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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을 넓히라!

역대상 류공석 목사............... 조회 수 1596 추천 수 0 2014.04.18 17: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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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대상4:9-10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지경을 넓히라!
2011년 1월 1일(토) 신년수련회 셋째 날 송구영신예배
본문: 역대상 4:9-10

  201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해에도 한결같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여러분과 가정과 하시는 사업 위에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새해 첫 시간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역대상 4:9-10절 말씀이다. 족보 한 가운데 있고, 지금은 야베스의 기도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족보는 그저 누가 누구를 낳고의 나열이 아니라 그 자체가 역사이고 한 개인의 삶의 이야기다. 특별히 야베스에 대한 기록은 좀 특별한 데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름만 나열이 되다가 야베스의 경우는 앞의 형식과는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좀 의아한 느낌이 드는데, 여기서 우리는 야베스라는 사람이 무언가 특별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감지할 수가 있다.

  야베스, 이 사람에 대한 첫 기록은 이렇게 시작한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개역한글에는 존귀한 자라고 되어 있다. 히브리어로는 니크바드(נכבד)이다. 영광, 경외, 존경을 뜻을 갖고 있는 카보드에서 나온 말이다.

  존귀하다고 했을 때는 출세하여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하고, 더불어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도 이 표현을 쓴다. 이사야 49:5 앞부분을 개역한글 성경으로 읽으면 이렇다.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여기서도 사용되고 있는 단어는 에카베드(אכבד)이다. 같은 의미이다. 야베스가 존귀하다고 했을 때는 사람들 앞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는 뜻이다.

  즉 야베스가 존귀한 자였다는 말은 그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그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들을 많이 했던 사람이었고, 사람에 대한 연민과 배려가 있었고, 일을 수행함에 있어 정직과 공의를 행했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존경 받고 선한 영향력을 끼쳤던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불어 하나님 앞에서도 존귀한 자로 믿음의 길,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길을 걸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뜻한다.

  여러분들이 이런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야베스처럼 존귀한 자, 세상에서도 존귀한 자, 사람들 앞에서도 존경받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귀한 자, 무엇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한다. 이것을 올해의 목표로 삼기를 바란다.

  그런데 말이다. 이 야베스라는 사람은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의 출생이나 가문이 절대 존귀하지 않았다. 우선 그의 이름의 뜻이 그렇다. 그 해석이 그 다음 구절에 나온다.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성경에서 어머니가 자녀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흔하다. 하와가 아들을 낳고 가인이라 불렀고 라헬이 산고 끝에 아들을 낳고 베노니라고 불렀고, 삼손 역시 어머니가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야베스가 다른 이들과 다른 것은 그의 출생에 있어 어머니만 나온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는 아버지의 이름도 나오는데 야베스는 어머니만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이 집안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가 이미 죽었거나 혹은 이혼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어지는 이름의 뜻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이것이 야베스라는 이름에 담겨 있는 뜻이다. '수고로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베오쩨브(בעצב)이다. 직역을 하면 고통으로, 고통스럽게라는 뜻이다. 그의 이름에는 고통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우리 말로 하면 김고통, 박산고, 이진통이란 이름이다. 참 희안한 이름이고 평생 이 이름을 짊어지고 가기에는 쉽지 않은 이름이다. 그 이름 자체가 고통이다. 그의 출생과 집안 배경과 이름만 보면 존귀한 자와는 거리가 멀다. 멀어도 한참 멀다.

  누가 고통을 당했을까? 어머니일까 야베스일까? 본문에서는 불분명하다. 불분명하다는 말은 둘 다 고통을 당했음을 보여 준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내가 너를 고통 중에서 낳았다는 말이 되고, 야베스의 입장에서는 어머니가 고통 중에 있는 나를 낳았다는 말이 된다.   어머니 입장이라면 이미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남편이 없이 홀로 아들을 낳은 것 자체가 고통이다. 당시 남편이 없다는 말은 삶의 큰 위기이다. 여자 홀로 생계를 꾸려나가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 당시 사회였다. 삶 자체가 너무나도 큰 고통이다. 그리고 큰 산고를 치뤘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의술이 발달해서 괜찮지만 예전에는 아이를 낳다가 죽는 경우가 많았다.

  야베스의 입장에서 보면, 그가 장애아로 태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칠삭둥이나 팔삭동이로 태어났을 수도 있다. 야베스 역시 아버지 없이 태어났을 때 그의 삶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 역시 고통이다.

  아마도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고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지, 앞으로 어찌 살아가려고 하면서 고통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이렇게 존귀함과는 거리가 너무나도 먼 야베스가 존귀한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매우 놀라운 일이다. 요즘 말로 하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성공한 자수성가형의 인물, 입지전적인 인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존귀한 자가 된 것은 단순히 그의 노력만으로 된 것이 아니다. 그 비결은 그의 기도에 담겨 있다. 10절이 그 기도의 내용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는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라고 기도한다.

  개역한글에는 지경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히브리어로는 그불(גבול)이다. 영토, 영역, 지역이라는 말도 되지만 경계나 어떤 한계를 의미한다. 국경을 그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기도의 의미는 무엇일까? 복부인들이 좋아하는 땅을 넓혀 달라, 나의 집을 크게 넓혀달라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기도는 무엇보다 자신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기를, 한계를 뛰어넘도록 해달라는 기도이다.

  야베스에게는 핸디캡이 있었다. 그가 선천적인 장애인이었다면 신체적인 핸디캡, 한계상황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매우 비참하고 어려웠다. 정상적인 직업을 가질 수가 없다. 모진 편견과 놀림과 따돌림을 당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신체적인 한계로 인해 자신의 마음도 한계에 갇혀버리고 재능까지도 갇혀버릴 수 있다.

  장애인이 아니었더라도 그의 삶의 형편, 가정 형편 자체가 한계 상황이었다. 불우한 환경 가운데서 그의 절감한 것은 한계이다. 무엇을 해보고 싶어도 자신의 환경이 그것을 받춰주지 못한다. 이러한 한계상황 속에서 그는 부르짖는다. 이 기도는 젊잖은 기도가 아니라 깊은 탄식 가운데서 부르짖는 울부짖음의 기도이다. 이 기도를 드리는 야베스의 마음을 옮기면 이럴 것이다.

  "하나님!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데 제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저 자신의 한계로 인해, 저의 환경의 한계로 인해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장애가 있습니다. 나를 가로막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바라고 의지할 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 일을 이룰 수 있도록 나의 한계를 당신의 능력으로 뛰어 넘을 수 있게 하옵소서. 나에게 있는 한계가 당신의 손에 붙들리면 더 이상 한계가 아님을 압니다. 그러니 당신의 능력의 손으로 나를 붙드사 나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 한계상황을 뛰어너넘게 하소서. 결코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 마음이 느껴지는가? 혹시 이런 마음으로 기도해 본적이 있는가? 여러분들에게는 한계상황이 없는가?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그런 상황, 내 힘으로는 부족한 그런 상황이 없는가? 자신의 힘으로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언제 어디서 어떤 한계상황, 위기상황이 닥칠지 모른다. 사실 우리의 삶은 그 자체가 한계상황이다. 즉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삶 자체가 불가능하다.

  야베스와 같은 기도를 드리라.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야베스와 같은 심정으로 기도한다. 자격이 없는 자를 주의 종으로 불러주셨는데 내게는 목회의 능력이 없다. 너무나도 많은 한계가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밖에 없다. 나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말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삶의 본질은 불확실성이다. 아무 것도 보장되고 확실한 것이 없다.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없이는 안된다. 그래서 부르짖는다.

  자녀들 역시 마찬가지다. 내 자녀들이 자신들의 한계에 갇혀 포기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한계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기도하라.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삶을 위해서 기도하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라.

  그리고 나아가 나라는 한계에 갇혀서 나 자신만의 삶의 유익만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뛰어 넘고 가족을 뛰어 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쓰임 받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구하라. 그래서 내가 일하고 살아가는 현장에서 존귀한 자가 되게 해달라고 구하라.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 선한 영향력, 영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구하라.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내 것으로 삼게 해달라고 구하라. 하나님의 꿈이 나의 꿈이 되게 해달라고 구하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주시고 찾아지고 열린다고 하셨다. 자신의 한계 상황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그분의 꿈을 구하라.

  그리고 당신의 핸디캡을 뛰어넘는 기도를 드리라. 한계 상황을 뛰어넘는 기도를 드리라. 당신의 경험의 한계, 생각의 한계, 의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하라. 믿음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큰 믿음의 길을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믿음을 넓히고 눈을 넓히고 생각을 넓히고 꿈을 넓히라.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셨다. 믿음의 입을 크게 열라. 비전의 입을 크게 열라. 그리고 구하라. 그것이 당신의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다. 이것이 올 한해의 여러분의 기도의 제목이 되기를 축복한다.

  두 번째 기도는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라는 내용이다.

  히브리어에서 직역을 하면 "당신의 손이 나와 함께 하시기를"이란 의미이다.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능력, 권능, 파워를 상징한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나와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를 도와달라는 의미도 되지만 쓰러진 나를 당신의 손으로 다시 일으켜 달라는 간구이다.

  야베스는 그의 한계상황과 환경의 한계상황으로 인해 수없이 많이 쓰러졌을 것이다. 많이 지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상황이 많았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실패를 맛보았을 것이고 수도 없이 낙심하였을 것이다. 어쩌면 한 때는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깊은 탄식 가운데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설령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고 외면하시는 것 같이 느껴져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들으시고 마침내 나를 끌어올려 일으켜 세워주신다.

  하나님을 찾으라. 야베스에게 그리 하셨던 것처럼 그 능력의 손으로 잡아주시고 일으켜 세우시는 은혜가 임할 것이고, 그 은혜가 올 해 함께 하기를 축원한다.

  세 번째 기도는 "나도 환난을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직역하면 '당신이 악으로부터, 악한 일로부터 행하셔서'라는 뜻이다. 주기도문의 한 구절인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가 연상되는 기도이다.

  하나님, 악으로부터, 악한 일들로부터 행하셔서 나를 구하소서라는 기도인데, 왜 이 기도를 하는가? 우리에게는 악을 이길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마귀의 유혹과 시험에 대해서,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 대해서, 사람들의 악한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또한 환난도 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환난시련에 대해서도 우리는 능력이 없다. 있어도 너무나도 부족하다. 사회구조적인 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는 그것과 맞서 싸울 능력이 부족하다.

  오히려 우리는 그 악에 대해 넘어가고 무너질 위험요소들이 더 많다. 나의 욕심 때문에 그렇고, 내 안의 뿌리 깊은 죄성 때문에 그렇고, 나의 완고함 때문에 그러하다. 내가 나의 주인 자리에 앉아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 기도는 내 안에 있는 악에 넘어가고 무너질 위험요소들에 대한 기도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먼저 내 안에 있는 위험요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사도 바울처럼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 나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 내 안을 그리스도로 채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한다. 기도와 말씀으로 거룩해진다고 했다. 기도와 말씀 없이 악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

  올해 기도와 말씀생활에 힘쓰라. 이제 더 이상 시간 없다 핑계대지 말라. 기도와 말씀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바꾸라. 기도는 내 욕심을 구하는 주문이 아니다. 기도는 나의 모든 것을 십자가 앞에 쏟아놓고 대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뜻과 능력으로 채우는 시간이다. 말씀이 따분한가? 그 태도부터 바꾸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당신이 기도와 말씀에 대해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영적 상태와 삶은 지금 그대로의 모습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아니 더 나빠질 수 있음을 명심하라. 기도와 말씀에 대한 태도부터 바꾸라. 날마다 기도의 시간을 가지라. 기도 없이 능력은 없다. 날마다 말씀을 먹으라.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다. 말씀을 듣지 않고 말씀을 먹지도 않는데 어찌 믿음이 성장하기를 기대하는가?

  오늘 새해 첫 시간에 굳은 결심을 하라. 기도와 말씀 생활을 날마다 실천하겠다는 결심을 하라. 예배에 목숨을 걸라. 주일 성수하라. 예배는 나의 평안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나의 믿음의 표현이다. 어딜 가던 예배자가 되라. 예배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는 것이다.

  네 번째 기도는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의 내용이다.

  직역하면 '내가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옵소서'이다. 근심 보다는 고통의 의미이다.

  이 말은 야베스에서 야베스를 어없애 달라는 기도이다. 고통의 이름 뜻을 가진 고통의 존재, 저주의 존재인 나에게서 그 고통과 저주를 없애달라는 것이다. 비록 이름은 야베스지만 새로운 존재, 축복의 존재, 샬롬의 존재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러하지 않은가? 우리는 본래 진노아래 있었던 자들이다. 저주와 고통의 인생이었다.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었다. 우리가 바로 야베스였다.

  그러나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축복의 인생, 샬롬의 인생으로 바꾸어주셨다!

  나는 기도한다. 특별히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한다. 조상 대대로의 저주와 고통을 끊으시고 축복의 가문, 믿음의 가문으로 세워달라고 기도하고 그리 하려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한다.

  이것은 가계 저주론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은 본래 저주와 고통이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저주와 고통이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려도 그 본질은 저주이고 고통이다. 그 끝은 영원한 저주이며 고통인 지옥이다. 우리 조상 대대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이제 새로운 존재가 된 것이다. 축복의 존재, 샬롬의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그 시작이다. 그 다음부터가 중요하다. 정말 나 자신이 축복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 인생이 축복의 인생, 샬롬의 인생이 되어야 한다. 나의 가정이 축복의 가정, 샬롬의 가정, 믿음의 가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세워나가야 한다. 그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기도하고, 가정을 위해 그렇게 기도하라. 믿음의 사람, 축복의 사람으로 세워달라고 구하라. 나의 가정을 축복의 가문, 믿음의 가문으로 세우게 해달라고 구하고 그리 노력하라.

  지난 해 말에 우리 교우 중에 두 성도가 비슷한 시기에 부친상과 모친상을 당했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참으로 감사한 것은 두 분 모두 그 슬픔과 아픔을 통해 한층 그 믿음이 성숙해졌다는 것이다. 부친과 모친 모두 신앙생활을 잘 하신 분들이시고 그 분들을 통해 그 집안에 신앙이 시작되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위로 예배를 드렸다. 그때 이렇게 말씀을 전했다. 아버님이, 어머님이 전해 준 믿음의 유산을 잘 간직하고 더욱 더 믿음 위에 굳건히 서서 믿음의 가문, 축복의 가문을 일으켜 세우라. 그것이 아버님, 어머님의 유언이고 가장 간절한 뜻이다. 당신과 당신의 가정이 믿음의 사람과 믿음의 가정으로 살아가는 그 모습을 하나님 품에서 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권면했고 감사하게도 그리 살고 있다. 노력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고 노력하자. 믿음의 가문, 축복의 가문을 세우자. 믿음의 사람, 축복의 사람, 하나님의 샬롬을 맛보며 사는 사람이 되자.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행복이다. 그 행복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성경이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행복의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주인으로 모시는 것과 그분의 말씀에 귀기울여 순종하는 것이다. 이 길로 가지 않고서는 결코 믿음의 사람, 믿음의 가문, 축복의 사람, 축복의 가문이 될 수도 없고 세울 수도 없다. 그저 교회만 다니는 종교인, 아무런 경건의 능력과 모습도 없는 가문으로 남고 만다.

  선택하라. 분명한 선택을 하라. 이제 더 이상 불신의 세상의 넓은 길로 가지 말고 믿음의 좁은 길을 가라. 좁은 길이 곧 행복의 길이고 믿음의 길이다. 축복의 길이고 생명의 길이다. 이 길을 가라. 그리하여 당신 자신이 믿음의 사람, 축복의 사람이 되고, 당신의 가문이 믿음의 가문, 축복의 가문이 되게 하라.

  이러한 야베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것으로 본문은 끝난다.

  이 마지막 부분을 첫 구절과 연결하여 보자. "야베스가 존귀한 사람이 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야베스의 인생과 기도의 결론이다. 하나님께서 고통과 저주의 존재인 야베스를 축복과 샬롬의 존재, 존귀한 자로, 존귀한 인생으로 바꾸어주셨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도, 특별히 2011년 올 한 해에 임하기를 축복한다. 당신의 핸디캡이든, 한계상황이든, 저주와 고통이든 그 무엇이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면 더 이상 한계가 아니다. 더 이상 저주와 고통이 아니다. 이제는 한계가 능력이 되고 저주가 축복이 되고 고통이 샬롬이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이 은혜를 더욱 사모하는 사람들이 되라. 야베스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2011년 한 해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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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28 마태복음 신앙고백의 장소는 세상이다. 마16:13-20  류공석 목사  2014-04-18 1265
10627 시편 말씀으로 여는 하루 시1:1-  류공석 목사  2014-04-18 1214
10626 디모데후 결산보고 딤후4:7-8  류공석 목사  2014-04-18 974
10625 누가복음 성탄, 찾아오신 하나님! 눅2:8-14  류공석 목사  2014-04-18 2002
10624 이사야 성탄, 하나님의 Passion! 사9:6-7  류공석 목사  2014-04-18 1566
10623 마태복음 술렁임과 기뻐함 사이에서 마2:1-12  류공석 목사  2014-04-18 1090
10622 마태복음 예슈아, 임마누엘의 이름 마1:18-25  류공석 목사  2014-04-18 1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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