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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이가 있다(Someone Is Seeking Me)

누가복음 김영봉 목사............... 조회 수 1645 추천 수 0 2014.04.03 23:03:05
.........
성경본문 : 눅15:1-10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13년 9월 15일 주일 설교
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 목사
나를 찾는 이가 있다(Someone Is Seeking Me)
누가복음(Luke) 15:1-10

1.

한국 가수 중에 가수로서 명성을 날리다가 연예 기획사를 설립하여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대중 가요를 잘 모르고 대중 문화에 대해서도 뭐라 말할 입장이 아닙니다만, 그 사람에 대해서는 주목해 왔습니다. 천재성이 있어 보이는 그는 또 한 편으로 전형적인 반항아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평가에 의하면, 그는 한국 대중 가요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장본인 중 한 사람입니다. 그의 등장과 가수로서의 성공은 한국의 대중 가요가 성적 욕망의 표출로 전락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의 대중 가요도 주로 사랑 타령이기는 했습니다만,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때로는 상당히 시적이고 철학적인 가사들도 있어서 넋놓고 듣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수의 출현 이후로 혹은 그 즈음에 대중 가요 가사는 성적 욕망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었고, 가수들의 율동은 성애를 직접적으로 흉내내는, 보기 민망한 동작의 연속이었습니다. 당시, 가사의 내용과 춤의 선정성으로 따지면, 그 가수를 따를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노래하고 그렇게 춤을 추웠을 뿐 아니라, 거침없이 말하고 다녔습니다.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추앙받는 사람의 언행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크고 넓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한 말 중에 가장 충격을 주었던 말은 "두 사람이 성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 동거해 보고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 가수를 주목할만도 하다 싶지 않습니까? 그 가수의 노래와 율동이 좋아서가 아니라, 대중 문화에 대한 걱정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때문에 걱정하며 주시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가 방송에 나와 영적으로 탐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믿음을 저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욕망과 야망이 이끄는대로 살아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해 볼만한 것은 다 해 보았고, 또한 지금도 할만한 형편에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 모든 것에 회의가 생겼습니다. 성공의 가장 꼭대기에 올라 섰는데도 끝내 만족되지 않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긁어 모으는 것이 처음에는 신났는데, 어느 정도가 지나니 그 즐거움이 시들해졌습니다. 즐기는 것으로 낙을 찾았습니다만, 그것도 권태감과 환멸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소유를 나누는 것에 희망을 걸어 보았습니다. 과연, 나누고 베풀고 섬기는 것은 보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내가 누구며 왜 여기에 있느냐가 대답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종교로 돌아왔습니다. 아직 그는 자신을 '무종교인'이라고 부릅니다. 아직 해답을 얻지 못했고, 그래서 어느 한 종교에 귀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머리로는 알 것 같은데, 마음에서는 믿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괴로와 미치겠다고 말합니다. 얼마 전에 방송에 나와 고백한 내용을 Facebook을 통해 보았습니다.

그가 그 심정을 담아 최근에 노래를 냈습니다. 그 가사가 이렇습니다. 제목은 '놀만큼 놀아봤어'입니다.

나 놀만큼 놀아봤어
나 놀만큼 놀아봤어
왠지 몰랐어 뭐 때문에 열심히 살지
돈을 벌어서 어떻게 써야 하는 건지
둘러보았어 무엇으로 나를 채울지
먹고 먹어도 왜 계속 배가 고프지
(난 놀만큼 놀아봤어 또 벌만큼 벌어봤어)
예쁜 여자 섹시한 여자 함께 즐길 만큼 즐겨봤어
(결국엔 또 허전했어 언제나 그때 뿐이었어)
아침에 술 깨 겨우 일어날 때
그 기분이 싫어졌어

이젠 사랑을 하고 싶어 baby
혼자 집에 오는 길이 싫어 lately
이런 날 어서 구원해줘 baby 제발
꺼지지 않을 음식으로 나를 배불려줘

안정이 되면 다시 불안해지고 싶고
불안해지면 다시 안정이 되고 싶어
생각해봤어 정말 갖고 싶은 게 뭔지
근데 가져도 왜 계속 배가 고프지
눈 감을 때 두렵지 않기를
눈 감을 때 웃을 수 있기를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면서 내딛는
힘찬 발걸음으로 살기를

이젠 사랑을 하고 싶어 baby
혼자 집에 오는 길이 싫어 lately
이런 날 어서 구원해줘 baby 제발
꺼지지 않을 음식으로 나를 배불려줘

이젠 사랑을 하고 싶어 baby
혼자 집에 오는 길이 싫어 lately
이런 날 어서 구원해줘 baby 제발
꺼지지 않을 음식으로 나를 배불려줘

Please Save me


2.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십니까? "남들 못하는 것 다 해 놓고서 이게 무슨 배 부른 소리인가?" 싶어서 화가 납니까? 그렇게 살았던 그의 삶이 부럽습니까?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 가수가 이 노래를 통해 토로하는 감정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삶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찾자면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그 가수의 내면적인 고통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이 겪는 전형적인 고통입니다.

비유하자면, 부모를 잃어버린 어린 아이의 허전함 같은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 객지를 유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완전히 쉬지 못하는 한 구석이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다에 빠져 나무 조각 하나에 의지하여 표류하는 사람이 물 한 가운데서 타는 목마름으로 고통 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기에 그로 인한 빈 자리가 너무 커서 아무 것도 재미가 없는 것과도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감정이 생기는 것입니까? 영적 모태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신이 형성된 어머니의 모태를 향한 근원적인 갈망이 있다고 말입니다. 자라가면서 그 갈증은 배우자나 자녀 혹은 다른 종류의 사랑으로 채워지지만,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어머니의 모태 안에서 경험한 그 안식과 평안을 대신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모태에서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영적 모태인 하나님의 품을 향한 갈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갈망에 특별히 예민하고, 어떤 사람은 둔감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 갈증을 느낍니다. 다만 차이는 그 갈증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씨름하느냐, 아니면 '그러려니'하고 외면하느냐에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가수의 경우, 그 갈증의 정체를 붙든 것입니다. 번영과 쾌락의 끝자락에서 그는 그 갈증의 정체에 눈을 뜬 것입니다. 제가 그 가수를 직접 알지 못하지만,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영적 모태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의 그의 삶은 젊은 날에 대중에게 끼쳤던 악한 영향력을 상쇄하고도 남도록 거룩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래로 표현된 저 간절한 기도를 주님께서 들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해 겪는 그 정체 모를 갈증 혹은 허기는 여러 경로로 경험허게 됩니다. 쾌락의 끝자락에서도 경험하지만, 고통의 나락에서도 경험합니다. 가졌던 모든 것을 날리고 잿더미에 앉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같은 한계 상황에 이르기 전에 이 갈증과 허기에 눈 뜨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계 상황에 도달해야만 진실을 깨닫는 버릇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도 원죄의 증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뭔가 잘 못 되었을 때, 그 잘못으로 인해 큰 아픔을 당해야만 그 잘못을 깨닫습니다. 큰 질병을 얻고 나서야 몸을 혹사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파산하고 나서야 씀씀이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가정이 깨어지고 나서야 자신이 잘 못 했음을 깨닫습니다. 자식이 망가지고 나서야 자신의 잘못된 가치관을 깨닫습니다. 자식이 물질주의에 푹 빠지고 나서야 믿음으로 키우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그렇게, 한계 상황에 이르기 전에 잘못된 것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병원을 찾는 발길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며, 깨어지는 가정도 급격히 감소될 것이고, 상처로 인해 신음하는 아이들도 줄어들 것입니다. 변호사들이 할 일이 줄어들 것이며, 상담가들을 찾는 사람들도 감소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주어진 삶의 길이를 다 채우며 행복하게 분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쾌락의 끝자락에 이르러 권태감과 환멸감에 시달리기 전에 혹은 인생의 바닦에 내던져져서 피같은  눈물을 흘리기 전에 하나님의 품을 찾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요 또한 바랄만한 일입니다. 그같은 한계 상황에 이르러 하나님을 찾는 것도 다행한 일이기는 합니다. 쾌락의 끝에서도 여전히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코 박고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잿더미 위에 앉아서도 끝내 하나님에게 얼굴 돌리지 않고 인생을 저주하며 떠나가는 사람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벼랑 끝에 다다르기 전에 혹은 쾌락의 끝을 경험해 보기 전에 내면의 허기와 갈증을 진지하게 붙들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혹시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미리 하나님에게 돌아가면 마음대로 즐기지 못하지 않는가? 그 가수처럼은 아닐지 몰라도, 어느 정도 즐겨 보고 나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두 가지 말씀을 해 주고 싶습니다.

첫째, 우리에게 확실하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 밖에 없습니다. 내일이면 늦을지 모릅니다. 공연한 위협이 아닙니다. 아무도 내일을 장담하지 못합니다.

둘째, 하나님에게 돌아와 보면, 하나님 없이 즐기는 쾌락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에게 돌아가기 전에 충분히 즐겨 보고 싶다 말하지만, 알고 보면 괴로움을 더하는 것이요, 진정한 기쁨을 그만큼 늦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일찍 돌아가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며, 하나님에게 늦게 돌아가는 것은 결코 이익이 아닙니다.


3.

렉셔너리에 따라 읽은 오늘의 말씀은 두 개의 '잃어버림의 비유'(The Parable of Lostness)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개의 비유가 묶여 있습니다. 1절부터 7절까지는 '잃어버린 양의 비유'(The Parable of the Lost Sheep)이고, 8절부터 10절까지는 '잃어버린 동전의 비유'(The Parable of the Lost Coin)입니다. 11절 이후에는 그 유명한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The Parable of the Lost Son) 혹은 '탕자의 비유'(The Parable of the Prodigal Son)가 나옵니다. 처음 두 비유는 찾는 사람의 열심을 강조하고 있고, 세 번째의 비유는 잃어버린 사람의 돌이킴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 두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먼저 우리의 '잃어버려진 상태'(the state of lostness)를 깨우쳐 주십니다. 비유를 보면, 백 마리 양 중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되어 있고, 열 드라크마 중 한 드라크마를 잃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목자는 남겨진 아흔 아홉 마리 양에 만족하지 않고 잃어버린 한 마리마져 찾아 내려고 노력합니다. 마침내 양을 찾았을 때, 목자는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와 이웃을 불러 함께 기뻐해 달라고 청합니다. 드라크마는 당시에 통용되던 은전이었습니다. 남자 성인이 하루 일당으로 받던 돈이었습니다. 열 개의 은전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잃었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온 집안을 뒤져 그 은전을 찾아냅니다. 그리고는 이웃을 불러 함께 기뻐해 달라고 청합니다.

이 비유를 읽고, '나는 아흔 아홉 마리 중에 있어'라고 생각하거나, '나는 그 여인의 호주머니에 있는 아홉 개의 은전 중에 하나야'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곡해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를 읽으면서 우리 자신을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으로 그리고 잃어버린 은전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깨달아라. 잃어버림(lostness)이 너희 존재의 근본 상태다. 하나님에게 다시 찾아지지 않는 한, 너희에게는 희망이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잃어버려진 상태를 인정하십니까? 앞에서 소개한 그 가수의 절규는 잃어버려진 상태에 대한 지독한 자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사람보다 더 지독하게 쾌락을 즐기면서도 자신의 잃어버려진 상태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그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마지막에 Please save me라고 기도하듯, 자신의 잃어버려진 상태를 인정하는 한, 구원의 가능성은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잃어버림의 상태를 깨닫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지 않는 한 잃어버려진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기계를 만들듯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듯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과 지속적으로 사귐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망각하고 우리 마음 대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원죄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우리는 길 잃은 양이요, 잃어버린 은전이며, 가출한 자식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자기 마음을 따라 사는 것이 제일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게 사는 방법은 '다른 사람처럼' 사는 것입니다. 사는 게 그런 거려니 하고 따라가는 것이 제일 편합니다.

하나님과 같이 살도록 지어진 존재가 하나님 없이 살다 보면, 서서히 '잃어버림의 증상'이 생겨납니다. 때로 살아있기는 한 데 정말 살아있는지 의심이 됩니다. 때로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때로 먹어도 먹어도 허기를 느낍니다. 그래서 배가 터지도록 먹어 보지만 그 허기는 가시지 않습니다. 위의 노래 가사처럼, 조금 안정되면 이게 뭔가 싶어서 위험한 일을 해 보고, 풍파가 일면 금새 평안해지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상태에서도 '이만하면 됐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런 순간이 찾아들 때,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잃어버려진 까닭에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자각하고 인정하고 되찾아지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상태에 있으나 잃어버린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에게 있는 것이 전부인 줄로 착각합니다. 물질이 전부이고, 목숨이 다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우연히 태어났다가 우연히 소멸하는 불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드는 '이상한 느낌'은 무시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릅니다. 부디, 하나님에게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자신의 상태가 얼마나 불행한 것이며 얼마나 희망 없는 것인지 알기 바랍니다. 잃어버린 상태에 사는 사람들은 기댈 언덕이 없는 사람들이며,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이고, 용서하고 받아들여 줄 품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내면의 충만한 기쁨과 의미를 맛보지 못합니다. 그 증상이 더 깊어져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자신의 잃어버린 상태를 자각하고 인정하고 하나님에게 되찾아지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4.

오늘의 비유가 전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찾으시는 하나님'(Seeking God)입니다. 목자가 아흔 아홉마리를 놓아 두고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듯 그리고 여인이 아홉 은전에 만족하지 않고 나머지 은전 하나를 찾듯, 하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나섭니다. 웬만큼 하고는 "에이, 할 수 없네. 하나는 포기해야겠네!"하고 손을 털지 않습니다. 끝까지, 찾아낼 때까지 찾습니다. 그리고 찾아냈을 때, 그 한 영혼으로 인해 크게 기뻐합니다.

아십니까? 우리를 낳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애타게 찾으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목자는 한 마리 양을 찾았을 때 마치 양이 그 한 마리밖에 없는 것처럼 크게 기뻐합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은 한 영혼을 찾았을 때 마치 이 세상에 그 한 사람 밖에 없는 것처럼 찾으십니다.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에게서 잃어버린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 그리고 여러분의 마지막 숨을 쉬는 그 순간까지 계속, 아니 그 너머에서까지도,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당장 뒷덜미를 잡아 끌고 올 수 있지만, 제 발로 돌아와야만 하나님 품에 머물러 있을 것이기에, 끊임없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며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만져 주셔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7월의 '종일 기도'를 할 때의 일입니다. 강단 뒤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묵상하다가 오후 2시 경에 다리가 아파서 잠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때, 예배당 문이 활짝 열리더니 어느 교우께서 들어오셔서 엉엉 울며 기도하십니다. 저는 순간 제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분의 간절한 기도가 방해를 받을 것 같았습니다. 잠시 기도하고 가시겠지 싶어서 무릎꿇은채로 숨 죽이고 기다렸습니다. 아, 그런데 그분이 한 시간 가까이 기도하십니다. 계속 눈물을 씻으며 간구하십니다. 저는 강단 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벌을 섰습니다. 7월 한 낮에 이 강단이 얼마나 더운지 아십니까?

그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숨죽이고 있다 보니 그분의 기도 소리가 들렸습니다. 듣지 않으려 해도 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할 수 없어서 "하나님, 제가 대신 듣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때, 그분의 기도가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서울에 있는 아들이 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들 보고 싶어요. 보고싶어 죽겠어요." 그러셨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면서 저는 저절로 중보가 되었습니다. "오, 주님, 저 노종의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그 날 저녁, 저는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자식을 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는 전화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 주에 추석이 끼어 있습니다. 멀리 사는 자식들은 그 교우님의 마음을 생각하셔서 부모님에게 전화 한 통이라도 넣어 드리기 바랍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각자를 위한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여러분을 찾기 원하십니다. 그렇게도 간절히 여러분을 찾고 계십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노구의 몸을 이끌고 15시간의 비행을 견뎌내며 아들을 보러 서울에 가셨습니다. 그 어머니의 마음처럼, 하나님은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분을 찾으십니다. 찾으면 어깨에 메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돌아올 것을 상상하며 찾고 또 찾으십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잃어버린 상태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까? 언제까지 하나님의 저 간절한 마음을 애태우실 것입니까? 언제까지 스스로를 들볶는 것을 즐거움으로 착각하고 살아가시겠습니까? 추석 때문에 고향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시기에 주님께서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 영원한 고향을 생각하라 하십니다.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는 이 시기에 주님께서는 영원한 아버지 하나님을 생각하라 하십니다. 고향집에서 받았던 푸짐한 추석상을 생각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차려 주시는 풍성한 영의 식탁을 생각하라 하십니다.

우리 중에 육신의 고향에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육신의 부모님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죽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품을 찾으면 영원한 고향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죽고 나서나 가는 곳이 아니라 이 땅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부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 우리는 그곳에서 천국을 보고 그곳에서 영생을 얻습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마시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지금 목자이신 주님은 여러분 가까이에 이르셨습니다. 잘 들어 보십시오. 당신을 부르시는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어디 있느냐고, 이리 나오라고, 그만 마음의 문을 열라고 부르시는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이제 그 음성에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찾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를 이 잃어버린 땅에서 데려가 주소서. 영원하신 아버지 품에 저를 데려가 주소서." 그렇게 진실하게 간구하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만져 주시고 찾아주실 것입니다.


5.

여러분 중에는 '잃어버림의 상태'를 벗어난 분들도 계십니다. 과거에 하나님에게서 떠나 스스로의 하나님이 되어 자신의 뜻대로 살았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품에 돌아와 그분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분들을 말합니다.

저도 여기에 속합니다. 한 때 저는 잃어버린 양과 같았고 잃어버린 동전과 같았습니다. 모태 신앙인으로서 어릴 때부터 교회를 중심으로 살았지만, 하나님에게 찾아진 것은 한 참 후의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모태 신앙인이든 중도에 회심했든 저와 같은 상태에 있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야 할 일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바로 하나님에게 되찾아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비유를 통해, 자신이 가진 보석을 다 팔아 사도 아깝지 않을 보석이 하나님에게 되찾아지는 사건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으로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되찾아졌을 때,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었고 그보다 더 값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격이 잦아듭니다. 마음에 일렁이던 은혜가 점점 사그라듭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별로 대단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나에게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 부를 이름이 있다는 것, 용서하고 받아들여 줄 품이 있다는 것이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위기입니다. 하나님에게 되찾아진 다음에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이런 위기가 찾아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진짜 하나님의 자녀처럼 매일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에게 되찾아진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영적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앞에서 말한 그 가수를 만나서 "당신이 찾는 모든 것이 제게 있습니다"라고 말할 분이 있습니까? 그는 노래합니다. "눈 감을 때 두렵지 않기를, 눈 감을 때 웃을 수 있기를,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면서 내딛는 힘찬 발걸음으로 살기를..." 여기서 눈 감는다는 말은 죽는다는 말입니다.

이미 하나님에게 되찾아졌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여쭙니다. "나는 눈 감을 때 두렵지 않습니다. 나는 눈 감을 때 웃을 수 있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기에 나는 힘찬 발걸음으로 삽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는 또 노래합니다. "이젠 사랑을 하고 싶어 baby. 혼자 집에 오는 길이 싫어 lately. 이런 날 어서 구원해줘 baby 제발. 꺼지지 않을 음식으로 나를 배불려줘."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믿는 분들에게 다시 여쭙니다. "나는 이제 사랑을 압니다. 이제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습니다. 내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구원 받았습니다. 꺼지지 않는 음식이 제게는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분이 정말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인정합니까?

그래야 진짜입니다. 교회 다닌 햇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되찾아졌으며 정말 하나님과 매일 동행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아마도 그 가수가 이렇게 몇 년 동안 영적 탐구를 하면서도 해답을 얻지 못한 까닭은 그 주변에 진정으로 되찾아진 사람처럼 사는 사람이 없어서일지 모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를만한 믿음이 있다면, 낯선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를 믿음이 있다면,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품에 돌아왔다고 믿는다면, 이제는 어디를 가나 함께 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며 이곳을 천국으로 삼아 살아가야 합니다. 아버지의 호적에 다시 이름을 올린 것으로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매일 아버지와 함께 살아야 아들이 된 것입니다. 세례자 명부에 이름이 오른 것에 만족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매일 살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꺼지지 않은 음식으로 배부르고 고갈되지 않는 음료로 갈증을 해갈할 수 있습니다. 견고한 걸음으로 하루 하루 걸어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어야만 우리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되찾으시는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한 마리의 양도 잃지 않으려는 목자의 심정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심정이요, 그것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 인해 내가 되찾아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보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사람을 찾으시는 주님의 간절함을 해결해 드리기 위해 우리도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

만일 잃어버린 사람을 보고서 우리 마음에 긍휼함이 발동되지 않는다면 우리 믿음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성취하고 누리고 있다 해도 하나님이 없다면 그것으로 인한 불행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눈입니다. 한국 부모님들은 자식이 아무리 출세하고 잘 되어도 결혼하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혼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한다면, 믿음에 대해서는 더 더욱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이 진짜라면 믿음 없이 사는 사람을 볼 때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불행하다는 사실을 보고 느껴야 합니다.

그렇게 느낄 때, 우리는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또한 그 사람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습니다. 전도를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전도는 그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 그것 없으면 다른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것, 바로 그것을 주려는 노력입니다. 전도는 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영적 불행을 보고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믿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끄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다만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실하게 해야 하는 일입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에게 진지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

혹시 아직도 잃어버려진 상태에 머물러 계십니까? 다시 한 번 권면합니다. 더 늦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찾으심에 응답하십시오. 당신을 찾기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당신을 찾기까지 결코 만족하지 않으실 하나님, 그분의 품으로 돌아가십시오. 도움이 필요하다면, 주변에 잘 믿는 친구에게 부탁하거나, 목회자들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이미 되찾아졌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회복되셨습니까? 그렇다면 매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에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믿음 안에 담겨 있는 많은 보물들을 다 찾아내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빈 구멍이 채워지고, 삶의 의미가 밝혀지고, 걸어갈 방향이 분명해지며, 이유를 알 수 없는 평강과 기쁨이 넘치고,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웃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세상적으로는 부족할 것이 없이 살아가지만 그들의 삶에 드리워진 그늘을 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그들의 불행이 너무도 마음 아파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간절함 때문에 그 사람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할 일을 찾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프로모션 선데이(Promotion Sunday)를 지킵니다. 유초등부 학생들과 중고등부 학생들이 한 반씩 진급하는 것을 축하하는 주일입니다.

이 주일을 맞아 부모님들에게 권면합니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하나님에게 되찾아지는 것에 온 마음을 두시기 바랍니다. 강남 8학군보다 더 치열해지는 이 지역의 학교 분위기를 따라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찾으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의 자녀들이 좋은 학교에 가고 출세한 것을 자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 목적으로 우리 교회를 찾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오직 자녀들을 하나님에게 되찾아주는 일에 마음을 다했으면 합니다. 부모님께서도 그 방향을 이해하고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급주일을 맞아 학생들을 지도하는 모든 교사들을 축복하며 권면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께 되찾아진 사람들로서 꾸준히 자라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내가 길을 잃었는데 다른 사람의 길을 안내할 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 안에서 더 온전히 자라도록 힘쓰시고, 맡겨진 영혼들이 하나님께 되찾아지도록 기도와 사랑과 헌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교사 훈련 시간에 나눈 말씀입니다만, 주님 앞에 우리가 내 놓을 것은 우리를 통해 되찾아진 영혼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모든 성도들에게 여쭙니다. 나로 인해 하나님 앞으로 인도된 영혼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한 번이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일이 있습니까? 내 믿음은 오직 나 혼자 구원 받는 것으로 족한 믿음입니까? 오해하지 마십시오. 나 자신을 구원할만한 믿음이라면 그 믿음으로 이웃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간절히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진정으로 되찾음을 받고 또한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는 일에 기도와 사랑과 헌신의 제물을 바치는 거룩한 결단이 있기를! 아멘!

잃어버린 영혼을
마지막 하나까지 찾으시는 주님,
그 사랑으로 저를 찾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로 하여금
주님 품 안에 머물러 살게 하셔서
구원의 보물을 모두 찾게 하시고
누리게 하소서.
잃어버린 영혼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눈으로
이웃을 보게 하시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시는 주님의 일에
참여하게 하소서.
오, 주님,
저희를 붙드시어
참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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