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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2711. 남의 자식을 죽여서 자기 자식을 살릴 수 없다
“듣자 하니 젖을 먹일 여종 학덕이가 태어난 지 서너 달 된 자기 아이를 버려두고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하더구나. 이는 학덕의 아이를 죽이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근사록(近思錄)≫에서는 이러한 일을 두고 말하기를 ‘남의 자식 죽여서 자기 자식 살리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하다.’고 했다. 지금 네가 하는 일이 이와 같으니, 어쩌면 좋으냐. 서울 집에도 젖을 먹일 만한 여종이 있을 것이니…….”
위 내용은 퇴계가 손자 이안도에게 보낸 편지 일부입니다. 퇴계가 끔찍이 사랑했던 손자 이안도의 아들 곧 증손자는 어미의 젖을 먹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대신 젖을 먹여 키워줄 여종 학덕을 보내달라고 하지만 퇴계는 역시 해산 한지 얼마 안 되는 여종 학덕에게 자신의 자식을 내버려두고 가게 하는 것은 여종의 자식을 죽이는 것이라며 반대합니다. 이처럼 조선 최고의 지성 퇴계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종들도 존중했지요.
퇴계에 관한 일화로 대장장이 배순이야기도 있습니다. 소수서원 근처 대장장이 배순이 퇴계가 서원에서 글을 가르칠 때 뜰아래에 와서 듣는 것을 지켜보던 퇴계가 배순이 제자들과 함께 배우게 했습니다. 퇴계가 풍기군수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자 배순은 퇴계의 동상을 세우고 아침저녁으로 배알하며 글공부를 이어갔고, 그로부터 22년 뒤 퇴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배순은 삼년복을 입었으며, 날마다 동상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퇴계는 학문만 뛰어났던 것이 아니라 마음이 따뜻했던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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