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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의 신앙 농사는

미가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049 추천 수 0 2014.03.25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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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미5:3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3.11.14 주일 http://sungamch.net 

이제, 우리의 신앙 농사는
미5:3





초기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이들은 ‘착한 눈’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착한 눈’이란, 씨 뿌리는 비유에 나오는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죠. 네 종류의 사람들 중에 ‘옥토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믿고 행하며 스스로를 빛의 자식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에게 빵을 주고 천대 받는 사람들의 구제를 먼저 생각하는 의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들과 사두개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는 예수 공동체가 꼴 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공격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땅’과 같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진리에 대해 배움을 받고, 그 배운 대로 자선을 행했습니다. 랍비들의 성서 해설서인 미드라쉬에도 가난한 사람을 도운 착한 여자가 동네 사람들의 험담에 시달리며 하나님에게 절규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유다 랍비는 말했다.
“그들은 소돔에서 선포했다. 누구든지 가난하고 가련한 자에게 빵 한 덩어리를 자기 손으로 움켜쥐면 그를 불 속에 태울 것이다.”
롯의 딸 플로티트는 소돔의 고관들 중 한 사람과 결혼했다. 그녀는 도시 사거리에서 몹시 가난한 사람을 보았다. 그녀의 마음은 그 때문에 슬펐다. 이렇게 말한다.
“내 마음이 가난한 자를 위해 슬퍼하지 않았느냐?”(욥30:25)
그녀는 무엇을 했는가?
그녀가 물을 길으러 나가는 날마다 집안의 음식을 그녀의 항아리에 넣어 그것으로 가난한 자를 먹여 살렸다.
소돔 사람들이 말했다.
“이 가난한 자는 어떻게 스스로 살아가는가?”
그들이 이 사실을 알고 나서 그녀를 불태워 죽이려고 데려왔다.
그녀는 말했다.
“세상의 하나님이시여, 소돔 사람들에게서 나의 공정함과 결의를 돌보아 주십시오.”
그녀의 외침은 영광의 보좌 앞에 올라갔으며 찬미 받으시고 거룩하신 분이 말했다.
“내가 좀 더 내려가서 과연 나에게 들려온 그녀의 외침이 그러했는지를, 그리고 이 젊은 여인의 외침처럼 소돔 사람들이 행했는지를 보겠다. 내가 그 기반을 위로 그리고 그 표면을 아래로 뒤집을 것이다.”(창18:21)
‘그들의 외침이 그러했는지’라고 쓰여 있지 않고 ‘그녀의 외침이 그러했는지’라고 쓰여 있다. 참으로 그분은 말씀하신다.
“현자들과 걷는 자는 지혜로워지고 어리석은 자들과 어울리는 자는 악해진다.”(잠언13:20) <엘리에제르 랍비 해설집 25장>
이처럼 가난한 자에게 자비심을 일으키는 사람과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행하는 현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의 길을 걷는 의로운 자에 포함되었습니다. 가난한 자와 함께 자신의 재산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들의 외침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랍비들은 이야기 합니다. <선조들의 어록>에는 이웃에게 자비를 한껏 베푸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복음서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기 재산을 나누어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단락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마19:16-22에 나오는, 예수에게 영생을 묻는 사람의 이야기인데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선행을 행하라는 말입니다. 선행의 첫 번째 길은 십계명을 지키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 젊은이는 이런 계명들은 모두 지켰다고 말하죠. 그 다음으로 부족한 것을 알려 달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으로 “당신이 완전해 지려고 한다면” 즉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하려면 이걸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게 뭐였습니까?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하는 것이며, 이로써 하늘의 보물을 차지할 수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계명을 지키며 자선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입니다. 영생을 추구하는 이 젊은이가 과연 그의 많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예수를 따랐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알 수 있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가난한 자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입니다.”(눅6:20)라고 말 한 예수의 말씀이 전해집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는 예수 공동체에 들어와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행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게을러서 가난하거나, 부자가 되려다가 가난해진 사람이거나,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그런 ‘가난’이 아닙니다. 바로 그 가난입니다. 이렇게 해설 할 수 있는 단서는 같은 단락을 기록한 다른 복음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천국이 그들 것입니다.(마5:3)

여기서 ‘마음으로’라는 단어에 많은 혼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가난에 대해 ‘마음으로’라는 단어를 덧붙인 것은 ‘가난’이 어떤 것인지를 더욱 명백히 하려는데 있는 것이지, ‘가난’을 모호하게 하려는데 있지 않습니다. ‘마음’은 히브리어로 ‘레브’입니다. 이 ‘마음’이라는 단어는 모세 오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모세오경]이렇다는 말입니다.

이걸 알려면 안식일에 회당에서 모세오경을 읽는 관습으로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1-4세기 이스라엘 땅의 회당에서는 모세오경을 3년 단위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그러나 3-6세기 바벨로니아 회당에서는 1년 단위로 읽었습니다. 이런 풍습은 중세가 되기까지 3년 단위로 읽는 회당도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1년 단위로 안식일에 회당에서 모세오경을 읽었습니다.

창세기에서 시작해서 모세오경의 마지막 부분인 신명기 33-34장의 독송을 끝내고 다시 창세기 시작 부분을 읽는 날은 축제의 날로 초막절에 이 행사를 했습니다. 이날을 이들은 [심 하트 토라]라고 합니다. 신명기의 마지막 단어가 ‘이스라엘’ 이며  이스라엘의 마지막 글자는 ‘라메드’입니다. 그리고 새로 읽는 창세기 1장1절은 ‘처음에- 베트’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라메드와 베트를 합한 단어 [레브]를 썼는데, 그게 바로 [마음]입니다. 그러니 [마음]이라는 단어는 모세오경의 처음과 마지막 이라는 것이고, 이것은 곧 토라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고 [레브]즉 [마음], 창세기-신명기까지 열심히 공부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으로 가난하다’는 숙어를 모세오경의 은유적인 표현인 레브(토라 공부)와 비교하면 ‘레브(토라 공부)로 가난한 자’, 즉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데 전념하여 돈벌이에는 급급하지 않음으로 생활이 구차하게 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난하게 살더라도 토라 공부, 하나님을 배우고 익혀 그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길이라는 말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선조들의 어록 6:4>에 전해진 힐렐의 가르침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토라의 길이다. 네가 빵을 소금에 찍어 먹고 물을 잣대로 재어 마시며 땅바닥에 누워 자고 구차한 삶을 살면서도 토라 공부에 애쓰며 그렇게 실천하여 산다면 ‘너는 행복하며 너에게 좋은 것이다’(시128:2)이 세상에서 행복하며 오는 세상에서도 좋을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데 전념하는 가난한 자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착한 눈을(마음)가지고 싶다면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행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행하는 사람은 자기도 공부하고 남들도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모두 하나님의 구원 사업에 동참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엣세네 문헌에도 가난한 자의 삶이 그들 공동체의 길이라고 자부하는 글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남긴 시37편의 해석이 그렇습니다.

“겸손한 자들이 이 땅을 이어 받으며 그들은 많은 평화에 즐거워한다.”(시37:11)
그 해석, 이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참회의 기간을 얻고 악마의 모든 올가미에서 구해질 것이다.

‘가난한 자들’은 그들 공동체를 뜻하며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고 구원의 길에 동참할 수 있게 이끌어준다고 말합니다. 엣세네의 이런 문헌은 또 있습니다.

누가 자기 백성 중에 가난한 자들을 약탈하고 과부들을 희생자로 만들고 고아를 죽이겠느냐? 부정한 것과 정하 것 사이를 갈라놓을 것이며 거룩한 것과 세속한 것 사이를 알아야 할 것이다.

사람은 그의 형제(공동체)를 자기처럼 사랑할 것이며 가난한 자와 거지와 떠돌이의 손을 잡아줄 것이다. 사람은 그 형제의 평안을 추구할 것이며 사람은 그이 육신의 친척을 속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온갖 필요에 대비하는 무리의 규례다.
매달 이틀 일한 임금을 감독과 재판관의 손에 주며 이것으로 환자를 도와주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붙잡아주며 기운 없는 노인과 죽어가는 사람과 외국인에게 잡혀간 자와 친척이 없는 처녀와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와....이 없는 동료를 도와준다.<새 언약의 규례 65:13-16>

예수 이전에 유대인들은 이미 이런 신앙적 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배우는 토라 공부와 가난한 자의 구제를 위해 자신의 소유를 나누는 자선은 필수불가분의 관계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공부한 사람은 또 자신의 소유를 나눠 자선하는 일도 성실하고 충실해야 합니다. 이게 그들의 신앙적인 틀이었습니다.

이런 바탕을 깔고 복음서의 예수 말씀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하고 있죠. 가난한 자들을 붙잡아 주고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라고 말입니다. 이는 엣세네의 기본 강령과 같습니다. 바리새나, 엣세네나 예수의 공동체나 지혜로운 사람은 모두 자비롭고 의로운 사람입니다.

랍비들이 읽던 미드라쉬에도 한 부유한 랍비가 그의 동료와 제자들이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고 밭을 사서 그곳에서 나오는 수확으로 좀 더 편하게 공부하라고 그들에게 돈을 주었는데 그들은 그 돈의 일부로 토라 두루마리를 사고 나머지는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타르폰 랍비는 아카바 랍비에게 여섯 개의 은전을 주며 그에게 말했다.
“가서 땅을 좀 사시오. 그래서 우리가 그곳에서 먹고살며 토라 공부에 함께 열중합시다.”
그는 돈을 가져다가 서사들과 미쉬나 선생들과 토라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건네주었다.
얼마 후에 타르폰 랍비를 그를 만나 그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말한 땅은 샀소?”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에게 “그래서 좋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그에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까?”
그는 그를 데리고 서사들과 미쉬나 선생들과 토라공부를 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매입한 토라 두루마리를 보여 주었다.
그는 그에게 말했다.
“그냥 일하는 사람은 없소? 밭을 일구는 이는 어디 있습니까?”
그는 그에게 대답했다.
“그것은 다윗 왕과 함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여, 그는 그분의 계명들로 매우 즐거워한다. 그의 후손은 땅에서 용맹하게 되고 의로운 자들의 세대는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그의 자선(정의)은 영원히 서 있다.”(시112:1-)

타르폰 랍비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상속받은 재산이 많았습니다. 그는 동료 랍비들이 보다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아카바 랍비에게 돈을 주어 농토를 사도록 한 것입니다. 토라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공부에 전념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떤 이는 생업에 종사하면서 학교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생업에 매달리는 시간이 많을수록 토라 공부가 소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르폰 랍비는 학교 옆에 밭을 매입하여 수확을 내고 그 수입으로 학생들의 생활을 돕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토라 공부에 열중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런데 아카바 랍비와 그 동료들은 가난해도 토라 공부에 열중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땅을 사는 대신 오는 세상의 땅을 살 수 있는 토라 두루마리를 구입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토라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으로 나눠 주었는데,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 오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니 행복 아니냐고 하는 겁니다.

가난을 극복하는 것 보다는 토라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 이들의 삶의 이념이었습니다. 예수도 이런 기본이념의 밖을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잠언 미드라쉬>에는 가난과 메시아를 엮어 해석하는 문구가 나옵니다.

“네 가난이 보행자처럼 온다.(잠6:11)”
이것은 이스라엘의 우두머리로 오는 미래의 메시아 왕이다.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왕이 그들을 앞서 가며 주님은 그들의 선두에 간다.”(미가2:13)

여기서 ‘가난’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우두머리라는 단어 ‘레쉬’와 같은 것입니다. ‘메시아는 곧 가난 이다.’라는 말입니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입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의 우두머리가 바로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 인 것입니다. 그 우두머리가 바로 예수인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당시의 예수 공동체(오늘날로 말하면 교회)며, 예수 공동체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고 자선하는 삶을 신앙의 푯대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입장에서 보면 예수 공동체가 바로 ‘참 이스라엘’인 것이죠. 그냥 가난하니까 복을 받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마음’으로 인해 가난해지면 오히려 그게 복의 근원이 되어 천국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지어야 할 신앙의 농사가 무엇인지 명백해 집니다. 인생을 사는 동안 무엇보다도 진리 탐구에 집중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전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가난해진다 하더라도 근심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천국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는 가난한 자의 우두머리입니다. 그리고 자선(헌금)을 베푸는 일도 진리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영생을 묻는 젊은이도 진리를 배우는 일에는 합격했지만 자선을 행하는 일에서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 하는 헌금도 자선의 한 방편인 것을 잊지 마세요.

이게 우리가 지어야 할 신앙의 농사입니다. 온갖 허세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재물은 자선을 하는데 사용하십시오. 힘써 그리하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전념해서 지어야 할 신앙의 농사입니다. 그러니 2014년에는 기본에 충실하십시오. 말씀을 배우기 위해 마련된 시간을 적극 활용하고, 자선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잃지 말고 참여하십시오. 그것만이 여러분이 하셔야 할 일입니다. 이 두 가지 열심 외에 다른 일들에 매달려 살면 자신의 영혼이 궁핍해지고 생명이 멸실되는 것을 경계면서 말입니다.  

자, 이제 2014년 신앙의 농사를 짓기 위해 출발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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