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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막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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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노열 목사 |
참고 : | http://www.koabbey.com/33555 |
관상설교란? - 하나님께서 하시는 설교이다. 설교자는 하나님 면전에서 전하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은 아무 것도 없다. 관상설교란 이유는 설교자가 "관상상태"를 유지하면서 하는 설교이기 때문에 다른 설교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부를 이름이 없어 "관상설교"라 스스로 이름 붙였다. 좀 교만한 생각이 아닌가 하면서도 꼭 "관상설교"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누가 무어라 하든지 그것이 "관상적 설교"라고 나는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물론 온전한 관상상태 속에서 설교는 어렵지만 지향하고 노력하고 있다. 본문 묵상과 자료 수집하고 기도(관상기도)하면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에 대하여 질문해 본다. 그리고 성령께서 말씀하시도록 부탁한다. 설교 전에 준비한 자료들을 살펴보고 성령께서 온전히 사용하실 수 있도록 마음과 생각을 비운다. 예배전 관상기도를 통하여 성령께서 하나 되어 주심을 최대한 유지한다. (주님 나와 전인적으로 하나되시어 아버지의 뜻대로 말씀 하소서...) 그리고 전 예배 인도를 성령께 맡긴다. 설교 시간에는 더욱 나(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까지)를 믿음으로 주께 맡긴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도록...... 내 속에서 한없이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말씀을 들는 그대로 전한다. 체면이나 미움도 사랑도 계획도 의욕도 다 버린다. 하나님 면전에서이기 때문이다. 영감을 주는 대로 다시 말해서 성령이 말씀하시는 대로 전한다. (때로는 마음 속으로 이것이 아닌데 싶더라도 그대로 전한다) 하나님의 평가가 있으시기 때문이다.(보시고 들으시기 때문이다)- 고려수도원 박노열 목사
막 7:1~13 참 경배와 헛된 경배 (유전과 말씀) 주제: 33. 경배 2008. 12. 21.
◎ 서론
: 이 본문은 사람과 종교의 운명(참 경배와 헛된 경배)을 좌우할 만큼 극히 중요한 것이다.
※ 인간이나 종교의 존폐여부는 인간의 마음과 종교의 중심에 달려있다.
※ 인간과 종교의 중심은 용납과 화해, 용서와 구속, 평화와 사랑, 겸손과 주는 것, 기쁨과 소망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1. 종교인들과 유전 (1~5)
2. 유전의 위험성 (6~8)
3. 유전과 하나님의 계명 (9~13)
1. 종교인들과 유전. (1~5)
1). 예수님의 제자들의 과실을 발견한 종교인들(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의 모습이다. (1)
※ 조사단 1 : 종교인들은 사실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이다.
① 예수님의 말씀과 치유사역, 그리고 그분과 지역권세자들 사이에서 빚어지고 있는 갈등에 대한 소식이 예루살렘 지도자들에게 끊임없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② 그들은 예수님이 바알세불을 힘입어 병을 치료하고 귀신을 쫓는다고 고소했다.
③ 그들은 또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한다고 고소했다.
※ 조사단 2 : 세례요한을 조사하기 위해서 보내졌다.
※ 세례 요한은
①예수님 앞서 보냄 받은 사자이나
② 세례 요한이 전하는 설교와, 베푸는 세례와, 제사장 직분은 의혹의 대상이 되었다. (마 3:7~10; 요 1:19)
2). 나라 전체가 예수님의 주장과 놀라운 이적들로 인해 술렁거리고 있었다. (2)
① 사람들은 위험하게 보일 정도로 흥분되었다. 그래서 또 다른 조사단을 보냈다.
② 조사단이 도착하자마자 제자들이 그들의 유전 중 하나를 범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③ 제자들은 씻지 않은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고 있었다.(의식적인 면에서 부정이다)
* 그들의 비난은 하나님 보시기에 부정하다는 의미이다.
◉ 율법 : 어떤 물건들을 다루기에 앞서 손을 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3~4)
①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성전의 거룩함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것이었을 뿐 아니라,
② 하나님께 나아가거나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먼저 영적으로 정숙케 되어야 할 필요 때문이었다.
③ 그러나 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인가(수천가지)를 덧붙인 것이 문제이다.
④ 규칙들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고 마음을 정결케 하는 대신에 사람들로 하여금 규칙 자체와 그것들을 지키는 데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 하나님이 아니라 그 규칙들 자체가 관심의 초점이 되어 버렸다.
3). 이 경우에 있어서 깨트려진 규칙은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은 것이었다. (5)
※ 장로의 유전을 깨트렸으므로 제자들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4). 종교인들은 그들이 진정한 랍비의 제자였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 진정한 랍비는 그의 제자들에게 장로들의 유전을 가르쳐서, 그것들을 무시하거나 범하지 않게 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사단은 예수께로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5)
2. 유전의 위험성 (6~8)
1) 유전은 외식적 존경이 될 수 있다. (6)
※ 예수께서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의 비난을 받아들여, 그들을 책망하는 기회로 삼으셨다.
※ 성경을 인용하여 이사야의 말을 그들의 영적인 상태에 적용시켰다. (사 29:13)
※ 예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들”(마 23:13)이라 부르셨다.
*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였고 마음은 멀리 있었다.
※ 외식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인정하며 예배에도 참석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전부일 뿐 종교적으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사람들이다(바리세인과 서기관들)
2). 유전은 헛되고 무가치한 경배가 될 수 있다. (7)
※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요 4:22). 종교인들은 공허한 마음으로 예배하였다
※ 진정한 예배는 “신령(영으로)과 진정(진리 안에서)으로” 행해야 한다. (요 4:24)
※ 종교인들은 입술로는 신앙을 고백했으나,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했다.(17,18)
3). 유전은 인간이 만들어 낸 계명이 될 수 있다. (8)
※ 유전은 무엇을 해야 하고, 또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 어떤 유전은 좋은 것도 있으나 하나님의 계명인 것처럼 가르쳐서는 안 된다.
※ 어떤 유전들도 하나님의 말씀만큼 중요할 수는 없다.
3. 유전과 하나님의 계명 (9~12)
1). 유전이이 하나님의 계명보다 먼저 지켜질 수 있다. (9~12)
※ 유전이 하나님의 계명을 앞설 수 없다.
※ 예수께서는 그 당시 종교인들이 그들의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법을 저버렸다고 말씀 하셨다. 그리고 그 예를 들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고......... 드리기를 허락지 아니하고” (10~12)
※ 「율법을 깨트리는 자는 예수님이 아니라 바로 외식하는 너희들이다」고 말씀 하신다.
2). 유전은 하나님의 말씀을 폐할 수 있다. (13)
※ 유전은 하나님의 말씀을 폐할 수도 있다.
※ 예수께서는 종교인들이 유전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았다고 책망하셨다.
① 제도적인 유전은 의식, 규칙, 규례, 일정, 형식, 예배, 절치, 조직 등에 관여된 사람들에게 질서와 안정을 주는 모든 것이다.
② 개인적인 유전은 교회출석, 기도, 습관, 예식, 사용하는 물건(다소 미신적인) 등으로 자신의 종교적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 예수께서는 많은 종교인들이 하나님 말씀은 무시하면서 그들의 유전만을 앞세우고 있는 사실에 대해 책망 하셨다. (마 12:1~8; 12:10)
◎ 결론 :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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