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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경제 이야기] 혼합미, 미검사 그리고 규제 완화
우석훈 |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
편안하게 얘기해보자. 아기의 이유식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나는 결국 이기주의적 아빠다. 돈이 좀 더 들더라도 나의 아기는 유아식 때부터 우리 쌀을 먹이려고 했다. 아기가 얼마나 많이 먹겠나, 돈이 좀 더 들더라도 유기농으로 먹이고, 그나마도 좀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쌀을 먹이려고 했었다. 두 돌이 아직 안된 나의 아기는 그렇게 좋은 쌀만 먹었다. 아비는 생태주의자이다. 생태와 유기농을 얘기하는 아비를 둔 이유로 오이 하나, 호박 하나, 자기 아비와 친구인 농민들이 정성으로 키운 것들을 먹고 살았다. 아비의 사랑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아이가 먹는 것은 내가 키웠거나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키웠거나, 그렇게 먹게 했다. 물론, 중간중간, 설탕 많이 들어간 산업용 음식을 먹기는 했다. 사람 사는 게, 원래 그렇지.
이런 나에게, 택도 없는 가짜 쌀들이 나돌고 있으니, 너가 좀 공론화시켜보라는 주변의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경기미로 외형을 두르고 있지만 사실상 외국쌀인 거, 그런 걸 좀 얘기해보자. 겉은 경기미인데 사실은 외국쌀인 거, 그게 가능한가?
알아보니, 이건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재수 없게 ‘이천농산’이라는 곳의 ‘기찬진미쌀’이 걸렸다. 국내산 쌀, 정확히는 찹쌀 5%, 그리고 나머지 95%는 미국산 캘로스 쌀, 그거다. 자, 그럼 이건 불법인가? 아주 작은 스티커에 조그맣게, 두 쌀의 혼합비율은 물론 캘로스 쌀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적어놓고 있었다. 하여간 불법은 아니다.
그리하여 나도 지난 주말에 몇 개의 대형마트 쌀 매장에 직접 나가보았다. 일단 물어보았다.
“여기 외국쌀도 파나요?”
“그럴리가요, 우리는 외국쌀 안 팔아요.”
그러고 돌아보았다. 나의 결론으로, 대형마트의 가판대 앞에 건 쌀 중의 절반은 어쨌든 진짜 경기미 등 믿을 만한 브랜드 쌀이고, 나머지 절반은,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전부 ××경기미 등 포장은 화려하지만, 그들 중에 ‘단일미’가 있고, 그 옆에 ‘혼합미’가 있다. 혼합미? 섞은 쌀이라는 말 아니겠는가? 포장대 앞의 쌀 절반은 혼합미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2009년 이후로 쌀에도 규제 완화가 진행되었다. 오래된 쌀을 새 쌀에 섞어도 되고, 수입쌀을 섞어도 된다는 게 그 의미이다. 이게 말이 되느냐?
가장 최근의 규정, 양곡관리법의 시행규칙 중의 세부사항, 별표 4까지 찾아보자.
“1-4-나. 품종명을 모르는 경우에는 ‘혼합’으로 표시.”
하나 더.
“1-7-나. 등급검사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미검사’로 표시.”
슈퍼에서 쌀 살 때 여러분들, 쌀 봉투에서 확인해보시라. 혼합미와 미검사, 그게 얼마나 많이 있는지. 혼합미, 재수 좋으면 오래된 쌀, 아니면 수입쌀이다. 지난 정부에서 시행한 쌀의 규제 완화가 우리 모두를 바보로 만든 것 아닌가. 혼합미 그리고 미검사, 이 두 단어는 결국 세월호와 동의어인 것 같다 혼합미, 미검사, 이 두 단어를 모르면 결국 속게 된다. 농업당국이 규제 완화로 우리를 바보 취급했다.
경향신문 201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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