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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호1: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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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영봉 목사 |
참고 :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
2013년 7월 28일 주일 설교
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 목사
"바람 난 마음"(Our Wanton Heart)
호세아(Hosea) 1:2-10
1.
지난 주 뉴스에서 본 영상 중에 그 잔상이 오래도록 제 기억에 남아 있는 사건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국 왕세자 George Alexander Louis의 탄생입니다. 영국 왕위 승계 서열 세 번째의 로열 베이비의 탄생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탄생 소식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소함을 느꼈습니다. 영국에는 왕정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는 하지만, 자기 아들 혹은 손자의 탄생보다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게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프랜시스 교황의 브라질 방문 뉴스입니다. 교황을 태운 차의 행렬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차에 손을 대려고 앞다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프랜시스 교황은 전임 베네딕트 교황과는 달리 신변의 위협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어합니다. 절박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희망처럼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깔려 죽을 것을 각오하고 자동차를 향해 돌진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모습이 제게 특별하게 보인 이유는 오늘의 본문을 묵상하는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력에 맞춘 성서일과(Lectionary)에 따라 정해진 오늘의 본문은 예언자 호세아의 이야기입니다.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경제적인 번영으로 인해 도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타락해 있던 시기에 부름 받고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예언자로 부르시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처음으로 호세아를 시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주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아라!"(2절)
때로 하나님은 잔인하십니다. 아니, 잔인해 보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 그래서 그러셨구나!"라고 깨닫지만, 처음에는 황당무계해 보이는 명령을 하십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서 하나님에게 가장 황당한 명령을 받은 두 사람을 꼽으라면 아브라함과 호세아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백 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고, 호세아는 성매매를 하는 여인 중에서 아내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목사로 부르시고서는 성매매를 하는 여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매매를 하던 여성은 목사의 부인이 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철저히 회개하면 목회자의 부인으로서 혹은 목회자로서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캐런 부스(Karen Booth)라는 목사가 그 예입니다. 연합감리교회 목사인 그는 대학 시절에 하나님을 떠나 성적인 방종과 타락에 깊이 빠져 있다가 32세에 주님을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는 자기와 같은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목회에 대한 소명을 느끼고 성적 타락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회복시키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순결한 신부와 결혼하고 싶은 것이 모든 신랑의 정상적인 바램 아닙니까? 그런 과거를 가진 여인을 사랑하게 되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는 경우는 가끔 있습니다만, 그런 과거를 가진 여인 중에서 아내감을 고르라는 명령은 무리가 많아 보입니다.
제가 목사로 부름 받을 때 그런 명령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 신학의 길에 나섰을 때는 생명을 바칠 각오였으니, 정말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신다고 믿었다면 순종했을지 모릅니다. 한 편으로는 순결한 여인과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싶은 소망도 있었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독신으로 살 수도 있고 가정을 희생할 뜻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하나님은 저에게 그런 명령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하나님 눈에 제가 그런 일을 감당할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반면, 호세아는 그럴만한 인물이었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몸을 파는 여인들 중에서 고멜이라는 여인을 아내로 맞습니다. 하지만 고멜은 호세아의 사랑에 감복하여 회개하기는 커녕, 결혼한 후에 다른 남자의 품을 찾아 다시 가출을 했고, 다른 남자의 아이까지 낳습니다. 2절에 "음란한 자식들을 낳아라"는 말씀은 "음행을 통해 자식을 낳을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로 인해 호세아는 매일같이 전쟁같은 일상을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2.
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이렇게 큰 멍에를 씌우셨을까요? 그 대답은 2절 마지막에 나와 있습니다.
이 나라가 주를 버리고 떠나서,
음란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2절)
성경에서 '음란' 혹은 '간음'(adultery)은 자주 '우상숭배'(idolatry)에 대한 비유로 사용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 놓는 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그것은 마치 결혼한 사람이 다른 이성에게 마음과 몸을 주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배우자에게 성실한 것이듯, 신앙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상 숭배를 '영적 간음'(spiritual adultery)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의 비극적인 결혼 생활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상을 고발하십니다. 하나님의 신부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바알의 신들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알은 가나안 주민들이 섬기던 토착신으로, 물질과 건강과 쾌락과 성공을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의 신부인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해 살면서 성공하고 부자되고 쾌락을 누리고 싶어서 바알의 품을 찾은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큰 아픔이 되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올무가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풍요 속에서
흥청망청하고 있지만, 우상 숭배로 인해 이스라엘은 점점 쇠약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이전에도 여러 예언자들을 보내어 우상 숭배의 죄에서 벗어나라고 촉구하셨습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니, 호세아에게 이처럼 이상한 행동을 하게 하십니다. 음란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아내가 남편 호세아에게 얼마나 큰 아픔이 되는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남편인 하나님이 그들의 영적 간음으로 인해 그처럼 고통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호세아 자신도 그런 아내를 데리고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떨지를 절절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예언에는 하나님의 뜨거운 마음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난 한 주 동안 우상 숭배에 대해 묵상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 중에 영국 왕세자의 탄생에 대한 보도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왕세자의 탄생을 두고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상 숭배의 한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그들 중에 실제로 왕세자를 우상으로 섬기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만, 한 인간을 향한 그들의 환호와 법석은 진정한 경배와 찬양의 대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프랜시스 교황을 향해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분 중에 천주교인이 계시다면 잠시 양해를 구합니다. 저도 프랜시스 교황을 존경합니다. 이웃 종교의 지도자를 헐뜯으려는 것이 아니라, 개신교인들이나 천주교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우상 숭배 현상을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교황이 탄 차에 손을 대기만 하면 무슨 일이 생길 것처럼 아귀다툼을 하는 모습은 우상 숭배를 닮았습니다. 프랜시스 교황은 그 어떤 교황보다도 자신이 우상처럼 숭배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만, 그의 뜻과는 상관 없이 그를 우상처럼 섬기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상 숭배는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니, 사실은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인 존 칼빈(John Calvin)은 "인간의 본성은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과 같다"(Human nature is a perpetual factory of idols)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잠시만 방심하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의 품을 찾습니다. 그래서 "복의 근원 강림하사"(28장)라는 찬송의 3절에 보면,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라고 노래합니다. 그 영어 가사는 Let Your goodness like a fetter, bind my wandering heart to Thee입니다. 자꾸만 하나님을 떠나려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붙들어 매 달라는 기도입니다. 죄로 물든 우리의 마음을 달리 표현한다면 '바람난 마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가장 전형적인 우상 숭배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점쟁이에게 점을 보거나 무당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 혹은 우상 앞에 절하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 중에는 이와 같은 우상 숭배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인터넷으로도 이런 것에 쉽게 접할 수 있고, 한국에는 점집 까페가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아리조나의 세도나(Sedona, Arizona)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점집과 영매들이 모여 서로 신기(神氣)를 경쟁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경계심 없이 이런 곳을 드나드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내를 둔 사람이 사창가를 배회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순결한 신부로 살아가고 싶다면, 아무리 미래의 일이 궁금하고 불안해도 그런 것에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은 그런 일들을 빌미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재미로든 절박한 심정에서든, 그런 일을 할 때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조금씩 잠식 당하고 머지 않아 사탄의 올무에 결박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흔한 우상 숭배가 있습니다. 신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 놓는 우상 숭배를 말합니다. 돈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 놓는 것, 자식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 놓는 것, 혹은 사랑하는 연인을 인생의 전부로 여기는 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프로포즈 할 때 "Oh, my darling, I love you so. You mean everything to me!"라고 노래하는 것은 애교로 보아 줄 수 있습니다만, 만일 그 연인이 인생의 전부여서 그 사람이 없으면 살 의미가 없어진다면, 그것은 우상 숭배입니다.
오늘날 미국 개신교 목사 중에 가장 신뢰받는 사람 중 하나인 뉴욕의 리디머 교회(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팀 켈러(Tim Keller)가 <Counterfeit Gods>라는 책에서 우상을 분별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자신이 섬기는 우상이 무엇인지 알아 보기 위해 다음의 네 영역을 주목해 보라고 합니다.
첫째,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을 때 마음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 보라고 합니다. 예컨대, 무심하게 차를 몰고 가고 있을 때, 공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혹은 한가한 시간에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차를 살까? 어떤 집을 살까? 어떻게 즐길까? 어떻게 하면 더 예뻐질까? 어떻게 하면 아이 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 이런 것들 가운데 습관적으로 마음에 떠오르고 마음이 그 공상을 즐긴다면, 그것이 우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둘째, 가장 돈을 많이 사용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살펴 보라고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상의 특징은 그 대상을 위해 지나친 소비를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의 형편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디에 주로 돈을 사용하지는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생활 전체에 부담을 줄 정도로 무엇엔가에 돈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이 우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셋째,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을 때 혹은 자신의 뜻대로 일이 성사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반응하지는지 살펴 보라고 합니다. 그럴 때, 잠시 실망하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상에 충실해진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하나님께 분노하고 심하게 절망한다면, 기도하며 구한 그것이 우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우상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넷째, 감정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반응하는 경우, 우상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떤 일에 격분하게 될 때 혹은 지나치게 자존심이 상했다고 느낄 때, 그것이 무엇인지 보라는 것입니다. 자식이 우상인 사람은 누군가가 자식을 비판하면 참지 못합니다. 자신의 명예가 우상인 사람은 그 명예에 상처가 생길 때 견디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람은 다릅니다. 한가한 시간에 자신도 모르게 찬송이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하며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때로 헛된 생각과 공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것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물질을 드리는 일에 인색함이 없습니다. 십일조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수입이 많아질수록 하나님의 일을 위해 더 많이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기도한 대로 응답되지 않아도 절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참되게 사랑하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은 격분하는 일도 없고,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좌절하지도 않으며, 자존심이 상하여 잠을 못 이루는 일도 없습니다. 물론, 때로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하며,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금새 그 감정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보면 화나게 만든 그것도, 낙심하게 한 그것도, 자존심을 상하게 한 그것도 별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리에 계시면, 다른 모든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습니다.
4.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시면서 두 번째로 우상 숭배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우상 숭배가 그만큼 심각한 문제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에 따르면, 두 번째 계명을 주시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출 20:4-6)
이 말씀을 피상적으로 읽고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은 질투의 화신이어서 우상 숭배를 참지 못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질투하다'라는 감정적인 단어를 사용한 까닭은 우상 숭배에 대해 하나님이 가지시는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우상 숭배만큼은 허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 아니라 삼사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눈 먼 시기심'같은 것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도 잘 새겨 들어야 합니다. 히브리 말에는 비교급이 없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이라는 말은 "나보다 우상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이라는 뜻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은 그 자신뿐 아니라 자손 삼사 대까지도 불행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상 숭배 자체가 그 같은 불행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호세아의 이야기는 우상 숭배로 인해 당할 수 있는 처참한 결과에 대해 암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멜이 아이를 낳을 때마다 이름을 지어 주십니다.
첫째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지으라 하십니다. 이스르엘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 있는 아름다운 골짜기인데, 이곳에서 이스라엘 역사에 악명 높은 잔인한 학살이 여러 번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마치 독일 사람이 아들의 이름을 아우슈비츠(Auschwitz)라고 짓는 것과 같고, 일본 사람이 아들의 이름을 '히로시마'(Hirosima)라고 짓는 것과 같으며, 우리 나라 사람이 아들의 이름을 '미아리'라고 짓는 것과 같습니다. 영적 간음 즉 우상 숭배는 결국 참혹한 재앙으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둘째 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지으라 하십니다. 히브리어의 '로'는 영어의 No라는 뜻입니다. '루하마'는 '자비'를 뜻합니다. 그러니 '로루하마'는 No Mercy 즉 '하나님의 자비를 받지 못한 자'라는 뜻입니다. 셋째 딸의 이름은 '로암미'라고 지으라 하십니다.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영적 간음 즉 우상 숭배가 하나님의 자비에서 벗어나게 하며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앞에서 호세아만큼이나 황당한 명령을 받은 사람이 아브라함이라고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두 명령은 모두 우상 숭배와 관계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백 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번제'(burnt offering)는 짐승을 죽여서 피를 모두 빼내고 살과 뼈를 고르게 잘라서 제단에 태워 바치는 제사입니다. 그것을 자신의 아들에게 행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한 산으로 가면서 수 없이 되묻고 의심하고 번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마침내 순종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이 왜 그런 명령을 내리셨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명령을 받는 순간, 그는 올 것이 왔다 싶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리에 이삭을 올려 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을 얻을 때까지 그의 모든 희망은 하나님이었는데, 이삭을 얻고 나서는 희망의 대상이 바뀌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이삭이라는 우상을 즐겼습니다. 늦둥이 자식도 기가 막힌다는데, 손자 같은 아들이니 오죽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그대로 두고 보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을 불행하게 하고 이삭을 불행하게 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스스로 깨닫고 이삭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그 자리에 올려 놓았다면 이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그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자, 하나님이 마침내 침묵을 깨뜨리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브라함은 그 명령의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칼을 들어 사랑하는 아들의 목을 겨냥했습니다. 그것은 이삭이 아니라 이삭을 우상으로 섬겼던 자신의 마음에 칼을 들이댄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천사가 그의 팔을 잡아 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삭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이삭을 우상으로 섬기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죽이려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창 22:12)
"이제 알았다"는 말은 그 전에는 몰랐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귀한 결단에 대해 감동하며 기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도 얻고 아들도 다시 얻었습니다. 만일 그가 끝내 이삭을 우상으로 두고 살았다면, 하나님도 잃고 이삭도 잃었을 것입니다.
5.
다시금, 로열 베이비의 탄생으로 인해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경배의 대상을 잃어버린 우리의 자화상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안타까워 하실까 싶습니다. 인간의 진정한 경배의 대상은 창조주 하나님 뿐입니다. 그분을 하나님의 자리에 모시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채워줄 대상을 찾아 두리번 거리다가 길을 잃게 됩니다.
또한 교황을 태운 차량을 향해 손을 뻗치고 돌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경배의 대상을 잘 못 찾은 우리의 자화상을 봅니다. 그 모습이 제 마음에도 이렇게 보인다면, 하나님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싶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자신의 명성을 우상으로 삼고 살다가 그것이 무너지는 것 같으니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 사람을 봅니다. 자식의 성공을 우상으로 삼고 살다가 그것으로 인해 질식할 듯 고통받는 사람을 봅니다. 돈을 우상으로 삼고 살다가 결국 돈의 사슬에 매어 포로로 살아가는 사람을 봅니다. 육체적인 쾌락을 우상으로 삼고 살아 가정과 인생을 모두 파멸로 이끌어가는 사람을 봅니다. 혹은 경배의 대상을 찾지 못해 희망 없이 사는 사람도 봅니다.
그러니 이제 따져 보십시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은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을 따져 보십시오. 하나님께 드리는 돈의 액수를 계산해 보십시오. 하루에 하나님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따져 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얻으면 다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으시면, 다른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잃으면 다 잃습니다. 우상 숭배를 통해 우리가 얻을 것은 이스르엘이며, 로루하마이고 로암미입니다. 반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시면, 자식도 얻고 하나님도 얻습니다. 그런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힘 입을 것이며 그의 사랑하는 백성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호세아의 이야기 그리고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 영적 간음인 우상 숭배가 얼마나 위험하고 치명적인 죄인지를 깨닫고, 늘 마음을 살피며 살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서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모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복을 누릴 것이며, 모세를 통해 약속하신 것처럼, 수천 대에 이르도록 은혜를 얻을 것입니다. 이 은혜와 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항상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저희의 행복을 바라시는 주님,
저희의 바람난 마음을 지켜 주십시오.
경배의 대상을 찾지 못하여 유리 방황하지 않도록,
하나님 아닌 다른 대상을 경배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을 두지 않도록,
하나님에게 두 번째 자리를 드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도록,
오직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살도록
저희의 마음을 붙들어 주소서.
아멘.
<속회자료> 2013년 7월 28일 주일 설교
"바람 난 마음"(Our Wanton Heart)
1. 찬송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322장(통 357)
2. 한 사람이 대표로 기도합니다.
3. 호세아 1장을 읽습니다. 호세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10분)
4. 말씀의 요약 (한 사람이 말씀을 요약하여 발표합니다. 10분)
5. 말씀의 나눔 (한 질문에 대해 15분 정도를 할애하십시오. 전체 나눔 시간이 90분을 넘지 않게 하십시오.)
1) 오늘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으면 한 가지만 나누어 주십시오.
2) 우상 숭배에 대한 당신의 경험을 말해 보십시오.
3) 팀 켈러 목사가 제시한 방법으로 당신의 우상이 무엇인지 살펴 보십시오.
4) 우상 숭배의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면 당신에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6. 기도
1) 당신의 우상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2) 우상 숭배에 빠진 사람들을 기억하고 중보하십시오.
7. 중보기도
돌아가면서 기도 제목을 나누십시오. 각자 다른 사람의 기도 제목을 적어 두고 매일 한 번씩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8. 찬송을 부르며 헌금을 드립니다. 321장(통 351)
9.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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