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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사의 1년 농사를 추수함

마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316 추천 수 0 2014.03.25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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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3:3-8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3.11.11 주일설교 http://sungamch.net 

허목사의 1년 농사를 추수함
마13:3-8



가을이 되면 내 아버지는 여름내 거둔 옥수수를 매상하곤 했습니다. 우리보다 조금 잘사는 집들에선 벼를 말려서 공회당 가득히 내다 놓고 등급에 따라 매상을 하고 돈을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이런 풍경도 일종의 추수감사입니다. 농부들의 추수감사는 한 해 농사로 거둔 낱알을 돈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산 사람들이 하는 ‘추수 감사’는 그런 낱알의 매상이 아니지요. 소득이 아니라 삶의 질 즉,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변화된 한 해를 살았나를 등급 매겨 보는 날이 그리스도 앞에서의 ‘추수감사’아니겠어요?

농사꾼에게 낱알이 농부의 한 해를 달아보는 저울이라면, 그게 매상하는 날이라면, 신앙인에게 추수는 당연히 ‘신앙의 성숙도’를 재보는 날인 것이고, 목사도 마찬가지로 목사로서의 한 해 농사를 교우들에게서 찾아보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매상하고 등급을 매겨 보는 날이기도 한 것입니다. 해서, 저는 오늘 목사로써 한 해 동안 어떤 농사를 지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물론 농사의 대상이 여러분들이었으므로, 제가 제 자신의 농사에 대해서 고찰해 가는 동안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성서가 말하는 등급의 어디쯤에 속해 있는지 등급을 매겨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등급 매겨 보기에 가장 적합한 성서의 말씀이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입니다. 이른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만들고 그들에게 가르친 첫 번째 비유라는 것을 전제하고 보셔야 합니다. ‘제자를 만들고 재자들에게 가르친 첫 번째 비유’라는 뜻은, 예수의 제자가 된 그들에게 ‘제자란 뭐냐’ 혹은 ‘어떤 제자가 될 거냐’하는 방향제시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비유를 문자 그대로 ‘농사짓는 경우’나, ‘어떤 소득의 문제’거나, ‘기도의 응답’같은 경우에 적용하려고 하면 어긋난 해석이 발생되게 됩니다. 우리가 다 아는 비유지만 바른 이해를 위해 한 번 더 본문을 보십시다.

보시오.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그가 씨를 뿌릴 때에 어떤 것들은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흙이 깊지 않아서 곧 싹이 돋아났습니다. 그러나 해가 솟아오르자 타버렸습니다. 뿌리가 없었기 때문에 말라버렸습니다.
또 다른 것들은 가시덤불사이에 떨어졌습니다. 가시덤불이 커지자 숨이 막혀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습니다. 어떤 것은 백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었습니다.(마13:3-8)

이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도 전해집니다. 예수님의 비유들 가운데 자신이 한 비유를 해석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왕국의 말씀을 들은 자가 누구든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의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갑니다. 이는 길가에 뿌려진 자입니다.
돌밭에 뿌려진 자, 그는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그것을 받아들인 자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뿌리가 없어 한 때 뿐입니다. 말씀 때문에 고난과 박해가 오면 그는 빨리 실패합니다.
가시덤불 사이에 뿌려진 자, 그는 말씀을 들었지만 이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 사이에 있는 자입니다. 말씀을 숨 막히게 하여 열매가 없을 것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자, 그는 말씀을 듣고 이해한 자입니다. 그는 열매를 맺고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냅니다(마13:19-20).

이렇게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네 종류의 제자 혹은 네 종류의 교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길가에 있는 사람, 돌밭에 뿌려진 사람, 가시덤불에 뿌려진 사람, 좋은 땅에 뿌려진 사람’입니다. ‘씨는’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좋은 땅’이란 ‘좋은 공동체’를 혹은 ‘좋은 교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시덤불’은 재물에 욕심이 많은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면 ‘돌밭’과 ‘길가’는 뭘 은유하는 것일까요?

사람 혹은 교인들을 네 종류로 대별하여 하나님의 왕국과 신앙의 성숙을 설명하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초기 유대교 사회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그 의도를 바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초기 유대교 현자들은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 특성 등을 네 가지 유형으로 대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선조들의 어록5:10-15>

사람에게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네 것이다’고 말하는 자,
이는 보통 유형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 속한다. 이를 소돔의 유형이라 말한다.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내 것이다‘이는 ’무지한 자‘이다.
‘네 것은 네 것이고 내 것은 네 것이다’ 이는 ‘자비로운 자’이다.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내 것이다’이는 사악한 자이다.

‘소돔의 유형’은 소돔 사람들과 롯의 말다툼에 근거해서 하는 말입니다. 창19:1-10에 보면, 소돔을 방문한 천사를 롯이 집에 들였을 때 소돔 사람들이 그들을 내어달라고 다투는 이야기죠. ‘무지한 자’란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보통 사람들을, 그저 물질에 매여 살다가 죽게 되는 사람들을 의역한 것입니다.

초기 유대교 랍비 문헌에 따르면 토라를 배우지 못했거나, 배우지 않는 자를 통칭하여 ‘무지한 자’라고 했습니다. 복음서에도 이 ‘무지한 자’가 자주 언급됩니다. 요7:48-49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따르거나 그를 메시아로 믿는 무리들을 ‘토라를 모르는 무리’즉 ‘무지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초기 예수 공동체 사람들은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이른바 ‘초대교회 현상’이 그것인데, 이걸 보고 당시의 랍비들이나 유대교도들이 이들을 보고 ‘내 것과 네 것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라고 비웃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어 세상사를 가르치는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소돔의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은 바리새들입니다. 재물에 욕심이 많은 사악한 사람들은 사두개 들입니다. 그리고 내 것과 네 것을 헷갈리는 사람들은 엣세네 교인들인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좋은 땅에 뿌려져 많은 수확을 거두어들이는 사람들은 자비로운 예수를 따르는 ‘예수 공동체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을 이렇게 네 가지 잣대로 구분하여 각자 그 유형에 전적으로 속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누구나 어느 정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 특성을 이렇게 네 가지로 나누어 어느 부류에 더 많이 해당되는지를 보는 것은 기본적으로 타당합니다. 예수 당시의 랍비들은 사람의 기질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습니다.

쉽게 성내고 쉽게 풀어지는 자
어렵게 성내고 어렵게 풀어지는 자  
어렵게 성내고 쉽게 풀어지는 자
쉽게 성내고 어렵게 풀어지는 자

이 가운데 가장 사악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쉽게 성내고 어렵게 푸는 자’입니다. 이런 기질의 소유자는 ‘내 것은 물론 내 것이고 네 것은 네 것’이라는 첫 번째에 해당됩니다. 그러면 이들의 이런 사고는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요? 초기 유대교에서 발전된 기본 교육 방침은 미쉬나를 따르는 것입니다. 미쉬나가 추구하는 가장 보편적인 진리는 우선 법을 지키고, 그 다음에 선과 악을 구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회가 바르게 유지되는 보편적인 법칙은 내 것과 네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이게 재판관의 특성입니다. 히브리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은 쉽게 성내고 쉽게 풀어지는 분입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당연히 어렵게 성내고 쉽게 풀어지는 기질의 소유자입니다. 내 것과 네 것을 구별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는 기질에서 어렵게 성내고 한번 화를 냈으면 쉽게 풀어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내 것과 네 것을 공동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서로가 형제와 이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쉽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잘못하여 화를 일으키면 화를 불러온 사람은 큰 벌을 받습니다. 엣세네 공동체에 그런 규례가 있습니다.

자기 친구의 사지가 흔들리도록 성나게 말하고, 그의 앞에 기록된 자기 이웃의 결정을 비난하며, 그 구원을 그의 손에 두는 사람은 일 년 벌 받는다.
만일 책에 기록된 사제들 중에 한 사제에게 열화로 말하면 그는 일 년 벌 받으며 대중의 결례에서 그의 영혼을 위해 구별된다. 만일 그가 실수로 말하면 육 개월 벌 받는다.
알면서 감춘 자는 육 개월 벌 받는다. 알면서 자기 이웃을 재판 없이 모욕한 사람은 일 년 벌 받으며 그는 구별된다.
자기 이웃에게 모질게 말하거나 알면서 속이는 자는 육 개월 회개할 것이다.
<단합체의 규례 6:27-7:5>

‘그의 앞에 기록되었다’는 말은 그 사람보다 이전에 공동체에 들어온 사람을 뜻합니다. 자기보다 앞서 공동체에 들어온 사람의 결정에 반대하여 말하고 자기 뜻대로 처리하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엣세네에서는 이웃에게 올바른 절차 없이 화내는 언행을 심각한 죄로 여겼습니다. 자기 이웃을 자기처럼 여겨서 그에게 좀처럼 화를 내지 않지만 일단 분노를 터뜨리면 쉽게 가라앉지 않기 때문에 벌을 받는 기간도 비교적 긴 것입니다.

한편, 자선을 하는 사람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기는 주고 남들이 주지 않기를 원하는 자, 그의 눈은 남들의 것에 악하다.
남들은 주고 그는 주지 않기를 원하는 자, 그의 눈은 자기 것에 악하다.
자기도 주고 남들도 주기를 원하는 자, 자비로운 사람이다.
자기는 주지 않고 남들도 주지 않기를 원하는 자, 사악한 자다.

자선을 하는 목적은 남을 돕기 위한 것이죠. 남을 돕는 행동은 의로운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자선-쯔다카’는 ‘정의-쩨데크’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자선은 의로운 행동이란 뜻입니다. 자선이 정의라는 말입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모두 함께 어려운 사람을 돕자고 나서는 의로운 사람입니다. 그 반대야 물론 재물에 대한 욕심이 우선이기 때문에 본인은 내지 않고 또한 남들이 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도 싫어하는 심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자기가 자선을 행하고는 뽐내면서 자선을 하지 않는 사람을 째려봅니다. 바리새 사람들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마6:1-2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자선을 행하지 말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한편, 다른 사람은 자선을 해야 하지만 나는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남이 한 자선에 자기 몫도 들어 있다고 억지로 우기는 것입니다. 남의 자선이 마치 내가 한 자선인 것처럼 슬쩍 도적질 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을 두고 자기 것을 악한 눈으로 쳐다보는 헷갈리는 무지한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토라 공부를 하는 학생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별했습니다.

빨리 알아듣고 빨리 잊어버리는 자, 그의 이득은 그의 손해로 나타난다.
어렵게 알아듣고 어렵게 잊어버리는 자, 그의 손해는 그의 이득으로 나타난다.
빨리 알아듣고 어렵게 잊어버리는 자, 이는 좋은 부류다.
어렵게 알아듣고 빨리 잊어버리는 자, 이는 악한 부류다.

미드라쉬 학교에 다니는 자들에게도 네 가지 유형이 있었습니다.

다니지만 행하지 않는 자, 다니는 이득이 자기 손에 있다.
해하지만 다니지 않는 자, 행하는 이득이 자기 손에 있다.
다니고 행하는 자, 자비로운 자.
다니지 않고 행하지 않는 자, 사악한 자다.

이런 네 가지 유형은 비단 ‘씨 뿌리는’경우에만 해당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유형은 항상 선생 밑에서 공부하는 제자들, 요즘으로 치면 교인들에게 적용하고 해당되었습니다. <선조들의 어록>을 해석한 책이 <나탄 랍비의 어록>이라는 것인데, 거기에도 제자들에 대한 네 가지 유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도 공부하고 남들도 공부하기를 바라는 자, 좋은 눈
자기는 공부하고 남들은 공부하지 않기를 바라는 자.
남들은 공부해도 자기는 공부하기를 원하지 않는 자.
자기도 공부하지 않고 남들도 공부하지 않기를 원하는 자, 악한 눈

‘좋은(착한) 눈’은 선한 성향의 성격을 뜻합니다. 잠언 22:9을 보세요, “착한 눈을 가진 사람은 복 받을 것이다. 그는 가난한 자에게 빵을 준다.” 한 편 ‘악한 눈’은 어떻습니까? 잠언서 28:22을 보세요. “악한 눈을 가진 사람은 재산에만 급급하여 궁핍이 그에게 올 줄 알지 못한다.”‘악한 눈’은 탐욕과 질투를 말하는 것입니다.

빨리 알아듣고 어렵게 잊어버리는 사람은 자기도 공부하고 남들도 공부하기를 바라는 착한 눈을 가졌으며, 자선을 행할 때도 자기도 내고 남들도 내기를 바라는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렵게 알아듣고 빨리 잊어버리는 사람은 자기도 공부하지 않고 남들도 공부하지 않기를 원하는 악한 눈을 가졌으며, 헌금할 때에도 재물에 욕심이 많아 자기도 내지 않고 남들도 내지 않았으면 하는 사악한 사람입니다.

랍비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당시의 토라 공부는 구원을 받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공부하고 남들은 공부하기를 바라지 않는 자는, 자선을 할 때 자기는 내지만 남들이 내는 것을 꺼린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나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이기심 때문에 그런다는 겁니다. 이는 토라 학교에서 배우기는 하나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이득은 자기 손에 머물러 있지, 하나님이 쳐다보고 받아  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는 세상에서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다음 비유에 드러납니다.
마7:24-27로,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바위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고....예수의 가르침을 배워서 알긴 아는데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까? 여기서 행함은 자선이기도 한 것입니다.

남들은 토라 공부를 위해 학교에 다녀야 하지만 자기는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은, 헌금을 낼 때도 남들은 내도 자기는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선행을 해도 그는 남을 위해 선행을 한 게 아니라 자기를 위해 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이득이 그의 손에만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씨 뿌리는 비유’는 사람을 네 가지로 분류하는 유형과 관련이 있는 비유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의 가르침을 듣고 이해한 사람은 착한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며 많은 사람들을 가르쳐 바른 길을 걷게 하는 의인입니다. 이 사람이 ‘좋은 땅’의 사람이며, 그의 삶은 백배, 삼십 배, 육십 배의 소출을 낸 사람입니다. 이들은 자비롭고 의로운 사람입니다.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의당 네 것인 사람입니다. 더디 노하고 빨리 푸는 사람입니다.

**가시덤불에 뿌려진 사람은 탐욕과 질투가 많은 사악한 사람입니다.
자기 재산은 물론 자기 것이고, 남의 재산도 자기 것인 양 하는 사람입니다. 당시대는 성전에 사제들이 이런 부류의 대표였습니다. 사리사욕에 눈이 먼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씨앗을 가시덤불에 뿌리는 것과 같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돌밭에 뿌려진 사람은 즉시 기뻐하고 상황이 어려워지면 곧 슬퍼하는 유형입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유형입니다. 쉽게 성내고 쉽게 풀어지는 사람입니다.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네 것이라고 사리가 분명한 사람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셈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돌밭에서 공부하는 사람은 어려움이 닥치면 배움이 깊지 않기 때문에 쉽게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부한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혼자 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구하고’ ‘찾고’ 할 때 그 ‘찾는 것’이 토라를 같이 공부할 동료가 되는 것입니다.

**길가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데 곧 악한 자가 와서 그가 배운 지식을 빼앗기는 사람들입니다. 막4:15을 보세요. 사탄이 와서 그 말씀을 빼앗아 간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말씀을 어렵게 알아듣지만 잘 잊어버리지는 않는 부류에 속합니다. 말씀을 조금 알면서도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이상 깊이 공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이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내 것’이라고 헷갈리는 사람입니다. 복음과 자기 생각,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 경험이 헷갈리기 때문에 사탄이 찾아와 금 새 그를 뒤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변절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입니다.

내가 목사로써 한 해 농사를 매상하여 등급을 매기면, 여러분은 이스라엘 선생들의 전통대로, 오늘 성경 말씀대로 네 종류의 사람 중에 한 등급에 속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일일이 누구는 뭐고 누구는 뭐고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제게 여러분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네 종류의 사람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목사로써 하나님 앞에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 같은 교인들이 많아서 100배, 60배, 30배의 ‘메타모르포시스’ 즉 신앙의 성숙과 변화를 목회의 열매로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날인 것입니다.

자, 여러분은 지금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한 해를 살았습니까?

그것이 제가 하나님께 바치는 한 해 농사의 열매입니다. 여러분이 곧 나의 슬픔이기도 하고, 나의 기쁨이며 자랑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가시덤불, 돌밭, 길가와 같은 교인의 상태로 살았다면 그것은 여러분에게도 제게도 슬픔입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각오를 하나님 앞에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년에는 좋은 밭의 사람으로 신앙 농사 잘 짓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행복이요 목사의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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