1562)∼1636)은 대사헌까지 지낸 조선 중기의 문신입니다. 《인조실록》14년(1636) 12월 10일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전 대사헌 김덕함의 졸기” 곧 “죽음의 기록”이 나오는데 그의 성품이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전 대사헌 김덕함이 죽었다. 덕함은 배천(白川) 사람으로 강직하고 청렴했으며 지조가 있었다. 광해조에 적신(賊臣)이 대비(大妃)를 폐할 음모를 꾸며 백관을 협박하여 헌의(獻議, 윗사람에게 의견을 아룀)하게 했을 때에 덕함은 홀로 맞서며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상신(相臣, 3정승) 이항복(李恒福)과 함께 귀양을 갔는데, 처음엔 북도(北道, 온성) 로 유배되었다가 후에 남예(南裔, 사천)로 옮겨졌으며, 반정 초에 집의(執義, 사헌부에 속한 정삼품 벼슬)로 불러들였다. 이때에 조정이 청백리(淸白吏)를 뽑았는데, 덕함이 거기에 들어서 예(例)대로 재물을 받고 대사헌이 되었다가 죽었다.”
김덕함은 지극한 효자로 어머니를 아흔세 살 될 때까지 모시고 살았는데 70이 다 된 노인이 날마다 어머니를 모시고 자면서 몸소 똥오줌을 받아내는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70번이나 깨어 일어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예전엔 환갑만 넘어도 “남의 나이를 도둑질 해다가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70 노인네의 이런 효성은 정말 지극하다 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김덕행은 청렴결백한 사람으로 단벌신사였다고 하지요. 한번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이유간이 생일에 김덕행을 초대했는데 깜박 잊고 있다가 그 집 하인이 모시러 와서야 알았습니다. 그래서 급히 나들이옷을 찾으니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제사 때 입을 수 있도록 하려고 빨았던 것이지요. 그러자 안 갈 수가 없었던 김덕행은 잠방이와 중의 적삼도 못 걸친 알몸에다 관복인 단령을 입고 사모만 쓴 채 잔칫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뒤에 그 까닭을 안 사람들은 김덕행에게 머리를 숙였다고 하지요. 요즘 이런 공직자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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