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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無常)에서 영원으로

시편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375 추천 수 0 2014.03.25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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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90:12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4.1.23 주일예배 http://sungamch.net 

무상(無常)에서 영원으로
시90:12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이고, 유명하기가 하나님 버금가는 어떤 목사님이 세상의 법정에서 5년의 징역형과 추징금 72억 원을 구형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뭐 그런데도 여전히 그를 신뢰하는 교도들은 그분의 언변에서 하늘의 은혜를 받는다고 하니 이 곤혹스러운 사태를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화요일에 속초에서 이 소식을 접했는데, 마침 그곳에 우리교회 장로님 두 분도 함께 계셨던 지라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만약 목사가 아니고 평신도라면 나는 이쯤에서 기독교를 떠날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동안 하나님을 담고 있는 줄 알았던 ‘기독교’라는 그릇을 깨 버리겠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했느냐 하면 둘 중에 하나는 거짓부렁이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가짜든 아니면 기독교가 가짜든 양단간에 하나는 가짜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군중들은 그런 목사가 아직도 믿을만하다고 하고, 그가 말하는 바가 진리라고 믿고 따른다니 그렇다면 그가 옷처럼 입고 있는 기독교가  가짜가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자, 이제 보십시다.

우리는 엊그제 신년이니 새해니 어쩌고 하면서 2014년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스무날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덧없는 세월과 더불어 인생도 물처럼 흘러갑니다. 세월만 유수가 아니라 인생도 결국 유수와 같은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이걸 두고 ‘찰나 같은 인생’이라고 합니다. 산다는 거 그거 ‘눈 깜짝할 새’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는 그걸 호흡지간이라고 합니다. 숨 한 번 들이쉬고 내 쉬는 게 인생이라는 겁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세월의 덧없음을 ‘쏘아 논 화살’같다고 합니다. 인생의 낳고 죽음이 시위를 떠난 화살의 짧은 순간을 의미하는 겁니다. 시편기자는 90:10에서 ‘날아간다’고 말합니다. 인생이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에 대한 화법이 왜 이런 걸까요? 무상(무상)하기 때문입니다. 무상의 사무침은 전도서 기자의 입을 통해 다시 확인됩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희랍 사람들은 세월의 덧없음을 크로노스의 노래로 표현했습니다. 이게 뭔가 하면, 한쪽에서 실타래로 천을 짜고 다른 한 쪽에선 크로노스라는 시간의 신이 계속 실타래를 푼다는 겁니다. 그렇게 실타래가 다 풀려버리면 끝나는 게 인생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무상한 게 인생입니다. ‘무상’이란 국어사전에서 ‘헛되고 헛되다’라는 뜻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는 것이 철학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시작이 종교의 출발점이 됩니다. 철학이나 종교는 그 바탕이 ‘인생 무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말입니다. 만약 시간의 무상함이 사무치지 않는다면 그건 철학이 아니라 궤변이고, 인생의 무상함을 바탕으로 그것을 넘어서지 않다면 그것은 종교가 아니라 종교로 위장한 ‘영리’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날을 계수한다는 게 뭡니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화요일에 속초엔 눈이 많이 왔습니다. 점심때를 지나 춘천으로 출발했습니다.  한계령을 넘으니까 눈이 오지 않아서 양구로 돌아왔습니다. 설경이 이만저만 아름다운 게 아니었습니다. 앞에 앉았던 제가 뒤에 계신 안장로님께 감히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장로님, 저 산의 아름다운 눈송이들을 꼭꼭 마음에 담으면서 보세요. 앞으로 20번 정도 보기도 어려우실 테니까요.” 참 건방진 말이었지만 저는 늘 그런 마음이 듭니다. 마당에 눈을 쓸면서도 앞으로 20번의 겨울 마당 눈을 치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 눈 쓰는 일이 마냥 감동일 때가 있습니다. 계수라는 게 이런 겁니다.

그렇게 인생무상을 깨닫고 그걸 넘어서는 영원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 시편기자의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란 모름지기 이런 인생의 무상을 넘어서서 영원을 획득하는 것인데, 어쩌자고 신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목사가 그 무상한 탐욕과 권력의 거미줄에 걸려들어 평민들은 엄두도 못 낼 어마어마한 액수의 추징금을 내야하는 처지에 빠진 것입니까? 과연 인생의 날을 잘 계수하고 영원의 지혜를 구한 것입니까?

시간의 무상함에서 영원을 잡으려는 지혜가 전통적인 의미에서 철학입니다. 이 영원의 지혜를 실천하려는 것이 종교입니다. 희랍인들은 인생의 비극적인 무상을 넘어서는 것이 이데아라고 했습니다. 우파니샤드는 생멸하고 변전하는 마야에 대하여 브라흐만의 영원을 사모했습니다. 노자나 장자의 철학을 구하는 이들은 자연에 편만한 도에 돌아감으로써 자연 그대로의 영원에 살기를 구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피조물적인 무상의 시간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영원을 종교적인 실천의 핵으로 삼았습니다. 이게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이게 목사가 말하고 교우들이 실천해야하는 신앙의 모체입니다.

기독교는 이걸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고 부활을 통해 영원의 세계를 확보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걸 믿지 않으면 기독교인 아니고, 이걸 추구하지 않는 이는 또한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신앙생활 하는 그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인생무상을 깨닫고 영원을 바라보고 산다는 뜻입니다. 만약 무상한 것만 깨닫고 말면 그것은 허무주의입니다. 종교는 그 허무주의, 무상을 넘어서서 영원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영원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무상이 영원으로 인도되고 영원이 무상을 조명할 때 인생이 새로운 빛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영원한 빛을 깨달았습니다. 깨닫고 난 다음에 바울은 고린도후서 9:6에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말합니다. 영원을 위해 많이 심으면 거둘 게 있지만 무상한 인생에 심어 보았자 거둘게 없다는 뜻입니다. 이 고백은 그의 자전적인 고백입니다. 그는 지식과 경험을 무상의 수고에 비유하면서 ‘배설물’이라고 했습니다. 고후4:18을 보세요. 바울은 말합니다. “인생은 참으로 잠깐이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이다.” 이것이 바울의 복음입니다.

그러니 앞에 예로 든 어느 목사님의 실례는 아주 무상한 인생의 표본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예수 신앙이 아닙니다. 그는 그의 변호사를 통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내가 벌을 받으면 실족할 사람들이 많을 테니 봐 달라’뭐 그렇게 변론을 했다고 합니다. 내 생각에는 봐 달랠 게 아니라 무상한 삶의 방식을 버리고 영원한 것에 씨앗을 뿌려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누린 세상의 부귀 명예에 대한 위기라고 여기지 말고 영원으로 들어서는 기회를 삼았어야 했습니다.    

50병이라는 게 있답니다. 나이 쉰 살에 생기는 육체적인 질병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50세를 전 후로 해서 맞게 되는 인생의 공허와 무의미와 무상의 정신적인 우울증을 일컫는 말이랍니다. ‘이제껏 무엇을 위해 살았나?’ ‘이루어 놓은 게 뭔가?’ 같은 무상의 사무침이 일어나는 나이라는 것입니다. 가슴만 공허한 것은 아닙니다. 온전하던 육신도 하나 둘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자고 나니까 어제의 내가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옆구리가 결리고, 팔이 올라가지 않고, 알 수 없는 통증이 계속되기도 합니다. 이래서 50병은 입원도 할 수 없는 질병이랍니다. 폴 투르니에는 이때를 인생의 가을이라고 말합니다. 낙엽이 툭툭 떨어지는 시기입니다.

그러면 나이 50살 언저리에는 허무함으로 고통스러워 하다가 인생이 끝나야 하느냐? 아닙니다. 바로 이때가 무상한 인생에서 영원한 인생으로 전환할 때입니다. 한문에 ‘危’자는 ‘위험하다’는 뜻도 있지만 ‘기회’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50병은 위기이면서도 기회인 것입니다. 겉 사람에서 속사람으로 변환해야 하는 ‘다운쉬프트’의 나이인 것입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낄 때, 혹은 50병을 앓을 때, 진리를 외치던 어느 노 목사의 탐욕에 현기증이 일어날 때, 우리는 낙망하고 실족할 게 아니라 시편기자의 언어를 비녀처럼 가슴에 꽂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그리고 바울의 고백에 영혼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8).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을 언제나 음미해 보아야 합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법입니다. 땅에서도 그렇지만 하늘에서도 그렇습니다. 겉 사람을 위해 심는 사람은 무상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영원, 속사람을 위해 심는 사람은 영생의 면류관을 얻게 됩니다. 우리의 자연적인 인생이 늙어가고 겉 사람이 후퇴하는 것을 허무해하거나 서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허무와 무상은 신앙과 은총의 반대말입니다.

자연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무상을 넘어서서 영원으로 나아가는 떡국 한 그릇 씩 꼭꼭 씹어 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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