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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6:1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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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4년 2월 18일 http://www.john316.or.kr |
외식에서 자신을 지키는 길
(마태복음 6장 16-18절)
< 금식할 때 주의할 것 >
본문은 외식적인 금식을 경고하는 말씀이다. 물론 금식 자체는 유익이 많다. 병들면 먹는 것보다 안 먹는 것이 좋다. 정신적 충격을 받을 때 식음을 전폐하는 것도 괜한 투정이 아닌 인체보호본능 때문이다. 병들 때 식욕이 없는 것은 병든 비상상태에서 음식물이 많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즉 음식 소화를 위해 위장으로 보낼 혈액을 급히 병든 곳으로 보내려는 인체의 의사표시가 식욕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금식은 타성에 빠진 신체를 활성화시키는 충격요법이다. 금식하면 인체는 비상상태를 선포하고 각종 호르몬 분비가 활성화되면서 인체의 저항력과 자연치유력이 크게 증대된다. 또한 오랫동안 축적된 노폐물이 배출되고 잉여물질도 에너지로 전환된다. 특히 위장과 혈관 등에 붙은 불순물이 제거되어 소화기와 순환기 질환에 놀라운 치유 효과가 있다. 결국 금식은 무분별한 식생활과 운동부족 등으로 약해진 현대인의 심신을 새롭게 하려고 하나님이 숨겨두신 비장의 카드이고 최고의 보약이다.
물론 금식을 맹신하면 안 된다. 어떤 사람은 금식해야 기도가 응답된다고 하지만 성경에 그런 말씀은 없다. 그러므로 금식을 남용하지 말고 바르게 해야 한다. 금식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슬픈 기색을 내며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16절). 금식을 경건성을 나타내 존경받는 도구로 삼으면 안 된다. 둘째,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야 한다(17절). 그래서 금식하지 않는 것처럼 해야 한다. 셋째, 은밀하게 하나님께 보이려고 금식해야 한다(18절). 금식을 비롯한 모든 선행은 은밀하게 해야 하나님이 기억해주신다.
선을 행할 때 선을 행할 마음과 능력도 구하면서 자신의 선행을 잊게 해달라는 기도도 해야 한다. 큰일을 해도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해야지 “내가 큰일을 했다!”고 자부심을 가지면 오히려 영혼에 독이 된다. 선행을 통해 칭찬을 얻거나 복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과시하지 않고 은밀하게 선을 행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금식도 신앙과시의 수단이 되면 안 된다. 금식의 가장 큰 목적은 ‘교만과 자랑을 빼기 위한 것’인데 금식하고 마음이 높아지려면 차라리 금식하지 않고 겸손한 것이 더 낫다.
< 외식에서 자신을 지키는 길 >
어떻게 금식이 외식으로 변질되는 것에서 자신을 지키는가? 첫째,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왜 사람들이 외식에 빠지는가?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라 자기 양심이 화인 맞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딤전 4:1-2). 쉽게 말하면 외식하는 자는 믿음이 없는 자란 뜻이다. 믿음이란 내용이 없으니까 자꾸 외적인 형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형식도 필요하지만 믿음이란 내용이 없으면 안 된다.
내용과 형식이 다 필요하다. 외식하지 말라는 말은 형식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다. 그 그릇을 깨면 내용도 곧 사라진다. 그러므로 영성을 추구할 때 형식과 규칙도 힘써 지켜야 한다. ‘내용이 없는 형식’이 외식으로 흐르듯이 ‘형식을 무시하는 내용’도 아집으로 흘러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 ‘형식을 존중하는 것’과 ‘형식만 내세우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형식을 존중해야 내용도 바르게 형성된다. 그러나 형식을 지나치게 존중하지는 말아야 한다.
둘째,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초대교회 때 외식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주제는 결혼 및 음식과 관련된 태도였다. 그때 외식하던 사람들은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은 먹지 말라고 했다. 독신으로 살거나 금식과 절식을 하면 경건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기에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며 버릴 것이 없다고 했다. 그 원리는 인생 전반의 문제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가끔 어려움을 당하면 “왜 이런 고통이 오나?”라고 낙심이 되지만 감사함으로 받으면 그것도 버릴 것이 아니다. 살다보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규칙이나 환경을 만나지만 그것도 감사함으로 받으면 유익할 때가 많다. 심지어는 악인을 통해서도 배울 부분이 있고 나쁜 환경을 통해서도 얻는 것이 있다. 그처럼 주어진 것들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어떤 삶도 잘 소화해서 복된 삶을 만들어낼 수 있다.
셋째,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 해야 한다. 살면서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소화해 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를 앞세워 하나님과 은밀하게 교제하면 어려움을 소화하는 탁월한 능력이 생기면서 더욱 거룩해지고 진실해질 수 있다. 사람 앞에서 인정받아도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경건성과 영성의 내용이다.
요새 능력을 불나방처럼 추구하다가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능력을 받았다고 초심을 잃고 교만해진다면 차라리 능력을 안 받고 겸손한 것이 낫다. 살면서 너무 외적인 것에 끌리지 말라. 금식기도나 능력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말씀과 기도로 무장된 은밀한 영성은 성도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영성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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