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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어린양

요한복음 신실............... 조회 수 1758 추천 수 0 2014.04.02 10:16:15
.........
성경본문 : 요한복음1 ; 29 - 34 
설교자 : 이영화목사 
참고 :  

하나님의 어린 양

 

 

요한복음 1 ; 29 - 34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여러분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무는 무엇일까요?
포도나무, 감람나무, 무화과나무등이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나오는 나무는 포도나무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무엇일까요?
낙타, 나귀, 사자, 염소등이 나오지만 가장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양’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양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고 또 친근한 동물입니다.
이스라엘은 예전부터 양을 키우는 유목민이었는데 가나안에 정착해 농사를 짓게 된 다음에도 양을 키우며 양가죽이나 양털로 옷을 만들었으니 ‘의’ 가 해결되었고 양고기와 양젖이 그들의 일상적인 음식이었으므로 ‘식’ 이 해결되었고 양가죽으로는 장막을 만들었으니 ‘주’ 까지 양을 통해 해결 하였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양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 양은 이보다 더욱 중요한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가장 중요한 제물로 양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양 외에도 소나 염소, 비둘기, 고운 밀가루도 사용 되었지만 가장 많이 쓰인 희생제물이 바로 양이었으며 그 가운데서도 흠 없고 깨끗한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인신가를 질문하였을 때에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을 어린 양이라고 하였을까요?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어린 양을 제물로 바친 구약 시대의 제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구약에 나오는 제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제사방법은 ‘피 제사’ 입니다.
희생제물로 드리는 짐승의 피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피 제사인데 희생물로 드리는 짐승의 고기와 기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 피 제사에서 피가 빠지면 제사가 드려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피 제사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레17:10-11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 중에 무슨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를 먹는 그 사람에게는 내 얼굴을 대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피를 먹는 사람은 무조건 죽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요즈음 어떤 사람들은 건강에 좋다고 사슴피나 다른 짐승의 피를 생으로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분들이 구약시대에 살았다면 다 죽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피를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다음 절에 설명되는데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생명체의 생명이 피에 있다고 믿었기에 이 피는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서 우리의 생명을 위해 속죄하는 데 쓰여야 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린 이유는 자신의 죄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사는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게 죄 사함을 받습니까?
복잡한 것이 아니라 내 죄를 사하시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할렐루야!
하지만 예수님이 아직 오시지 않았던 구약시대에는 죄 사함을 받는 유일한 방법이 양으로 대표되는 흠 없고 깨끗한 제물을 바치고 그 생명이 들어있는 피를 바침으로 내 생명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죄를 지은 것은 누구입니까?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죄 때문에 죽어야 할 죄인은 누구입니까? 바로 나입니다.
그런데 내가 죽지 않으려니 다른 희생제물을 바쳐 대신 죽게 해야 하고, 내 생명 대신 그 희생제물의 생명을 드려 내가 사는 것이 ‘제사’ 라는 뜻입니다.
내 죄를 대신해 죄 없는 양이 희생된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흠 없고 깨끗한 양이 속죄양 되어 피를 흘리고 그 살이 찢어짐으로 내 죄가 용서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의 제사로 이 제사에 흠 없는 어린양이 필요하고 그 피가 흘려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튿날’ 즉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말씀한 바로 그 다음날 예수님이 자기에게 나아오시는 것을 보고 세례 요한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9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에 대한 여러 비유가 있지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라는 비유만큼 예수님에 대해 잘 표현한 말씀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 이라고 한 것에는 크게 네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말은 앞서 설명한 대로 예수님이 구약시대에 드려졌던 희생제물인 속죄양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희생 제물로 양과 그 피가 드려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하였습니까?
‘우리의 죄 때문’ 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내가 죽지 않으려고, 내 죄를 용서 받기 위해 우리는 흠이 없고 깨끗한 어린 양을 잡아 내 죄를 대신 뒤집어 씌우고 죽게 하였습니다.
죄 없는 피를 흘려 내 피를 대신하고 내 죄를 사함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셨다는 말은 바로 예수님이 어린 양이 되고 희생제물이 되어 우리 죄를 대신 덮어쓰고 희생하셨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구약의 양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사람이 붙잡아다가 내 대신 죽게 한 것이라면 예수님은 그와 다르게 예수님 스스로 그렇게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의 외아들을 보내어 우리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피 흘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왜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이 죽을 수밖에 없는 더러운 죄인을 사랑하셔서 기꺼이 스스로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더 이상 죽을 죄인이 아닌 의인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유월절의 희생양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제사를 드릴 때뿐 아니라 어린 양이 또 한 번 대신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월절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시기 위해 모세를 보내셨고 애굽왕 바로의 교만함을 꺾기 위해 10가지의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아홉 번의 재앙에도 꿈쩍하지 않던 바로 왕은 열 번째 장자의 재앙에서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장자를 죽게하자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게 됩니다.
그런데 같은 애굽 땅에 있었으면서도 열 번째 재앙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을 피해 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흠 없고 일년 된 수컷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기 때문입니다.
‘문설주’ 란 문 양쪽에 세로로 세운 기둥을 뜻하고 ‘인방’ 이란 문의 가로로 세운 기둥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린 양의 피를 출입문의 가로 세로로 모두 바른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두 장자들을 죽이셨지만 어린 양의 피가 발라진 문을 보면 그 집을 넘어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넘어갔다’ 는 뜻을 가진 한자인 ‘유월절’ 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예수님도 유월절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그냥 지나치실 수 없으셨습니다.
우리 죄 때문에 반드시 우리를 벌하고 죽이셨어야만 했지만 유월절 어린양 되신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향한 심판은 우리를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어린 양되신 예수님의 보혈의 피에는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모든 죄를 넘어가게 하고, 모든 사망과 죽음이 건너뛰게 하십니다. 모든 불행과 고통이 예수님의 피를 보면 피해가게 될 것입니다.
원하기는 이 피가 저와 여러분들을 마귀 사탄의 압제와 죄의 사슬에서부터 해방시키며 우리이게 참 자유를 누리게 하며 죄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게 하였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희생양 ’ 되셨다는 뜻입니다.
오늘날에도 ‘희생양’ 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조직에서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에 모두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쓰는 것을 ‘이번 사건의 최대 희생양이 되었다’ 고 표현합니다.
불신자들도 성경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까지도 ‘희생양’ 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 듣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의 희생과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희생양이 된 것이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죄 없으신 분입니다. 누구를 위해 희생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위해 희생하고 자기 목숨을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이 희생양이 된다면 우리 주님은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희생하셨습니다.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그는 스스로 기꺼이 희생이 되시고 우리 대신 성문 밖으로 쫓겨나 십자가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것입니다. 우리 대신 그 수모와 아픔을 당하신 것입니다.
쫓겨날 죄인은 내 자신이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죄인 또한 내 자신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대신 죄인이 되시고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닌 바로 사랑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다는 말은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는 말씀처럼 도수장으로 끌려가신 어린양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사53장은 구약에서 예수님을 가장 잘 묘사한 본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53장에서 예수님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으로 나옵니다.
도수장이란 도축장으로 가축을 잡아 죽이는 곳입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어린양은 도수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소나 돼지도 평상시에는 얌전히 있다가 자기가 도수장에 끌려가 죽을 때가 되면 그것을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버티며 발버둥칩니다.
하지만 사53장에 나오는 양은 도수장에 죽으러 가면서도 버티기는 커녕 어떤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한 마디의 불평도 없습니다. 사53장에 나오는 양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도수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사람들에게 끌려가 비참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게 되실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 분은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여 말없이 죽음의 길로 가십니다.
물론 예수님도 그 길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우셨으면 기도하실 때에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고통의 잔, 이 죽음의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을 넘어서 우리 모든 인간의 죄를 지러 오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기에 즉시 이렇게 기도하신 것입니다.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그리고 한 마디 말도 없이, 한 마디 불평이나 원망도 없이 양과 같이 묵묵히 도수장으로 끌려가듯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 이라고 불렀는지, 그리고 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어린 양이 되셨는지를 함께 상고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에 대해 수도 없이 들어왔고,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 희생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셨다는 설교는 너무나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너무나 식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저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고 다 아는 이야기인데’
하지만 여러분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은 우리가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늘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동이 되어야 합니다.
너무 많이 들었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그래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듣고 또 듣고 들을 때마다 가슴이 저리도록 감동하고 뼈저리게 마음속에 새겨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잘 알고 너무 자주 들어서 감동이 없다면 내 가슴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하도 들어서 식상하다고요? 그것은 내 신앙이 습관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 먼저 세례 교육을 합니다.
그런데 예전에 세례교육을 받던 중에 눈물을 흘리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이 너무나 감격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구원과 은혜를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신앙생활은 더욱 익숙해지고 성경의 지식은 많아졌지만 정작 주님을 향한 그 순수한 마음은 식어지지는 않았습니까?
저 역시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말씀만 들어도 찬양만 불러도 눈물이 났습니다.
처음 세례를 받을 때에도 마음이 얼마나 감동이 되고 뜨거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에게서부터 그런 모습이 정말 많이 사라졌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지금도 예수님이 어린 양이 되시어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죽으셨다는 말씀을 들으며 그 이야기 ‘저도 잘 알아요. 한두 번 들은 얘기도 아니고 너무 뻔한 이야기잖아요’ 하지는 않으십니까?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나도 이제 신앙생활 오래 해서 알 건 다 안다’ 고 하면서 알 건 다 알고 너무도 익숙한데 정작 내 마음에 십자가에 대한 감격이,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눈물이 메마르고 사라지지는 않았습니까?

여러분 예수님께서 왜 어린 양이 되셨습니까?
왜 기꺼이 희생제물 되어 우리를 위해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습니까?
그것은 오로지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희생한 위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어린 양 되어 자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그 사랑을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가슴속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그 고귀한 희생에 대해 들을 때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내 마음이 뜨겁고 감격이 있도록 해야 합니다.
원하기는 이 사순절을 통해 왜 예수님이 어린 양이 되시며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움과 감격을 늘 간직하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014. 3. 30. 주일예배말씀. 이 영화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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