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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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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4년 2월 13일 http://www.john316.or.kr |
인생이 들뜨고 행복해질 때
(마태복음 6장 1-4절)
< 행복을 위한 나눔의 원리 >
태초에 에덴동산은 모든 것이 풍족했지만 아담은 행복하지 못했다. 사랑할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할 대상으로 하와를 주셨다. 그때부터 아담의 행복은 시작되었고 하나님도 그것을 보고 심히 좋아하셨다. 사람은 사랑을 나눌 마음과 대상이 있어야 행복하게 되어 있다. 행복은 부에 있지 않고 부를 나누려는 마음에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로 인해 남이 잘되면 “괜히 남 좋은 일만 했다!”고 투덜댄다. 그러나 남 좋은 일을 하는 것이 복 받는 비결이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현된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외로운 사람의 벗이 되어 주고 살맛을 잃은 사람들에게 살맛을 주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웃 사랑의 강도가 하나님 사랑의 강도이다. 어떤 분은 자기도 어려우면서 남을 열심히 돕는다. 그처럼 힘써 나눔을 실천할 때 성령님이 그 마음에 임한다. 그러므로 힘써 나누고 나눌 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1. 조용히 선을 행하라
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구제를 싫어하셨는가? 선행을 자꾸 나팔을 불며 드러냈기 때문이다(2절). 나누고 드릴 때는 사람을 의식하지 말라. 선물에는 악취 나는 선물이 있고 향취 나는 선물이 있다. 언제 향취가 나는가? 선물을 주고 난 후에 조용히 있을 때 난다. 향취는 은은히 풍겨야 좋다. 너무 향수 냄새가 심하면 괴롭다. 그처럼 선물에 은은한 향기가 있을 때 감동도 있고 인간미도 있다.
이사야 6장에 나오는 천사처럼 최고로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리라. 천사가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린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저는 여전히 부끄럽습니다.”란 표현이다. 하나님을 위해 밤낮으로 일하며 섬기는 천사도 그렇게 겸손한데 조금 하나님의 일을 하고서 얼굴과 이름을 너무 드러내려고 하면 안 된다.
2. 신속히 선을 행하라
나눔의 감동이 있을 때 오래 생각하고 재고 계산하면 마음이 변하기에 오른 손이 하는 일이 왼 손이 모를 정도로 신속하게 나눔을 실천하라. 계산하면 헌신하지 못한다.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여인이 머리로 계산했다면 결혼할 때 쓰려고 모아둔 향유를 그렇게 쓰지 못했을 것이다. 헌신에도 적절한 때가 있다. 다급할 때의 작은 도움이 다급하지 않을 때의 큰 도움보다 낫다.
교회나 선교사가 절실한 필요가 있을 때 누군가 물질적으로 헌신하면 감동적인 기도가 나온다. “하나님!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를 먹이셨듯이 이렇게 기적적으로 채워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손길을 기억하소서!” 그러나 교회에 교인들이 넘치고 선교사에게 후원자가 넘치면 헌신을 받고도 깊은 감동과 감사가 적어진다. 부족할 때 하나의 정성을 바치는 것은 넉넉할 때 둘의 정성을 바치는 것보다 낫다. 나눔의 손길은 ‘넉넉한 곳’보다는 ‘필요한 곳’을 향해 순수하고 신속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3. 도와준 후에 잊으라
드린 후에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하면 공로의식이 생길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은 어떤 일을 보거나 자신의 영향력이 생각만큼 크지 않은 것 같으면 섭섭한 마음이 들면서 본전 생각이 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나누고 드린 후에는 나누는 것으로 끝내고 그 선행을 깨끗이 잊어야 시험에 들지 않는다.
모든 이치가 다 그렇다. 전철에서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면 멀리 가라. 양보한 후에 그 앞에 그대로 서 있으면 양보 받은 분이 미안하고 불안하다. 양보 받은 사람의 마음까지 편하게 해주어야 진짜 양보이다. “내가 이만큼 나눴다!”는 공로의식은 나눔이란 보석에서 불순물과 같은 것이다. 보석은 불순물이 적을수록 가치가 올라가듯이 공로의식의 불순물이 없어야 그 나눔이 금강석처럼 영롱한 나눔이 된다.
< 인생이 들뜨고 행복해질 때 >
어떤 분은 교회에서 좋은 일은 도맡아 하고도 이름은 힘써 감춘다. 진실한 성품이다. 물론 삶에서 인정받는 재미도 필요하다. 그러나 너무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면 피곤해진다. 그런 상태가 심해지면 수시로 우울함이 찾아온다. 행복하게 살려면 이웃의 평가와 시선에서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내 진실’이다. 나쁜 여론도 사실이 아니면 곧 그 여론은 없어진다. 여론이 무섭다지만 더욱 무서운 것은 ‘사실’과 ‘진실’이다.
인정받으려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지라. 인정받으려고 하면 더 인정 못 받는다. 그저 하나님이 보시고 아시는 줄 알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 자연히 인정받는다. 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직하게 성찰해야 한다. “내가 정말 욕심이 많구나! 내가 인정받으려고 몸부림치는구나! 부끄러운 모습이었구나!” 그런 정직한 자기 인식들은 고통스럽지만 꼭 필요하다. 그래야 보다 진실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진짜 행복은 은밀함 중에 펼쳐진다. 어떤 사람은 자기 선행을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에서 더 행복을 느낀다. 그때 하나님의 인정을 더 받는 느낌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 은밀한 행복을 모르면 신앙생활의 핵심을 놓치게 된다. 나눔은 ‘자기를 축하하는 삶의 표현’이 아닌 ‘자기를 망각하는 삶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은밀하게 나눌 때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가 마음이 깨끗해지고 따뜻해진다.
은밀한 나눔과 섬김은 인생 승리와 행복의 제일 비결이다. 왜 주님이 변화산상의 신비체험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가?(막 9:9) 신비로운 영상을 마음속에 혼자서 고이 품고 살 때 고난도 쉽게 극복할 수 있고 참된 행복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신비한 영상과 기억을 가지고 은밀한 나만의 행복을 만끽하며 살려고 해야 한다. 나눌 때 도움 받은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 사실을 오직 하나님과 자기만 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신비한 행복인가?
은밀한 나눔의 최고수가 되는 꿈을 가지고 복 받는 자로 끝나지 말고 복의 근원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을 나눠주라. 그러면 상상을 초월한 유익이 많다. 결국 나눔의 꿈과 비전이 있고 나눌 마음과 대상이 있는 것이 인생의 최대 행복이다. 나눔의 비전을 가지고 일하면 마음이 들뜨고 행복해진다. 언젠가 자신이 훌륭한 나눔의 통로가 될 것이란 즐거운 상상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인물의 꿈을 이루고 난 후 남이 하려고 하지 않은 궂은일을 하면서 은밀하게 자신의 성공의 열매를 나누면 그처럼 행복한 삶은 없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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