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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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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자녀 교육에 실패하지 말라
본문: 잠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나는 오늘 6학년 짜리 아들에게 두 번 도전을 받았습니다. 급하게 밖에 나갈 일이 있어 오래 된 구두 뒷축을 꺾어 신고 나갔더니 아들아이가 "아버지! 왜 신발을 꺾어 신으세요"했습니다. 그 말은 언젠가 내가 아들에게 했던 말이다. 몇 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아들아이가 운동화 뒷축을 꺾어 신는 버릇이 보이길래 교정해 주기 위해 몇 차례 야단을 했더니 이제 자신은 물론 상대의 운동화 꺾어 신는 버릇까지 지적하게 되었던 것이다. 만약 어린 시절 생활에 통제를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잘못은 물론 타인의 잘못도 분별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내 아들아이가 요즘에 전자오락을 많이 하는 것을 보면서도 마음이 놓이는 이유는, 전자오락을 시작할 때 나와 함께 오락실에 갔기 때문에 어느 정도 통제 능력을 가졌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유아기의 교육이나 생활 지도는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됩니다. 행동 통제 능력은 유치원이나 그 밖의 교육 기관에서도 키워주어야 하겠지만 제일 중요한 역할은 부모가 담당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선악을 분별해주고, 자기 통제를 할 수 있도록 부모 자신이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는 교육이 진정 좋은 교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해서 분별력 없는 아이들의 행동을 바로 잡아 주지 않는다면 훗날 우리 가정과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자녀교육에 실패한 성경에 나오는 4사람을 소개합니다.
1. 엘리 선지자의 자녀교육 실패
사무엘상은 어떻게 엘리 선지자의 시대가 가고 사무엘 선지자의 시대가 오는 지로 시작됩니다. 엘리 선지자는 자녀교육에 실패하므로 서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임을 당하였을 뿐 아니라 엘리 가문의 사람들은 젊어서 죽게 되었습니다.(삼상 2:31-34)
자녀교육의 실패는 가문의 몰락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을 뿐 아니라 이 소식을 전해 듣던 중에 자신도 목이 부려져 죽고 맙니다. 참으로 자기 자신과 자녀뿐 아니라 가문 전체 그리고 국가에 까지 들이닥친 엄청난 재앙은 잘못된 자녀교육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교육 만능주의가 교회에 까지 깊숙이 침투한 요즈음 엘리 선지자의 자녀교육 실패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실로 큽니다.
엘리 선지자의 첫 번째 자녀교육 실패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자녀를 더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삼상 2:29)
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이 자녀교육이기에 시간과 물질을 아낌없이 가장 많이 투자하는 것이 바로 자녀교육입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들에게 허락하신 가장 소중한 선물이기에 자녀교육은 가장 중요한 특권이자 또한 의무입니다. 그러나 자녀교육이 하나님보다 우선된다면 자녀교육이 바로 신앙의 최대 걸림돌이자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공부 못해서 대학도 못가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겠냐? 시험 준비하는 동안만이라도 중고등부에서 시간 허비하지 말고 나와 함께 대예배 보고 빨리 가서 공부해라!”라는 말을 종종 대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말은 자녀에게 “애야, 공부가 예배보다 더 중요하단다. 물론 성적이 신앙보다 훨씬 중요하지!”라고 자녀의 마음속에 강력하게 주입한 것과 같습니다. 이렇듯 학교석차가 올라갈 수만 있다면, 명문학교에 입학할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성공을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보다 자녀교육을 더 중히 여기는 것이 바로 엘리 선지자의 첫 번째 실패였습니다.
엘리 선지자의 두 번째 자녀교육 실패는 자기 자녀가 저주를 자청하는 것을 알면서도 금하지 아니한 것이었습니다.(삼상 3:13)
자녀들이 기본적인 예절을 무시하고, 부모를 마음대로 부려먹고, 예배를 드리지 않거나 신앙을 등한시해도 이것들에 대해 혼을 내면 자녀가
화내면서 “나, 공부 안할 거야!”라고 토라질세라 분명한 잘못도 금하지 않는 세태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적이 볼모가 되어 분명한 잘못들을 금하지 아니 한 것이 바로 엘리 선지자의 두 번째 실패였습니다.
엘리 선지자의 세 번째 자녀교육 실패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불량자가 되었습니다.(삼상2:12)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중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부분을 자기 마음대로 빼앗아 같습니다. 이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 2: 17)
하나님께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제사를 무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엄중하십니다. 우리들은 자녀들의 성적이 떨어지면 그것에 대해 엄하게 대하고 공부를 열심히 가르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자녀들의 잘못된 예배 태도를 그저 무시하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는 부모들이 허다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는데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릴 리가 만무합니다. 이렇듯 공부에는 엄청나게 투자하고 열심히 가르치는 것에 비해 하나님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던 것이 바로 엘리 선지자의 세 번째 실패였습니다.
엘리 선지자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자녀를 더 소중히 여기고, 자녀들의 잘못을 알면서도 금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음으로 자녀교육에 실패하여 자신과 가문 그리고 국가에 엄청난 재앙을 가져왔습니다. 엘리 선지자의 자녀교육 실패는 바로 우리의 실패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실패에서 빨리 벗어나야지만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겠지만,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습니까?(삼상2:25)
2. 사무엘의 자녀교육 실패
전무후무한 사사요 선지자요 제사장이었던 사무엘도 자식 교육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위대한 예언자 사무엘도 가정적으로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늙은 나이에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아를 판관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런데 아들들은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느라 법대로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8장을 보면 사무엘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행실을 따르지 않고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했습니다. 위대한 선지자 사사도 자식교육에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몰려왔습니다.
“당신은 늙고, 아들 둘은 저렇게 엉망이니 어떻게 합니까?”
이런 비난의 말을 들었을 때 사무엘은 무척 마음이 상했을 것입니다.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도 자식교육엔 실패했던 것입니다. 요즘의 사회를 봐도 덕망있는 큰 인물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모습을 닮지 않고 타락한 삶에 빠지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자식들의 잘못된 삶이 아버지의 입신과 출세를 가로막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사무엘에게도 두 아들의 타락은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는 구실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가정보다는 외부에서 주로 활동했을 것입니다. 특히 늘 분주하게 이스라엘 곳곳을 순회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당연히 자녀교육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입니다. 또 사무엘의 아내는 성서에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주로 두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지냈던 것이 분명합니다. 자녀교육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린 시절의 교육이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합니다. 특히 부모는 자녀들의 거울입니다. 어쨌든 사무엘은 자녀농사에는 실패한 인물이었습니다.
3. 다윗 왕의 자녀교육 실패
다윗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다윗도 자식 교육에는 큰 실패자였습니다. 다윗은 여러 명의 부인과 많은 자식을 두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부인만 최소 8명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위대한 왕이라도 가정이 이 지경이니 자식들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습니까? 형제들 간에 간음사건이 발생하고, 복수한다고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아버지를 반역하여 왕이 되려고 난리를 일으킵니다.
다윗 왕가의 골육상잔의 비극은 다윗의 아들 암놈이 이복형제인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범함으로 발단되었습니다. 압살롬은 두해 동안 철저히 준비하여 암놈을 살해하고는 그술로 도망하여 삼 년을 숨어 지냅니다. 요압의 개입으로 다윗은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허락하지만, “왕이 가로되 저를 그 집으로 물러가게 하고 내 얼굴을 보지 말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삼하12:10)와같이 아들을 꾸짖기는커녕 만나지도 않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압살롬이 이태 동안을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삼하14:28)처럼 부자가 같은 도성 안에 살면서도 요압이 다시 개입할 때까지 두해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압살롬이 요압에게 “이제는 네가 나로 왕의 얼굴을 보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가하니라”(삼하 14:32)라며 강력하게 항의하자,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 말을 고하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저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삼하14:33)처럼 다섯 해만에 아들을 만나지만 그저 입을 맞춰주는 것이 끝이었습니다.
다윗이 자녀교육에 실패한 첫째 원인은 자녀교육에 대해서 도피적인 태도이었습니다. 다윗은 두려움 없이 적군에게 돌진하는 용감한 장군이었으며 국가의 위기를 돌파하는 위대한 통치자였지만, 아버지로서 자식에 대한 책무에 대해서는 늘 피해 다녔습니다. 마치 요사이 아버지들이 자녀교육은 엄마들의 책임인양 자녀교육에 대해 등한시하는 태도와도 같습니다. 교회도 아직 신앙의 훈련시기에 있는 청년들을 주일학교 교사로 주로 세우고는 신앙의 연륜자들은 나 몰라라 한다거나, 주일학교에 대한 인적 물적 투자에 대해서는 너무도 인색한 것 역시 다윗이 자녀교육에 대해 도피적 태도를 보인 것과 다름없습니다.
둘째 원인은 다윗이 자녀교육에 대해서 피동적인 태도이었습니다. 다윗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자녀교육에 대해서는 그렇게 소극적이고 피동적일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형제를 죽였으며 부자간의 갈등관계가 수년간 지속되어도 외부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한 자기 스스로는 자녀교육의 문제에 직면하질 않습니다.
때로는 자녀들에게 엄히 훈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훈계가 없으면 자녀를 망치게 됩니다. 열왕기상 1장 말씀을 보면 다윗이 죽기 얼마 전에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좌에 오르려고 반역을 꾀합니다. 그 아도니야에 대해 성경은 열왕기상 1장 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아도니야는 외모가 아주 준수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다윗이 한 번도 훈계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잠언 13장 24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훈계를 안 하는 것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면 원하는 것을 다 채워주기보다 바르게 키우고 권위에 순종하는 법을 철저히 가르쳐야 합니다.
4. 자녀교육에 실패한 히스기야 왕
히스기야 왕은 다윗 왕 이후 거의 300년 만에 등장한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25세에 유대의 13대 왕으로 즉위한 후 29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전국에 있는 수많은 우상들을 헐어버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하고 보수하는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또 그가 통치하는 동안 주변에 있는 많은 나라들과 전쟁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비록 앗시리아의 산헤립이 쳐들어왔을 때는 군사력의 열세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당시 최강대국인 앗시리아와 맞설 정도로 국방을 튼튼히 했던 정치적으로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또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말년에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해서 그의 수명이 15년이나 연장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 외에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할 줄 아는 훌륭한 중보 기도자였습니다(대하30:20).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유다의 모든 왕 중에서 가장 훌륭한 왕이었습니다(왕하18:5). 그런데 히스기야가 죽은 후, 그의 뒤를 이어 12살 된 아들 므낫세가 왕위에 올라 55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지 열왕기하 21장 2절과 3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 부친 히스기야의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여 섬기며” 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웠습니다. 그리고 바알을 섬기기 위해 제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늘의 별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성전 안에 이방신을 섬기는 제단을 만드는 등,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가장 악한 일들만 골라했습니다. 또 왕하21장 6절을 보면 ‘그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는 자기 아들들을 불에 태워 우상에게 받칠 만큼 아버지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그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점쟁이나 무당들을 신임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이끈 왕이었습니다. 왕하21장 9절을 보겠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그는 자기만 잘못된 길로 간 것이 아닙니다. 그는 백성들까지도 악을 행하게 했습니다.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멸하신 다른 이방나라의 여러 왕들보다도 더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질문할까요? 지금 누구에 대한 이야기입니까? 므낫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므낫세가 누구입니까? 누구의 아들입니까? 존경스러운 훌륭한 왕 히스기야의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히스기야는 왕으로서 역할은 훌륭했지만, 아버지로서 역할은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백성들은 잘 다스렸지만, 가정의 자녀들은 잘 교육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의 아들 므낫세가 나라를 다스리는 55년 동안 유대 나라는 완전히 타락하고 국운이 기울어지지 시작했습니다. 뒤늦게 그의 말년에 회개하고 종교개혁을 일으켰지만 이미 기회는 지나가버린 후였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는 므낫세가 죽은 지 56년 만에 바벨론에게 망하고, 백성들은 70년 동안 나라 잃은 상태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 오실 때까지 400년 동안 나라다운 나라가 재건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히스기야가 자식을 잘못 키웠기 때문입니다. 그가 자녀교육에 실패했기 때문에 그의 가정이 망가졌고, 백성들을 타락하게 했고, 나라를 결딴나게 만들었고, 이스라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자녀에게 어릴 적부터 성경말씀을 가르치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 17)
모든 부모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자녀를 위탁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분께서는 부모에게 자녀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부모들은 자녀를 마치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합니다. 모든 자녀는 그리스도의 소유물입니다. 모든 부모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선물을 위탁받아서 그들을 이 땅에서 거룩한 그리스도인으로 양육시키는 책임이 맡겨져 있습니다.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분명합니다. 결국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하나님 사랑하는 것”과 자녀를 양육하고 가르치는 것을 똑 같은 자리에 두고 있습니다. 자녀를 믿음과 말씀으로 잘 기르는 것이 바로 마음과 뜻과 정성 다해 하나님 섬기는 것과 같은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 되도록 은혜를 베푸소서. 야곱과 같이 우리도 자녀에게 복을 빌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자녀를 위해 많은 기도를 저축하게 하옵소서. 자녀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게 하소서. 하나님 성전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은혜 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늘과 땅의 축복 받아 자자손손 세세 무궁토록 우리 성도들 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맡겨주신 자녀들을 믿음 안에서 양육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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