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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약속 안에서 살고 계십니까?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912 추천 수 0 2014.05.22 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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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4:22-24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4.2.9 주일예배 http://sungamch.net 춘천성암교회 

세 번째 약속 안에서 살고 계십니까?
막14:22-24




조은구 장로님 댁에 가면 브론즈로 된 최후의 만찬이 걸려 있습니다.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서 값도 무게도 꽤 나갈 것 같아 보였습니다. 아마 여러분의 가정에도 이른바 ‘최후의 만찬’이라는 다빈치의 그림이 있기도 할 것이고, 없다고 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물론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이 우리에게 왜 중요한 것일까요? 정말 중요하기나 한 것일까요? 그저 성만찬 식을 할 때나 필요한 도구는 아닐까요? 기독교 신앙의 있어서 이 ‘최후의 만찬’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요? 이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합니다.

다빈치 코드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예수님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머리 긴 이가 여자라든지, 뭔가 이 그림을 통해 다빈치가 비밀을 숨겨 뒀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은 하지 맙시다. 여하간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우리가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사진 찍기 좋게 일자로 앉아서 식사를 했을 리는 없고, 그저 그들이 평소에 먹던 대로 빵과 포도주를 먹는 그런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빵은 들고 축사를 하시고, 포도주는 제자들에게 건네주면서 “새 언약이다”하십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새 언약’이란 예수님의 몸과 그가 흘린 피를 기억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세 언약’이란 뭘까요?

세 언약은 메시아가 도래한 새 시대에 메시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새롭게 맺는 언약 즉 약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역사 속에서 몇 번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살아왔습니다. 첫 번째는, 홍수가 끝난 다음에 노아가 하나님과 맺었다는 ‘무지개 언약’입니다. 사실 이 언약의 상징으로 말하는 ‘무지개’는 하늘에 나타나는 ‘무지개’가 아니라 ‘큰 활’즉 천궁을 의미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게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맺은 첫 번째 언약입니다. 두 번째는 뭘까요?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시내 산에 올라갔을 때 모세와 맺은 두 개의 석판에 기록된 것이 그들의 두 번째 언약입니다. 이른바 십계명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새로운 시대에 직면해 있습니다. 적어도 예수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출발점이 누군가 하면 예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새로운 언약을 맺어야 하는데, 노아의 천궁도 아니고, 모세의 돌 판도 아닌 새로운 언약의 표징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예수님의 몸과 피’였던 것입니다. 천궁에서 돌판 으로, 돌판 에서 예수님의 몸과 피로 그 언약의 상징이 변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이란 단지 기독교의 의례가 아니라 노아에게 있어서 ‘무지개’혹은 ‘천궁’과 같은 것이고, 모세에게 있어서 ‘두 돌판’과 같은 것이니 실로 그 의미가 가볍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에게 ‘성만찬’이 무시된다는 것은 노아에게 ‘천궁’의 약속이 없다는 것이 되고, 모세에게 ‘두 돌판’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만약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만찬’이라는 언약의 징표가 없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모세에게 십계명이 적힌 돌 판이 없는 것과 같은 거죠.  

예수님 이전의 이스라엘 신앙인들은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망하고, 예수님이 세상에 메시아로 온 이후부터는 성전이 없어졌습니다. 바로 이 사라진 성전을 대체하는 의례가 ‘성만찬 의식’인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은  예배당 건물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네 집에서 모이든 ‘성만찬’을 함으로 그들이 예수를 믿고 따르는 신앙공동체임을 확인했습니다. 그걸 집례 하는 제자들은 사제이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곧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예수님이 그 많고 많은 일들을 두고 ‘성만찬’이라는 의례를 제정한 것일까요? 먼저 우리는 최후의 만찬이 행해진 마가의 다락방에 대해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지만, 본시 마가의 다락방은 예루살렘 성 안 시온 산에 위치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일부러 최후만찬의 장소를 거기로 골랐던 겁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2:3, 이사야 52:7에 보면 메시아는 시온 산에서 나와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히브리 성서의 기록대로 시온 산에서 그의 메시아 됨을 선포해야 했기 때문에 ‘마가의 다락방’이 선정 된 것이지 그저 우연히 거기에 모였던 게 아닙니다. 그러면 새 시대의 메시아, 새 아담이 선포되는 시온 산에서 왜 성만찬을 해야 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 이전의 신앙 공동체들이 한 결 같이 메시아가 오는 마지막 시대를 대비해서 준비해야 하는 일 가운데 성찬예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은 밥 먹다가 우연히 생긴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의 히브리 성서 속에서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시온 산이어야 하는 장소), 그런 그들의 메시아 대망을 위한 준비(빵을 들어 축복하고 포도주를 마시는 성찬의식)가운데 한 부분이었던 것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최후의 만찬’을 봅시다. 예수는 먼저 빵을 들어 축복하고 그 다음에는 포도주로 감사 기도를 합니다. 눅22:17-19에 보면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잔을 들고 감사 기도를 하고 그 다음에 빵을 들고 기도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빵을 먼저 축복하고 그 다음에 포도주 순서였습니다. 고전11:23-255에도 바울은 그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후의 만찬에서 빵과 포도주도 당시의 신앙 관습이 있었다는 것이고, 예수님도 그 관습을 따라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순서와 반대였습니다. 엣세네 공동체나 예수 공동체는 바리새인들의 삶을 싫어했고, 그들을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했기 때문에 대부분 그들의 종교 관습과는 반대로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빵을 먼저 포도주를 뒤에 한 것입니다.

어떻든 이런 배경을 두고 성만찬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빵을 들고 축복 기도한 다음에 툭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면서 말합니다. “이는 내 몸이다” 포도주도 그렇게 한 후 “이는 내 피다”라고 말씀합니다. 메시아의 몸, 예수의 몸과 피가 빵과 포도주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걸 이해하기 위해 예수 시대의 랍비들은 전도서 2:24을 해석합니다. 전도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먹고 마시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이 먹고 마시는 게 떡이나 술 뭐 그런 거냐? 아니면 샥스핀이라든지 봉황의 고기를 말하는 거냐? 아닙니다. 탄후마 랍비라는 율법 선생은 이 전도서의 ‘먹고 마시는 것’이 그런 게 아니라 이거랍니다. “이 전도서가 말하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토라와 선행을 뜻한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느냐? 그 근거를 요나 랍비라는 율법 선생이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이렇게 말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사람에게 태양 아래서 먹고 마시며 기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태양 아래 그에게 준 그의 생애에 그의 노고 속에서 그와 동반한다.’(전8:15)여기서 ‘그의 노고’는 그의 세상, 즉 이 세상을 말한다. ‘그의 생애’는 결국 무덤을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묻기 위해 동반하는 무덤 속에 먹고 마시는 게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다름 아니라 토라와 선행이다.”

먹고 마시는 걸 이 세상의 물질이라고 하면, 죽은 다음에는 다 소용없는 일인데 어찌 그걸 두고 ‘사람에게 가장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고 마신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니라 ‘토라(하나님의 말씀)와 자선’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걸 복음서와 연결하면, 예수의 몸은 ‘먹는 것’이고 예수의 피는 ‘마시는 것’이 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이라는 것은, 그 장소나, 그 형식이나, 그 내용은 완전히 새롭게 등장하는 낯선 그 어떤 제도나 의례가 아니라 그들의 역사 속에, 신앙의 흐름 속에 뿌리를 두고 자라고 있던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그 성만찬의 내용에 있어서 ‘내 살과 피를 먹으라’하시는 말씀도 잘못 이해하면 반감을 일으킬만한 그런 용어와 행위같이 보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미 그런 문장을 진짜 살이나 피를 먹는 야만인 같은 상황으로 이해하지 않고 있었으며 전도서의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과 이웃을 위한 자선’을 곧 ‘먹고 마신다’로 이하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빵을 떼어주면서 ‘이건 내 몸이다 받아먹어라’ 하시고 ‘이건 내 피다 받아 마셔라’하신다고 해도 그들은 그게 뭘 의미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이지요. 진짜 예수님 몸의 살코기와 선지를 받아먹고 마시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가 가르치셨던 모든 가르침을 밥 먹듯 먹으라는 거고, 세상의 죄를 없애려는 예수의 가장 숭고한 선행을 포도주 마시듯 옴 몸과 삶에 체화를 하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가르침과 선행을 기억하고 그 배우고 본 바를 따라 그렇게 너희도 살라는 것이 성만찬의 근본 취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이 세 번 째 약속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이요, 성만찬이라는 약속을 이행치 않고 있다면 이 또한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세 번째 약속인 ‘성만찬’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 성만찬이란 가끔 교회의 명절에 하는 의식이 아니라 내 삶을 통해 예수의 가르침을 예수의 몸으로 삼아 밥 먹듯 먹어야 하는 것이고, 이웃을 위한 사랑의 선행을 예수의 피로 삼아 포도주 마시듯 마시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 세 번째 약속 안에서 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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