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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28:6, 10,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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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성실히 행하는 자가 복
본문: 잠28: 6, 10, 18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사곡히 행하는 부자보다 나으니라(6)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받느니라”(10)
“성실히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나 사곡히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18)
마크 하트필드는 인도의 캘커타에 있는 마더 테레사를 방문해 그녀와 함께 하루를 보내면서 현장을 다니며 그 참상과 빈곤, 지옥 같은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었습니다. 날이 저물 무렵에서 그는 마더 테레사에게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엄청나게 많은데 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작을 뿐임을 느낄 때 낙심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즉시 대답했습니다.“아니요. 주님께서 나더러 성공적이 되라고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성실하라고 나를 부르셨기 때문에 낙심되지 않아요.”
우리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 또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성실’을 위해서이지 ‘성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상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심지어 때로는 교회도 우리더러 세상의 방식대로 측정되는 적당한 성공을 이루라고 재촉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주어진 삶에서 얼마나 성공했느냐를 따지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성실했나를 따지십니다. 성실하게 사십시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케 하느니라”(잠11:3)
자치통감을 쓴 사마광에게 어느 날 그의 제자 유안세가 물었답니다.
"선생님 한문자 수만 자 중에서 제일 중요한 글자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일생동안 살아가면서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글자를 하나만 골라 주십시오." 그 때 사마광은 "그것은 성(誠)이라는 글자다."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제자가 "선생님, 성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자 사마광은 간결 명쾌하게 "불망어(不忘語)"라고 대답했답니다. 망(忘)은 허망할 망자입니다. 허망한 말과 허망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성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성실은 '정성 성'자와 '열매 실'자로 된 단어입니다. 그래서 성실은 ‘맡은 일에 있어서 정성을 다해 알차게 그 일을 행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실의 힘에 대하여 벤자민 프랭클린은 “정직과 성실을 벗으로 삼아라. 아무리 친한 벗이라도 너의 정직과 성실만큼 너를 돕지는 못할 것이다.” “백 권의 책에 쓰인 말보다 한 가지 성실한 마음이 더 크게 사람을 움직인다.”라고 했습니다. 제임스 럿셀 로우웰은 “성실하지 못한 사람은 위대한 것들을 생산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고, 카네기는 “성실한 한마디의 말은 백만 마디의 헛된 찬사보다 낫다.”라고 말했습니다. 변화가 급박한 세상에서 성실은 구시대의 유물처럼 취급되고 성실은 변화를 거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성실은 힘이 있습니다.성실하게 사는 것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하여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11:5)”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실은 일을 성취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성실함은 자산이며 우세함입니다. 성실함이 어딜 가나 환영받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성실한 사람은 때론 나약하고 무능하며, 고지식한 사람의 대명사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느 분야에서나 성실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 한 방울도 꾸준히 떨어지면 돌을 뚫게 됩니다.
성실이 재능을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 각지에 1,700여 개의 점포를 설치하여 백화점 왕으로 알려진 페니는 지난날을 술회하면서 "나의 자본이라고는 세 곳의 점포와, 그 밖에 책임을 맡길 만한 인재를 발견하여 훈련하고, 신의와 성실을 거래의 대원칙으로 한다는 경영상의 나의 신조뿐이었다."다고 술회한 바 있습니다. 성실이 그를 부자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성실은 인간을 성공케 하는 큰 자본입니다.
성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누구나 성실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성실에 대한 갈망은 누구에게나 있고 성실한 사람에 대한 몸값은 성실한 만큼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약삭빠른 세상에서 성실한 사람은 궁핍하게 보이고, 쉽게 폄하당하며, 융통성 없게 보일 지라도 길게 보면 성실함이란 결코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손해나 불이익을 끼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성실한 사람을 신뢰하고 함께 일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훌륭한 처세술이 성실이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미국 대 강철 회사 사장인 카네기가 '쉬브'라는 사람을 후계자를 지명하였습니다. 회사의 탁월한 중역들을 제치고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않은 그가 후계자로 지명되었습니다. 그는 원래 정원 청소부로 입사했답니다. 그런데 그는 정원 청소뿐 아니라 공장 안까지도 말끔히 청소를 하곤 했답니다. 그의 성실이 눈에 띄어 그는 청소부에서 정식 직공으로, 사무원으로, 마침내는 카네기의 비서로 발탁되었습니다.
어느 날 카네기가 밤늦도록 사무실에 있다가 집에 가려고 일어나 밖에 나와 보니 쉬브가 그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답니다. 놀란 카네기는 "왜 아직도 퇴근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는 "사장님께서 저를 언제 부르실지 모르는데 어떻게 자리를 비울 수 있습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쉬브는 카네기가 가장 신임하는 성실한 사람이었답니다.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입술이 패려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잠19:1)
어느 마을에 구두를 수선하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지만 마음이 착하고 무척 성실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웃으시며 손님들의 구두를 정성껏 고치는 일에 만족하였습니다. 한 컬레, 한 컬레를 모두 정성껏 고치자 할아버지의 구두 수선 가게는 날로 손님이 늘어나고 할아버지의 구두 수선의 기술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점차 돈을 벌어 이번에는 구두 가게를 차렸습니다. 역시 정성껏 구두를 만들자 많은 사람이 그 가게로 구두를 맞추러 몰려들어 마침내 할아버지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주위 사람들이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제는 할아버지가 직접 구두를 만드시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돈도 그만큼 있고 직공들도 많지 않습니까?" 할아버지는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한 번도 부자가 되려고 한 적이 없으며 다만 내 일을 정성껏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게의 손님들은 모두 내가 만든 구두를 신으려고 몰려든 사람들입니다. 내가 부자가 된 것도 그 사람들 때문인데 이제 와서 그만 둘 수는 없습니다. 또 나는 구두 만드는 기술 외에는 아무 재주가 없는데 구두를 만들지 않는다면 죽은 것과 같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맡은 일이나 처지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맡은 본분에 충실하고 책임을 다하는 성도가 됩시다. 그 길이 구원의 길이요,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우리는 작은 일에도 성실하게 일합시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하나님의 속성인 성실을 삶속에 열매로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니라”(고전15:58)
성도여러분! 사람이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인격적인 성품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저는 성실이라 생각합니다. 성실(誠實)이란 말은, 모든 일에 정성스럽고 거짓되지 않은 참된 것을 말합니다. 성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오늘 성경에는“성실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으로 일러줍니다. 성실은 복입니다. 성실한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두 가지 인간의 삶의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는,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을 악한 길로 유인하는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심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남이 나보다 더 잘 되는 것을 원치 않는 심리입니다. 그가 나보다 더 존경 받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는 심리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가인 콤플렉스>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더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봅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못 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작정하고 남을 악에 빠뜨리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나쁜 마음이냐 하면 뻔히 잘못 되는 길인 줄 알면서도 유인합니다. 그럼 이런 사람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성경은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함정에 빠진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건 악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은 모양이라도 버려야합니다.
또 하나의 삶의 부류는 성실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매사에 진실하고, 정성스럽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복이 주어진다는 성경말씀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성실한 자가 받을 복을 누리며 살게 될까요?
첫째, 자기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맡겨진 일에 성실한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가난하지만 남을 정성껏 섬기기를 좋아하고 성실한 청년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신앙생활에 충성하였습니다. 그 교회에 미국인 선교사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분이 어느 날 장작을 좀 쌓아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 청년은 선교사집 귀퉁이에 장작을 힘들여서 잘 쌓았습니다. 힘들게 다 쌓고 나니까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이 곳은 비가 맞을 염려가 있으니 저 쪽에 다시 쌓아 주시겠습니까?"
그 청년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렇게 순종하였습니다. 성탄절이 되었습니다. 선교사는 그에게 유학 비행기 표와 유학 허가증을 주었습니다. 일년동안 그 청년을 이렇게 저렇게 시험하여 본 것이었습니다. 성실성, 정직성 그리고 충성심, 그리고 남을 섬기는 모습을 이렇게 저렇게 시험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성실한 것이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아는 건 아는 것, 모르는 건 모르는 것,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습니다. 가진 것은 가졌고 못 가진 것은 못 가졌습니다. 못 가지고 가진 것처럼,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성실입니다.
둘째,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성실한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건축회사에 다니던 사람이 퇴직을 얼마 앞두고 사장으로부터 "마지막으로 집 하나 지어 주시오"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 회사도, 하는 일도 그만두게 된다고 생각하던 이 사람은 모든 일을 대충대충했습니다. 재료도 좋은 것을 쓰지 않고 감독과 시공도 철저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겨우 준공검사를 넘길 정도로 지어놓은 집이 거의 완성될 무렵, 사장이 이 사람에게 찾아와 말했습니다. "이 집은 바로 당신 것입니다. 당신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한 나의 선물입니다."
노동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성경에는 근면하게 일할 것을 촉구하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일에 얼마나 충실하십니까? 당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골3:23)하면 주님은 우리의 수고를 통하여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필요까지도 채워 주실 것입니다.
먼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기의 잘못만 구별해서 인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책임만 다하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는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의 모습입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길들여진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잘못도 내 탓으로 여겨 마음 아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식이 잘못되는 것도 내 탓이라 생각해서 마음 아파하는 부모들. 남편이 잘못된 길을 가는 것도 깊이 생각해보니 내 탓인 것 같아서 아파하는 아내들. 남이 잘못한 것을 보면 내 탓이라 생각하며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셋째, 복을 얻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성실한 자입니다.
옛날 한 수도원에 아주 훌륭한 원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원장은 한 제자를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그 제자는 외모도 형편없고, 무엇을 가르쳐 줘도 늘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래도 원장은 그를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제자들의 불만은 대단했습니다. 마침내 모든 제자들이 마당에 모여서 원장에게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원장은 아주 조용히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문제를 하나 내도록 하겠다. 이것을 풀어가지고 오면 내가 이 제자를 왜 특별히 사랑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하면서, 원장은 제자들에게 새 한 마리씩을 나누어주면서“아무도 안 보는 곳을 찾아서, 그 새를 해가 지기 전에 죽여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해가 질 때가 되자 제자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해서 마당에는 죽은 새들이 쌓여 갔습니다. 그런데 원장이 사랑하는 제자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둑어둑 해질 때에야 돌아온 제자의 손에는 새가 아직 산 채로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다른 제자들이“저 바보는 원장님이 무얼 시켰는지도 모르는가봐”하며 비웃고 있을 때, 원장은 왜 새를 죽이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제자가 대답합니다. “원장님이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새를 죽이라고 하셨는데, 아무리 으슥한 곳을 찾아가도 하나님이 보고 계셨고, 아무리 조용한 곳을 찾아가도 거기에도 하나님이 보고 계셨어요. 그래서 새를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자기의 받은바 신앙의 은사와 은혜를 알고 충실한 자입니다. 수도원에 사랑 받는 제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늘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넷째,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성실한 사람입니다.
시편 37편 7절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불평과 불만을 내 속에서 없애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성실한 사람은 기다립니다. 좋은 날이 오기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성실히 섬겼습니다.(창29:15-30) 요셉도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성실히 일하므로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았고(창39: 4), 마침내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맡겨진 일에 게으르지 말고 성실하게 일합시다.
게으르고 불성실한 사람은 심판 때에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기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마25: 14- 3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실한 자의 복을 아십니까?
오늘 성경에 약속하신바 대로 성실한 자는 복을 얻을 것입니다. 자신에게나, 이웃에게나,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정말 성실히 살아가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이라면, 여러분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실하게 사셔서 성실한 자가 받을 복을 얻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성실한 자에게 복을 주시는 주님, 저희 가족이 성실하고 충성된 삶을 살아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옵시고 이웃에겐 사랑을 심어주며 항상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내게 하옵소서. 맡은 일을 성실한 마음으로 행하게 하소서. 주님이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성실과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묵상: 진실로 성실한 삶은 성공의 기쁨을 맛보게 할 것입니다.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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