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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배우고 깨닫는 일에 대한 두 비유

마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203 추천 수 0 2014.03.25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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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2:1-14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3.12.4 주일 http://sungamch.net 

성서를 배우고 깨닫는 일에 대한 두 비유
마22:1-14, 25:14-30



어느 포도밭 농장 주인이 일일 노동자를 데려다가 일을 시킵니다. 아침 일찍 제 시간에 사람 몇 명을 뽑아 포도원에 보내고, 한 낮에도 주인은 고용시장에서 사람을 뽑아 포도원으로 보냅니다. 심지어는 퇴근 직전에도 일꾼을 뽑아 포도원으로 보냅니다. 그리고는 품삯을 주는데 모두 똑같이 일당을 주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이건 시장경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과 학생’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진리를 가르치고 깨닫는 경우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지, 사업가의 경영비법이나 윤리, 노동자의 인권이나 생존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오늘은 앞의 ‘포도원 주인’의 비유와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두 가지 비유를 더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드리는 까닭은, 우리가 교회 다닙네 하면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성서를 바로 깨닫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바로 알아야 그 삶이 반듯해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금년에 속회를 다시 짜면서 속회리더의 선정 기준을 알려 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허목사의 설교를 중심으로 소그룹 다이나미스를 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담임목사가 어떻게 성경을 해석하고 있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공부에 참여하여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근거한 신앙을 바꿔야 합니다. 그러니 수요성서읽기나 새벽,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성서를 가르치는 담임목사와 접촉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회의 리더는 바로 이런 분들이 선정되었습니다.

자, 과연 정말 그런지 보십시다. 그리고 여러분의 성서 지식의 한계가 어느 만큼인지도 깨닫게 되시기 바랍니다.

먼저 선행 본문으로 읽은 마22:1-14을 봅시다. 우리는 흔히 이 비유를 ‘왕의 아들 혼인 잔치의 비유’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있지만 혼인 잔치에 초대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해석합니다. 그 내용을 다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어떤 왕의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어 왕이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그런데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초청한 사람들이 잔치에 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화가 난 왕이 길거리에 나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잔치에 불러 모았습니다. 그런데 왕은 길거리 사람들을 보고는 왜 예복을 갖춰 입지 않았느냐고 성질을 부립니다.

아무나 초대해 놓고는 의복을 갖춰 입지 않았다고 다시 쫓아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지만 실상 선택되는 사람은 적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선택의 기준, 다시 말해 예복이란 뭘 말하는 걸까요? 이걸 알기 위해 <잠언 미드라쉬>의 내용을 미리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이라 랍비는 말했다.
“미래에 찬미 받으시는 거룩한 분이 사악한 자들에 대해 그들을 어떻게 합니까? 미래에 그분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악한 자들아, 너희는 너희 힘으로 헛것을 위해 애썼다. 너희는 말씀과 선행에 열중하지 않았으며 내 세상에서 즐거움이 없는 빈 그릇처럼 살았다. 그러니 나는 너희에게 줄 즐거움이 없다. 잔치를 베푸는 왕의 비유를 들겠다.
왕은 잔치에 모든 사람을 초청했으나 그때를 정해 놓지는 않았다. 왕의 말을 존중한 이들은 가서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발랐다. 그리고 그들은 옷을 세탁하고 그 스스로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했다. 그러나 왕의 말을 존중하지 않은 이들은 가서 그들의 일을 했다. 잔칫날이 오자 왕은 ‘모두들 곧바로 오시오’했다.
이들은 영광스럽게 왔으나 그들은 수치스럽게 왔다.
왕은 말했다.
‘내 잔치에 스스로 준비한 이들은 내 잔치에서 먹을 수 있지만 내 잔치에 스스로 준비하지 않은 이들은 내 잔치에서 먹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곳을 떠나 그냥 갈 것 같은가?
‘아닙니다. 이들은 먹고 마시며 기뻐하지만 그들은 두발로 서서 괴로워하고 스스로 미안한 것을 보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보라, 내 종들은 먹겠지만 너희는 굶주릴 것이다. 보라, 내 종들은 마시겠지만 너희는 목마를 것이다. 보라, 내 종들은 기뻐하겠지만 너희는 수치스러워 할 것이다. 보라, 내 종들은 좋은 마음으로 환화 하겠지만 너희는 아픈 마음으로 울부짖으며 넋이 부서져 통곡할 것이다’(이사야 65:13-14)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들은 왕의 말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에 대해 솔로몬은 그의 지혜로 이렇게 풀이하여 말했다.
‘사람 앞에 올바른 길이 있어도 그 마지막은 죽음의 길이다’(잠16:25)
‘사람 앞의 올바른 길’,이것은 찬미 받으시는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존중하는 이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 마지막은 죽음의 길이다’, 이것은 찬미 받으시는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는 이들을 말한다.“<잠언 미드라쉬 16:11>

제이라 랍비의 ‘잔치 비유’에서 왕은 하나님을, 잔치는 천국을 뜻합니다. 잔치에 초대 받아서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여 열심히 말씀을 배우고 깨달은 의인들이고, 초대 받았으나 수치스러워서 먹을 수 없는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깔보고 자기 일에 바쁘게 매달려 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잔치에서 구경만 하다가 괴로워서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유대인의 신앙적 전례를 들어, 랍비의 전통에 등장하는 ‘잔치의 비유’와 오늘 우리가 읽은 ‘왕의 아들 혼인 잔치의 비유’를 비교해 봅시다. 잔치에 예복을 입었다는 말은 무어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그래서 열심히 배우고 바로 깨달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들은 혼인 잔치에서 먹고 마시며 즐거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복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말씀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기 멋대로 살면서 말씀을 배우지도 않고, 깨닫는 일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 경험과 지식’이 ‘자기 믿음’일 뿐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지 않고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 천국 잔치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류는 밖으로 내 보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25:14-30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도 함께 보십시다. 이 또한 앞의 ‘왕의 아들 잔치의 비유’와 맥을 같이 하기 때문에 말씀의 기둥으로 삼은 겁니다. 여기에도 ‘어둠 속으로 내 쫓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라는 돈의 단위를 보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이 말씀을 읽는 이들은 이 말씀이 ‘돈’이나 혹은 ‘재능’에 관한 비유라고 생각하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면, 게으르다고 쫓겨난 사람은 사업가의 능력이 모자란다는 뜻이 됩니까? 이게 무슨 회사 경영하는 이야기예요? 이걸 잘 알기 위해서 앞에서 참고한 <잠언 미드라쉬>에 나오는 ‘과수원 주인의 비유’를 인용하겠습니다.

“공정한 추와 저울은 주님의 것이고 주머니의 돌 저울추는 그분의 행하심이로다.”(잠언16:11)
‘추’이것은 말씀이다.
‘저울’이것은 랍비들의 판례다.
‘주님의 것’이것은 법도(할라카-계명)다.
‘주머니의 돌 저울추는 그분이 행하심이다’이것은 탈무드이다.
이것들을 행하는 자들는 오는 미래에 자기 보수를 받을 것이다.
갈릴리 사람 요세 랍비는 말했다.
“이것은 큰 과수원을 가진 살과 피의 왕에게 비유할 수 있다. 왕은 과수원 가운데에 높은 망대를 세웠으며 그 가운데 정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일꾼들을 고용하여 작업에 열중하도록 임무를 주었다. 아침에 왕이 일어나서 마대 꼭데기로 올라갔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볼 수 있었고 그들은 그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분의 거룩한 궁전에 계신다. 온 땅은 그분 앞에서 조용히 해라.’(하박국2:20)
날이 저물자 왕은 내려와서 판가름을 하려고 그들 앞에 서서 말했다.
‘괭이질한 이들은 나와서 임금을 가져가시오. 쟁기질한 이들은 나와서...잡초를 뽑은 이들은 나와서....’
이렇게 하여 그 가운데서 작업에 열중하지 않은 일꾼들이 남게 되었다.
왕은 말했다.
‘이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그에게 말했다.
‘우리는 가득찬 그릇을 빈 그릇 속에 비워 놓았습니다’
왕은 말했다.
‘가득찬 그릇을 빈 그릇 속에 비워 놓은 그들에게 내가 무슨 호감을 가지겠느냐?’
왕은 덧붙여 말했다.
‘내 작업에 열중한 이들은 보수를 받을 것이지만, 내 작업에 열중하지 않은 이들은 내보내어서 내 말에 반동한 것으로 처형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찬미 받으시는 거룩한 분은 그분의 세상을 만들어내고 사람을 그 가운데 놓았으며 그들에게 말씀(토라)와 계명들과 선행에 열중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는 그분의 쉐키나(현존)가 하늘에 자리 잡게 하고 거기에서 그분은 그들을 보지만 그들은 그분을 보지 못한다. 오는 미래에 찬미 받으시는 거룩한 분은 심판대에 앉아 말할 것이다.
‘누구든 말씀에 열중한 이들은 나와서 그 보수를 받아가라’
이렇게 말한다.
‘수를 세는 이는 어디 있을까? 무게를 재는 이는 어디 있을까? 망대들을 세우는 이는 어디에 있을까?’(이사야33:13)
‘수를 세는 이는 누구인가?’
이들은 하늘의 하나님을 위해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이들이다. 그들은 와서 그 보수를 가져갈 것이다.
‘무게를 재는 이는 누구인가?’
이들은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을 재는 이들이다. 그들은 와서 그 보수를 가져갈 것이다.
‘망대를 세우는 이는 누구인가?’
이것은 말씀을 배우고 진리를 깨닫는 이들이다. 그들은 와서 그 보수를 가져갈 것이다.”<잠언 미드라쉬 16:11>      

미드라쉬에 나오는 ‘과수원의 비유’에서 왕은 하나님을, 큰 과수원은 이스라엘을, 정원은 말씀을 가르치는 토라 학교를(요즘으로 치면 교회), 일꾼들은 토라(말씀)을 배우는 학생 또는 교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은 그에 합당한 보수를 받겠지만 공부를 게을리 한 사람들은(이들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깔보는 사람들)학교에서 쫓겨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을 잰다]는 말은 성경해석의 한 방법입니다. 가벼운 계명을 지킴으로 무거운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무엇이 가볍고 무엇이 무거운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마6:26에 ‘하늘의 새 들의 꽃’을 이야기 하십니다. 이것은 사람이 새들보다 더 귀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새들도 하늘의 법칙을 따라 가볍게 사는데 사람이 사는 세상은 새들보다 더 무겁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과 같은 것들을 더 중요한 계명을 지켜야만 하늘의 법칙을 따라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달라트의 비유’와 미쉬나의 ‘과수원’의 비유를 비교해 봅시다.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주인은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입니다. 종들은 물론 제자들입니다. 주인의 재산이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입니다. 선생은 영행을 떠난 동안 자기 제자들에게 능력대로 수준에 맞는 사람들끼리 서로 배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늘려 보라고(이게 속회 이다)한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는 5년 정도 된 학생(5학년)으로 괭이질을 한 일꾼이요, 두 달란트는 뭐 2학년 장도로 쟁기질을 한 일꾼이며, 그리고 비록 낮은 학년 이라 할지라도 열심히 배울 마음 없이 그냥 시간만 허비 한다면 그 학생은 토라학교를 계속 다닐 적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학교에서 내 보내는 것입니다. 이런 학생은 가득찬 그릇을 빈 그릇 속에 그냥 옮겨 담아놓는 사람, 즉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진리 공부에 게으른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 처음에 사람을 만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계명을 지키며 의로운 선행을 할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현존을 포도원의 망루에 올라가게 하여 그곳에서 사람들을 지켜보도록 하게 한 것이라는 겁니다.

‘과수원의 비유’는 메시아 예수님이 ‘거룩하신 분의 영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는 세례자 요한의 말과 조응합니다. 하나님의 현존은 포도원의 망루에 앉아서 사람들의 잘잘못을 보고 그들을 심판하여 죄인들은 어둠속으로 쫓아낸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어둠은 지옥을 가리키고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은 지옥 불에 빠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가 거룩한 분의 영과 불로 세례를 준다고 하면서 이렇게 부연 설명하는 겁니다. “그는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밀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울 것입니다.”(마3:12)

여기서 ‘밀’은 하나님의 말씀 공부에 열정적인 학생들을, 곳간은 공동체를, 쭉정이는 말씀 공부에 게으른 학생들(교인들)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성경해석에 관심 없이 사는 사람들(게으른)은 어둠 속으로 쫓겨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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